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주 글로벌 에너지포럼 2026'에서 발표하는 이순형 동신대학교 특임교수>
(전남광주=박송엽 기자) 전력망 문제의 해법을 송전선을 더 긋는 데서만 찾지 말고 ‘시간’에서 먼저 찾아야 한다는 제안이 나왔다. 서해안 초고압직류송전(HVDC) 에너지고속도로가 완성되기까지 이미 깔려 있는 배전선로의 비어 있는 시간을 저장장치로 채워 공백을 건너자는 것이다.
동신대학교 이순형 특임교수는 지난 1일 나주 한국에너지공과대학교(KENTECH·켄텍)에서 열린 ‘나주 글로벌 에너지포럼 2026’ 세션Ⅲ ‘차세대 전력망’에서 ‘선을 더 긋기 전에, 시간을 저장하라’라는 주제로 발표했다. 전남광주통합특별시와 나주시, 켄텍이 공동 주최한 이번 포럼은 지난달 9월 30일부터 이틀간 ‘인공태양과 에너지 전환’을 주제로 열렸다.
건축전기설비기술사이자 전기안전기술사인 이 교수는 발표 첫머리에 ‘오늘의 숫자 세 개’로 4.9GW, 8년, 5배를 제시했다. 호남에서 수도권으로 향하는 345kV 송전로 2개 루트의 명목 용량은 8GW지만, N-1 기준의 전압안정도 제약을 반영한 실제 운영한계는 4.9GW라는 것이다.
8년은 서해안 HVDC 1단계(새만금~서화성, 2GW) 준공 예정인 2030년부터 4개 루트 8GW 완공 목표인 2038년까지의 공백이다. 5배는 그가 제안하는 방식을 적용하면 같은 22.9kV 배전선로 한 회선에 태양광을 지금의 다섯 배까지 연결할 수 있다는 추산이다.
그는 호남 전력 문제의 본질을 “전기의 부족이 아니라 발전과 수요, 전선이 서로 다른 곳에 있는 지리적 불일치”로 규정했다. 전력거래소가 국회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호남권 재생에너지 출력제어는 2021년 35MWh(3회)에서 지난해 8만3,944MWh(171회)로 약 2,400배 늘었고, 올해는 상반기에만 8만4,784MWh(155회)로 지난해 연간 규모를 넘어섰다.
해법으로는 ‘길을 넓히고(백본), 목적지를 옮기고(입지), 있는 길을 더 쓰는(시간)’ 세 축을 내놨다. 대규모 송전망을 확충하고, 전기가 있는 곳에 산업 수요를 두며, 저장과 제어로 기존 선로를 더 쓰는 방안을 하나의 전략으로 묶었다. 그는 “세 축은 경쟁 관계가 아니라 순서”라며 “3축은 지금, 2축은 함께, 1축은 완성”이라고 말했다.
●“배전선로는 하루 20시간 비어 있다”
발표의 무게중심은 셋째 축에 실렸다. 그동안 한전의 ‘송배전용전기설비 이용규정’은 발전설비의 설비용량을 기준으로 접속을 판정해 왔다. 발표에서 예로 든 송전상한 20MW 선로라면 20MWp 태양광 한 곳만 연결되는 식이다.
하지만, 태양광이 선로를 거의 가득 채우는 시간은 하루 3~4시간뿐이어서 연간 선로 이용률은 15% 안팎에 머문다는 것이 이 교수의 분석이다. 그는 “접속을 막는 것은 전선의 굵기가 아니라 하루 4시간 피크에 맞춰 만든 규정”이라고 꼬집었다.
대안은 셋째 축의 핵심 수단인 ‘출력상한 공동접속(순차송전)’이다. 20MWp 태양광 발전소 5곳이 각각 48MWh의 에너지저장장치(ESS)를 갖추고, 계통으로 내보내는 출력은 전력변환장치(PCS)로 4MW씩 제한한다. 낮에는 4MW만 내보내고 남는 전력을 충전했다가, 밤에는 ESS에서 4MW씩 12시간 방전한다.
5곳을 합치면 맑은 날 선로에는 하루 24시간 20MW에 가까운 전력이 흐른다. 같은 선로에 태양광 100MWp, 곧 5배를 접속하면서 연평균 선로 이용률은 15% 안팎에서 약 67%로 높아진다는 계산이다. 출력이 PCS 정격으로 묶여 있어 상위 계통도 구조적으로 보호된다는 설명이다.
