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국에서 시작된 발해 숏폼 드라마, 무엇을 보여주나
중국에서 발해국을 소재로 한 숏폼 드라마가 제작되면서 발해의 역사적 정체성과 역사 귀속을 둘러싼 논란이 다시 불거졌다. 2026년 8월 25일 보도에 따르면, 중국 지린성 연변조선족자치주 연변박물관에서는 8월 21일 연변 라디오텔레비전 방송국이 제작하는 숏폼 드라마 ‘발해 대흠무’의 촬영 시작 행사가 열렸다. 대흠무는 대진국(발해국) 제3대 왕인 문왕의 이름이다. 중국 매체는 이 작품을 발해사를 주요 소재로 하는 중국 최초의 숏폼 드라마라고 소개했다.
논란은 제작 사실만으로 발생한 것이 아니다. 중국 매체가 발해를 ‘중화민족의 중요한 부분’이라고 설명한 점이 한국에서 역사 해석의 편향과 역사 귀속 문제를 제기하는 계기가 됐다. 발해국의 역사를 중국의 다민족 국가 형성 서사 안에 배치하는 콘텐츠가 대중적으로 유통될 경우, 발해의 건국과 통치 체제, 고구려 계승 문제 등이 어떤 방식으로 설명되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역사극은 창작물이지만, 대중에게 반복적으로 전달되는 역사 서술은 역사 인식에 영향을 줄 수 있다. 따라서 한국의 대응은 드라마의 표현을 비판하는 데서 끝나서는 안 된다. 더 근본적으로는 발해국의 역사를 설명할 때 어떤 사료를 근거로 삼아 왔는지, 그 기록이 누구의 관점에서 작성됐는지, 한국은 독자적인 역사 복원 역량을 충분히 갖추고 있는지 점검해야 한다.
《발해고》역시 발해 당시의 자국 정사를 바탕으로 쓴 책은 아니다
발해사 연구의 어려움 가운데 하나는 발해 조정이 직접 편찬한 국가 정사가 온전하게 전해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조선 후기 실학자 유득공은 《발해고》를 저술해 발해의 왕계와 지리, 관직, 인물 등을 정리했다. 발해를 독립적인 역사 서술의 대상으로 삼았다는 점에서 중요한 저술이지만, 발해 당대의 자국 정사를 그대로 전승한 책은 아니다.
유득공은 발해 자체의 역사서가 온전하게 남아 있지 않은 상황에서 여러 나라의 문헌에 흩어진 기록을 모아 발해사를 재구성했다. 주요 참고 자료에는 중국의 《구당서》·《신당서》·《요사》 등과 일본의 《속일본기》, 한국의 《고려사》 등이 포함된다. 《발해고》의 원사료를 대조한 현대 판본의 설명도 이 책이 큰 비중으로 중국·일본의 문헌을 토대로 편찬됐다는 점을 밝히고 있다.
이 사실은 명확히 짚어야 한다. 발해의 역사와 국가적 위상을 설명하는 데 사용되는 주요 기록 상당수가 발해 조정이 직접 남긴 정사가 아니라, 주변국의 역사서와 외교 기록을 통해 전해진다는 것이다. 중요한 사실은 정확한 타국 의존 비율보다도 발해 당대의 자국 정사가 온전하게 전해지지 않아 후대의 역사 복원이 주변국 기록에 크게 의존해 왔다는 구조 자체다.
중국과 일본의 기록은 발해사를 연구하는 데 필요한 자료다. 그러나 기록의 작성 주체와 정치적 맥락을 검토하지 않은 채 그 서술을 발해사의 최종 판단 기준으로 삼아서는 안 된다. 중국 왕조의 문헌에 ‘책봉’이나 ‘조공’이라는 표현이 등장한다고 해서 그것만으로 발해의 국가적 위상과 실제 정치 관계를 확정할 수도 없다. ‘책봉’이라는 중국식 역사 서술의 수사 언어 하나만으로 발해의 종속성을 단정하는 태도부터 경계해야 한다.
