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재승 칼럼] AI 시대, 대한민국의 미래는 다시 기술인의 손에 달려 있다
-학벌의 시대를 넘어 숙련의 시대로, 기술 중심 대한민국을 다시 세우자

대한민국은 자원이 부족한 나라다. 석유가 풍부하지도, 광물자원이 넉넉하지도 않다. 그럼에도 우리는 세계적인 산업국가로 성장했다. 그 기적을 만든 것은 무엇이었을까.
나는 주저 없이 사람이라고 말하고 싶다. 조금 더 정확히 말하면, 배운 것을 현실로 만들어낸 기술인의 손이었다.
용광로 앞에서 쇳물을 다루던 사람들, 조선소에서 거대한 선박을 용접하던 사람들, 건설 현장에서 철근을 묶고 콘크리트를 타설하던 사람들, 밤새 기계를 고치고 생산라인을 지켜온 사람들이 있었다. 그 손들이 모여 대한민국의 산업을 일으켰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우리는 그 손의 가치를 잊기 시작했다. 지난 20~30년 동안 우리 사회는 대학 진학과 사무직 취업을 성공의 중요한 잣대로 삼아왔다. 의사, 변호사, 판검사, 공무원처럼 안정적이고 사회적 지위가 높은 직업을 선호하는 풍토가 강해지는 동안, 현장에서 몸으로 기술을 익히는 직업은 상대적으로 낮은 평가를 받았다.
물론 전문직과 공직 역시 사회에 반드시 필요한 직업이다. 문제는 어느 직업이 더 우월하냐가 아니다. 문제는 기술을 가진 사람보다 학벌과 직함을 가진 사람을 더 높이 평가해 온 우리 사회의 불균형이다.
우리는 아이들에게 공부하지 않으면 현장에 나가 일해야 한다고 말하곤 했다. 그러나 정작 그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이 없으면 우리가 살아가는 집도, 공장도, 도로도, 첨단 산업시설도 만들어질 수 없다. 누군가는 설계해야 하지만, 누군가는 반드시 그것을 현실로 만들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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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제 시대가 달라지고 있다. 인공지능, AI가 산업의 질서를 바꾸기 시작했다. AI의 활용 범위는 문서를 작성하고, 자료를 분석하며, 법률정보를 검색하고, 의료진의 진단을 보조하는 일까지 넓어지고 있다.
과거에는 많은 지식을 기억하고 빠르게 처리하는 능력이 경쟁력이었다면, 앞으로는 그 지식을 실제 문제 해결에 어떻게 적용하느냐가 더욱 중요해질 것이다.
국제노동기구(ILO)의 2025년 연구 역시 전 세계 근로자 네 명 중 한 명이 생성형 AI의 영향을 받을 수 있는 직업에 종사하고 있지만, 대부분의 직업은 완전히 사라지기보다 업무 내용이 변화할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했다. 이는 사무직의 종말을 의미하지 않는다. 오히려 모든 직업이 자신의 전문성을 새롭게 증명해야 하는 시대가 시작됐다는 뜻이다.
나는 여기에서 대한민국의 새로운 기회를 본다. AI가 지식의 접근성을 높이는 시대일수록, 현장을 이해하고 기술을 실행할 수 있는 사람의 가치는 더욱 중요해질 수 있다.
예를 들어보자. AI는 건축물의 열손실을 계산하고, 최적의 단열설계를 제안할 수 있다. 그러나 실제 현장에서 발생하는 결로와 균열, 자재의 특성, 온도와 습도에 따른 시공 조건, 예상하지 못한 구조적 문제까지 해결하려면 숙련된 기술자의 판단이 필요하다.
나는 오랫동안 건설 현장에서 방열공사를 해왔다. 냉동창고 하나를 제대로 만들기 위해서는 단열재의 성능뿐 아니라 시공 두께, 방습, 기밀, 열교, 화재안전까지 고려해야 한다. 도면대로 시공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을 때가 있다. 현장에는 언제나 변수가 있기 때문이다.
