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가 무고한 시민을 간첩으로 몰고 헌정질서를 짓밟은 가해자들에게 쥐여주었던 ‘훈장’이라는 면죄부가 마침내 박탈된다. 정부는 12·12 군사반란과 5·18 민주화운동 진압, 그리고 과거 불법 고문으로 간첩을 조작했던 관련자 167명의 정부 포상 198점을 전격 취소하기로 의결했다.
이는 단순히 과거의 유물을 정돈하는 차원을 넘어, 국가폭력 가해자에게 잘못 수여된 '거짓 명예'를 국가가 직접 거둬들임으로써 헌법적 정의를 확립하겠다는 강한 정치적·사법적 의지의 표명으로 풀이된다.
신군부 부역·부실 심의 드러난 '가짜 유공자'들
이번 조치로 12·12 사태와 5·18 진압 등 비상계엄 업무에 동원됐던 76명의 무공훈장 및 무공포장 76점이 즉시 박탈된다.
특히 국가안전보장 유공으로 포상을 받은 42명은 재조사 결과 대간첩 작전 등 국토 방위에 헌신한 공적이 전혀 확인되지 않았다. 심지어 일부 포상은 국무회의 심의조차 거치지 않은 채 정권 차원에서 밀어붙인 부실 포상이었음이 드러났다.
계엄 업무 유공자 34명 역시 신군부의 내란과 국헌물란 행위에 조력한 사실이 확정된 이상, 국가의 포상 대상이 될 수 없다는 사법적 판단이 재확인됐다. 헌정을 파괴한 가해자들에게 '안보'와 '공적'이라는 이름의 훈장을 안겨준 잔재를 비로소 청산한 것이다.
고문과 조작으로 얻은 훈장... 40년 만에 거둬들인 '거짓 명예'
가장 주목할 대목은 재심을 통해 무죄가 확정된 간첩 조작 사건 가해자 91명(포상 122점)에 대한 서훈 박탈이다.
경찰청 소관의 '남민전 사건'(36명), 국정원(옛 안기부·중앙정보부) 소관의 '재일동포 간첩 사건', '보성 가족 간첩단 사건', '제주 모녀 간첩 사건'(71명) 등 참혹한 고문과 불법 구금으로 무고한 시민의 삶을 송두리째 짓밟았던 공작원과 수사관들의 포상이 대거 취소 대상에 올랐다.
그동안 국가폭력 피해자들은 재심을 통해 힘겹게 무죄를 선고받았음에도, 자신들을 고문하고 사건을 조작한 가해자들은 여전히 국가 유공자로서의 훈장과 명예를 유지하는 기형적인 구조가 이어져 왔다. 이번 조치는 이러한 역사적 모순을 끝내고 가해자의 명예를 공식적으로 박탈했다는 점에서 사법적 정의를 완결짓는 의미를 지닌다.
"끝까지 찾는다"... 검찰 등 국가 기관 전체로 사정 칼날 확대
정부의 이번 조치는 올해 1월(국가폭력 포상 10점 취소)과 3월(12·12 가담자 무공훈장 10점 취소)에 이은 세 번째 대규모 서훈 취소다.
정부는 군, 경찰, 정보기관에 그치지 않고 검찰을 포함한 다른 모든 국가기관의 과거 포상 기록까지 전수 검증하겠다고 밝혔다. 반헌법적 행위나 간첩 조작, 인권침해를 공적으로 포장해 수여된 서훈을 예외 없이 발본색원하겠다는 경고다.
무고한 시민을 보호해야 할 국가가 도리어 시민을 짓밟고 가해자에게 훈장을 빚어주던 어두운 시대. 늦었지만 가해자의 거짓 명예를 거둬들이고 헌법적 가치를 바로세우는 국가의 당연한 의무가 비로소 이행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