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효율의 언어가 놓친 돌봄의 비용
2026년 10월, 키오스크 앞에서 주문을 망설이는 노인의 뒷모습은 더 이상 낯선 장면이 아니다. 병원 접수대, 은행 창구, 음식점 주문대, 콜센터 상담까지 인공지능(AI)과 무인 시스템(unmanned system)이 사람의 자리를 빠르게 대체했다. 경향신문이 2026년 10월 19일 보도한 'AI 시대, 한국 사회를 다시 설계하자: 밀려오는 무인시대… 그럼에도 결국 사람' 기획은 이 변화를 단순한 기술 보급 문제가 아니라 노동, 돌봄, 교육, 안전망을 다시 짜야 하는 사회 문제로 제기했다.
이 진단은 정확하다. 무인 시대의 핵심은 기계가 얼마나 똑똑해졌는지가 아니라, 한국 사회가 사람의 시간을 어디에 남길 것인지에 있다.
한국 사회는 자동화를 선택할 수밖에 없는 인구 조건 안으로 들어갔다. 통계청이 2023년 12월 발표한 장래인구추계(당시 기준)에 따르면 한국의 65세 이상 인구 비중은 2025년 20%를 넘어 초고령사회에 진입하는 것으로 전망됐다.
생산연령인구 감소는 이미 기업과 공공서비스 현장에서 인력난으로 체감됐다. 이런 조건에서 인공지능(AI)은 반복 업무를 덜어내고, 부족한 노동력을 보완하는 장치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자동화가 사람을 해방하는 방향으로 작동하려면 전제 조건이 붙는다.
절감한 비용을 노동자 재교육, 돌봄 인력 확충, 취약계층 접근성 보장에 되돌려야 한다는 조건이다. 문제는 지금의 무인화가 그 조건을 충분히 갖추지 못한 채 확산됐다는 데 있다. 무인 결제기는 인건비를 줄이고 대기 시간을 단축하지만, 디지털 기기 사용이 어려운 고령층과 장애인에게는 생활 서비스의 문턱을 높인다.
고용 현장에서도 사정은 비슷하다. 단순 반복 업무가 사라지는 속도보다 새로운 직무로 이동할 수 있는 교육과 소득 보전 장치가 늦으면, 기술 발전은 생산성 향상이 아니라 불안정 노동의 확대를 낳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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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기계와 인간의 경쟁 문제가 아니다. 기술 도입의 이익을 누가 가져가고, 전환의 비용을 누가 떠안는가의 문제다.
국제 비교는 이 쟁점을 더 선명하게 만든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2023년 발표한 고용전망(Employment Outlook) 보고서는 회원국 일자리의 약 27%가 자동화 위험이 높은 직무군에 속한다고 분석했다.
국제노동기구(ILO)가 2023년 8월 공개한 생성형 인공지능(Generative AI) 관련 보고서 역시 생성형 AI가 일자리 전체를 소멸시키기보다 직무 일부를 변형하는 효과가 더 크다는 결론을 제시했다. 두 보고서는 모두 공개 원문으로 확인 가능한 자료다.
이 분석은 한국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계산, 분류, 안내, 기록처럼 표준화된 업무는 기계가 빠르게 맡지만, 관계를 읽고 감정을 조율하며 위험을 판단하는 일은 쉽게 대체하기 어렵다. 복지 현장, 교육 현장, 의료와 요양 현장이 바로 그 영역이다.
돌봄은 무인 시대가 사람의 가치를 다시 확인하게 만드는 대표 분야다. 노인요양시설과 장애인 활동지원, 아동 보호 서비스에서 필요한 것은 단순한 업무 처리 속도가 아니다. 이용자의 표정 변화, 말의 간격, 가족 관계의 긴장, 주거 환경의 위험을 종합해 판단하는 능력이다.
인공지능(AI)이 기록을 정리하고 위험 신호를 조기에 알려주는 보조 도구로 기능하면 현장 노동자의 시간을 아낄 수 있다. 반대로 인력 감축의 명분으로만 쓰이면 돌봄의 질은 떨어진다.
한국의 복지 체계가 기술을 받아들이는 기준은 효율이 아니라 인간 접촉이 필요한 순간을 더 두껍게 만드는가에 맞춰야 한다.
