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서울 정동의 카페에서는 커피와 빵을 함께 즐기는 모습이 자연스럽다. 그러나 19세기 말 조선에서 커피와 서양식 빵은 새로운 생활문화에 속했다. 외국 공사관과 선교기관이 모여 있던 정동에는 서양식 음식과 식사 방식이 유입됐고, 1902년 문을 연 손탁호텔은 이러한 변화가 나타난 공간 가운데 하나였다. 커피 옆에 놓인 빵 한 조각을 따라가면 대한제국기 식생활의 변화와 오늘날 정동의 카페문화가 서로 다른 시대의 모습으로 드러난다.

커피와 빵, 서로 다른 길로 조선에 들어오다
정동길의 베이커리 카페에 들어서면 커피와 함께 크루아상, 케이크, 구움과자를 고를 수 있다. 오늘날에는 익숙한 풍경이지만 19세기 말 조선에서 이러한 음식은 서양의 생활방식과 함께 알려지기 시작했다.
커피와 빵은 모두 외래 식문화라는 공통점이 있다. 그러나 두 음식이 같은 시기에, 같은 경로로 처음 들어왔다고 볼 수는 없다.
밀가루로 만든 음식은 조선에도 존재했다. 만두와 국수처럼 밀을 이용한 음식은 이미 오래전부터 먹었다. 개항 이후 새롭게 소개된 것은 서양식 발효빵과 버터, 우유, 설탕 등을 활용한 제과·제빵 방식이었다.
커피 역시 19세기 중반 선교사의 서신에서 반입 기록이 확인된다. 이후 개항장과 외국인 거주지를 중심으로 음용 사례가 나타났다.
두 음식의 유입 경로와 확산 시기는 서로 달랐지만, 개항 이후 외국인들의 생활공간에서 서양식 식사와 음료를 접할 기회가 늘어났다는 점은 공통적이다.
외국 공사관과 선교기관, 새로운 식생활의 통로

19세기 후반 정동에는 미국과 러시아 등 외국 공사관이 자리 잡았다. 선교사들이 설립한 교육기관과 종교시설도 들어섰다.
이러한 공간은 외교와 교육뿐 아니라 생활문화가 오가는 장소였다.
외국인들은 조선에 머물면서 자신들에게 익숙한 음식과 식사 방식을 유지하려 했다. 빵과 버터, 우유, 차와 커피는 그들이 사용하던 식재료와 음료에 속했다.
정동의 서양문화 유입을 다룬 학술연구에서도 외국인 거주지와 선교기관을 중심으로 새로운 음식문화가 소개된 과정을 살펴볼 수 있다.
다만 외국인들이 빵을 먹었다는 사실이 곧 조선인들이 같은 음식을 널리 소비했다는 뜻은 아니다. 새로운 식문화가 유입되는 단계와 사회 전반에 보급되는 단계는 구분해야 한다.
당시 서양식 음식은 외국인들의 생활과 궁중의 외빈 접대, 일부 상류층의 경험을 중심으로 알려졌다. 일반 백성의 일상적인 식탁까지 얼마나 확산됐는지는 별도의 자료가 필요하다.
빵과 버터, 설탕이 바꾼 식탁의 모습

서양식 제과·제빵 문화가 들어오면서 새로운 재료와 조리법도 소개됐다.
대표적인 재료가 밀가루와 버터, 우유, 설탕이다.
이 가운데 밀가루와 설탕을 조선에 전혀 없었던 식재료로 설명해서는 안 된다. 개항 이전에도 밀을 이용한 음식이 있었고, 설탕 역시 제한적으로 알려져 있었다.
달라진 것은 재료의 조합과 사용 방식이었다.
서양식 빵은 반죽을 발효시키거나 굽는 과정에서 기존의 밀가루 음식과 차이를 보였다. 버터와 우유를 활용한 과자, 설탕을 넣은 케이크와 디저트는 새로운 식사와 접객문화의 일부로 소개됐다.
다만 이러한 변화가 19세기 말 정동에서 얼마나 널리 나타났는지는 당시의 음식 기록과 구매 장부, 신문광고 등을 통해 확인해야 한다.
근대 식생활의 변화를 설명할 때는 새로운 음식이 등장했다는 사실뿐 아니라 누가 그것을 먹을 수 있었는지도 살펴야 한다.
외국인과 궁중, 일부 상류층이 접한 음식이 곧 조선 사회 전체의 식생활을 대표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손탁호텔의 서양식 식탁, 기록으로 확인되는 것은

