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돈인데 치매 오면 못 쓸 수도…172조 ‘치매머니’의 함정

2023년 고령 치매환자 소득·재산 153조5천억원…2025년 172조원은 추정치

치매 진단만으로 통장이 자동 동결되지는 않아…가족도 부모 돈을 마음대로 쓸 수 없어

임의후견·신탁·법원 후견, 준비 시점과 맡기는 권한이 다르다

  • 2026년 공공 재산관리 시범사업 시작…대상과 위탁 가능 자산 확인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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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산을 보호하면서 생활비·요양비 제때 쓰려면 미리 계획 세워야

 

 

치매 진단을 받으면 본인 명의 통장이 자동으로 동결될까. 그렇지는 않다. 

 

하지만 인지기능이 떨어져 금융거래 내용을 이해하거나 의사를 표시하기 어려워지면, 예금이나 부동산을 관리하고 생활비·요양비를 마련하는 일이 복잡해질 수 있다. 

 

자녀라고 해서 부모의 계좌와 재산을 곧바로 대신 관리할 권한이 생기는 것도 아니다.

 

‘치매머니’는 이처럼 치매 등으로 자산을 직접 관리하기 어려워질 수 있는 문제를 설명할 때 쓰이는 사회·금융 용어다. 법률이나 의학에서 정한 공식 용어는 아니다. 

 

따라서 ‘치매머니 172조원이 묶여 있다’고 쓰면 실제 금융기관에서 인출이 정지된 돈의 합계처럼 오해될 수 있다.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가 국민건강보험공단·서울대 건강금융센터와 실시한 조사에서 2023년 65세 이상 치매환자는 약 124만명이었다. 

 

이 가운데 자산 보유자는 약 76만명으로 전체의 61.6%였고, 이들이 보유한 소득과 재산은 약 153조5천억원으로 조사됐다. 

 

당시 발표된 2025년 약 172조원과 2050년 약 488조원은 치매환자와 자산 규모의 변화를 바탕으로 한 추정·전망치다. 

현재 은행에서 실제로 거래가 제한된 자산을 집계한 금액이 아니다.

 

고령자 부부가 재산관리 자료를 함께 살펴보는 모습을 표현한 이미지 (AI 생성)

 

부동산이 대부분…‘172조원’은 실제 동결액이 아니다

조사에서 치매환자의 부동산 재산은 약 113조8천억원, 금융재산은 약 33조4천억원이었다. 

부동산 비중이 큰 만큼 이 수치를 곧바로 당장 사용할 수 있는 현금 규모로 볼 수 없다. 

 

금융재산 역시 이자·배당 등 금융소득 자료를 바탕으로 추정됐다. 

조사단은 연간 금융소득이 2천만원 미만인 사람은 자료에 충분히 잡히지 않아 실제 금융재산이 더 클 가능성도 있다고 설명했다.

 

평균 자산도 주의해서 읽어야 한다. 조사 대상의 자산 총액을 자산 보유자 수로 나눈 평균은 약 2억원이지만, 부동산 가치 등에 따라 평균이 달라질 수 있다. 

 

모든 치매환자가 2억원가량의 재산을 가졌다는 의미는 아니다. 이 수치는 치매와 재산관리 문제가 일부 부유층만의 일이 아니라 주택·예금·연금 등 일반적인 노후자산과도 맞닿아 있음을 보여주는 참고자료에 가깝다.

 

핵심은 자산이 얼마인지보다 그 재산을 누가 어떤 권한으로 관리하고, 당사자의 생활을 위해 어떻게 사용할지다. 

본인이 직접 관리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법적 대리권이 없으면 가족도 계좌를 대신 쓰거나 부동산을 처분하기 어려울 수 있다. 

 

반대로 재산관리 계획이 허술하면 당사자가 필요한 비용을 제때 마련하지 못하거나, 재산이 무단 사용·금융사기에 노출될 위험도 있다.

 

치매 진단과 계좌 동결은 같은 말이 아니다

치매 진단을 받았다는 사실만으로 모든 금융계좌가 자동으로 정지되는 것은 아니다. 치매 진단과 가정법원의 후견 개시 심판은 서로 다른 절차다. 

 

민법은 정신적 제약으로 사무를 처리할 능력이 지속적으로 결여된 경우 성년후견을, 능력이 부족한 경우 한정후견을 가정법원이 심판하도록 하고 있다. 후견인의 대리권이나 지원 범위도 법원의 심판과 결정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다만 금융거래에서 본인의 의사를 확인하기 어렵다면 거래 내용에 대한 추가 확인이나 대리권 증명이 필요해질 수 있다. 

