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개항 150주년을 맞은 부산에서 바다와 인간의 관계를 인문학적 관점에서 새롭게 조명하는 국제학술회의가 열린다. 사단법인 인본사회연구소(이사장 남송우)는 오는 10월 29일 오전 9시 30분부터 오후 6시까지 국립부경대학교 소민홀에서 ‘2026 동아시아 해양인문학 국제컨퍼런스’를 개최한다.
‘해양과 인간(The Ocean and Humanity)’을 주제로 열리는 이번 국제컨퍼런스에는 한국·중국·일본·대만의 해양사와 해양문학, 해양교육 분야 학자 및 정책 전문가들이 참석해 동아시아 해양문명의 역사적 의미를 되짚고 미래 협력 방안을 모색한다. 이번 행사는 부산광역시의 ‘2026 부산인문학포럼 지원사업’으로 마련됐으며, 국립부경대학교 인문사회과학연구소와 HUSS 포용사회사업단이 후원한다.
올해는 1876년 부산항이 근대적 개항을 한 지 150년이 되는 해다. 부산은 오랜 세월 한반도와 동아시아를 연결하는 해상교류의 중심지였으며, 근대 개항 이후에는 국제무역과 해운·물류의 거점도시로 성장해 왔다. 최근 해양수산부의 부산 이전과 북극항로 개척 등 해양환경의 변화는 부산이 지향하는 해양수도의 역할과 미래에 새로운 과제를 던지고 있다.
특히 지난 8월 부산항 신항에서 출항한 팬스타 아크로호가 북극항로를 거쳐 네덜란드 로테르담에 도착한 사례는 새로운 해상교통로에 대한 관심을 높이는 계기가 됐다. 그러나 해양수도의 미래가 항만시설의 확충이나 물류산업의 성장만으로 완성되는 것은 아니다. 바다를 어떻게 이해하고, 인간과 자연이 어떤 관계를 맺으며 공존할 것인가에 대한 인문학적 성찰도 필요하다.
이번 국제컨퍼런스는 바로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한다. 남송우 인본사회연구소 이사장은 “땅 중심의 천지인(天地人) 사유에서 바다를 품은 천지해인(天地海人)의 사유로 전환해야 할 때”라며 “이번 논의가 부산이 지향하는 해양수도의 밑그림에 방향타가 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기조강연은 김태만 국립한국해양대학교 교수(해양문명연구원장·전 국립해양박물관장)가 맡는다. 김 교수는 ‘해양과 인간: 바다를 다시 사유하다 지구(地球)에서 수구(水球)로, 육지의 문법을 넘어 바다의 문법으로’를 주제로 발표한다. 그는 바다를 정복과 소유, 개발의 대상으로 바라보던 기존의 인식을 넘어 인간과 자연이 함께 살아가는 공존의 공간으로 이해해야 한다고 강조할 예정이다.
이를 위한 새로운 해양적 사고의 원리로 개방성·연결성·수평성·유동성·복원성 등 ‘해양성 5대 원리’를 제시한다. 또한 부산 북항의 상징물인 흑상어 ‘부캉이’와 북극항로를 사례로 들어 해양환경의 변화가 인간사회에 던지는 의미를 살펴본다. 특히 기후변화로 열리고 있는 북극항로가 국가 간 경쟁과 자원 확보의 공간이 아니라 국제협력과 환경보전의 공간이 되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김 교수는 이를 실현하기 위한 방안으로 동아시아 해양 소양 교육의 확대, 항구도시 간 연대, 해양생명과의 공생을 제안할 예정이다. 이어 중국의 리칭신 광동역사학회 회장이 인공지능 시대의 해역사 연구를, 일본의 무라이 쇼스케 도쿄대학교 교수가 국경을 넘나들며 살아온 ‘경계인’의 역사를 주제로 발표한다.
