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담일보 = 화담일보기자] 제주특별자치도가 출범한 지 20년이 됐다. 국회입법조사처는 9월 17일 공개한 '특별자치 20년, 선도모델 제주의 성과와 향후 과제'에서 제주가 자치분권의 외연을 넓혀 왔지만 이양된 권한의 실효성과 도민이 체감하는 성과에서는 여전히 과제가 남아 있다는 평가를 소개했다. 특별자치의 20년을 돌아보는 일은 제주만의 행정제도를 평가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앞으로 다른 지역의 분권을 어떤 기준으로 설계할지 묻는 일이기도 하다.
[권한을 넘겨받았다는 사실만으로 자치가 완성되지는 않는다]
지방자치의 출발점은 지역 문제를 지역이 더 잘 이해하고 해결할 수 있다는 믿음이다. 중앙정부가 모든 지역의 사정을 세밀하게 파악하고 하나의 기준으로 답하기는 어렵다. 지역이 스스로 필요한 정책을 결정할 수 있는 권한을 갖는 것은 주민의 선택권을 넓히고 행정의 대응력을 높일 수 있다.
그러나 권한을 이양받은 목록이 길어진다는 사실과 주민의 삶이 나아진다는 사실은 동일하지 않다. 실제로 권한을 행사할 재정과 인력, 지역의 정책 역량이 부족하다면 제도상의 재량이 실질적인 선택으로 이어지지 않을 수 있다. 새로운 사무를 넘겨받았지만 그에 필요한 비용과 책임의 배분이 모호한 경우라면 주민의 기대만 높아질 수 있다.
특별자치의 성과를 논할 때는 규제 완화 건수나 중앙에서 넘겨받은 권한의 수뿐 아니라 지역의 의사결정 과정이 얼마나 공개적이고 책임 있게 작동했는지 확인해야 한다. 주민이 정책 결정에 참여할 수 있는지, 행정의 오류를 바로잡는 수단이 충분한지, 취약한 집단의 목소리가 반영되는지도 함께 살펴야 한다. 자치는 행정기관의 자유 확대가 아니라 주민의 자치 역량 확대여야 한다.
[국가의 기준과 지역의 선택은 충돌만 하는 관계가 아니다]
자치권을 강조한다고 모든 국가적 기준을 지역별로 다르게 만들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국민의 기본권과 안전, 공정한 경쟁, 환경과 같이 전국적으로 지켜야 할 기준이 존재한다. 지역의 특성을 존중하면서도 어느 지역에 살든 기본적인 권리를 보장받도록 하는 국가의 책임을 가볍게 봐서는 안 된다.
반대로 중앙정부가 지침과 예산의 세부 조건까지 모두 통제한다면 지역 실정에 맞는 실험은 어려워진다. 무엇을 전국적으로 동일하게 보장해야 하고, 무엇을 지역의 선택에 맡길 수 있는지 구분하는 일이 중요하다. 특별자치의 제도 설계는 중앙과 지방 중 누가 더 많은 권한을 갖느냐는 경쟁을 넘어 서로 어떤 책임을 맡을지 정하는 과정이어야 한다.
제주는 관광, 환경보전, 산업구조, 섬이라는 지리적 특성에서 다른 지역과 구별되는 조건을 가지고 있다. 특별자치 모델이 제주에서 작동한 방식이 모든 지역에서 그대로 성공할 것이라고 기대해서는 안 된다. 다만 제주가 경험한 제도 운영의 성과와 시행착오는 다른 지역이 새로운 분권을 추진할 때 참고할 수 있는 중요한 정책적 자산이다.
[주민 체감은 홍보 구호가 아니라 검증 대상이다]
지방정부는 자신의 성과를 알릴 수 있다. 그러나 자치권 확대가 주민의 생활 변화로 연결됐는지 판단하려면 객관적인 자료와 평가 기준이 필요하다. 교육과 복지, 인허가, 주거, 교통, 환경과 같은 분야에서 주민이 실제 어떤 변화를 경험했는지 검토해야 한다. 행정의 설명과 주민의 경험이 어긋날 때는 그 차이를 정책평가의 출발점으로 삼아야 한다.
주민 만족도만으로 모든 성과를 결론 내려서도 안 된다. 단기간에는 반응이 낮아도 장기적으로 필요한 정책이 있고, 반대로 당장의 인기가 높아도 재정이나 환경에 부담을 남기는 정책이 있다. 주관적인 체감과 객관적인 성과, 장기적인 지속가능성을 함께 평가해야 한다. 평가가 어려운 분야는 확인 방법을 개선하는 것도 행정의 책임이다.