 

그 과정에서 예금 인출·해지 등 필요한 업무가 늦어질 가능성이 있다. 치매가 있어도 거래 내용을 이해하고 자신의 의사를 

분명히 표현할 수 있는 경우와, 금융거래 판단에 도움이 필요한 경우를 같은 방식으로 볼 수는 없다.

 

자녀가 부모의 병원비나 간병비를 대신 부담하고 있더라도, 자녀라는 이유만으로 부모 명의 계좌의 돈을 임의로 사용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계좌 비밀번호를 알고 있거나 부모와 함께 살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법적 대리권이 생기지 않는다. 

 

부모가 재산관리 방식과 대리인을 미리 정해두지 않았다면 후견 절차 등을 거쳐 권한을 확인해야 할 수 있다.

 

판단능력이 있을 때 준비하는 임의후견

치매나 노령으로 사무를 처리하기 어려워질 상황에 대비해 미리 맡길 사람과 업무 범위를 정하는 제도가 임의후견이다. 

민법상 후견계약은 재산관리와 신상보호 업무의 전부 또는 일부를 다른 사람에게 맡기고, 해당 업무에 관한 대리권을 주는 계약이다.

 

후견계약은 공정증서로 체결해야 한다. 

계약을 작성해두는 것만으로 대리권이 바로 생기는 것은 아니다. 

가정법원이 임의후견감독인을 선임한 때부터 효력이 발생하며, 계약을 이행할 때는 본인의 의사를 최대한 존중해야 한다.

 

준비할 때는 누구에게 맡길지뿐 아니라 무엇을 맡길지도 구체적으로 정해야 한다. 

예금 관리, 공과금 납부, 정기 생활비 지급, 병원비·요양비 처리, 돌봄서비스 계약 등 필요한 업무를 살펴볼 수 있다. 

어떤 재산을 관리 대상으로 삼을지, 지출을 어떻게 확인하고 보고할지도 함께 검토해야 한다.

 

가족을 임의후견인으로 지정할 수 있지만, 가족이라는 이유만으로 모든 업무를 맡기는 것이 적절한 것은 아니다. 

재산이 여러 곳에 흩어져 있거나 가족 사이에 이해관계가 복잡하다면 관리와 감독 방식을 신중하게 정해야 한다. 

계약 전에는 공증 절차와 대리권 범위, 감독인 선임 절차와 비용을 확인할 필요가 있다.

 

임의후견은 치매 진단과 동시에 자동으로 시작되는 제도가 아니다. 

 

계약 뒤 본인의 사무처리 능력이 부족해져 후견을 시작할 필요가 있을 때 법원에 임의후견감독인 선임을 청구하는 절차를 밟는다. 

치매가 이미 진행돼 계약의 의미와 결과를 이해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면 새 계약을 체결하는 데 제약이 있을 수 있어, 미리 준비하는 것이 중요하다.

 

고령자가 가족 및 금융상담 담당자와 예금·부동산 자료를 살펴보며 치매 이후의 관리 방안을 논의하는 모습을 표현한 이미지 (AI 생성)

 

치매안심신탁, 상품 이름보다 계약 조건 확인해야

치매안심신탁은 건강할 때 자산을 금융회사 등에 맡기고, 계약에서 정한 조건이 발생하면 사전에 정한 목적과 방식에 따라 관리·지출하도록 설계하는 금융서비스다. 

의료비·요양비·생활비를 어떤 기준으로 지급할지, 누가 지출을 요청하거나 관리할지 등을 계약에 담을 수 있다.

 

신한은행은 2026년 2월 ‘신한 SOL메이트 치매안심신탁’을 출시했다. 

출시 당시 안내에 따르면 가입자는 건강할 때 직접 자산을 관리하고, 건강 이상이 생기면 미리 지정한 신탁관리인을 통해 병원비·요양비·세금 납부 등 금융거래를 지원받을 수 있다. 

정기예금뿐 아니라 금전·부동산·유가증권도 신탁재산으로 설정할 수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신탁관리인을 지정했다고 해서 그 사람이 부모의 모든 금융거래와 재산을 자유롭게 대신할 권한을 얻는 것은 아니다. 

 

신탁은 맡긴 재산과 계약에 정한 업무를 관리하는 구조다. 어떤 상황에서 관리가 시작되는지, 어떤 의료자료나 확인 절차가 필요한지, 관리인이 처리할 수 있는 거래와 지출이 어디까지인지 계약서로 확인해야 한다. 

치매 진단만으로 모든 자산이 자동으로 신탁에 넘어간다고 이해해서는 안 된다.

 

신탁은 예금과도 다르다. 운용 방식과 위험, 수수료, 예금자보호 여부는 상품마다 다를 수 있다. 

 

한화생명이 공개한 ‘치매안심 MMT’ 안내에는 신탁이 예금자보호 대상이 아니며 운용 결과에 따라 손실이 발생할 수 있다고 명시돼 있다. 