첫 번째 학술세션인 ‘해양과 인간’에서는 바다를 삶의 터전으로 삼아 온 사람들의 역사와 문화가 집중적으로 다뤄진다. 제주 출신 소설가 현기영 전 한국문화예술진흥원장은 제주 해녀들의 삶을 통해 화산섬 제주가 지닌 독특한 존재방식과 해양문화의 의미를 조명한다. 일본의 오쿠다이라 오사무 홋카이도교육대학교 교수는 일본의 전통 해상운송선인 기타마에부네와 쓰가루해협권의 교류를 살펴본다. 중국의 둥샤오신 복단대학교 교수는 16~17세기 동아시아 해역에서 전개된 정치·경제·사회적 격변을 다룬다. 이 시기는 동아시아 해상교역의 확대와 국제질서의 변화, 국가 간 충돌이 복합적으로 전개된 시기로, 오늘날 동아시아 해양문명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역사적 배경이 된다.
두 번째 세션인 ‘해양과 미래’에서는 인공지능 시대의 해양교육과 해양문화의 발전 방향을 논의한다. 김웅서 해양올림피아드 조직위원장과 천치위안 대만해양대학교 해양교육센터장, 야라 겐이치로 일본 메이오대학교 교수가 참여해 미래 해양교육의 과제와 오키나와의 경험 등을 공유한다.
학술발표가 끝난 뒤에는 김태만 교수가 좌장을 맡아 종합 라운드테이블을 진행한다. 참가자들은 동아시아 해양인문학 연구의 성과를 공유하고, 해양교육과 학술교류를 확대하기 위한 협력 방향을 논의할 예정이다. 국제컨퍼런스와 연계한 교류행사와 현장답사도 마련된다. 행사 전날인 10월 28일 오후 5시에는 해외 참가 학자들이 참여하는 라운드테이블과 교류의 장이 열린다.
30일에는 해외 참가자들이 부산의 대표적인 역사문화 현장을 둘러보는 ‘부산인문탐방’에 나선다. 탐방은 해동용궁사와 국립해양박물관, 국제시장, 금련산 전망대 등을 연결하는 일정으로 진행된다. 이를 통해 부산의 해양신앙과 역사, 근현대 생활문화, 항구도시의 공간적 특성을 현장에서 살펴볼 예정이다.
시민들을 위한 해양인문학 프로그램도 함께 운영되고 있다. ‘바다, 다시 보다’를 주제로 한 해양인문 교양강좌는 지난 9월 4일부터 10월 22일까지 진행되며, 해양문학과 해양기술, 개항의 역사, 해양예술, 기후위기 등 다양한 주제를 다룬다. 또한 ‘바다에서 도시로: 해항도시 부산의 여섯 단면’을 주제로 한 해역인문답사는 10월 8일부터 11월 19일까지 이어진다. 답사 참가자들은 부산의 옛 항구와 매축지, 근대 산업유산, 피란민 생활공간, 낙동강 하구 등을 찾아 바다와 함께 형성되고 변화해 온 부산의 역사와 도시문화를 살펴본다.
바다는 인류에게 생존의 터전이자 문명과 문명을 연결하는 교류의 통로였다. 동시에 국가 간 경쟁과 전쟁의 무대이기도 했다. 특히 동아시아의 바다는 오랜 세월 무역과 문화교류, 이주와 전쟁이 반복되면서 다양한 해양문화를 형성해 온 역사적 공간이다. 오늘날 기후위기와 해양환경의 변화, 인공지능 기술의 발전, 새로운 항로의 개척은 인간과 바다의 관계를 다시 생각하도록 요구하고 있다.
이번 국제컨퍼런스는 해양의 경제적 가치뿐 아니라 역사·문화·생태적 가치를 함께 살펴봄으로써 해양수도 부산이 나아갈 방향을 모색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아울러 국제학술회의를 시민강좌와 현장답사로 연결해 전문적인 학술연구의 성과를 시민사회와 공유한다는 점에서도 주목된다. 부산이 진정한 해양수도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항만과 물류산업의 경쟁력뿐 아니라 바다를 이해하는 인문학적 기반과 해양문화에 대한 시민들의 인식도 함께 성장해야 한다. 이번 국제컨퍼런스가 부산의 해양역사문화 자산을 재조명하고, 동아시아 해양문명의 미래를 함께 설계하는 국제적인 학술교류의 장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