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 하루, 뉴스와 SNS는 한 초등학교 교실에서 벌어진 폭력 사건으로 들끓었다. 초등학교 5학년 학생이 담임교사를 폭행했고, 이를 제지하던 교감과 학생부장에게까지 폭력을 행사했다. 학생은 보호자에게 인계된 뒤 즉시 출석정지 조치를 받았다. 영상이 빠르게 확산되면서 교권과 학생 인권, 학교의 대응을 둘러싼 논쟁도 이어졌다. 그러나 논쟁에 앞서 먼저 보아야 할 사람이 있다. 맞은 교사다.
폭력 앞에서 교사도 보호받아야 한다
영상 속 학생과 교사의 체격 차이는 크지 않았다. 그러나 대응할 수 있는 범위까지 같은 것은 아니다. 교사는 자신을 방어하는 순간에도 자신을 공격하는 학생의 안전을 고려해야 한다. 적극적으로 제지하다 학생이 다치면 과잉 대응이나 학생 인권 침해 논란에 놓일 수 있고, 자칫 ‘폭력적인 교사’라는 비난까지 감수해야 할지 모른다. 결국 교사는 맞는 순간에도 자신이 어디까지 방어해도 되는지를 판단해야 하는 위치에 놓인다.
폭행은 몇 분이면 끝날 수 있다. 그러나 피해 교사에게 사건은 몇 분으로 끝나지 않는다. 몸의 상처만 남는 것이 아니다. 두려움이 남고, 학생들이 보는 앞에서 폭행당했다는 수치심과 모멸감이 남을 수 있다. 교사로서 지켜온 권위와 자존감이 한순간에 무너졌다고 느낄 수도 있다. 다시 그 교실에 들어갈 수 있을까, 아이들은 앞으로도 나를 교사로 바라볼까, 나는 다시 이 아이들 앞에 설 수 있을까 하는 질문이 남는다.
교권은 단순히 교사가 학생을 통제할 권한의 문제가 아니다. 그 바닥에는 교사 역시 한 사람으로서 존중받아야 한다는 기본적인 권리가 있다. 교사도 맞지 않을 권리가 있고, 두려움 없이 교실에 들어갈 권리가 있으며, 자신의 안전이 지켜질 것이라는 믿음 속에서 학생을 가르칠 권리가 있다.
따라서 폭력 앞에서는 분명해야 한다. 아이에게 어떤 사정이 있더라도 타인을 때릴 권리는 없다. 피해자는 즉시 보호받아야 하고, 위험한 행동은 제지되어야 하며, 행동에는 책임이 따른다는 사실 역시 분명하게 알려야 한다.
행동은 제지하되, 아이까지 밀어내지는 않는 것
오래전, 내가 스무 살을 조금 넘겼을 때의 일이다. 어머니가 운영하시던 학원에서 어머니 대신 수업하던 날, 한 아이가 갑자기 주방으로 가 식칼을 들고 나온 적이 있다. 나는 바로 칼을 빼앗고 아이를 제압했다. 그 순간에는 공감이나 설명보다 안전이 먼저였다.
시간이 흐른 뒤, 그 아이는 오히려 나를 많이 따랐다. 왜 그랬는지는 지금도 정확히 알지 못한다. 다만 기억하는 것은 있다. 나는 위험한 행동은 분명하게 막았지만, 그 행동 때문에 아이 자체를 밀어내지는 않았다. 그 일이 있었다고 다른 아이들과 달리 대하지 않았고, 사건 전후로 그 아이를 대하는 태도 역시 달라지지 않았다.
상담과 교육 현장에서 아이들을 만나온 지금, 이 경험을 다시 생각하게 된다. 아이를 이해하는 것과 행동을 허용하는 것은 다른 일이다. 상처와 환경은 행동의 배경을 설명해 줄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이 폭력의 면죄부가 될 수는 없다. 반대로 잘못된 행동을 제지하고 책임을 묻는다고 해서 그 아이에게 필요한 교육까지 끝난 것도 아니다.
