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3% 성장 낙관, 관세가 변수로
2025년 4분기에 KPMG International과 글로벌반도체동맹(Global Semiconductor Alliance, GSA)이 공동 실시한 제21차 연례 글로벌 반도체 산업 설문조사는 당시 기준 2026년 반도체 시장을 한 문장으로 압축했다. 인공지능(AI) 수요는 매출 기대를 끌어올렸지만, 관세(tariff)와 전력은 기업 전략의 비용 구조를 다시 쓰기 시작했다.
151명의 반도체 산업 경영진 가운데 93%가 2026년 매출 성장을 낙관했다는 수치는 단순한 경기 회복 신호가 아니다. 고객 수요가 칩 설계, 제조, 패키징, 데이터센터(data center) 전력 계약까지 한 번에 묶이는 산업 재편의 출발점이다. 이 조사를 바탕으로 KPMG가 발표한 2026년 전망 보고서에서 반도체 산업 신뢰 지수는 63을 기록했다.
50을 넘으면 긍정적 전망을 뜻하는 이 지수는 지난 20년 사이 세 번째로 높은 수준이다. 응답 기업의 절반 이상인 54%는 조사 당시 기준 익년도 매출이 11% 이상 늘 것으로 예상했다. 이 숫자는 'AI칩 호황'이라는 낙관론보다 '성장 조건의 변화'를 가리키는 지표로 읽어야 한다.
반도체 기업의 경쟁력은 더 작은 선폭이나 더 빠른 연산 성능만으로 결정되지 않는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가장 먼저 달라진 항목은 위험의 순서다. 이번 조사에서 최고 경영진은 관세와 무역 정책을 최대 우려 요인으로 꼽았다.
과거 반도체 경영의 핵심 변수가 고객사의 재고 조정, 스마트폰과 PC 수요, 파운드리(foundry) 가동률이었다면, 이번 조사에서는 통상 정책이 수익성 계산의 앞줄로 이동했다. 같은 칩을 팔아도 어느 지역에서 생산하고 어느 고객에게 공급하느냐에 따라 관세 비용, 인증 절차, 공급망(supply chain) 재배치 비용이 달라진다.
매출이 늘어도 이익률이 따라오지 못할 수 있는 구조다. 이는 한국 기업에도 직접적인 질문을 던진다.
한국 반도체 산업은 메모리(memory), 파운드리, 패키징, 장비·소재 생태계가 글로벌 고객망과 얽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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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본 보고서는 한국 기업별 영향을 따로 제시하지 않았으므로 특정 기업의 실적 변화를 단정할 수는 없다. 본지 분석에 따르면, 산업 구조상 관세와 무역 정책이 1순위 리스크로 올라섰다는 사실은 수출 중심 기업의 의사결정이 생산기지와 고객 포트폴리오 중심으로 재편될 가능성을 키운다.
투자자는 매출 성장률만 볼 것이 아니라 지역별 매출 비중, 제조 거점의 분산 여부, 장기 공급계약의 조건을 함께 살펴야 한다. 두 번째 병목은 전력이다. KPMG 조사에서 34%의 응답자는 향후 3년 안에 반도체 제조 시설의 전력 조달을 우려한다고 답했다.
더 큰 수치는 데이터센터 쪽에서 나왔다. 하이퍼스케일러(hyperscaler)의 데이터센터 전력 조달을 걱정한 응답자는 58%에 달했다. AI 모델 훈련과 추론 수요가 늘수록 첨단 칩 판매는 확대되지만, 그 칩을 쓰는 데이터센터가 충분한 전력을 확보하지 못하면 주문 속도와 투자 집행이 늦어질 수 있다.
전력 문제는 단순한 공공 인프라 이슈가 아니다. 반도체 시장에서는 에너지 조달 능력이 고객 확보 능력으로 번역된다.
첨단 제조 시설은 안정적인 전력 공급 없이는 생산 계획을 장기화하기 어렵고, 데이터센터는 전력 계약과 냉각 설비를 확보해야 AI 서버 투자를 늘릴 수 있다. 결국 칩 공급사는 고객의 전력 병목까지 고려해 판매 전망을 세워야 한다.
