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심히 하면 된다”는 말은 오래도록 성실한 사람의 표어였다. 목표를 세우고, 자신을 몰아붙이고, 결과로 능력을 증명하는 삶이 미덕으로 여겨졌다. 교회 안에서도 열심은 믿음과 헌신의 다른 이름처럼 사용되곤 했다. 그러나 열심이 언제나 사람을 바른 곳으로 데려가는가. 좋은 뜻으로 시작한 일이 왜 사람을 지치게 하고, 공동체를 다치게 하며, 결국 자신마저 소진시키는가. 한완규의 『의욕만 가지고 덤비지 마라』는 이 불편한 질문에서 출발한다.
제목만 보면 의지와 습관을 다루는 자기계발서처럼 보이지만, 이 책이 겨누는 곳은 성취의 기술이 아니다. 저자가 묻는 것은 의욕의 양보다 의욕의 뿌리이며, 속도보다 방향이다. 책은 이를 “의욕은 속도를 원한다. 믿음은 방향을 묻는다”는 문장으로 압축한다. 무엇을 얼마나 빨리 이루었는가보다, 왜 이 일을 하려는지, 그 열심이 누구를 향하고 있는지, 하나님 앞에서 오래 견딜 수 있는지를 살피라는 것이다.
이 질문이 힘을 얻는 까닭은 저자가 성공한 사람의 자리에서 훈계하지 않기 때문이다. 다이어트를 하며 식탁을 거칠게 줄였다가 되돌아온 경험, 쉬지 않고 운동하다 몸과 마음이 지친 일, 성서 헬라어에서 네 차례 낙제한 뒤 기초부터 다시 배운 과정, 사역의 성장을 자신의 역량으로 오해했던 기억이 숨김없이 등장한다. 저자는 실패를 감동적인 승리담으로 바꾸기보다, 자신의 속도와 욕망을 비추는 거울로 사용한다. “성실은 자신을 끝까지 몰아붙이는 능력이 아니라, 내일도 걸을 수 있도록 오늘을 다루는 능력”이라는 깨달음은 이 책의 성격을 잘 보여 준다. 여기에서 신앙은 자신을 더 세게 밀어붙이는 동력이 아니라, 멈추고 묻고 다시 배우게 하는 힘이 된다.
서른 편의 글은 세 부분으로 나뉜다. 1부는 의욕, 서운함, 겸손, 믿음, 침묵과 같은 내면의 문제를 다룬다. 2부는 말과 정직, 감사, 공동체를 향해 시선을 넓힌다. 타인의 말을 옮기면서 책임을 피하는 태도, 헌신의 겉모습과 실제 동기가 갈라지는 순간, 누군가의 아픔을 소문이 아니라 자신의 아픔으로 받는 교회의 모습을 묻는다. 3부는 복, 사랑, 의로움, 자유, 말씀과 원어 같은 신앙의 핵심 어휘를 다시 해석한다. 소유를 복으로, 자기 뜻대로 사는 것을 자유로, 흠 없는 상태를 의로움으로 여기는 익숙한 생각을 성경의 문맥 안에서 교정하려는 시도다. 개인의 마음에서 관계와 공동체로, 다시 신앙의 언어와 기준으로 나아가는 구성이다.
이 책의 두드러진 성취는 성경을 삶에 적용하면서도, 성경 문장을 마음대로 가져다 쓰는 위험을 경계한다는 데 있다.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네 나중은 심히 창대하리라”는 말을 성공의 보증처럼 사용하는 관행을 욥기의 문맥에서 다시 살피고, 요한복음 21장의 아가파오와 필레오를 사랑의 등급처럼 나누는 설교도 조심스럽게 검토한다. 로고스와 레마의 차이, 히브리어 애쉐르와 샬롬의 뜻을 설명할 때에도 원어 하나가 본문 전체를 대신해서는 안 된다고 거듭 선을 긋는다. 원어 지식으로 독자를 압도하기보다 본문을 더 정직하게 읽게 하려는 태도는 신학을 공부한 목회자의 책임감이 드러나는 대목이다.
문장은 대체로 쉽고 낭독성이 좋다. 눈물샘의 결석을 회개가 막힌 영혼과 연결하고, 맞지 않는 안경을 왜곡된 삶의 기준에 비유하며, 얼굴에 오래 머문 마음의 흔적을 신앙의 고백으로 읽는 장면들은 일상의 감각을 살린다. 추상적인 교리를 앞세우기보다 몸과 관계와 사역의 경험에서 출발하기 때문에, 성경 묵상에 익숙하지 않은 성도도 글의 문턱을 넘기 어렵지 않다.
다만 서른 편의 글이 대체로 ‘일상의 경험이나 통념—성경 본문—신앙적 성찰—권면’의 흐름을 공유하면서 후반부에는 리듬이 예측되기도 한다. ‘말씀 앞에 서다’, ‘중심과 방향을 다시 묻다’,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다’ 같은 표현이 책 전체를 묶는 장점인 동시에 반복으로 느껴질 수 있다. 개인의 태도와 교회의 내면을 성찰하는 데에는 힘이 있지만, 피로와 갈등을 만드는 사회 구조나 제도적 조건까지 시선을 넓혔다면 ‘샬롬’과 공동체에 관한 논의가 더욱 입체적으로 살아났을 것이다. 또한 기독교의 언어와 전제를 공유하지 않는 독자에게는 몇몇 결론이 충분한 설명보다 권면으로 빠르게 닫히는 인상을 줄 수 있다.
그럼에도 이 책은 흔들리지 않는 사람의 성공담이 아니다. 흔들릴 때마다 자기 확신을 내려놓고 말씀 앞에서 다시 방향을 배운 한 목회자의 중간 보고서에 가깝다. 그래서 책이 건네는 질문도 거창하지 않다. 얼마나 뜨겁게 시작할 것인가가 아니라, 그 열심은 어디에서 왔는가. 얼마나 많은 일을 이루었는가가 아니라, 그 일을 하며 어떤 사람이 되어 가고 있는가. 더 빨리 달리라는 목소리가 넘치는 시대에 이 책은 오래 걷기 위해 속도를 늦추라고 말한다. 의욕을 버리라는 것이 아니다. 의욕의 주인을 바꾸고, 말씀 앞에서 그 방향을 다시 정하라는 권면이다.
『의욕만 가지고 덤비지 마라』의 가치는 독자에게 완성된 답을 건네는 데 있지 않다. 자신이 옳다고 믿으며 달려온 길을 잠시 멈추고, 지금의 열심과 말과 관계와 신앙을 다시 바라보게 하는 데 있다. 책을 덮고 남는 것은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다짐이 아니라 조금 다른 질문이다. 나는 지금 바쁘게 가고 있는가, 아니면 바르게 가고 있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