정동의 서양식 음식문화를 설명할 때 대표적으로 등장하는 공간은 손탁호텔이다.
1902년 문을 연 손탁호텔에는 객실과 함께 식당, 커피를 마시는 공간이 마련됐다. 외국 귀빈을 맞이하고 서양식 식사를 제공하는 시설이었다.
이 호텔의 음식문화는 당시 신문광고를 통해서도 일부 확인할 수 있다.
1909년 9월 18일자 영문 신문 《더 서울 프레스(The Seoul Press)》에 실린 손탁호텔 광고는 프랑스 요리와 연회, 결혼식, 피로연 등의 서비스를 소개했다. 서울시의 역사 해설에도 이 광고 내용이 정리돼 있다.
이 자료는 손탁호텔에서 서양식 식사와 접객 서비스가 이루어졌음을 보여 준다.
그러나 여기서 주의할 점이 있다.
손탁호텔에 식당과 커피를 마시는 공간이 있었다는 사실만으로 크루아상이나 케이크를 판매했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현재까지 대조한 자료에서는 당시 손탁호텔의 구체적인 제과 메뉴를 확인하지 못했다.
손탁호텔을 오늘날의 베이커리 카페와 같은 시설로 설명하는 것도 적절하지 않다.
호텔의 식당은 숙박객과 외국 귀빈의 식사·접객을 위한 공간이었다. 반면 현대의 베이커리 카페는 일반 소비자가 빵과 음료를 선택하고 휴식을 즐기는 상업공간이다.
두 공간은 서양식 식음료를 제공한다는 공통점이 있지만, 이용자와 운영 목적에서 차이가 있다.
빵은 어떻게 근대 도시의 상품이 됐을까

서양식 빵이 조선에 소개된 뒤 대중적인 상품으로 자리 잡는 과정은 또 다른 역사다.
외국인 거주지와 호텔에서 먹던 음식이 일반 소비자를 위한 상품으로 확산되려면 재료를 공급하는 유통망과 제빵 기술, 판매 공간이 필요했다.
개항 이후 도시의 상업활동이 확대되면서 서양식 식품을 취급하는 상점과 제과업도 발전했다. 이후 일제강점기에는 도시를 중심으로 빵과 과자, 양과자를 판매하는 업소가 늘어났다.
다만 이 변화가 모두 정동에서 시작됐다고 보기는 어렵다. 개항장과 경성의 다른 상업지역에서도 서양식 식품의 유통과 소비가 이루어졌다.
정동의 역사적 특징은 한국 제과업의 발상지라는 데 있지 않다. 외교관과 선교사, 황실 주변 인물들이 새로운 생활문화를 접했던 공간이라는 점에서 주목할 수 있다.
커피와 빵은 근대 도시에서 서로 다른 경로를 거쳐 확산됐고, 이후 카페와 제과점에서 함께 소비하는 음식으로 자리 잡았다.
오늘의 정동, 빵과 커피가 일상이 된 거리
오늘날 정동길에서는 커피와 빵을 함께 판매하는 카페를 찾아볼 수 있다.
그 카페에는 크루아상, 바게트, 휘낭시에, 까눌레 등 여러 종류의 빵과 구움과자가 소개돼 있다. 커피 역시 에스프레소와 핸드드립 등 다양한 방식으로 제공한다.
과거 외국인들의 생활공간에서 소개됐던 서양식 빵과 커피를 이제는 일반 소비자가 일상적으로 선택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카페가 손탁호텔의 제과·제빵 전통을 직접 계승했다고 볼 근거는 없다. 두 공간의 관계는 역사적 계보가 아니라 시대에 따른 식생활 변화라는 관점에서 살펴야 한다.
정동의 또다른 카페에는 프랑스식 베이커리 카페도 검색된다. 빵과 커피를 함께 판매하는 현대적인 상업공간으로, 서양식 식품이 더 이상 낯선 음식이 아니라는 점을 보여 준다.
오늘날 정동에서 커피와 빵을 함께 즐기는 일은 특별하지 않다. 하지만 이 익숙한 풍경은 19세기 말 조선의 식생활과 비교할 때 다른 의미를 지닌다.
정동의 베이커리 카페에서 바라봐야 할 것
정동에서 빵과 커피를 마시며 근대의 식생활을 떠올릴 때 중요한 것은 음식의 기원을 하나의 장소로 연결하는 일이 아니다.
서양식 음식이 조선에 들어왔다는 사실과 그것이 조선 사회에서 받아들여진 과정은 다르다.
처음에는 외국인 거주지와 궁중, 일부 상류층을 중심으로 접했던 음식이 시간이 흐르면서 도시의 상품이 되고 대중적인 생활음식으로 자리 잡았다.
이 변화는 단순히 입맛이 달라진 역사만은 아니다. 외국과의 교류, 식재료의 유통, 조리기술의 변화, 새로운 상업공간의 등장과 연결돼 있다.
오늘날 정동의 베이커리 카페에서는 누구나 빵과 커피를 주문할 수 있다. 그러나 대한제국 시기 정동의 서양식 식탁은 제한된 사람들의 경험에 가까웠다.
두 시대의 차이는 근대 생활문화가 어떻게 확산됐는지 보여 준다.
정동에서 커피 옆에 놓인 빵 한 조각을 바라본다는 것은 서양식 음식이 언제 들어왔는지 묻는 데 그치지 않는다. 낯선 음식이 누구의 식탁에 먼저 놓였고, 어떤 과정을 거쳐 오늘날의 일상이 됐는지를 살펴보는 일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