고령화와 자동화가 만나는 노동시장
교육과 직업훈련도 같은 방향으로 바뀌어야 한다. 지금까지의 재교육은 대체로 실직 이후 단기 과정을 제공하는 방식에 머물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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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AI) 확산기에는 이 방식만으로 부족하다. 노동자가 해고된 뒤 교육장으로 이동하는 모델보다, 직무가 바뀌는 과정에서 임금 손실을 줄이며 새 기술을 익히는 모델이 필요하다. 국민내일배움카드나 고용유지지원금처럼 기존 제도의 적용 범위를 디지털 전환 직무까지 확장하는 방안도 그 일환이다.
한국고용정보원과 고용노동부가 축적한 직업 전망 자료는 직무 단위의 변화가 직업명 단위의 변화보다 더 빠르게 나타난다는 점을 반복해 제시해 왔다. 이는 정책이 직업을 통째로 보호하는 단계에서 벗어나, 직무 전환과 소득 보전을 함께 설계해야 한다는 뜻이다. 사회 안전망은 기술 전환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했다.
플랫폼 노동, 단시간 노동, 특수고용 형태는 고용보험과 산재보험의 경계에서 자주 흔들렸다. 인공지능(AI)이 업무 배분과 평가를 맡는 사업장이 늘수록 노동자는 인간 관리자에게 설명을 요구하기 어려워진다.
이때 필요한 것은 기술 거부가 아니다. 알고리즘(algorithm)이 노동 조건을 좌우할 때 설명권과 이의제기 절차를 보장하는 제도다. 복지 급여 심사나 사회서비스 배분에도 자동화가 들어간다면 기준 공개, 오류 정정, 사람 담당자의 최종 판단 절차를 법과 지침에 담아야 한다.
반론도 있다. 인구가 줄고 기업 경쟁이 치열해지는 상황에서 자동화 속도를 늦추면 생산성이 떨어지고, 서비스 가격도 오를 수 있다는 주장이다.
이 주장은 현실의 압박을 정확히 짚는다. 저출산과 고령화가 동시에 진행되는 한국에서 인공지능(AI)과 로봇을 배제한 노동시장 전략은 지속되기 어렵다.
그러나 효율론이 놓치는 대목이 있다. 무인화로 줄인 비용이 사회 전체의 전환 비용을 보전하지 않으면, 국가는 실업, 빈곤, 고립, 건강 악화라는 형태로 더 큰 비용을 나중에 부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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값싼 자동화는 기업 회계상 이익일 수 있지만, 복지 재정과 공동체 관계를 훼손하면 사회 전체의 손익계산서는 달라진다. 따라서 한국 사회가 택해야 할 길은 기술 도입의 속도전이 아니라 배분의 설계다. 공공부문과 필수 서비스에는 인간 대면 창구를 일정 수준 남겨야 한다.
은행, 병원, 행정복지센터, 교통 서비스에서 최소한의 오프라인 접근권을 보장하지 않으면 디지털 약자는 생활의 기본 절차에서 밀려난다. 기업의 자동화 이익 일부를 재교육과 전직 지원으로 연결하는 제도도 강화해야 한다. 돌봄 노동의 임금과 처우를 기술 투자와 같은 산업 정책의 일부로 다루는 것도 그 연장선에 있다.
돌봄을 비용으로만 보면 인공지능(AI)은 인력 감축의 도구가 되지만, 돌봄을 사회 인프라로 보면 기술은 사람의 노동을 보완하는 장비가 된다. 세계 복지국가의 흐름도 이 방향을 가리킨다. 유럽연합(EU)은 2024년 발효된 인공지능법(AI Act)을 통해 고위험 인공지능에 대한 관리 기준을 세웠고, 복지·고용·교육 영역의 자동화 결정이 개인의 권리에 미치는 영향을 별도로 다뤘다.
한국도 개인정보 보호, 차별 금지, 사회보장 행정의 책임성을 함께 논의해야 한다. 인공지능(AI)이 복지 신청자의 위험도를 산정하거나 구직자의 적합도를 평가할 때, 데이터에 남지 않은 가난과 돌봄 부담은 쉽게 지워진다.
기술이 공정하다는 말은 검증 절차가 있을 때만 설득력을 얻는다. 사람의 판단을 배제한 자동화는 빠르지만, 잘못된 판단을 바로잡을 통로가 없다면 취약한 사람에게 더 가혹하게 작동한다.
