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돈 목사의 좌충우돌 성경신학[35] 말라기서 - 유대교를 무너뜨릴 폭탄을 예언하다

얌니아 회의의 선택… 칠십인경을 버리고 히브리어 성경으로 회귀한 까닭

성전 문을 닫아라… 유대교의 골머리를 썩인 말라기서의 경고와 독법

은폐된 메시아 예언… 신약과 구약을 잇는 영원한 제사장직의 비밀

박상돈 목사 | PJC 설교목사

 

A.D. 90년 얌니아 회의 이후 유대교를 2차 유대교, 혹은 후기 유대교라고 부릅니다. 1차 유대교는 "법궤 없는 성전" 과제를 어떻게 극복했습니까? 오직 하나님만 섬기는 유일신 사상을 공고히 다져갑니다. 또한 진지하게 성경을 탐구한 결과 메시아를 꿈꾸게 됩니다. 이른바 메시아 대망, 그 핵심은 제사장 순혈주의였습니다. 그런데 예루살렘 성전(=스룹바벨 성전)이 또다시 파괴되었습니다. 그 어려움을 딛고 재출발한 2차 유대교 과제는 무엇입니까? "성전 없는 예배" 가능성을 묻되 이를 정경화 작업으로 극복합니다. 정경화 작업을 한마디로 정리하니 히브리어 성경으로 되돌아감이었습니다. 선조들이 공들여 번역한 칠십인경을 포기하고 히브리어 성경으로 회귀합니다.

 

바리새파 랍비들이 헬라어 번역 성경을 포기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정경이 아닌데 정경인 양 소개된 문서들이 있어서입니다. 이들 문서가 곧 외경입니다. 그러니 온건파 랍비들은 외경을 뺀 헬라어 성경을 추천합니다. 결과론이지만 격론 끝에 히브리어 성경을 정경으로 채택합니다. 아무리 그래도 헬라어 성경은 3백 년 가까이 디아스포라들이 읽어오지 않았습니까? 그 상황을 무시하고 히브리어 성경만 고집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니 분명 치열한 신학 논쟁을 펼치지 않았겠습니까? 강경파 랍비들은 헬라어 성경을 정경으로 채택하면 안 될 근거를 제시합니다.    

 

과연 얌니아 회의에서는 무슨 근거로 헬라어 성경을 포기했습니까? 전승에 따르면 칠십인경은 장로들 72명이 번역했다고 합니다. 서기관이었을 이스라엘 장로들이 히브리어 성경을 놓고 헬라어로 번역합니다. 그 장로들이 히브리어 성경 체계와는 다른 편집을 시도합니다. 그러니 그때도 편집을 두고 설전이 오가지 않았겠습니까? 그때는 가능했던 재편집을 얌니아 회의에서는 뒤집어 원위치시켰습니다. 알고 보면 까마득한 후배가 선배들 업적을 순식간에 뒤엎은 셈입니다. 그들은 선배들이 애써 끌어온 외경을 모조리 잘라내고 삭제했습니다. 그렇게 한결 나아지긴 했어도 여전히 찜찜함이 남습니다. 타협점을 찾고자 애를 썼으나 결국엔 히브리어 성경으로 되돌아갑니다. 가장 결정적 이유가 그래서 역설처럼 보입니다. 왜냐면 편집에 따른 신학 관점, 혹은 의미 때문이었습니다.

 

헬라어 성경 편집체계를 유지하면 예언서가 맨 뒤에 있습니다. 아주 자연스레 예언서 마지막 문서가 눈에 들어옵니다. 예언서 특성상 책명이 곧 저자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말라기서는 "나의 사자"란 뜻을 지닌 저자가 기록한 예언서입니다. 그런데 그 예언서 결말이 신경을 곤두세우게 합니다. 지금 랍비들이 왜 얌니아에 모여 치열한 설전을 펼치고 있습니까? 예루살렘 성전이 파괴된 그 후유증을 속히 해소하고자 모였습니다. 하지만 칠십인경 마지막 문서인 말라기서 첫 장에 기록된 예언이 자꾸 눈에 밟힙니다.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가 내 제단 위에 헛되이 불사르지 못하게 하기 위하여 너희 중에 성전 문을 닫을 자가 있었으면 좋겠도다. 내가 너희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너희가 손으로 드리는 것을, 받지도 아니하리라."(말 1:10)

"아예 성전 문을 닫아걸어 버리는 것이 어떻겠느냐? 그러면 누구도 성전에서 아둔하고 천치 같은 예배를 드리며 종교놀음을 하지 못할 테니 말이다. 나는 기쁘지 않다. 만군의 하나님은 하나도 기쁘지 않다. 너희의 거짓 예배 따위는 원하지 않는다."(유진 피터슨, <메시지 성경>, 말 1:10)

 

그렇지 않아도 성전 파괴로 인해 오금이 저릴 지경입니다. 그런데 이 예언을 읽으면 어떤 기분이 들겠습니까? 말 그대로 불안한 결말이라 찜찜함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오죽하면 다른 예언서와 달리 말라기서 읽기는 독법마저 특이했습니다. 하지만 그런다고 달라지는 게 별반 없습니다. 히브리어 성경 체계로 되돌아감이 최선이라고 여겼습니다. 사실 심각한 신학 논쟁은 말라기서 말고도 더 있습니다. 그 하나가 지난번에 살펴본 "다니엘서는 선지서일까?"였습니다. 선지서라면 마땅히 다니엘 역시 선지자로 불러야 합니다. 하지만 다니엘을 선지자로 부를 수 없는 결격 사유가 몇 가지 나왔습니다. 그 결과 예전 히브리어 성경 편집이 옳다는 논리가 대세를 이룹니다.

