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희롱 신고가 들어온 날, 관리자는 무엇을 해야 하나

『신고가 들어온 날』이 짚은 공공기관 사건 대응…“관리자는 조사관이 아니다”

첫 대응부터 관리자·고충상담원·조사담당자·기관장 역할 달라…사람 보호와 공정한 절차가 핵심

김범일 저자, 광명도시공사 고위직 20여 명 대상 예방교육서 관리자·기관장 책임 집중 조명

         『신고가 들어온 날』은 공공기관 성희롱·성폭력 사건 대응을 ‘절차’보다 ‘사람과 역할’의 관점에서 풀어낸 김범일 저자의 실무서다.

 

직장 내 성희롱·성폭력 신고가 들어온 순간, 관리자는 무엇부터 해야 할까. 신고 내용을 자세히 확인해야 할까, 상대방을 불러 사실 여부를 물어야 할까, 아니면 두 사람을 만나게 해 문제를 해결해야 할까.

 

김범일 저자의 『신고가 들어온 날』은 이처럼 실제 사건이 발생했을 때 조직이 맞닥뜨리는 질문에서 출발한다. 법령과 절차를 나열하기보다 신고를 처음 들은 사람부터 관리자, 고충상담원, 조사담당자, 기관장까지 각자의 위치에서 무엇을 해야 하고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하는지를 구체적인 상황을 통해 풀어낸 책이다.

 

김 저자는 8일 광명도시공사 고위직 20여 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성희롱·성폭력 예방교육에서도 자신의 저서 내용을 토대로 관리자와 기관장의 역할을 집중적으로 다뤘다. 단순히 성희롱의 개념이나 예방수칙을 전달하는 데 그치지 않고, 실제 신고가 발생한 순간 조직의 책임자가 어떤 판단을 해야 하는지를 교육의 중심에 놓았다.

 

2026년 사건처리 매뉴얼도 ‘피해자 보호·2차 피해 예방’ 강화

 

관리자와 기관장의 사건 대응이 중요한 이유는 현행 공공부문 성희롱·성폭력 대응체계에서도 확인된다.

 

성평등가족부는 올해 4월 국가기관과 지방정부, 공직유관단체 등이 성희롱·성폭력 사건 발생 시 활용할 수 있도록 「공공부문 성희롱·성폭력 사건처리 매뉴얼」을 개정·배포했다. 개정 매뉴얼에는 피해자 보호 의무와 2차 피해 예방 기준이 보완됐다.

 

현행 성희롱·성폭력 예방지침 표준안 역시 기관이 자체적인 예방지침과 사건처리 체계를 마련하도록 하고 있다. 특히 기관장에게는 고충상담창구와 고충처리절차를 마련하고 피해자를 보호하며 2차 피해를 예방하는 등 조직 차원의 대응책임을 부여한다. 사건 발생 이후에는 재발방지대책에 피해자 불이익 금지와 보호조치, 2차 피해 방지 등을 포함하도록 하고 있다.

 

결국 성희롱·성폭력 예방은 사건이 발생하지 않도록 교육하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실제 신고가 들어왔을 때 조직의 대응체계가 제대로 작동하는가까지가 예방과 조직 책임의 영역이라는 의미다.

 

『신고가 들어온 날』…“규정을 알아도 막상 상황이 생기면 무엇부터 해야 할지 모른다”

 

『신고가 들어온 날』은 바로 이 지점을 현장의 언어로 풀어낸다.

 

저자는 책의 첫머리에서 공공기관 사건 대응 현장에서 접한 공통적인 고민으로 “규정은 읽었는데, 막상 상황이 생기면 무엇부터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라는 말을 제시한다. 관리자뿐 아니라 고충상담원과 조사담당자, 기관장도 실제 사건 앞에서는 같은 고민을 마주할 수 있다는 것이다.

 

책은 그래서 기존 법령이나 매뉴얼을 대신하려 하지 않는다. 신고가 들어온 실제 상황을 가정해 ‘이때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를 묻는다.

 

목차도 역할을 따라간다. ‘신고는 접수되는 것이 아니라 들리는 것이다’를 시작으로 ‘관리자는 조사관이 아니다’, ‘고충상담원은 답을 주는 사람이 아니라 길을 함께 찾는 사람이다’, ‘조사는 진실을 만드는 일이 아니라 사실을 확인하는 과정이다’, ‘기관장은 무엇을 결정해야 하는가’로 이어진다. 부록에는 ‘신고를 받은 첫 24시간’, 역할별 실천 체크리스트와 사건 대응 절차도 담았다.

 

“관리자는 조사관이 아니다”…좋은 의도보다 역할 구분이 먼저

 

책에서 특히 강조하는 대상은 관리자다. 제3장의 제목 자체가 ‘관리자는 조사관이 아니다’다.

 

신고를 받은 관리자는 조직을 안정시키고 문제를 빨리 해결하고 싶은 마음에 당사자들을 직접 만나게 하거나 상대방을 불러 사실 여부를 확인하려 할 수 있다. 그러나 책은 이러한 행동이 선의에서 시작됐더라도 신고자에게 또 다른 부담을 주거나 이후 공식적인 사건처리 절차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설명한다.

