
집 안 의자가 어제는 창가에, 오늘은 식탁 옆에 놓여 있다면 로봇은 이를 같은 의자로 알아볼 수 있을까. 국내 연구진이 로봇이 같은 공간을 여러 번 오가며 물건의 위치가 어떻게 바뀌었는지 기억하는 '장기 기억' 기술을 개발해 세계 최고 권위의 로봇 학술대회에서 최우수 논문상을 받았다.
대구경북과학기술원(DGIST)은 로봇및기계전자공학과 김기섭 교수 연구팀이 국제 로봇 학술대회 'IEEE/RSJ IROS 2026'에서 최우수 논문상(Best Paper Award)을 받았다고 7일 밝혔다. IROS는 자율주행, 로봇 인지, 인공지능 등 로봇 기술 전반을 다루는 대표적인 국제 학술대회다. 올해 제출된 논문 1933편 가운데 김 교수팀의 연구가 단독으로 최우수 논문에 뽑혔다.
연구팀이 개발한 기술의 이름은 'LT-Mem'(로봇 장기 메모리 시스템)이다. 로봇이 같은 공간을 여러 차례 방문하면서 물체의 위치 변화 이력을 차곡차곡 쌓아 두는 방식이다. 기존 로봇은 주변 환경을 지도로 만들고 최신 상태로 갱신하는 과정에서 과거 정보를 지워 버리거나, 서로 다른 시점에 본 물체가 같은 것인지 연결하지 못하는 한계가 있었다.
이 시스템의 바탕에는 연구팀이 자체 개발한 영상 기반 지도 구축 기술 'MR.ScaleMaster'가 쓰였다. 자율주행차에 흔히 들어가는 값비싼 라이다(레이저를 쏘아 거리를 재는 센서) 없이, 로봇이 카메라로 찍은 영상만으로 여러 시점의 관찰 결과를 하나의 3차원 공간 좌표에 연결한다. 그 결과 로봇은 자주 옮겨지는 의자와 오랫동안 제자리에 있는 가구를 구분하고, "이 의자가 그동안 어디에 있었는가" 같은 질문에도 과거 기억을 바탕으로 답할 수 있게 됐다.
데이터 처리 부담도 크게 줄였다. 방대한 영상 기록을 매번 처음부터 다시 해석해야 하는 기존 대규모 언어모델 방식과 비교해 약 16분의 1 수준의 데이터(토큰)만 쓰고도 더 높은 추론 성능을 냈다고 연구팀은 설명했다. 연구팀은 로봇의 장기 기억 능력을 체계적으로 평가하는 새 기준 'LT-VQA'도 함께 제시했다.
로봇이 집이나 물류창고처럼 물건이 수시로 옮겨지는 곳에서 오래 일하려면, 지금 보이는 장면만 인식하는 데서 나아가 시간에 따른 변화를 이해해야 한다. 김기섭 교수는 "로봇이 현재 공간을 단편적으로 인식하는 것을 넘어 시간에 따른 변화까지 경험으로 축적하고 이해할 수 있는 장기 자율 시스템의 가능성을 열었다"며 "가정용 서비스 로봇과 물류·시설 관리 로봇 등 복잡한 환경에서 장기간 활동해야 하는 로봇 분야 발전에 핵심적인 역할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논문은 김 교수가 교신저자, 이유민 석사과정생이 제1저자, 주효석 석박사통합과정생이 공동저자로 참여했다. 연구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한국연구재단의 우수신진연구사업과 기초연구사업, 정보통신기획평가원(IITP)의 AI스타펠로우십 지원을 받아 수행됐다.
이번 성과는 학술대회 논문 단계의 연구로, 실제 가정용 로봇 제품에 언제 적용될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그러나 값비싼 센서 없이 카메라만으로 공간의 변화를 기억하는 기술은 로봇 가격을 낮추고, 집 안 심부름이나 물류창고 정리, 시설 점검 같은 일상 서비스 로봇의 등장을 앞당길 수 있다. 자녀가 로봇·AI 진로를 고민하는 가정이라면 '보는 로봇'을 넘어 '기억하고 판단하는 로봇'을 만드는 인지 기술이 핵심 연구 주제로 떠올랐다는 점을 눈여겨볼 만하다.
출처: DGIST(대구경북과학기술원), 2026년 10월 7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