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유산신문 역사기획 연재 | 커피 한 잔에 담긴 한국 근현대사 ] 5시인 이상은 왜 다방을 차렸을까…1930년대 경성, 커피잔 옆에 놓인 문학과 예술

1933년 종로에 문을 연 제비다방, 시인 이상의 또 다른 삶

박태원이 남긴 다방의 풍경, 커피와 대화가 오가던 경성의 문화공간

낭만의 장소이자 생업의 현장, 문학작품으로 읽는 경성 다방의 두 얼굴

1933년 경성 종로에 문을 연 ‘제비’라는 다방의 주인은 시인 이상이었다. 소설 「날개」와 시 「오감도」로 알려진 그는 커피를 파는 공간도 운영했다. 그의 다방에는 문인과 예술가들이 드나들었고, 친구 박태원은 그곳의 풍경을 글로 남겼다. 1936년 이용악은 다방을 소재로 시를 발표했다. 일제강점기 경성의 다방은 단순히 커피를 마시는 장소가 아니었다. 새로운 예술을 이야기하는 공간이면서 식민지 도시인의 고단한 일상이 스며든 장소였다.

이상이 경영했다고 하는 ‘제비다방’의 AI 생성 이미지

소설 「날개」의 작가가 다방 주인이었다

시인 이상(李箱, 1910~1937)은 왜 다방을 차렸을까.

 

기하학적인 시와 실험적인 소설을 남긴 작가 이상에게는 문학작품 못지않게 흥미로운 이력이 있다. 1933년 경성 종로에서 ‘제비’라는 이름의 다방을 운영했다는 사실이다.

 

이상은 본명 김해경으로, 건축 관련 교육을 받고 조선총독부 건축 부서에서 일한 경력이 있었다. 문학과 미술에 관심을 두었던 그는 이후 다방 경영에도 뛰어들었다.

 

제비다방은 이상과 금홍의 관계를 이야기할 때도 등장한다. 금홍은 이상과 함께 다방을 운영한 인물로 알려져 있다. 두 사람의 관계는 이상의 문학과 생애를 설명하는 자료에서 자주 다뤄진다.

 

한국학중앙연구원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이상이 1933년 종로에서 제비다방을 열었으며, 이후에도 여러 다방의 설계와 운영에 관여했다고 기록한다.

 

다만 이상이 다방을 차린 이유를 문학적 실험이나 예술적 이상만으로 설명하기는 어렵다. 다방은 실제로 손님을 맞고 음료를 판매해야 하는 영업장이었다. 문화적 교류와 생업이라는 두 성격을 함께 살펴야 한다.

 

제비다방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제비다방이 있던 종로는 경성의 주요 상업지역이었다.

 

당시 종로에는 상점과 극장, 음식점 등이 모여 있었고 전차가 오갔다. 새로운 도시문화를 접하는 사람들이 드나드는 거리였다.

제비다방의 외관은 앞쪽에 유리창을 크게 낸 형태였다고 전한다. 손님들이 창밖으로 종로의 거리와 전차를 바라볼 수 있었다는 설명이 남아 있다.

 

이 공간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자료는 이상의 친구이자 소설가였던 박태원의 글이다.

 

박태원은 제비다방의 실내와 손님을 맞는 모습을 기록했다. 그의 글에는 이상이 자리를 비운 다방에서 종업원이 손님을 응대하는 장면도 등장한다.

 

흥미로운 것은 당시 다방의 메뉴와 손님을 맞는 말투다. 박태원이 남긴 장면에는 오늘날 익숙하지 않은 음료 이름이 등장한다. 손님이 주문한 음료를 제공할 수 없어 다른 메뉴를 고르는 대화도 이어진다.

 

이 기록은 제비다방을 문인들이 모인 낭만적인 장소로만 이해하지 않게 한다. 실제로 음료를 주문하고 손님을 응대하는 영업공간이었다는 사실을 보여 주기 때문이다.

카페 제비 (자료=서울역사박물관 제공)

 

당시 기록에서 확인되는 장면

박태원의 제비다방 관련 글에는 손님이 음료를 주문하자 종업원이 준비되지 않은 메뉴라고 답하는 대화가 실려 있다. 이는 후대의 재현이 아니라 문학가가 남긴 당시 다방의 모습이다. 다만 대화가 실제 발언을 그대로 옮긴 것인지, 문학적 구성을 거친 것인지는 구분해야 한다.

 

영화감독이 차를 끓이고, 배우가 다방을 운영하다

이상보다 앞서 다방을 운영한 예술가도 있었다.

 

1927년 영화인 이경손은 경성 관훈동 입구에 ‘카카듀’라는 다방을 열었다. 이경손이 직접 차를 끓였다는 기록도 전한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카카듀를 한국인이 경영한 초기 다방의 대표적인 사례로 설명한다. 다만 한국 최초의 다방 자체와 한국인이 운영한 최초의 다방은 구분해야 한다.

AI 생성 이미지

 

1929년에는 배우 김용규와 심영이 종로2가 YMCA 회관 부근에 ‘멕시코다방’을 열었다.

멕시코다방은 실내장식에도 예술가들이 참여했다는 점이 특징이다. 화가와 사진작가, 무대장치 관계자들이 공간을 꾸몄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이러한 사례는 다방이 단순히 커피를 판매하는 업소가 아니었음을 보여 준다. 영화인과 배우, 미술가들이 직접 운영하거나 공간을 만드는 데 참여했다.

커피를 마시는 장소를 예술가들이 설계하고 꾸몄다는 점에서 당시 다방은 근대 도시의 새로운 문화공간이었다.

