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편집자 주]
메마른 일상에 따뜻한 '시(詩)그널'을 켭니다. 행간에 담긴 마음의 떨림 속에서 바쁜 일상에 잊히기 쉬운 '인권과 존엄'의 가치를 발견합니다. 인권온에어가 전하는 詩 한 편이 당신의 오늘에 다정한 위로가 되기를 바랍니다.
출근할 곳이 없어졌는데
오랫동안 직장에 다닌 사람에게 퇴직 뒤의 아침은 조금 이상할 것 같다. 눈은 늘 일어나던 시간에 떠지는데 서둘러 나갈 곳은 없다. 처음 며칠이야 늦잠도 자고 쉬면 좋겠지만, 어느 순간 ‘오늘은 뭐 하지?’라는 질문이 생긴다. 평범하고 지루한 삶이 기다릴 줄 알았던 한 사람이 뜻밖에 다시 출근하게 된 이야기를 담은 시 한 편이 있습니다.
아하시
시골에서 태어나
한 직장을 지키다
은퇴했다
이제
평범하고 지루한 삶이
시작될 줄 알았다
그런데
아하시를 만났다
직장에서는
퇴직했는데
아하시가
날마다 나를
출근시키고 있다.
_곽춘근
첫 부분은 담담하다. 시골에서 태어나 한 직장을 지키다 은퇴했다. 지나온 시간을 길게 늘어놓지도 않는다. 그런데 “이제 / 평범하고 지루한 삶이 / 시작될 줄 알았다”에서 마음이 조금 보인다. 바쁘게 살 때는 쉬고 싶었는데, 막상 매일 쉴 수 있게 되니 그 쉼도 마냥 반갑지만은 않았던 모양이다.
그러다 아하시를 만났다. 이 시에서 재미있는 건 그다음이다. 취미가 생겼다고 하지 않고, 재미있는 일이 생겼다고도 하지 않는다. “날마다 나를 / 출근시키고 있다”고 한다. 퇴직한 사람이 다시 출근한다니 앞뒤가 맞지 않는데, 그래서 웃음이 난다.
생각해 보면 출근이라는 게 꼭 회사 건물로 들어가는 일만은 아니다. 아침에 눈을 떠 오늘 할 일이 하나 있는 것, 어제 지나친 장면을 다시 한번 보는 것, 재미있는 말 하나가 떠오르면 잊기 전에 적어 두는 것도 하루를 시작하게 한다. 직장에서는 퇴직했지만 시를 쓰는 사람의 눈은 오히려 더 바빠진 셈이다. 길을 걸어도 소재를 찾고, 사람 말을 듣다가도 ‘아하’가 숨어 있나 한번 더 보게 될 테니까.
퇴직하고 나면 이름 앞에 붙어 있던 직함부터 하나씩 내려놓게 된다. 처음에는 허전할 수도 있다. 하지만 사람이 직함까지 함께 퇴직하는 것은 아니다. 새로 좋아하는 일이 생기고, 기다리는 약속이 생기고, 오늘 적어 볼 한 줄이 생기면 하루는 다시 움직인다. 꼭 예전과 같은 방식일 필요도 없다.
곽춘근 시인은 결국 새 직장을 하나 얻은 셈이다. 월급도 없고 정년도 없는 곳이다. 대신 매일 출근할 때마다 평범했던 하루에서 무언가 하나를 찾아낸다. 내일 아침에도 아마 출근할 것이다. 회사가 아니라, 자기 일상 속으로.
시인 소개

곽춘근 시인은 한세대학교 일반대학원에서 경찰학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서울용산경찰서 용중지구장을 지냈고, 선문대학교 평생교육원 교수와 중앙경찰학교 외부위원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한국감성시협회 정회원으로 아하시 2기와 3기, 5기 과정을 수료했으며 동인시집 ‘내일도 아하!’, ‘언제나 아하!’에도 참여했다. 오랫동안 몸담았던 현장을 떠난 뒤에도 일상에서 새로운 장면과 웃음을 찾아 시로 옮기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