같은 자재를 사용해도 누가, 어떤 조건에서, 어떤 방식으로 시공하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진다. 그 차이를 만들어내는 것이 바로 숙련이다.
수십 년 동안 현장에서 쌓아온 경험은 단순히 몸으로 익힌 노동이 아니다. 실패와 시행착오를 통해 축적된 기술적 판단력이며, 책으로만 배울 수 없는 산업의 지식이다. AI가 이러한 경험을 데이터로 축적하고 분석할 수 있다면 기술인의 능력은 오히려 더욱 확장될 것이다.
숙련기술자가 AI로 설계 오류를 미리 찾아내고, 스마트 장비로 작업 정확도를 높이며, 로봇으로 위험한 작업을 줄이는 시대. 나는 그것이 우리가 준비해야 할 미래라고 생각한다. 미래의 기술인은 단순히 몸을 쓰는 노동자가 아니라, AI와 첨단 장비를 활용해 현장의 문제를 해결하는 고숙련 전문가가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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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우리에게는 심각한 과제가 남아 있다. 바로 다음 세대의 기술인력을 어떻게 길러낼 것인가 하는 문제다.
산업통상부가 발표한 2025년 산업기술인력 수급 실태조사에 따르면, 2024년 말 기준 산업기술인력 부족 인원은 약 4만 명에 이른다. 국회미래연구원의 분석에서도 지난 10년 사이 제조업과 건설업의 고숙련 인력 미충원 규모가 크게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대한민국의 산업은 더 높은 기술을 요구하고 있지만, 그 기술을 이어받고 발전시킬 사람을 충분히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는 뜻이다. 그 원인을 청년들에게만 돌려서는 안 된다.
청년들이 기술직을 기피한다면 먼저 물어야 한다. 우리는 기술을 배우는 청년에게 충분한 보상을 제공했는가. 안전한 작업환경과 안정적인 고용을 보장했는가. 기술을 익힌 사람이 경력을 쌓아 전문가로 성장할 수 있는 길을 만들어주었는가. 현장 기술인을 존중하는 문화를 갖추었는가.
이 질문에 답하지 않은 채 청년들에게 기술을 배우라고만 요구한다면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기술 중심 국가로의 전환은 단순히 직업학교를 늘리는 일이 아니다. 기술을 가진 사람이 존중받고, 기술을 익힐수록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는 산업구조를 만드는 일이다. 이를 위해 나는 다섯 가지 전환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첫째, 학벌 중심에서 능력과 숙련 중심으로 평가체계를 바꿔야 한다.
대학 졸업장이 아니라 실제로 무엇을 만들고 해결할 수 있는지를 평가해야 한다. 기술 자격과 현장 경력이 정당하게 인정받고, 숙련도가 임금과 승진으로 연결되는 체계가 필요하다.
둘째, 마이스터고와 직업계고를 첨단기술 교육의 중심으로 육성해야 한다.
용접, 전기, 기계, 설비, 건축 등 전통적인 기술교육에 AI, 로봇, 자동화, 디지털 설계와 스마트 안전관리 교육을 결합해야 한다. 산업현장과 학교가 함께 교육과정을 만들고, 졸업 이후에도 계속 배울 수 있어야 한다.
셋째, 숙련기술자의 경험을 다음 세대로 전수할 국가적 시스템이 필요하다.
수십 년의 현장 경험을 가진 기술자가 은퇴하면 그가 쌓아온 지식도 함께 사라지는 경우가 많다. 숙련기술자를 산업 멘토와 현장 교수로 활용하고, 그들의 노하우를 디지털 자료와 AI 학습체계로 축적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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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째, 중소기업의 기술혁신과 청년 기술인력 양성을 함께 지원해야 한다.