바로 이 지점에서 이번 사건의 ‘다음’을 생각하게 된다. 출석정지는 언젠가 끝난다. 학생은 다시 학교로 돌아온다. 학급을 바꾸는 것도 한 방법일 수 있다. 그러나 교실이 바뀐다고 행동방식까지 함께 바뀌지는 않는다. 화가 나면 때리는 아이가 다른 반으로 이동했다고 갑자기 자신의 감정을 말로 표현할 수 있게 되는 것도 아니며, 거절을 견디기 어려워하던 아이가 담임이 바뀌었다고 그 능력이 생기는 것도 아니다.
처분은 행동을 중단시키는 데 필요하다. 그러나 행동을 변화시키는 일은 그다음의 문제다.
관계와 행동에도 ‘보충교육’이 필요하지 않을까
현장에서는 종종 이런 말을 듣는다. “그 나이인데 그것도 몰라?” 하지만 실제로 모르는 아이들이 많다. 배웠다고 해서 곧바로 실천할 수 있는 것은 아니고, 실천한다고 해서 곧 능숙해지는 것도 아니다. 같은 횟수만큼 반복했다고 해서 모두 같은 수준에 도달하는 것도 아니다.
우리는 학습에서는 이런 차이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어려운 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기초부터 단계적으로 배우고 반복한다. 학습에 공백이 있으면 보충수업을 하고, 필요하면 아이가 이해할 수 있는 단계로 돌아가 다시 배울 기회를 제공한다. 구구단과 같은 기초학습조차 한 번 배우고 끝내지 않는다. 반복해서 외우고 사용하며, 필요한 순간 자연스럽게 꺼내 쓸 수 있을 때까지 익힌다.
그렇다면 관계와 정서의 영역은 어떨까. 감정을 조절하는 법, 거절을 견디는 법, 상대의 경계를 알아차리는 법, 화가 났을 때 폭력 대신 말로 표현하는 법,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하며 관계를 회복하는 법 역시 배우고 익혀야 하는 능력이다. 무엇이 옳은지를 아는 것과 실제 상황에서 그렇게 행동하는 것 사이에는 적지 않은 거리가 있다.
분노가 치밀어 오르는 순간 손을 멈추는 것, 원하는 것을 거절당했을 때 감정을 견디는 것, 자존심이 상한 상황에서도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는 것은 지식만으로 가능해지지 않는다. 반복해서 연습하고, 실패하고, 다시 시도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실제 관계 안에서 다른 방식으로 반응해 보고, 그 경험이 쌓여야 새로운 행동이 조금씩 자신의 것이 된다.
여기서 우리 교육의 한 공백이 보인다. 국어나 수학, 영어가 부족하면 보충수업을 한다. 학습 수준에 따라 추가적인 교육도 제공한다. 그렇다면 감정조절과 관계능력에서 어려움을 겪는 아이에게는 그에 맞는 보충교육이 있는가. 누가 그 아이가 어느 지점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지를 살펴보고, 필요한 단계부터 다시 익히게 하며, 실제 행동으로 이어질 때까지 충분히 연습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가.
이 모든 교육을 담임교사가 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상과 현실은 다르다. 학교 안에서 문제가 발생하면 결국 가장 가까이에 있는 담임교사가 그 공백을 떠안는 경우가 많다. 수업과 학급 운영을 책임지는 동시에 누군가에게는 감정조절을, 누군가에게는 관계의 경계를,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갈등을 해결하는 방법까지 반복해서 가르쳐야 한다. 그 역할을 교사 개인의 역량과 헌신에만 기대는 데에는 분명한 한계가 있다.
폭력을 멈추는 것은 사건에 대한 즉각적인 대응이다. 다시 폭력이 일어나지 않도록 돕는 일은 그 이후의 교육이다.
처벌은 필요하다. 하지만 처벌 이후에도 남는 일이 있다. 맞은 사람의 상처를 지키는 일과, 때린 아이가 다른 방식으로 관계 맺는 법을 익히도록 돕는 일이다.
이제 필요한 것은 어쩌면 그 둘 사이의 빈자리를 들여다보는 일인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아이에게 필요한 관계와 행동의 훈련은 지금 어디에서 이루어지고 있을까.
안수현 위원 | 법무부 소년보호위원 / 단단말랑 상담센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