① 농촌에서도 살던 집에서 늙을 수 있을까…영월·화천·보령·청양의 돌봄 실험
농촌에서 나이 든다는 것은 단순히 병원이 멀다는 문제만은 아니다.
진료를 받기 위해 먼 거리를 이동해야 하고, 혼자 장을 보거나 식사를 준비하기 어려워도 도움을 받을 곳이 마땅치 않을 수 있다. 집으로 찾아오는 의료·돌봄서비스를 이용하기도 쉽지 않다.
살던 집에서 계속 생활하고 싶어도 필요한 의료와 돌봄을 제때 받지 못한다면 그 바람을 실현하기 어렵다.
특히 마을이 넓게 흩어진 농촌에서는 의료기관과 돌봄 인력을 확보하고, 고령자가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도록 교통수단을 마련하는 일까지 과제가 된다.
웰라이프타임즈는 앞서 4부작 기획 「살던 집에서 맞는 노후」를 통해 지역사회 통합돌봄의 운영 현황과 경제적 부담, 지역별 의료·돌봄 격차, 실제 신청 방법을 살펴봤다.
이번에는 시선을 농촌으로 옮긴다.
후속기획 「살던 집에서 맞는 노후, 지역의 해법을 찾다」에서는 지방소멸대응기금을 활용한 지역별 주거·의료·돌봄 연계사업을 살펴보고, 정부와 지방정부의 사업계획이 고령자의 실제 생활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 수 있을지 점검한다.
첫 번째 기사는 강원 영월·화천과 충남 보령·청양의 주민행복마을 조성계획을 중심으로 농촌 돌봄의 과제와 정책적 가능성을 짚어본다. 이후 강원과 충남의 세부 사업계획과 실행 여건을 차례로 살펴볼 예정이다.
행정안전부는 지난 12일 지방소멸대응기금 광역지원계정에 처음으로 투자계획 평가 방식을 도입하고, 평가 결과에 따라 15개 시·도에 500억 원을 차등 배분한다고 발표했다.
강원특별자치도와 충청남도가 최우수 지역으로 선정돼 각각 66억 원을 배분받는다.
강원은 영월·화천에 주거와 의료·돌봄·교통을 연계한 '주민행복마을'을 조성하고, 충남은 보령·청양의 주민행복마을과 인공지능(AI) 통합돌봄 등을 추진할 계획이다.
그러나 이번 발표는 사업계획에 대한 평가 결과다. 실제 시설이 조성되거나 주민에게 의료·돌봄서비스가 제공됐다는 의미는 아니다.

지방소멸대응기금 500억 원 첫 평가 배분…강원·충남 최우수
지방소멸대응기금은 인구감소지역 등의 지방소멸 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2022년부터 2031년까지 매년 1조 원 규모로 조성되는 재원이다.
기금은 인구감소지역 등에 배분하는 기초지원계정 7,500억 원과 서울·세종을 제외한 시·도를 대상으로 하는 광역지원계정 2,500억 원으로 구분된다.
올해부터는 광역지원계정의 일부에 투자계획 평가 방식이 도입됐다.
광역지원계정 2,500억 원 가운데 1,500억 원은 인구와 재정 여건 등에 따른 산식으로 배분하고, 500억 원은 투자계획 평가 결과에 따라 차등 배분한다. 나머지 500억 원은 지역활성화투자펀드 조성에 활용한다.
행정안전부는 이번 평가에서 시·도가 지역 전체의 관점에서 사업을 발굴하고, 시·군 간 협력을 이끌어 광역 차원의 성과를 낼 수 있는지를 중점적으로 살폈다.
구체적으로 광역지방정부의 사업 기획·조정 역할과 광역 단위 추진의 필요성, 지역 여건과 주민 수요에 맞는 사업 발굴, 실행 가능성 등을 종합적으로 평가했다.
평가 결과 강원과 충남이 최우수 지역으로 선정돼 각각 66억 원을 배분받는다. 부산·대구·충북·전북·경남·제주는 각각 34억 원, 나머지 지역에는 평가 결과에 따라 17억~26억 원이 배분된다.
다만 강원과 충남이 받는 66억 원이 모두 고령자 돌봄사업에 투입되는 것은 아니다.
이번 금액은 광역지원계정의 평가 기반 배분액으로, 개별 주민행복마을이나 AI 통합돌봄사업의 확정 사업비와 구분해야 한다.
사업별 투자 규모와 지방정부의 재원 분담, 실제 집행 일정은 세부 사업계획을 통해 확인해야 한다.
영월·화천 주민행복마을…주거와 의료·돌봄·교통을 연결한다
강원특별자치도가 제시한 핵심 사업은 영월과 화천의 주민행복마을 조성이다.
행정안전부 발표에 따르면 주민행복마을은 주거를 중심으로 의료와 돌봄, 교통 등 생활서비스를 연계하고 주변 마을 주민도 함께 이용할 수 있도록 하는 생활권 거점이다.
