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AI는 규제, 해외 AI는 자유? 리걸테크 가이드라인 형평성 논란

정부, 업계 의견 반영 지침 전달…규제합리화위원회도 제도 개선 검토 예고

법무부 가이드라인 초안, 일반 소비자 대상 판단형 유료 서비스 제한 방안 담아

국내 리걸테크 기업, 500만 건 이상 판례 데이터 확보하며 검색·AI 연계 서비스 확대

[화담일보=최다정기자] 국내 인공지능(AI) 리걸테크 기업들이 대규모 판례 데이터를 바탕으로 법률 서비스의 전문성을 높이는 가운데, 법무부가 추진해 온 AI 리걸테크 가이드라인을 둘러싸고 규제 형평성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국내 법률 AI의 일부 유료 서비스는 제한될 수 있는 반면, 챗GPT·클로드 등 해외 범용 AI에는 유사한 규제가 어떻게 적용되는지 불분명해 국내 기업에 불리한 경쟁 환경이 조성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법률신문은 지난 10월 10일 보도에서 정부가 논란이 된 ‘AI 리걸테크 가이드라인’을 재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했다고 전했다. 정부는 법무부에 가이드라인을 신중하게 검토하고, 향후 추진 과정에서 업계 의견을 충분히 반영하라는 취지의 지침을 전달한 것으로 보도됐다.

 

판례 데이터 확충에 나선 국내 리걸테크

 

국내 리걸테크 기업들은 법률정보 검색과 AI 기반 법률 업무 지원 서비스를 결합하며 기술 경쟁력을 높이고 있다. 단순히 법률 질문에 답하는 수준을 넘어 판례 검색과 법률정보 확인을 연계해 답변의 근거를 검토할 수 있도록 서비스를 고도화하는 추세다.

 

이데일리의 10월 12일 보도에 따르면 로앤컴퍼니는 법률 AI 서비스 '슈퍼로이어'에 전문 판례 534만 건을 검색할 수 있는 기능을 추가했다. 기존 법률정보 서비스 '빅케이스'와 연동해 판례 검색부터 AI 질의응답까지 한곳에서 이용할 수 있도록 했다. 엘박스 역시 524만 건의 판결문 데이터를 확보했다고 밝히는 등 국내 기업들의 판례 데이터 확보 경쟁이 이어지고 있다.

 

이러한 데이터는 법률정보를 검색하고 관련 판례를 비교하는 데 활용된다. 판례의 인용 관계와 쟁점 유사도를 분석하는 기능도 검색 서비스에 적용되고 있다. 다만 데이터 규모만으로 AI 답변의 정확성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실제 사건에 적용할 수 있는 판례인지, 판결 내용이 정확하게 반영됐는지 확인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국내 전문 AI와 해외 범용 AI 사이의 규제 형평성

 

논란의 중심에는 법무부 AI 리걸테크 특별분과위원회가 마련한 가이드라인 초안이 있다. 앞서 공개된 초안은 이용자가 구체적인 사실관계를 입력하면 AI가 관련 법규를 적용해 개별 사건에 대한 법적 판단을 제공하는 서비스를 '판단형 AI 리걸테크 서비스'로 구분했다. 법률신문의 지난 9월 19일 보도에 따르면, AI 리걸테크 가이드라인 초안 제2조에는 변호사가 판단형 AI 서비스를 일반 소비자에게 유료로 제공하는 것을 제한하는 내용이 담겼다.

 

반면 법령·판례 검색이나 문서 작성처럼 개별 사건에 대한 법적 판단을 제공하지 않는 서비스는 별도로 구분했다. 같은 보도에서 소개된 초안 제10조에는 기업이 판단형 AI 서비스를 이용할 경우 사내변호사의 관리·감독을 받도록 하는 내용이 담겼다.

 

이 같은 규정이 적용될 경우 국내 전문 법률 AI 서비스의 일부 유료 기능과 이용 대상이 제한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특히 사내변호사를 두기 어려운 중소기업과 스타트업, 법률 업무에 AI를 활용하는 비변호사 전문직 등이 영향을 받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전자신문은 10월 1일 박용진 대통령직속 규제합리화위원회 부위원장이 국내외 기업 간 규제 형평성을 점검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고 전했다. 박 부위원장은 ‘초안대로라면 국내 법률 AI의 일부 유료 서비스가 제한될 수 있다’며 ‘그런데 챗GPT나 클로드 같은 해외 범용 AI에는 같은 법률 질문이 사실상 열려 있다’고 우려했다. 국내 기업만 불리한 규제가 되는 것은 아닌지 살펴봐야 한다는 취지다.

 

다만 해외 범용 AI에 관련 규제가 전혀 적용되지 않는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서비스 제공 방식과 사업자의 법적 지위, 실제 적용되는 법령에 따라 규율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국내 전문 AI와 해외 범용 AI의 규제 차이를 판단하려면 서비스 유형별 법적 의무와 실제 규제 집행 가능성을 함께 비교해야 한다.

 

소비자 보호와 산업 경쟁력 사이의 균형

 

AI를 활용한 법률서비스의 신뢰성 확보도 중요한 과제다. 생성형 AI는 실제 존재하지 않는 판례를 제시하거나 법률 내용을 부정확하게 설명할 수 있다. 따라서 법률 AI 서비스에 대한 규제 논의에서는 소비자 피해를 예방할 장치와 답변의 근거를 검증할 수 있는 체계를 함께 고려해야 한다.

 

그러나 오류 가능성을 이유로 특정 유형의 서비스만 제한할 경우, 국내 기업이 법률 데이터와 검증 기술에 투자해 서비스를 개선하더라도 이용자에게 제공할 수 있는 기능이 제약될 수 있다는 우려가 있다. 반대로 판례 데이터베이스를 연계했다는 사실만으로 오류 위험이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 서비스의 실제 정확도와 검증 절차, 이용자 고지 방식 등을 기준으로 안전성을 평가할 필요가 있다.

 

규제합리화위원회도 제도 개선 논의를 예고했다. 전자신문 보도에 따르면 박 부위원장은 법무부와 중소벤처기업부 등이 참여하는 개선책 마련과 함께 가이드라인이 새로운 진입장벽으로 작용하지 않는지 살펴보겠다는 뜻을 밝혔다. 대한변호사협회의 광고 규제와 징계 권한을 둘러싼 자율규제 구조 역시 재검토 대상으로 언급됐다.

 

국내 AI 리걸테크 산업의 경쟁 환경을 둘러싼 논란은 법률서비스의 공공성과 소비자 보호, 기술 발전과 시장 진입 기회 사이의 균형을 어떻게 마련할 것인지에 관한 문제다. 향후 가이드라인을 구체화하는 과정에서는 국내외 서비스에 적용되는 규율의 차이와 실효성, 이용자 보호 효과를 함께 검토해야 한다. 소비자 안전을 확보하면서도 국내 기업의 기술 개발과 시장 경쟁이 불필요하게 위축되지 않도록 제도의 적용 범위를 명확히 하는 것이 과제로 남아 있다.

작성 2026.10.15 09:00 수정 2026.10.15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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