KPMG가 제시한 34%와 58%의 간극은 AI 가치사슬에서 수요처인 데이터센터가 제조 현장보다 더 빠르게 전력 리스크에 노출됐다는 점을 드러낸다.
전력 조달이 AI 수요의 병목
세 번째 변수는 인재와 내부 시스템이다. 조사에 따르면 경영진의 65%는 당시 기준 익년도 글로벌 인력이 늘 것으로 봤다.
이는 반도체 기업이 경기 반등에 맞춰 단순히 생산직을 보강한다는 뜻에 그치지 않는다. 설계 자동화, 수율 분석, 보안, 공급망 관리, 고객 맞춤형 칩 개발을 동시에 끌고 갈 인력이 필요하다는 의미다. 특히 비전통적 기업들이 자체 칩 개발에 나서면서 반도체 인재는 기존 칩 회사와 빅테크, 클라우드 사업자 사이에서 이동 비용이 높아진 자산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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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 전략의 초점도 바뀐다. KPMG 보고서는 경영진이 경제 환경에 대응해 인력 증원과 내부 정보기술(IT)·시스템 업그레이드, 혁신 가속을 우선 과제로 삼았다고 밝혔다. 이 대목은 2026년 경쟁이 설비투자 규모만의 싸움이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같은 장비를 들여와도 고객 수요 예측, 조달, 생산 배분, 품질 데이터를 통합하는 시스템 역량이 부족하면 납기와 원가에서 밀린다. AI 붐은 칩을 더 많이 팔 기회를 제공하지만, 기업 안쪽의 운영 체계가 낡아 있으면 기회는 비용으로 바뀐다.
반론도 있다. 93%가 매출 성장을 예상하고 신뢰 지수가 63까지 올랐다면 위험을 지나치게 크게 해석할 필요가 없다는 주장이다.
반도체 산업은 원래 사이클 산업이고, AI 수요가 서버와 가속기 시장을 떠받치는 한 관세나 전력 문제는 관리 가능한 비용이라는 논리다. 이 반론은 단기 매출 흐름만 보면 설득력이 있다. 그러나 이번 조사에서 최대 우려가 관세와 무역 정책으로 이동했고 데이터센터 전력 우려가 58%까지 올라섰다는 점을 함께 보면, 문제는 경기 순환이 아니라 성장의 조건이다.
수요가 강할수록 병목은 더 비싸진다. 투자 관점에서도 해석을 바꿔야 한다.
반도체 종목을 볼 때 AI 노출도만 따지는 방식은 부족하다. 같은 AI 수혜 기업이라도 관세 충격을 흡수할 가격 결정력, 전력 병목에 대응할 고객군, 인재 확보 비용을 감당할 현금흐름이 다르다. 설계 기업은 고객 다변화와 지식재산(IP) 경쟁력이 중요하고, 제조 기업은 전력과 입지 전략이 핵심 변수가 된다.
소재·장비 기업은 고객의 설비투자 속도보다 공급망 재편 과정에서 어느 지역에 납품권을 확보하느냐가 더 큰 차이를 낼 수 있다. 정책 측면에서는 에너지와 산업 전략을 분리해 다룰 여지가 줄었다. AI 데이터센터와 첨단 반도체 공장은 같은 전력망을 두고 경쟁한다.
전력 공급이 늦어지면 기업은 생산능력 확대를 미루거나 다른 국가의 입지를 검토할 수 있다. 원본 자료는 국가별 전력 정책이나 한국의 구체적 설비 계획을 제시하지 않았으므로 특정 정책 효과를 단정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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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KPMG 조사에서 전력 조달 우려가 제조 시설 34%, 데이터센터 58%로 나타난 사실은 산업 정책의 성패가 세제 지원만으로 갈리지 않는다는 점을 보여준다.
인재·시스템 투자가 기업 격차 좌우
기술주권(technology sovereignty)이라는 단어도 비용을 동반한다. 각국이 첨단 칩 공급망을 자국 또는 우호국 중심으로 재편하려 할수록 기업은 중복 투자와 규제 대응 비용을 부담한다. 반도체 기업 입장에서는 시장 접근권을 확보하기 위해 여러 지역에 생산과 연구개발 기능을 나눠야 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규모의 경제가 약해지고, 일부 프로젝트의 투자 회수 기간은 길어질 수 있다. KPMG 조사에서 낙관론과 지정학적 위험이 함께 제시된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한국 기업에 필요한 대응은 성장 스토리를 더 세밀하게 쪼개는 일이다.