강원도는 시·군과 사업을 함께 기획하고 재원 분담과 성과 관리에도 참여한다. 기초지방정부의 사업 기획 역량을 높이기 위한 컨설팅도 추진한다.
농촌에서는 의료기관과 복지시설이 멀리 떨어져 있거나 대중교통 이용이 어려워 필요한 서비스를 이용하는 데 불편을 겪을 수 있다.
주거와 생활서비스를 연계한 거점이 마련된다면 고령자가 의료·돌봄·교통 지원을 이용하는 과정의 어려움을 줄일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거점시설을 조성하는 것과 기존 주택에 거주하는 고령자가 실제로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다는 것은 다른 문제다.
주민행복마을이 새로운 주거공간을 중심으로 운영되는지, 기존 마을에 거주하는 고령자도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는지에 따라 사업의 효과는 달라질 수 있다.
특히 주변 마을 주민까지 이용하도록 한다는 계획이 실현되려면 이동수단과 서비스 제공 범위가 구체적으로 마련돼야 한다.
현재 행정안전부가 공개한 발표에는 영월·화천 주민행복마을의 세부 위치와 주거 규모, 입주 대상, 의료·돌봄서비스 제공 방식, 운영 개시 시점 등이 제시돼 있지 않다.
따라서 주민행복마을이 농촌 고령자의 생활에 어떤 도움을 줄 수 있을지는 강원도와 해당 군의 세부 사업계획을 확인해야 판단할 수 있다.
보령·청양 주민행복마을…AI 통합돌봄도 추진
충청남도는 보령과 청양의 주민행복마을 조성과 인공지능(AI) 통합돌봄 등을 주요 사업으로 제시했다.
행정안전부 발표에 따르면 충남도는 사업의 기본 방향을 설정하고 시·군 간 역할을 조정하며, 해당 시·군은 지역 특성과 주민 수요를 반영해 세부 사업을 구체화하는 방식이다.
또한 충남도는 '지역활력 프로젝트 기획지원단'을 통해 9개 시·군의 지역문제 진단과 사업 발굴·기획, 전문가 자문을 지원할 계획이다.
주목할 부분은 AI 통합돌봄이다.
농촌에서는 돌봄 인력이 모든 고령자의 가정을 수시로 방문하기 어려울 수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디지털 기술은 고령자의 생활 상태를 확인하고 필요한 지원을 연결하는 보조 수단으로 활용될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이번 발표만으로 충남의 AI 통합돌봄이 어떤 기술을 사용하고 어떤 서비스를 제공하는지 구체적으로 확인되지는 않는다.
고령자의 움직임을 감지하는 장치인지, 응급상황을 알리는 체계인지, 건강 상태를 확인하는 서비스인지에 따라 사업 내용과 이용 조건은 달라진다.
따라서 특정 장비가 설치되거나 AI가 고령자의 건강 이상을 자동으로 진단한다고 설명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AI 통합돌봄의 실효성을 판단하려면 기술의 종류뿐 아니라 위험 신호가 확인됐을 때 실제로 누가 대응하는지, 의료·돌봄기관과 어떻게 연결되는지 확인해야 한다.
고령자의 개인정보 보호와 서비스 이용 동의, 디지털 기기에 익숙하지 않은 주민의 접근성도 함께 살펴야 할 문제다.
AI가 돌봄 인력을 대체한다는 접근보다 부족한 인력이 필요한 고령자에게 적시에 도움을 제공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수단인지가 중요하다.
주민행복마을 조성만으로 방문진료·방문요양 부족 해결될까
주민행복마을과 AI 통합돌봄은 지역사회 통합돌봄의 부족한 기반을 보완할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시설을 조성하고 기술을 도입하는 것만으로 방문진료와 재가요양서비스의 공급 부족이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방문진료에는 실제 가정을 방문할 의료진이 필요하고, 방문요양에는 요양보호사와 서비스를 운영할 기관이 필요하다.
특히 농촌에서는 이동 거리가 길어 같은 인력으로 제공할 수 있는 방문서비스의 횟수가 제한될 수 있다.
새로운 거점이 마련되더라도 주변 마을 고령자가 교통수단을 이용하기 어렵거나 방문서비스를 제공할 인력이 부족하다면
체감 효과는 제한적일 수 있다.
따라서 사업의 성과를 판단하려면 시설 조성 여부뿐 아니라 방문진료 참여 의료기관과 돌봄 인력의 확보, 실제 서비스 제공 지역 등을 확인해야 한다.
이는 앞선 「살던 집에서 맞는 노후」 3편에서 살펴본 지역별 의료·돌봄 접근성 문제와도 연결된다.
전국에서 같은 제도를 시행하더라도 거주 지역에 서비스를 제공할 기관과 인력이 없다면 고령자의 선택은 제한될 수 있기 때문이다.
지방소멸대응기금과 통합돌봄…서로 다른 제도 어떻게 연결하나
지방소멸대응기금과 지역사회 통합돌봄은 목적과 운영 방식이 다른 제도다.