 

결국 돌고 돌아 헬라어 성경 편집체계를 내려놓고 히브리어 성경을 정경으로 채택합니다. 그렇게 히브리어 성경으로 원위치한 또 다른 책이 말라기서입니다. 칠십인경 체제에서는 말라기서가 마지막 책이었습니다. 문서 선지서 가운데 기록 연대가 가장 늦어서입니다. 그러자니 자연스레 말라기서 주제 하나가 노출되었습니다. "다시 올 엘리야"와 그가 외칠 경고입니다.

 

"보라,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내가 선지자 엘리야를 너희에게 보내리니, 그가 아버지의 마음을 자녀에게로 돌이키게 하고 자녀들의 마음을 그들의 아버지에게로 돌이키게 하리라. 돌이키지 아니하면 두렵건대 내가 와서 저주로 그 땅을 칠까 하노라 하시니라."(말 4:5-6)

 

유대인들은 그 경고가 두려워 말라기서 읽기에 변화를 주었습니다. 왜냐면 저주 가능성으로 말씀이 끝난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그러면 성경이 어떤 유형의 책이 되겠습니까? 축복이 아니라 저주라면 율법에 담긴 가치와도 틀어집니다. 그래서 다른 구절 하나를 더 끌고와 억지춘향격으로 마무리합니다. 그렇게 절묘하게 율법 가치를 높이는 효과마저 챙겼습니다.

 

"너희는 내가 호렙에서 온 이스라엘을 위하여 내 종 모세에게 명령한 법 곧 율례와 법도를 기억하라."(말 4:4)

 

예루살렘 성전이 파괴되고 유대인들은 유리하는 방랑자가 된 지 20년이 흘렀습니다. 참담한 현실을 대할수록 말라기서는 읽기가 두렵고 버겁기만 합니다. 저주 가능성으로 끝난 말씀이 두렵다고 다른 구절을 추가해서 읽어왔습니다. 하지만 요한계시록에 기록된 마지막 경고가 무엇인 줄 아십니까? 이미 주신 예언의 말씀에 더하거나 빼는 자에게 미칠 화 아닙니까(계 22:18-19)? 왜 사도 요한을 통해 그런 심각한 경고까지 했겠습니까? 유대인들이 오래전부터 그런 식으로 성경을 읽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행여 유대인들처럼 읽을까 봐 저주성 경고를 남겼습니다. 바리새파 장로들이 말라기서 독법에 문제 있음을 왜 모르겠습니까? 그렇다고 저주 가능성으로 끝내자니 더더욱 찜찜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니 이참에 말라기서도 원위치시켜버립니다. 하지만 돌이킴이 없는데 자리만 바꾼다고 저주가 사라지겠습니까? 되려 "다시 올 엘리야"만 더욱 선명하게 떠오르게 됩니다. 또한 그가 과연 왔는지를 두고 설전을 펼치게 됩니다. 당연히 교회는 다시 올 엘리야가 세례 요한임을 주장합니다.

 

얌니아 회의는 교회가 제시한 주장을 무시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렇다고 하나하나 반박하기도 어렵습니다. 왜냐면 유대인들조차 세례 요한이 엄청난 선지자임을 인정합니다. 그러니 대놓고 아니라고 우기기도 두렵습니다. 따라서 그런 주장을 잠재울 수 있는 방식을 선호하게 됩니다. 히브리어 성경으로 말라기서를 찾아보십시오. 외곽이 아니라 오히려 중심부에 배치함으로 망각을 유도합니다. 낯익은 자리가 아니라서 말라기서는 조금씩 관심사에서 멀어집니다. 다시 말해 말라기서 예언을 부인하기보다 침묵하는 편을 택했습니다.

 

그러니 이참에 말라기서에서 메시아 관련 예언이 무엇인지 살펴보십시오. 우리는 종종 메시아 관련 예언하면 이사야서나 예레미야서를 떠올립니다. 그런데 사실은 말라기서가 아니면 풀어낼 수 없는 예언이 있습니다. 심지어 그 메시아 예언이 두 개나 됩니다. 하나는 노출되어 있어서 잘 읽으면 쉽게 찾아낼 수가 있습니다. 더구나 마지막에 나온 예언이라 금방 알아낼 수가 있습니다. 하지만 다른 하나는 여간해서는 찾아내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해도 학자들이나 찾을 수 있을 만큼 어렵지는 않습니다. 요점은 성경을 어떻게 읽었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습니다.

 

말라기서에는 메시아 관련 예언이 두 개가 있다고 했습니다. 그중 드러난 메시아 예언이 "다시 올 엘리야"입니다. 그러면 숨겨진 메시아 예언은 과연 무엇이겠습니까? 더구나 그 숨은 예언이 구약 전체를 관통하는 획기적 주제라면 어떻습니까? 그래서 말라기서가 없다면 말입니다. 아마도 신약성경은 기록하기가 쉽지 않았으리라 보입니다. 왜냐면 신약성경 핵심 주제가 예수님은 그리스도, 이 하나 아닙니까(마 1:1, 막 1:1)? 그리스도, 곧 기름 부음 받은 자는 어떤 직분을 가리킵니까? 왕과 제사장, 그리고 선지자입니다. 신약 저자들은 제각기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심을 증언합니다. 그중 히브리서는 예수님을 제사장이신 그리스도로 이끌어갑니다. 멜기세덱 계보를 따르는 영원한 제사장이 그 핵심 내용입니다. 하지만 제사장 그리스도를 증언하려면 선결과제 하나가 더 남아있습니다. 그 선결과제가 바로 말라기서가 품고 있는 예언입니다. 과연 그 예언은 무엇이겠습니까?
 

 

 

 

작성 2026.10.27 14:56 수정 2026.10.27 1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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