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담일보 = 박유하기자] 유산을 미리 정한 방식으로 나누도록 금융사에 맡기는 유언대용신탁의 4대 은행 잔액이 8조원을 넘어섰다. 사망보험금 지급 방식을 설계하는 보험금청구권 신탁 판매도 늘었다. 다만 신탁을 이용하더라도 유류분을 둘러싼 상속 분쟁 가능성은 남아 있어 재산 승계 조건을 함께 살펴야 한다.
동아일보가 26일 금융권을 인용한 보도에 따르면, 2026년 9월 말 KB국민·신한·하나·우리은행의 유언대용신탁 잔액은 8조623억원이다. 지난해 말 4조5002억원보다 79.2% 증가했다. 2020년 말 9444억원이었던 잔액은 5년 9개월 사이 8배 이상으로 커졌다.
유언대용신탁은 가입자가 생전에 자산을 금융사에 맡겨 운용하고, 사망한 뒤에는 계약에서 정한 방식에 따라 유산을 배분하는 상품이다. 상속 대상과 배분 비율 등을 미리 정해두는 구조로, 유산 분배를 준비하려는 고령 자산가들의 관심을 받고 있다.
과거에는 가입 금액이 10억원에 달하는 등 요건이 까다로워 주로 일부 고액 자산가가 이용했다. 그러나 지난해 최소 가입 금액을 없앤 상품이 잇따라 나오면서 일반 소비자로 가입층이 넓어졌다. 고령 인구 증가와 주식·부동산 가격 상승에 따른 상속 재산 규모 확대도 가입 증가의 배경으로 꼽혔다.
박태형 우리은행 TCE시그니처센터 PB지점장은 자산가격 상승과 함께 치매에 대한 불안, 상속 분쟁 우려 등이 맞물리면서 신탁에 대한 관심이 커졌다고 설명했다. 자산을 어떻게 운용할지뿐 아니라 사후에 누구에게 어떤 방식으로 넘길지도 미리 정하려는 수요다.
보험금청구권 신탁은 살아 있을 때 사망보험금의 지급 방식을 설계할 수 있는 상품이다. 올해 1~9월 삼성·한화·교보생명 등 생명보험사 3사의 누적 판매액은 4738억원으로, 지난해 연간 판매액인 4598억원을 이미 넘어섰다. 2024년 연간 판매액 1416억원과 비교하면 3배가 넘는 규모다.
보험사들은 현재 사망보험금에 한정된 보험금청구권 신탁의 범위를 치매 보험금으로 넓혀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상원 한화생명 상무는 사망 이후뿐 아니라 치매 단계에서도 보험금을 지급해 가족의 생활 기반을 지킬 보호장치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는 적용 범위 확대를 요구하는 것으로, 치매 보험금까지 확대 시행됐다는 의미는 아니다.
증여와 신탁을 함께 활용하는 방법도 거론된다. 송은정 하나은행 리빙트러스트컨설팅센터장은 증여세 공제 한도를 활용해 자녀나 손자녀에게 재산을 미리 증여한 뒤, 신탁으로 해당 재산을 정기예금이나 파생상품 등에 운용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증여가 끝난 재산에서 발생한 운용 수익에는 증여세가 추가로 붙지 않는다는 설명이다.
다만 신탁 계약이 상속인의 법적 권리를 둘러싼 다툼까지 없애주는 것은 아니다. 법정상속인에게 최소한으로 보장되는 상속 몫인 유류분을 계산할 때 신탁 재산이 포함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재산 반환 여부를 놓고 법적 분쟁이 발생할 여지가 있다. 김민정 법무법인 고운 변호사는 유언대용신탁이 유류분을 피하는 수단은 아니라며, 유언과 신탁, 생전 증여 내용을 모두 검토해 승계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