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 왕실의 역사와 전통이 숨 쉬는 종가 고택에 한지의 은은한 빛이 깃든다. 세종대왕의 다섯째 아들인 광평대군 후손들이 5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고스란히 지켜온 서울 강남의 전통 가옥에서 한지등을 활용한 이색 무료 전시회가 펼쳐진다.
서울특별시가 주최하고 마인드디자인이 기획·운영을 맡은 ‘2026 서울 웰니스 트래블 위크’의 시그니처 스팟 프로그램으로, 오는 10월 26일부터 11월 4일까지 10일간 서울 강남구 수서동 소재 필경재(必敬齋)에서 한지등 특별전시가 개최된다.
이번 행사는 한옥 고유의 건축 원리를 바탕으로 한지로 조성한 사색의 공간을 500년 역사의 고택 마당에 연출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아울러 오는 12월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 등재 최종 결정을 앞두고 있는 한국 한지의 문화적 가치를 대내외에 알리고 등재를 응원하는 취지도 함께 담겼다.
전시 무대가 되는 필경재는 조선 성종 시절 광평대군의 증손 정안부정공 이천수가 15세기에 건립한 고택이다. 20대에 걸쳐 적손이 가문을 이어오고 있는 전주 이씨 광평대군파 증손 종택으로, 강남구에 유일하게 남아있는 전통 종가 건물이다. 1987년 서울특별시 전통건조물 제1호로 지정된 필경재는 ‘어른을 반드시 공경해야 한다’는 건립 이념을 현대에도 계승하며 전통 궁중음식과 한정식을 선보이는 고품격 한식 공간으로 쓰이고 있다.
고택 바로 뒷편에는 광평대군을 비롯한 후손들의 묘소 700여 기가 조성된 광평대군 묘역이 연접해 있어 조선시대의 묘제 문화를 다각도로 관찰할 수 있다. 필경재는 올해 서울시가 시범 수립한 ‘2026 서울 웰니스 관광 100선’에서 ‘맛’ 분야 대표 시설로 명단을 올렸으며, 봉은사, 보스턴체임버 등과 함께 트래블 위크를 대표하는 시그니처 스팟으로 낙점됐다.
전시를 이끄는 김원천 참우리건축 대표는 평생 한옥을 연구하고 설계해 온 중견 건축가다. 2001년 창덕궁 규장각 복원을 시작으로 경복궁 근정전 및 태원전 등 국가 지정 중요문화재 복원 사업에 참여했으며 서울과 문경 일대에서 수많은 한옥 프로젝트를 감독했다. 김 소장은 한옥의 기본 구조를 재해석해 한지로 구축한 ‘사색의 공간’을 이번 마당 전시에 풀어냈다. 나무 뼈대에 한지를 덧대어 자연의 빛과 바람을 수용하는 한옥처럼, 비움과 여백, 온화한 빛의 미학을 담아 방문객에게 고요한 휴식을 선사한다.
특히 이번 필경재 전시에서는 김 소장의 신작이 첫선을 보인다. 한옥의 형태를 형상화한 집 모양 작품과 높이 3m에 달하는 거대한 항아리 형상의 한지 조형물이 고택 마당 중앙에 들어선다. 해가 진 뒤 작품 내부에서 조명이 켜지면 한지를 통해 퍼져나가는 따뜻한 등불이 500년 고택의 밤 풍경과 어우러지며 장관을 이룬다.
전시 기획을 총괄한 안강은 이네 아트 매니지먼트 대표는 서울 웰니스 관광 100선 추천위원이자 지난 9월 파리 한지 특별전 ‘한지마니아’ 총감독을 역임한 베테랑 기획자다. 안 대표는 한국적인 미와 쉼을 웰니스 관광의 정체성으로 삼고 이번 고택 한지전을 기획했다고 설명했다.
이번 특별전은 서울시가 추진 중인 ‘2026 서울 뷰티웰니스 관광 육성 사업’의 일환으로 시행된다. 서울시는 도심 속 자연환경과 전통 문화 콘텐츠를 결합해 차별화된 웰니스 관광 브랜드를 구축해 나가고 있다. 전시 기간 필경재를 찾는 시민과 해외 관광객은 관람료 없이 자유롭게 야간 한지등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