지방소멸대응기금은 인구감소와 지역 활력 저하에 대응하기 위한 재원으로, 주거와 교통, 의료, 생활서비스 등 다양한 분야의 사업에 활용할 수 있다.
반면 지역사회 통합돌봄은 노쇠나 질병 등으로 일상생활에 어려움이 있는 사람이 살던 곳에서 필요한 의료·요양·돌봄서비스를 연계해 이용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제도다.
두 제도가 효과적으로 연결되려면 지방소멸대응기금으로 마련한 시설이나 서비스가 기존 의료·요양·돌봄체계와 중복되지 않고 실제 이용자에게 도움이 되도록 운영돼야 한다.
예를 들어 주민행복마을이 조성되더라도 통합돌봄 대상자가 그곳에서 어떤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지, 기존 장기요양보험이나 지방정부의 생활지원사업과 어떻게 연결되는지 확인할 필요가 있다.
또한 시설 조성에 필요한 비용과 시설을 지속적으로 운영하는 비용은 구분해야 한다.
건물을 마련하는 데 필요한 재원이 확보됐더라도 의료진과 요양보호사, 운영인력을 계속 고용하고 서비스를 제공할 재원이 부족하면 사업을 안정적으로 유지하기 어렵다.
시설을 만드는 사업에서 실제 돌봄을 지속적으로 제공하는 사업으로 이어질 수 있는지가 핵심이다.
평가 결과와 주민의 생활 변화는 구분해야
이번 평가에서 강원과 충남이 최우수 지역으로 선정된 것은 광역지방정부의 사업 기획과 시·군 간 협력계획이 높은 평가를 받았다는 의미다.
그러나 아직 주민행복마을이 조성돼 고령자의 의료·돌봄 접근성이 개선됐다는 성과를 확인한 것은 아니다.
정부의 평가 기준에는 사업의 실행 가능성 등이 포함돼 있지만, 실제 주민이 체감하는 변화는 사업이 추진된 이후 확인할 수 있다.
특히 주민행복마을과 AI 통합돌봄의 성과를 판단하려면 의료와 돌봄서비스를 이용하는 고령자가 얼마나 늘었는지, 방문서비스를 받기까지 걸리는 시간이 줄었는지, 주변 마을에서도 실제로 이용할 수 있는지 등을 살펴야 한다.
서비스 이용자의 본인부담금과 교통비, 사업 종료 후 운영 지속 가능성도 중요한 점검 대상이다.
평가에 따른 차등 배분 방식 역시 향후 검토할 필요가 있다.
사업 기획 역량과 광역 협력체계가 우수한 지역에 더 많은 재원을 배분하는 방식은 지방정부의 적극적인 사업 발굴을 유도할 수 있다.
반면 의료·돌봄 기반이 취약한 지역이 사업 기획 역량까지 부족하다면 평가 경쟁에서 불리해질 가능성도 있다.
이번 평가 기반 배분액은 최우수 지역의 66억 원과 가장 적은 지역의 17억 원 사이에 49억 원의 차이가 있다.
다만 이는 전체 지방소멸대응기금의 배분 격차가 아니라 광역지원계정 중 평가 대상인 500억 원의 배분 결과다. 이 수치만으로 지역별 전체 지원 규모나 돌봄서비스 격차를 판단할 수는 없다.
중요한 것은 사업 기획에 대한 평가가 지역 간 협력을 촉진하면서도 실제 의료·돌봄 수요가 큰 지역에 필요한 지원이 이뤄지도록 하는 것이다.
농촌 고령자의 삶이 달라졌는지 확인해야
농촌 고령자에게 필요한 것은 새로운 시설의 숫자보다 일상생활에서 실제로 이용할 수 있는 의료와 돌봄이다.
방문진료가 필요할 때 의료진이 찾아올 수 있는지, 요양보호사의 도움을 정기적으로 받을 수 있는지, 병원이나 생활서비스 거점까지 이동할 수 있는지가 중요하다.
강원 영월·화천과 충남 보령·청양의 사업은 주거와 의료·돌봄·교통을 함께 고려한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그러나 계획이 실제 생활의 변화로 이어지려면 지원 대상과 서비스 제공 범위, 인력 확보, 운영비 마련, 주변 마을과의 연결 방안이 구체화돼야 한다.
고령자가 살던 집에서 계속 생활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정책은 시설 조성이나 기술 도입 자체를 목표로 삼아서는 안 된다.
어디에 살든 필요한 의료와 돌봄을 이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 그리고 그 지원이 일회성 사업으로 끝나지 않고 지속되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지방소멸대응기금이 농촌 고령자의 삶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지는 앞으로의 사업 추진 과정과 실제 이용 성과를 통해 확인해야 한다.
[다음 기획 예고]
2편에서는 강원 영월·화천의 주민행복마을 조성계획을 집중적으로 살펴본다. 주거와 의료·돌봄·교통서비스를 어떤 방식으로 연결할 것인지, 기존 마을의 고령자도 이용할 수 있는지, 시설 조성 이후 운영인력과 비용은 어떻게 마련할 것인지 확인할 예정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