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전재정'의 패러독스와 미증유의 고금리… 경기침체 속 정부 대응의 구조적 문제점과 한계

세계 경제의 불확실성 고조와 함께 내수 경기 침체, 고물가, 고금리의 이중·삼중고가 가계와 자영업자의 삶을 깊은 수렁으로 밀어넣고 있다. 한국은행과 국내외 정책 연구 기관들이 성장률 전망치를 지속적으로 하향 조정하는 가운데, 민간 소비 둔화와 건설 경기 악화, 자영업 다중채무 누증은 국가 경제 전반에 거대한 경고음을 울리고 있다.
경기 침체 국면에서 정부의 역할은 침체의 골을 메우고 취약 계층의 충격을 완화하는 '경기 조절자'이자 '사회안전망의 거점'이어야 한다. 그러나 현재 정부가 추진 중인 경기 대응책은 재정 기조의 경직성, 통화 정책과의 엇박자, 그리고 단기적 미봉책 중심의 정책 설계로 인해 시장의 신뢰를 얻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에 직면해 있다. 경기 침체에 대응하는 정부 정책의 구조적 문제점을 진단하고 실효성 있는 대안을 모색한다.
1. '건전재정' 원칙의 경직성과 경기 조절 기능의 상실
정부는 출범 이후 '건전재정'을 최우선 국정 과제로 삼고 재정 지출 확대를 극도로 자제해 왔다. 방만한 재정 운영을 바로잡고 국가채무 비율 상승을 억제하겠다는 명분은 타당성을 지니지만, 복합 위기 국면에서의 기계적 재정 건전성 집착은 경기 침체를 가속화하는 '재정의 패러독스'를 낳고 있다.
전통적인 케인스주의 경제학뿐만 아니라 현대 통화·재정 이론에서도 경기 침체기에는 정부가 확장적 재정을 통해 마중물 역할을 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세수 진수 실적이 악화되는 상황에서 지출을 동결하거나 삭감하는 순주기적 재정 정책(Pro-cyclical Fiscal Policy)은 민간 부문의 위축을 오히려 부추기는 결과를 가져온다.
특히 지방교부세 감축이나 필수 민생 예산, R&D 예산의 대폭 삭감은 경기 침체 국면에서 가장 먼저 타격을 입는 소상공인과 취약계층의 생존을 위협하고, 미래 성장 동력까지 훼손했다는 지적을 피하기 어렵다. 세수 결손이 발생할 때마다 지출을 줄이는 방식의 재정 운용은 실질적인 경기 방어 벽을 허무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
2. 정책 금융의 착시와 미봉책 위주의 소상공인 대책
정부는 직접적인 재정 지출을 늘리는 대신 대출 연장, 보증 확대, 채무 조정 등 '정책 금융'을 통한 간접 지원에 집중해 왔다. 그러나 이는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닌 '부실의 이월'에 불과하다는 비판이 드높다.
고금리와 소비 위축이 장기화되는 상황에서 대출 상환 유예나 신규 대출 지원은 자영업자 및 소상공인의 부채 부담을 가중시키는 시한폭탄으로 작용하고 있다. 버틸 수 있는 소득 기반이나 내수 회복 없이 빚으로 빚을 막는 구조는 자영업 다중채무자의 연체율을 역대 최고 수준으로 끌어올렸다.
또한 소비 쿠폰 배분이나 단순 지원금과 같은 단기성 정책과, 구조적 체질 개선 정책 사이의 유기적 연계가 부족하다. 한계 자영업자의 자발적 폐업과 재창업, 전직을 돕는 유연한 연착륙 프로그램은 미비한 채, 단기 자금 지원에만 의존하는 방식은 정책 효과를 반감시키고 국고 손실 위험을 키운다.

3. 통화 정책과의 불협화음 및 가계부채 관리의 갈팡질팡
경기 침체 대응 과정에서 재정 당국과 금융 당국, 그리고 중앙은행 간의 정책 엇박자도 혼선을 부추기고 있다.
물가 상승을 억제하기 위해 한국은행이 고금리 기조를 유지하거나 금리 인하에 신중을 기하는 동안, 금융 당국은 가계부채 연착륙과 부동산 경기 부양이라는 서로 충돌하는 목표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모습을 보였다. 디딤돌·버팀목 대출 등 정책 모기지를 대대적으로 공급하여 가계부채 증가를 방치하다가, 부채 비율이 급증하자 급격한 대출 규제로 돌아서면서 실수요자들의 혼란을 극대화했다.
이러한 정책의 가변성은 시장의 예측 가능성을 떨어뜨리고, 자산 시장의 불확실성을 높여 민간의 소비 및 투자 심리를 더욱 냉각시키는 악순환을 형성하고 있다.
4. 경기 침체 극복을 위한 정부 대응의 4대 개혁 과제
경기 침체의 장기화를 막고 경제 체질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정부 정책의 패러다임 전환이 시급하다.
첫째, 재정 운용의 유연성 확보와 '유연한 건전재정'으로의 전환이다. 경제 위기 시기에는 재정이 적극적으로 경기 완충 작용을 할 수 있도록 중기 재정 프레임워크를 유연하게 적용해야 한다. 세수 결손에 따른 지출 축소보다는, 취약 계층 표적 지원과 경기 파급 효과가 큰 사회간접자본(SOC) 및 미래 기술 투자에 한정하여 적극적 재정을 펼쳐야 한다.
둘째, 정책 금융 위주에서 '실질적 소득 보전 및 한계 채무 재조정'으로의 전환이다. 단순히 대출을 연장해 주는 방식을 넘어, 자활 불능 상태에 빠진 한계 자영업자에 대한 대감 및 원금 감면 중심의 원스톱 채무 조정 체계를 대폭 강화해야 한다. 이와 함께 전직 직업 훈련 지원 및 폐업 수당 확대를 통해 사회적 연착륙을 유도해야 한다.
셋째, 거시경제 정책 가이드라인의 일관성 및 유기적 공조 확립이다. 재정·통화·금융 당국 간의 '비공개 정책 협의'를 정례화하여 물가 안정, 부채 연착륙, 경기 방어라는 3대 목표 간의 우선순위를 명확히 설정해야 한다. 정책 신호의 일관성을 통해 시장의 불확실성을 제거해야 한다.
넷째, 내수 활성화를 위한 구조적 체질 개선이다. 단기적 소비 진작책을 넘어 저출생·고령화 심화에 따른 내수 기반 위축에 대응할 수 있도록 가계의 가처분 소득을 늘리는 조세 부담 완화 및 핵심 고정비(주거비, 교육비, 통신비) 경감 대책을 종합적으로 추진해야 한다.
■ 종합 제언: 신뢰받는 정책과 결단력 있는 재정의 역할 회복
경기 침체는 단순한 경기 변동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약자에게 가장 먼저, 그리고 가장 혹독하게 타격을 입히는 구조적 시련이다.
정부는 '건전재정'이라는 도그마에서 벗어나, 지금의 경제 위기가 요구하는 정책이 무엇인지 현장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미봉책 위주의 금융 지원을 지양하고, 재정의 경기 방어 기능을 복원하며, 일관성 있는 정책 메시지로 경제 주체들의 신뢰를 회복할 때 비로소 경기 침체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는 발판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