《환단고기》의 국사 125권 기록과 사라진 대진국(발해) 문헌
발해 자체의 역사서가 존재했을 가능성과 관련해 주목할 기록이 《환단고기》의 「태백일사·대진국본기」에 나온다. 이 문헌은 발해 문왕 시기에 태학을 세우고 문사들에게 명해 국사 125권을 편찬하도록 했다고 서술한다. 이 기록이 사실이라면 발해 조정이 국가의 역사를 정리하는 대규모 편찬 사업을 추진했을 가능성을 제기한다.
현재 그 125권의 실물이나 전체 서지 목록, 구체적인 전승 경로가 확인된 것은 아니다. 따라서 이 기록을 확정된 역사적 사실로 단정할 수는 없지만, 발해의 문헌 편찬 전통과 사료 소실 가능성을 검토하는 중요한 질문으로 삼을 수 있다. 전쟁과 국가 체제의 붕괴 과정에서 궁궐이나 관청 등에 보관됐을 문헌이 흩어지거나 사라졌을 가능성은 있다. 다만 국사 125권이 실제로 상경용천부에 보관돼 있다가 전란으로 소실됐다는 구체적인 경위까지 입증된 것은 아니다. 《환단고기》가 살아남은 발해 당대의 역사서를 직접 참고했는지 역시 확인된 사실이 아니다. 다만 ‘朝代記(조대기)曰(왈)’이라고 하면서, 발해국 유민에 의해 전해졌다는 문헌을 인용하는 형식으로 시작하고 있다.
발해 당대의 정사가 전해지지 않는다는 이유로 발해의 기록 문화 자체를 부정해서도 안 된다. 문헌의 부재는 곧 문헌이 존재하지 않았다는 증거가 아니지만, 존재했을 가능성만으로 특정 책의 실재가 입증되는 것도 아니다. 《환단고기》의 기록 역시 다른 사료와 대조해 검토·검증해야 한다. 동시에 국내외에 남은 문헌과 인용 기록, 발해 유적·유물·비문 등을 종합적으로 조사해 발해 자체 문헌의 흔적을 추적할 필요가 있다.
타국의 기록에 의존하고 인용하는 대응에서 독자적 역사 복원으로
중국의 발해 숏폼 드라마 제작은 발해의 역사적 정체성을 둘러싼 논쟁을 다시 부각했다. 그러나 이 문제에 대응하려면 중국 매체의 표현을 비판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발해 당대의 자국 정사가 온전하게 전해지지 않아 한국의 발해사 서술 역시 중국과 일본 등 주변국 기록에 상당 부분 의존해 왔다는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유득공의 《발해고》는 흩어진 자료를 모아 발해사를 복원한 중요한 성과다. 동시에 그 책의 자료 기반은 발해 자체 정사가 아니라 여러 나라에 남은 기록이었다. 《환단고기》의 국사 125권 기록은 발해의 역사서 편찬 가능성을 제기하지만, 그 실재와 전승 여부는 추가 검증이 필요하다. 문헌의 내용 검토는 학계의 선택이 아니라 의무이다. 위서 논쟁으로 사료 검토 자체를 배제해서는 안 된다. 이 두 문제를 함께 살펴야 발해사 연구의 성과와 한계를 정확히 이해할 수 있다.
이제 한국은 당사국의 사료와 고고학 자료를 중심으로 발해사를 독자적으로 복원하는 데 힘을 쏟아야 한다. 국내외 문헌의 체계적인 조사와 공개, 발해 유적과 유물의 정밀한 분석, 기록의 출처와 인용 관계에 대한 검증을 지속적으로 추진해야 한다. 타국의 사서에만 의존해 자국의 역사를 설명하고 반박하는 방식으로는 역사 해석의 주도권을 확보하기 어렵다.
대진국(발해)의 역사를 제대로 지키는 길은 확인되지 않은 주장을 사실로 단정하는 데 있지 않다. 남아 있는 자료를 철저히 검토하고 사라진 문헌의 흔적을 추적하며, 검증 가능한 연구 성과를 축적하는 데 있다. 중국의 역사 콘텐츠에 대한 실질적인 대응 역시 한국 스스로 발해의 역사를 설명할 수 있는 사료와 연구 기반을 강화하는 데서 시작해야 한다. 언제까지 주변국의 사서에 의존해 우리 역사를 서술할 것인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