대한민국 산업의 현장에는 수많은 중소기업이 있다. 이들이 첨단 장비와 AI를 도입하고 청년을 훈련할 수 있도록 설비투자, 교육비, 장기근속 지원을 연계해야 한다.
다섯째, 기술직의 노동환경과 사회적 인식을 근본적으로 바꿔야 한다.
위험하고 불안정한 일자리를 그대로 둔 채 기술직의 미래만 이야기해서는 안 된다. 적정한 공사비, 안전한 현장, 정당한 임금, 숙련에 따른 경력 발전이 함께 보장되어야 한다.
나는 열아홉 살에 고향을 떠나 공장에서 일하기 시작했다. 남들보다 가진 것이 많지 않았고, 특별한 배경도 없었다. 내가 의지할 수 있었던 것은 배우려는 마음과 두 손, 그리고 쉽게 포기하지 않는 끈기였다.
수많은 현장을 거치며 기술을 배웠고, 실패를 경험하며 책임을 배웠다. 그렇게 쌓인 시간이 오늘의 회사를 만들었다.
지금도 나는 현장에서 기술을 익히는 청년들을 보면 과거의 내 모습을 떠올린다. 그들에게 말해주고 싶다. 기술을 배우는 것은 결코 뒤처진 선택이 아니라고. 손으로 익힌 기술은 평생의 자산이 될 수 있으며, 그 기술에 지식과 AI를 더한다면 새로운 산업을 이끌어갈 주인공이 될 수 있다고.
최근 우리 회사가 한국열린사이버대학교와 산학협력 협약을 맺은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현장의 기술과 대학의 교육을 연결하고, 경험과 지식을 결합해 더 나은 기술인재를 키워내고 싶기 때문이다.
기업의 성장은 매출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그 기업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성장하고, 그들이 익힌 기술이 다음 세대로 이어질 때 비로소 지속 가능한 기업이 된다.
대한민국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한때 기술로 가난을 극복했고, 제조업으로 세계시장에 진출했으며, 수많은 기술인의 노력으로 산업강국의 토대를 마련했다. 이제 AI라는 새로운 산업혁명 앞에 서 있다.
과거의 기술만 고집해서도 안 되고, AI가 모든 것을 해결해 줄 것이라고 믿어서도 안 된다. 우리가 가야 할 길은 분명하다. AI의 지능과 인간의 숙련을 결합하는 기술 중심 대한민국.
연구실의 지식이 공장과 현장으로 이어지고, 숙련기술자의 경험이 AI와 만나며, 청년들이 자신의 기술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나라. 대학에 가지 않아도 존중받을 수 있고, 기술을 배워도 충분히 성공할 수 있으며, 평생 배움을 통해 더 높은 전문가로 성장할 수 있는 나라. 그런 대한민국을 만들어야 한다.
이것은 과거로 돌아가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오히려 우리가 가장 잘해온 기술의 힘을 미래 산업의 언어로 다시 키워내자는 제안이다.
기술을 천하게 여기는 나라는 기술강국이 될 수 없다. 기술인을 존중하지 않는 사회는 첨단산업의 미래도 온전히 지켜낼 수 없다.
대한민국의 다음 도약은 학위를 더 많이 만들어내는 것만으로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다. 더 많은 청년이 기술을 배우고, 더 많은 숙련자가 존중받으며, 더 많은 기업이 기술혁신에 투자할 때 새로운 성장의 토대가 만들어질 것이다.
우리는 이제 질문을 바꿔야 한다. "어느 대학을 나왔는가?"에서 "무엇을 할 수 있으며, 어떤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가?"로.
그리고 우리 아이들에게도 당당히 말할 수 있어야 한다. 기술을 배우는 길도 훌륭한 미래이며, 자신의 손으로 세상을 바꾸는 일은 충분히 자랑스러운 삶이라고.
대한민국을 다시 뛰게 할 힘은 사람에게 있다. 그 사람의 머리와 손, 경험과 기술이 함께 빛날 때 대한민국의 새로운 산업혁명이 시작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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