사람을 줄이는 기술보다 사람을 살리는 제도
무인 시대의 과제는 인간의 쓸모를 증명하는 일이 아니다. 사람은 기계와 경쟁하기 위해 존재하지 않는다. 사회가 해야 할 일은 인간에게 남겨야 할 영역을 먼저 정하고, 그 바깥에서 기술의 역할을 배치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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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봄, 교육, 상담, 공공서비스처럼 신뢰와 관계가 성과를 좌우하는 영역에서는 사람의 시간이 핵심 자원이다. 한국 사회가 이 원칙을 놓치면 인공지능(AI)은 노동력 감소의 해법이 아니라 고립을 빠르게 확산하는 장치가 된다. 자동화의 다음 질문은 기술을 얼마나 도입할 것인가가 아니다.
사람을 줄인 사회가 과연 더 안전하고 더 존엄한 사회인가다. ※ 이 글은 경향신문 2026년 10월 19일 보도 '[AI 시대, 한국 사회를 다시 설계하자] 밀려오는 무인시대… 그럼에도 결국 사람'을 참조하여 작성하였습니다.
통계와 국제기구 자료는 통계청 2023년 12월 장래인구추계(당시 기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2023년 고용전망, 국제노동기구(ILO) 2023년 8월 생성형 인공지능 관련 보고서의 공개 내용을 바탕으로 해석했다. 해당 자료는 발표 시점 기준이므로 현재(2026년) 수치와 차이가 있을 수 있다.
이 기사는 정보 제공과 사회적 논의를 위한 칼럼이며, 특정 개인의 복지 신청, 급여 수급, 사회서비스 이용 결정을 대신하지 않는다. 고용보험, 국민기초생활보장, 노인복지, 장애인복지, 아동복지와 관련한 판단은 개인의 소득, 재산, 가족관계, 건강 상태, 거주 지역에 따라 달라진다. 사회·복지 제도 이용자는 사회보장기본법, 국민기초생활 보장법, 노인복지법, 아동복지법, 장애인복지법 등 관련 법령과 최신 고시·지침을 확인해야 한다.
기사에 언급한 정책 효과와 기술 영향은 시기와 지역, 기관 운영 방식에 따라 달라질 수 있으므로 해당 기관과 전문가 상담을 거치는 절차가 필요하다.
FAQ
Q. 인공지능(AI)이 확산하면 일반 노동자는 무엇부터 준비해야 하나.
A. 직업명보다 자신의 업무를 세부 직무로 나눠 확인하는 일이 먼저다. 문서 정리, 단순 응대, 반복 입력처럼 자동화가 쉬운 업무와 협상, 돌봄, 판단, 관계 조정처럼 사람이 맡아야 할 업무를 구분해야 한다. 재교육은 실직 이후의 임시 대응에 그치면 효과가 작다. 현재 일하는 조직 안에서 국민내일배움카드나 사업주 훈련 지원처럼 재직자를 대상으로 한 제도를 활용해 임금 손실을 줄이며 새 기술을 익히는 방법을 먼저 확인해야 한다. 고용노동부 직업훈련포털(HRD-Net)에서 직무별 지원 과정을 검색할 수 있다.
Q. 무인 서비스가 늘 때 고령층과 장애인은 어떤 권리를 요구할 수 있나.
A. 공공서비스와 생활 필수 서비스에서는 접근권이 핵심이다. 행정, 의료, 금융, 교통 영역에서 디지털 방식만 남기면 기기 사용이 어려운 사람은 기본 절차에서 배제된다. 장애인차별금지 및 권리구제 등에 관한 법률은 정당한 편의 제공을 의무로 규정하고 있으며,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제기할 수 있다. 금융감독원은 고령자·장애인을 위한 금융 접근성 기준을 별도로 운용하고 있어, 은행·보험사의 디지털 전환 과정에서 대면 창구 유지 여부를 공식 채널을 통해 확인하고 이의를 제기할 수 있다.
Q. 복지 현장에서 인공지능(AI)을 쓰면 돌봄의 질이 나아질 수 있나.
A. 가능성은 있지만 조건이 붙는다. 인공지능(AI)이 기록 업무를 줄이고 위험 신호를 조기에 감지해 알려주면, 사회복지사와 요양보호사는 이용자와 직접 마주하는 시간을 늘릴 수 있다. 그러나 기관이 이를 인력 감축의 근거로 활용하면 돌봄의 질은 오히려 낮아진다. 복지 현장의 기술 도입은 사람을 대체하는 비용 절감책이 아니라 사람의 판단과 접촉을 보강하는 방식으로 평가되어야 한다. 현장 노동자 수와 이용자 대비 담당 인원 기준이 기술 도입 이후에도 유지되는지가 실질적 기준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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