특별자치의 특례가 기업의 활동을 돕고 지역경제의 활력을 높이는 데 기여한다면 그 효과를 환영할 일이다. 동시에 기회의 이익이 일부 업종이나 집단에만 집중되는지, 자연환경과 주민의 삶에 어떠한 부담이 발생하는지 살펴야 한다. 지역의 성장과 공동체의 질은 분리된 목표가 아니다. 자율성을 넓히되 이해충돌과 불공정의 위험을 통제할 장치도 필요하다.
[다음 20년의 과제는 책임 있는 분권이다]
지방분권을 둘러싼 논쟁은 자주 중앙정부의 간섭과 지방의 자율이라는 두 구호에 머문다. 그러나 주민에게 필요한 것은 어느 쪽이 이겼느냐가 아니라 누가 결과에 책임지는지 분명한 제도다. 지방정부가 권한을 갖는 만큼 결정 과정과 예산 집행, 성과를 공개하고 잘못된 결정에는 설명과 수정의 책임을 져야 한다. 중앙정부 역시 이양한 사무에 필요한 법제와 재정 지원을 예측 가능하게 제공해야 한다.
책임을 강화한다는 이유로 지방의 모든 실험을 실패 여부만으로 평가해서도 곤란하다. 새로운 제도의 시도에는 학습이 따른다. 다만 실험의 목표와 기간, 부작용에 대한 대응책, 주민에게 결과를 알리는 절차는 분명해야 한다. 실패를 감추지 않는 행정이 오히려 다음 성과를 만든다.
[특별자치 성과를 공개적으로 검증하는 방법]
새로운 분권정책의 성공을 평가할 때는 발표 시점에 목표를 명확히 세우는 작업부터 필요하다. 어떤 권한을 이전했고 왜 이전했는지, 기존 절차보다 어떤 문제가 개선될 것으로 기대했는지 기록해야 한다. 목적이 분명하지 않으면 시간이 지난 뒤 제도가 성과를 냈는지 판단하기 어렵다. 단순히 조례 수와 조직 수가 늘어난 사실을 성과로 보는 것도 신중해야 한다.
실제 평가에서는 행정의 처리 속도와 주민 만족도, 예산의 효율성, 환경과 생활에 미치는 영향 등을 함께 고려할 수 있다. 그러나 평가 항목을 무한히 늘리면 중요한 판단이 흐려질 수 있다. 권한별 목적에 맞는 핵심 지표를 정하고 한계가 있으면 그 이유를 설명하는 방식이 바람직하다. 지역의 정책 시행 시점과 전국적 변화가 겹칠 경우 어느 효과가 자치제도에서 비롯됐는지도 섣불리 단정하지 말아야 한다.
주민 참여의 형식도 점검할 필요가 있다. 공청회를 열었다는 사실과 주민 의견이 실제 결정에 반영됐다는 사실은 다르다. 서로 다른 이해관계를 가진 집단이 어떤 의견을 제출했고 행정기관이 이를 어떻게 검토했는지 기록하고 공개해야 한다. 다수의 편의가 소수의 기본권을 침해하지 않는지 검토하는 절차도 중요하다. 숙의의 시간과 책임 있는 설명이 갖춰질 때 주민은 새로운 정책을 더 신뢰할 수 있다.
특별자치도의 성과를 평가할 때 과거의 선택을 무조건 비판하는 접근은 바람직하지 않다. 당시에는 합리적이었지만 시간이 지나며 수정이 필요한 제도가 있을 수 있다. 개선이 필요한 점을 인정하는 일이 곧 지난 20년 전체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얻은 성과를 보전하면서 제도적 허점을 보완하는 태도가 성숙한 자치정책에 어울린다. 제주의 경험은 다른 지역이 같은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도록 공개적으로 배우는 자료가 되어야 한다.
제주특별자치 20년의 진정한 의미는 특별한 권한을 얼마나 확보했는가가 아니라 그 권한을 주민에게 얼마나 책임 있게 사용했는가에 있다. 앞으로의 분권 정책도 지역의 자율과 국민의 기본권, 성장과 환경, 혁신과 책임을 함께 따져야 한다. 특별자치라는 이름이 행정조직의 성과가 아니라 주민의 삶에서 확인될 때 우리 지방자치는 한 단계 더 성숙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