이는 해당 상품의 안내이므로 다른 금융회사 상품에 그대로 적용할 수는 없다. 가입 전에는 각 상품의 설명서와 계약서를 확인해야 한다.

 

유언대용신탁과 치매안심 목적의 신탁도 구분할 필요가 있다. 

유언대용신탁은 위탁자가 사망한 뒤 수익자가 신탁재산에 따른 급부를 받도록 하는 기능을 포함한다. 

 

치매 대비 신탁은 본인이 살아 있는 동안 판단이 어려워졌을 때 생활비나 의료비를 어떻게 관리할지에 초점을 둘 수 있다. 하나의 계약이 두 기능을 함께 다룰 수 있지만, 생전 자산관리와 사후 자산 이전은 같은 기능이 아니다.

 

이미 재산관리가 어렵다면 법원 후견과 공공서비스

치매가 진행돼 부모가 재산을 스스로 관리하기 어려워졌다면 성년후견·한정후견·특정후견 등 법원 절차를 검토할 수 있다. 

 

후견 유형과 권한은 당사자의 상태와 필요한 지원에 따라 법원이 심판한다. 한정후견인의 대리권도 필요한 범위에서 법원이 정할 수 있어, 후견인이 모든 일을 자동으로 대신한다고 볼 수 없다. 

부모가 거주하는 건물이나 대지를 처분하는 등 중요한 행위에는 법원의 허가가 필요할 수 있다.

 

공공 재산관리 지원도 시행 중이다. 

보건복지부와 국민연금공단은 2026년 4월 22일부터 ‘치매안심재산관리서비스’ 시범사업을 시작했다. 

 

본인의 의사에 따라 신탁계약을 맺고, 국민연금공단이 의료비·요양비·물품 구매 등 일상생활에 필요한 지출을 지원하는 방식이다. 국민연금공단은 7월 서울·경기·세종 등에서 첫 계약 4건이 체결됐다고 밝혔다.

 

시범사업의 주요 대상은 치매나 경도인지장애 등으로 재산관리에 어려움이 있거나 어려움이 예상되는 기초연금 수급 어르신이다. 

65세 미만 치매환자 중 차상위계층·기초생활수급자 등 저소득자도 신청할 수 있다. 위탁 가능한 재산은 현금, 임대차보증금 반환채권, 주택연금 등 현금성 자산이며 상한액은 10억원이다. 

 

기초연금 수급권자가 아닌 이용자는 신탁재산의 연 0.5%에 해당하는 이용료를 부담할 수 있다. 상담은 국민연금공단 지사와 치매안심센터를 통해 안내받을 수 있다.

 

공공서비스가 모든 재산을 대신 관리해주는 것은 아니다. 

현재 시범사업에서 위탁할 수 있는 자산은 현금성 자산으로 제한돼 있어 부동산 매매나 복잡한 재산 처분은 별도의 법적 절차가 필요할 수 있다. 신청 대상과 이용료, 수탁 가능한 재산도 정해져 있으므로 상담을 통해 현재 기준을 확인해야 한다.

 

재산 목록과 지출 계획부터 정리해야

치매머니 대비는 큰 자산을 가진 사람만의 일이 아니다. 

 

집 한 채와 예금, 보험, 연금처럼 일반적인 노후자산도 본인이 관리하기 어려워지면 사용과 처분 과정에서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시작은 재산을 가족에게 넘기는 일이 아니라, 당사자의 의사를 중심으로 자산과 지출을 정리하는 것이다.

 

▲ 예금·주식·부동산·보험·연금·대출을 목록으로 정리한다.

▲ 생활비·의료비·요양비를 어떤 자산에서 마련할지 검토한다.

▲ 판단이 어려워졌을 때 재산을 맡길 사람과 업무 범위를 논의한다.

▲ 임의후견·신탁·법원 후견·공공 재산관리서비스의 조건을 비교한다.

▲ 계약 전 관리 개시 조건, 대리권, 지출 증빙, 수수료와 해지 절차를 확인한다.

 

치매머니 172조원은 은행에 잠겨 있는 돈의 합계가 아니다. 

고령 치매환자가 보유한 소득과 재산 규모를 추정한 수치이며, 모든 치매환자가 자산을 사용하지 못한다는 뜻도 아니다. 

 

다만 판단능력이 저하된 뒤에는 본인의 의사를 확인하고 재산을 적법하게 관리하는 일이 어려워질 수 있다. 

 

필요한 비용을 본인의 재산으로 충당하면서도 그 재산을 다른 사람이 임의로 사용하지 못하도록, 의사결정이 가능한 시기에 관리 방식과 권한을 미리 정해두는 것이 중요하다.

작성 2026.10.16 10:00 수정 2026.10.16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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