 

관리자가 먼저 해야 할 일은 누가 옳은지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는 게 책의 핵심이다. 당사자가 안전하게 보호받을 수 있는 환경을 살피고, 필요한 경우 업무공간 조정이나 접촉 최소화 등을 검토하며, 적절한 사건처리 절차로 연결하는 역할이 우선돼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신고자의 말을 곧바로 사실로 확정하라는 의미와도 다르다. 사람을 보호하는 초기 대응과 사실관계를 확인하는 조사를 구분하고, 조사담당자가 객관적인 자료와 진술을 통해 사실을 확인할 수 있도록 각자가 자신의 역할을 지켜야 한다는 설명이다.

 

신고를 처음 듣는 ‘첫 번째 사람’도 사건의 방향을 바꾼다

 

책이 주목하는 것은 관리자와 기관장만이 아니다.

 

신고자가 처음 자신의 이야기를 꺼낸 상대가 동료일 수도 있고 상사나 고충상담원일 수도 있다. 책은 이 사람을 ‘첫 번째 청자’로 설명하면서, 그 사람이 사건을 판단하는 사람은 아니지만 첫 반응이 이후 조직에 대한 신뢰에 영향을 줄 수 있다고 강조한다.

 

따라서 처음 이야기를 듣는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조사 기술보다 끝까지 듣고, 성급하게 결론을 내리지 않고, 필요한 절차로 안전하게 연결하는 능력이라는 것이다. 특히 책은 ‘듣는 것’과 ‘조사하는 것’을 명확하게 구분한다.

 

이러한 역할 구분은 2차 피해를 예방하는 문제와도 연결된다. 사건을 빨리 해결하겠다는 이유로 필요 이상의 사람이 신고 내용을 공유하거나, 공식적인 절차 전에 주변에서 사실관계를 확인하고 평가하기 시작하면 신고자는 또 다른 부담에 놓일 수 있기 때문이다.

 

기관장의 책임은 사건 종결로 끝나지 않는다

 

『신고가 들어온 날』은 기관장의 역할에도 별도의 장을 할애한다.

 

‘기관장의 첫 반응이 조직문화를 결정한다’, ‘기관장은 독립성을 어떻게 지켜야 하는가’, ‘기관장은 언제 말해야 하고 언제 침묵해야 하는가’, ‘사건은 끝나도 기관장의 책임은 끝나지 않는다’ 등의 질문을 통해 기관장의 역할을 사건의 결론을 직접 만드는 사람이 아니라 공정한 절차와 보호체계가 제대로 작동하도록 책임지는 위치에서 바라본다.

 

이는 현행 공식 지침이 기관장에게 피해자 보호와 2차 피해 예방, 고충처리체계 구축과 재발방지 책임을 두고 있는 방향과도 맞닿아 있다.

 

광명도시공사 고위직 교육에서 관리자와 기관장의 역할을 중점적으로 다룬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조직에서 권한이 큰 사람일수록 신고 직후 자신의 말과 행동이 당사자와 구성원, 이후 사건처리 절차에 어떤 영향을 줄 수 있는지 이해해야 한다는 데 초점을 맞췄다.

 

예방교육의 다음 질문…“신고가 들어온 날 나는 무엇을 할 것인가”

 

성희롱·성폭력 예방교육은 무엇이 성희롱인지 알려주는 것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실제 신고가 들어왔을 때 누가 듣고, 누가 보호하고, 누가 조사하며, 기관장은 무엇을 결정해야 하는지까지 조직 구성원이 알고 있어야 사건 대응체계가 작동할 수 있다.

 

『신고가 들어온 날』이 마지막까지 붙드는 원칙도 여기에 있다. 모든 사람이 사건처리 전문가가 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역할을 정확히 알고, 사람을 보호하면서 공정한 절차가 작동하도록 하는 것이다. 책은 독자에게 이를 한 가지 질문으로 압축한다.

“내가 그 자리에 있었다면 어떻게 했을까.”

 

광명도시공사에서 진행된 이번 고위직 예방교육은 이 질문을 실제 공공기관의 관리자와 책임자에게 가져간 자리였다. 성희롱·성폭력을 예방하는 조직을 넘어, 누군가 어렵게 문제를 이야기했을 때 그 말을 안전하게 듣고 각자의 역할에 따라 움직일 준비가 돼 있는 조직인가. 신고가 들어온 날 조직이 받게 되는 첫 번째 질문도 결국 여기에 있다.

 

작성 2026.09.08 22:47 수정 2026.09.08 22:49

RSS피드 기사제공처 : 피플소사이어티 / 등록기자: 김시완 무단 전재 및 재배포금지

해당기사의 문의는 기사제공처에게 문의

댓글 0개 (/ 페이지)
댓글등록- 개인정보를 유출하는 글의 게시를 삼가주세요.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