1936년 신문에 실린 시, 다방을 ‘거리의 항구’로 부르다

1936년 1월 《조선중앙일보》에는 시인 이용악의 「다방」이 실렸다.

이용악은 시에서 다방을 ‘거리의 항구’에 비유했다. 바다가 없는 도시에서 사람들이 모여드는 장소를 항구로 표현한 것이다.

이는 1930년대 다방의 성격을 살펴볼 수 있는 구체적인 문학 기록이다.

이용악은 시에서 다방을 ‘거리의 항구’에 비유한 AI 생성 이미지

 

항구에는 사람들이 모이고 떠난다. 이용악의 시에서 다방은 도시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잠시 머무는 장소로 나타난다.

 

당시 경성은 식민지 통치 아래 급격하게 변화하던 도시였다. 근대적인 상점과 교통시설이 늘어났지만, 새로운 도시문화가 모든 사람에게 같은 기회를 제공한 것은 아니었다.

이용악의 시는 다방을 화려한 소비공간으로만 그리지 않는다. 고단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커피 한 잔을 사이에 두고 머무는 장소로 표현한다.

오늘날 카페를 휴식이나 만남의 장소로 이용하는 모습과 비교할 수 있지만, 당시의 사회적 환경은 달랐다. 식민지 경성의 다방에는 근대 도시의 편리함과 불안정한 삶이 함께 존재했다.

 

1939년 채만식이 남긴 커피와 음악의 풍경

1939년 7월 잡지 《조광》에 발표된 채만식의 글에도 다방의 모습이 등장한다.

 

채만식은 난로 가까운 푹신한 자리에 앉아 따뜻한 커피를 마시고 음악을 듣는 경험을 도시인이 누리는 즐거움으로 묘사했다.

이 기록에는 다방의 또 다른 특징이 나타난다.

 

당시 다방에서는 음료만 제공한 것이 아니었다. 실내장식과 난방, 음악 감상도 손님들이 공간을 선택하는 이유가 됐다.

 

커피를 마시는 일은 특정한 분위기 속에서 시간을 보내는 경험과 결합했다.

 

다만 채만식의 글에 등장하는 다방의 모습이 당시 모든 다방의 시설과 서비스를 대표하는 것은 아니다. 작가가 관찰하고 경험한 도시의 한 장면으로 이해해야 한다.

 

다방은 새로운 음악과 미술, 문학을 접하는 장소였지만 누구에게나 열린 공공 문화시설은 아니었다. 커피값을 지불할 수 있는 소비자가 이용하는 상업공간이었다. AI 생성 이미지

커피 한 잔으로 예술을 이야기하던 시대

1930년대 경성에는 성격이 다른 다방들이 등장했다.

음악을 들을 수 있는 공간, 외국의 분위기를 실내장식에 반영한 곳, 문인과 예술가들이 모이던 장소가 있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는 소공동의 낙랑파라를 비롯해 트로이카, 미모사, 휘가로 등 여러 다방이 소개돼 있다.

 

이 가운데 휘가로는 정기적인 음악회로 알려졌으며, 다른 다방들도 각자의 특징을 내세웠다.

 

다방은 새로운 음악과 미술, 문학을 접하는 장소였지만 누구에게나 열린 공공 문화시설은 아니었다. 커피값을 지불할 수 있는 소비자가 이용하는 상업공간이었다.

 

문화적 교류와 소비문화가 같은 장소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1941년 태평양전쟁이 시작된 뒤에는 커피와 설탕 등 수입품의 공급이 어려워지면서 다방 영업도 위축됐다. 근대적인 도시문화 역시 전쟁과 식민지 경제의 제약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정동의 손탁호텔에서 종로의 제비다방까지

정동의 손탁호텔과 종로의 제비다방은 같은 커피를 판매했지만 성격은 달랐다.

 

1902년 문을 연 손탁호텔은 대한제국의 외국 귀빈을 맞이하는 서양식 숙박·접객시설이었다. 반면 1933년의 제비다방은 문인과 예술가, 도시 소비자가 드나드는 상업공간이었다.

 

두 장소 사이에는 30여 년의 시간 차이가 있다.

 

커피를 마시는 사람도, 공간을 운영하는 주체도 달라졌다. 외교관과 황실 주변의 접객문화에서 출발한 커피의 역사는 이후 도시의 다방문화와 만나 새로운 모습을 갖췄다.

 

물론 제비다방이 손탁호텔의 직접적인 후신이라는 뜻은 아니다. 두 공간은 한국 근대 커피문화의 서로 다른 단계를 보여 주는 사례다.

오늘날 종로와 정동에는 다양한 카페가 자리 잡고 있다. 그러나 시인 이상이 운영하던 제비다방과 당시 예술가들이 모이던 다방 대부분은 건물이나 실내가 원형 그대로 남아 있지 않다.

 

그 공간을 기억할 수 있는 근거는 당시 신문과 문학작품, 회고와 사진 등 기록에 있다.

 

시인 이상이 다방을 운영했다는 사실은 한 작가의 특이한 이력으로 끝나지 않는다. 1930년대 경성에서 문학과 예술이 사람들의 일상적인 소비공간과 어떻게 만났는지를 보여 준다.

 

한때 황실과 외국인의 접객문화에 속했던 커피는 경성의 다방에서 시와 소설, 음악을 만났다. 커피잔 옆에는 새로운 예술을 이야기하는 사람들과 식민지 도시를 살아가는 이들의 일상이 함께 놓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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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 2026.10.27 16:03 수정 2026.10.27 1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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