그는 “새 송전선이 10년 걸리는 동안 시간을 저장하면 같은 전선으로 더 많은 에너지를 더 안전하게 보낼 수 있다”며 “필요한 것은 새 선로나 전용 예산이 아니라 접속 판정 기준을 ‘설비용량’에서 ‘출력상한용량’으로 바꾸는 이용규정의 한 단어”라고 강조했다.
이 방식을 전국 20GWp에 적용하면 송전선로 신설 없이 연간 약 23.5TWh의 전력을 계통에 보탤 수 있다는 것이 이 교수의 추산이다. 전남광주통합특별시 반도체 클러스터의 연간 수요 추정치(49.7TWh)의 절반에 가까운 규모다.
●정부 ‘자율접속’과 같은 원리…공동접속은 ‘최대 5배’
이 같은 구상은 정부 정책과도 맞닿아 있다. 기후에너지환경부는 이 교수의 발표 이틀 전인 지난달 29일 ‘전력망 혁신대책’을 내놓고 사업자가 접속용량을 넘겨 재생에너지 설비를 설치한 뒤 ESS로 출력을 허용 기준 이내로 관리하는 ‘자율접속’을 올해 시범사업을 거쳐 내년부터 본격 추진하기로 했다.
정부는 이를 통해 접속용량의 2~3배까지 설비를 설치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태양광의 배전선로 이용률이 약 15%에 그친다는 점을 들어, 일시적으로 수용량을 넘길 때만 출력을 제어하는 조건으로 접속을 허용하는 ‘유연접속’도 확대하기로 했다.
이 교수의 공동접속은 같은 원리를 배전선로 단위로 넓힌 설계다. 여러 발전소가 공동접속점 하나를 시간으로 나눠 쓰고 송전량을 PCS 정격으로 제한해 접속 배율을 최대 5배까지 높이고 여기에 그리드포밍 기능을 결합해 접속과 계통 안정을 함께 풀겠다는 구상이다.
●“배터리는 계통 자원”…반도체는 ‘부담’ 아닌 ‘해답’
기술 조건도 제시했다. 재생에너지 비중이 커질수록 계통 관성이 줄어드는 만큼 공동접속 ESS는 스스로 전압과 주파수를 형성하는 그리드포밍(GFM) 방식으로 운전해 접속과 안정도를 함께 풀어야 한다는 것이다. 중전압직류(MVDC)에 대해서는 “굵은 전선이 아니라 제어 가능한 전선”이라며 필요한 곳에 골라 써야 한다고 했다.
‘반도체 클러스터’에 대해서는 “반도체 팹은 호남 계통의 부담이 아니라 출력제어 문제의 해답”이라고 평가했다. 다만 ‘더 많은 전기’보다 ‘깜빡이지 않는 전기’가 관건인 만큼 다중 수전과 계통 안정화 설비로 수전점의 전력품질을 따로 설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새 법 필요 없다…이제는 실행의 시간”
이 교수는 정부와 관계기관에 ▲한전 이용규정의 접속 판정 기준을 ‘설비용량’에서 ‘출력상한용량’으로 전환 ▲배전망 ESS 2차 공모부터 공동접속형 설계 허용 ▲그리드포밍 요건을 배전·공동접속 ESS로 확대 ▲제12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 셋째 축 물량을 공급자원으로 반영 ▲전남광주통합특별시·나주에 ‘제3축 실증 테스트베드’ 조성의 다섯 가지를 제안했다.
그는 “다섯 가지 모두 새 법이 필요 없고 규정과 사업 설계, 계획만 고치면 된다”며 “지금 접속하고, 소득을 나누고, 수용성을 얻는다”며 셋째 축이 ‘햇빛바람소득’의 기술적 토대가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한전의 우려도 감안 해야 한다고 했다. 실계통 실증 데이터가 아직 없고 ‘5배’는 길이 25km 기준 선로를 전제로 한 값이어서 선로 길이와 임피던스, 역조류 보호 조건에 따른 선로별 상한 기준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는 나주에서 공동접속 세트를 실계통에 적용해 선로 이용률과 출력제어 감소, 전압·주파수 품질, 보호장치 동작을 검증하자며 “반대가 있는 곳에는 실증으로 답하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한 마디, 사실 이미 시뮬레이션을 모두 해봤기때문에 실증없이 바로 적용해도 문제는 없다고 덧붙였다.
이 교수는 “새 송전선이 10년 걸린다면 시간을 저장하는 데는 1년이면 된다”며 “차세대 전력망은 새 선로가 아니라 이미 가진 선로의 비어 있는 20시간에서 시작되는 만큼 이제는 발표가 아니라 실행의 시간이다”고 발표를 마무리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