AI 반도체 수요가 강하다는 문장 하나로 메모리, 파운드리, 후공정, 장비, 소재 기업을 같은 묶음에 넣는 방식은 현재의 시장을 설명하기 어렵다. 본지 분석에 따르면, 고대역폭메모리(HBM)처럼 AI 서버와 직접 연결되는 품목은 수요 탄력성이 크지만 전력과 데이터센터 투자 속도에 따라 출하 타이밍이 달라질 수 있다. 파운드리와 패키징은 고객의 자체 칩 전략, 관세 회피 전략, 지역별 생산 요구를 동시에 맞춰야 한다.
장비·소재 기업은 고객사의 설비투자 지연 가능성과 지역별 공급망 재편 수혜를 함께 계산해야 한다. KPMG 전망의 핵심은 '호황의 재개'가 아니라 '호황을 통과할 자격의 변화'다. 반도체 시장은 성장 확률이 높지만, 그 성장을 온전히 이익으로 바꾸는 기업은 제한될 가능성이 크다.
관세를 가격에 반영할 수 있는 협상력, 전력 병목을 우회할 고객·입지 전략, 인재와 내부 시스템에 선제 투자한 조직이 매출 증가분을 가져갈 것이다. 반대로 AI라는 큰 수요에 기대어 설비와 인력만 늘린 기업은 비용 상승을 먼저 맞을 수 있다.
한국 반도체가 물어야 할 질문은 단순히 얼마나 팔 것인가가 아니라, 누가 전력과 통상 비용을 감당하며 이익을 남길 것인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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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기사는 KPMG International과 글로벌반도체동맹(Global Semiconductor Alliance, GSA)이 2025년 4분기 설문조사를 토대로 발표한 제21차 연례 글로벌 반도체 산업 설문조사 보고서를 참조하여 작성하였다. 보고서의 구체적 발표일은 원천 자료에서 확인되지 않았다.
FAQ
Q. KPMG 조사에서 93% 성장 낙관은 반도체 주가 상승을 뜻하나
A. 93%라는 수치는 2025년 4분기 당시 업계 경영진의 매출 전망을 보여주는 지표이지 주가 흐름을 보장하는 자료가 아니다. 주가는 매출 기대와 함께 이익률, 관세 부담, 설비투자 비용, 고객사의 주문 속도를 반영한다. KPMG 조사에서도 낙관론과 동시에 무역 정책, 전력 조달, 인재 경쟁이 핵심 위험으로 제시됐다. 투자자는 AI 노출도와 함께 지역별 생산 구조, 고객 집중도, 현금흐름을 확인해야 한다.
Q. 전력 조달 우려가 왜 반도체 기업 실적과 연결되나
A. 첨단 반도체 공장과 AI 데이터센터는 모두 안정적인 전력을 대규모로 필요로 한다. KPMG 조사에서 제조 시설 전력 조달을 우려한 응답자는 34%, 데이터센터 전력 조달을 우려한 응답자는 58%였다. 데이터센터가 전력을 확보하지 못하면 AI 서버 투자가 늦어지고, 이는 칩 주문 시점과 물량에 영향을 준다. 반도체 기업은 고객의 전력 확보 능력까지 수요 예측에 반영해야 한다.
Q. 한국 반도체 기업은 무엇을 우선 점검해야 하나
A. 원본 보고서는 한국 기업별 전략을 따로 제시하지 않았으므로 개별 기업의 대응을 단정할 수 없다. 다만 수출 중심 산업 구조를 고려하면 관세와 무역 정책, 전력 인프라, 핵심 인재 확보가 공통 점검 항목이다. 기업은 매출 확대 계획과 함께 생산 거점의 지역 분산, 고객 다변화, 내부 정보기술(IT) 시스템 투자 수준을 재검토해야 한다. 투자자와 정책 당국은 AI 수요 자체보다 그 수요를 이익으로 바꾸는 운영 조건을 더 면밀히 살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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