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장로회 백석총회 사회문제특별위원회(위원장 강창훈 목사)가 총회 워크숍의 일환으로 한국 기독교 역사와 선교사의 헌신이 깃든 ‘광주 양림동 외국인 선교사 묘원’을 찾아 현장 탐방 및 선교 역사 세미나를 개최했다.
이번 워크숍은 한국 근대 선교의 뿌리를 되짚고, 격변하는 현대 사회 속에서 교회가 감당해야 할 사회적 책무와 향후 선교 전략을 도모하기 위해 마련됐다.
■ 양화진에 이은 한국 제2의 선교사 묘원, ‘양림동’의 역사적 재발견
이날 현장 해설을 맡은 최용남 청소년 선교사(국제학 박사)는 참석한 목회자들과 함께 양림동 묘원 곳곳을 누비며 호남 지역 선교 역사의 숨겨진 비화를 풀어냈다.
최 선교사는 “서울 양화진 외국인 선교사 묘원에 555명(선교사 167명)의 유해가 안장되어 있다면, 광주 양림동은 50기의 비석과 함께 한국에서 두 번째로 큰 선교사 묘역”이라며 “전주 예수병원 인근 중화산, 대구 청라언덕 은혜의 정원, 마산·창원 호주 선교사 묘역 등과 함께 한국 교회의 위대한 영적 자산”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양림동은 1893년 장로회 선교부 간에 체결된 ‘예양 협정(Comity Agreement)’에 따라 미 남장로회가 호남과 제주 지역을 담당하게 되면서 형성된 거점이다. 1904년 유진 벨(Eugene Bell, 한국명 배유지) 선교사를 시작으로 미 남장로회 선교사들은 1984년 선교 공식 종료 시점까지 8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지역 사회의 교육·의료·복지 기틀을 마련했다.
이날 참석자들은 어린 자녀들을 전염병으로 잃으면서도 조선의 고단한 짐을 나누어 졌던 코일(Coyle) 선교사 부부, 5·18 광주민주화운동의 참상을 사진으로 남겨 전 세계에 알렸다가 전두환 정권의 압박으로 철수해야 했던 허철선(Charles Betts Huntley) 선교사의 비석을 돌아보며 감동을 나눴다. 허철선 선교사의 비석 뒤에는 그의 유언이었던 “나는 용서했습니다(I have forgiven)”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어 참석자들의 눈시울을 붉히게 했다.
■ 최초의 한글 성경과 이수정 선교사의 재조명
묘원 정상 순교자 기념공원으로 이동한 참석자들은 1882년 신사유람단 일원으로 일본에 건너가 세례를 받고 미국 선교부에 조선 선교를 요청했던 ‘이수정’ 선생의 사역에 집중했다.
이수정 선생은 언더우드 선교사에게 한글을 가르쳤을 뿐만 아니라 1885년 최초의 한글 성경인 《마가복음서 언해》를 번역·출판하여 언더우드와 아펜젤러 선교사가 한국 땅을 밟을 때 한글 성경을 들고 들어올 수 있도록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최 선교사는 현장에서 직접 고증·연구한 《마가복음서 언해》 영인본 자료를 공개하며 “한국 교회 선교의 출발점에는 하나님의 놀라운 주권적 역사가 있었음”을 강조했다.
■ 백석총회 사회문제특별위원회, ‘이주민 선교 및 체계적 선교 시스템’ 모색
탐방 후 이어진 대담에서 참석자들은 한국 교회의 선교 현실을 진단하고 향후 백석총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성을 깊이 있게 논의했다.
특히 미 남장로회의 체계적이고 조직적인 선교 보고 및 기록 보관(필라델피아 기독교 박물관 이장 등) 방식과 비교할 때, 현대 한국 교회의 선교가 개교회 중심 및 개인 플레이식 선교로 흘러가고 있다는 점이 아쉬움으로 지적됐다.
참석자들은 다음과 같은 실천적 대안에 뜻을 모았다:
선교 컨트롤 타워 구축 및 정보 공유: 중복 선교 및 사각지대를 방지하기 위해 중장기적 선교 전략과 재정 투명성을 확보할 통합 시스템 구축 필요.
국내 이주민 및 다문화 선교로의 패러다임 전환: 해외 파송 선교의 한계를 극복하고, 국내에 들어와 있는 다국적 이주민·다문화 가정을 복음화하여 그들을 자국 선교사로 재파송하는 100배 효과의 전략적 선교 실천.
사회적 약자와 함께하는 현장 목회: 지역 사회 내 소외계층 및 이주민을 온전히 섬기며 이웃 사랑을 실천하는 복음의 총체적 변혁 도모.
이번 워크숍에 참석한 위원들은 “선교사님들이 흘린 눈물과 피, 그리고 ‘조선의 짐을 들어주고 눈물을 닦아주겠다’던 숭고한 목표를 다시금 가슴에 새겼다”며, “백석총회와 한국 교회가 다시 영적 동력을 회복하고 사회적 아픔을 보듬는 교회가 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