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희롱·성폭력 피해를 어렵게 신고했는데 돌아온 말이 “그 정도 일로 꼭 신고까지 해야 했느냐” 라고 한다면 어떤 마음일까. 조사 과정에서 신고 사실이 퍼지고 회식과 단체대화방에서 배제되거나, 신고 이후 업무·인사에서 불리한 대우까지 받는다면 피해는 사건 발생 당시로 끝나지 않는다.
바로 ‘2차피해’ 문제다. 성평등가족부가 여성폭력 사건 이후 발생할 수 있는 2차피해 예방을 알리는 집중 홍보에 나선 배경도 여기에 있다. 핵심은 신고 창구를 마련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피해자가 신고·조사·회복 과정에서 다시 피해를 입지 않도록 조직과 주변 사람이 무엇을 해야 하는가에 있다.
2차피해는 ‘상처 주는 말’보다 범위가 넓다
2차피해를 피해자에게 모욕적인 말을 하는 정도로 이해해서는 대응하기 어렵다.
「여성폭력방지기본법」은 여성폭력 피해자가 수사·재판·보호·진료·언론보도 등 사건 처리와 회복 과정에서 입는 정신적·신체적·경제적 피해와 함께 집단 따돌림, 폭행·폭언, 온라인상 정신적·신체적 손상을 가져오는 행위 등을 2차피해의 범위에 두고 있다. 사용자로부터 받는 부당한 인사조치와 불이익도 포함된다.
정부가 2021년 마련한 ‘여성폭력 2차 피해 방지 지침 표준안’ 역시 국가와 지방자치단체 등이 기관 내 방지지침과 교육 등 필요한 대책을 마련하도록 하는 법적 책무를 구체화한 것이다.
따라서 사건 발생 이후에는 행위자뿐 아니라 기관장과 관리자, 인사·조사 담당자, 동료 등 사건을 알고 처리하는 사람들의 대응도 중요해진다. 신고자의 신원을 불필요하게 공유하거나 사건 내용을 소문으로 옮기는 행위, 피해자를 탓하거나 신고를 후회하게 만드는 조직 분위기는 회복을 가로막을 수 있다.
“왜 이제 말했어?”…판단보다 먼저 필요한 것은 경청과 비밀유지
2차피해는 일상적인 말에서 시작되기도 한다.
“왜 바로 신고하지 않았느냐”, “원래 그런 사람이 아닌데”, “둘이 친하지 않았느냐”는 식의 반응은 사실 확인을 위한 질문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피해 책임을 신고자에게 돌리거나 피해 경험을 의심하는 방식으로 작동한다면 피해자는 자신의 경험을 다시 해명하고 증명해야 하는 부담을 떠안게 된다.
사건을 처음 접한 관리자나 동료에게 필요한 것은 성급하게 누구의 말이 맞는지 결론 내리는 일이 아니다. 필요한 범위에서 이야기를 듣고 비밀을 지키며, 기관의 공식적인 상담·신고·조사 절차로 연결하는 것이 우선이다.
동시에 피신고인에 대해서도 조사 결과가 나오기 전 사실관계가 확정된 것처럼 단정해서는 안 된다. 피해자의 추가 피해를 막는 것과 피신고인의 방어권을 보장하는 것은 양자택일의 문제가 아니다. 공정한 절차와 피해자 보호가 함께 작동해야 한다.
조사가 끝났다고 보호도 끝나는 것은 아니다
기관이 특히 점검해야 할 지점은 사건 처리 과정과 신고 이후의 근무환경이다.
같은 내용을 필요 이상으로 반복 진술하게 하거나 사건과 직접 관련 없는 사생활까지 묻는 조사, 불필요한 대면은 피해자의 부담을 키울 수 있다. 조직의 평판이나 업무상 편의를 이유로 사건을 조용히 마무리하도록 압박해서도 안 된다.
분리 조치도 ‘누구를 이동시켰는가’만 볼 일이 아니다. 피해자 보호를 이유로 본인이 원하지 않는 부서로 피해자를 일방적으로 옮긴다면 결과적으로 신고한 사람이 불이익을 감수하는 상황이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더 눈여겨봐야 할 것은 공식 인사발령 밖에서 발생하는 변화다. 신고 뒤 주요 업무에서 빠지거나 회의에서 제외되고, 업무에 필요한 정보를 전달받지 못하는 방식으로 근무환경이 악화될 수도 있다.
피플소사이어티가 주목하는 지점은 여기다. 사건 대응의 종료 시점을 ‘조사결과 통보일’로만 봐서는 피해자의 실제 회복 여부를 확인하기 어렵다. 기관은 신고 이후 업무배치와 평가, 조직 내 관계에서 새로운 불이익이나 배제가 발생하고 있지 않은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국민이 가장 필요하다고 꼽은 정책도 ‘2차피해 방지’
2차피해 예방의 필요성은 정부 실태조사에서도 확인됐다.
성평등가족부가 지난 6월 23일 발표한 「2025년 성폭력 안전실태조사」에서 성폭력 문제 해결을 위해 필요한 정책을 1~3순위로 조사한 결과 ‘피해자의 2차 피해 방지를 위한 정책 마련’이 45.7%로 가장 높았다. ‘안전한 생활환경 조성’은 33.0%, ‘피해자 지원 서비스 강화’는 32.2%였다.
특히 피해 경험자가 경찰에 신고한 비율은 1.8%로 조사됐다. 신고하지 않은 이유로는 ‘피해가 심각하지 않아서’ 73.0%, ‘확실한 증거가 없어서’ 29.2%, ‘신고해도 소용없을 것 같아서’ 28.7% 등이 제시됐다.
이 수치는 신고제도가 존재하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다는 점을 보여준다. 신고한 뒤 신원이 알려지거나 비난받고 조직에서 불이익을 받을 것이라는 두려움이 남아 있다면 피해자가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실질적인 환경은 완성됐다고 보기 어렵다.
기관·동료·언론이 확인해야 할 것은 ‘신고 이후’다
2차피해 예방은 조사 담당자만의 업무가 아니다.
기관장은 사건 처리 체계와 보호조치가 실제로 작동하는지 살펴야 하고, 관리자와 인사담당자는 신고 이후 업무·평가·배치에서 불이익이 생기지 않는지 점검해야 한다. 동료는 사건의 진실을 대신 판단하거나 소문을 전달하기보다 불필요하게 묻고 퍼뜨리고 평가하는 행동을 경계할 필요가 있다.
언론도 예외가 아니다. 피해자를 특정할 수 있는 정보를 과도하게 제공하거나 사건과 무관한 사생활을 부각하고, 피해 내용을 선정적으로 묘사하면 보도 자체가 추가 피해의 통로가 될 수 있다. 온라인 기사는 검색과 공유를 통해 오랫동안 남는다는 점에서 피해자의 신원과 사생활 보호에 더욱 신중해야 한다.
결국 여성폭력 사건 대응의 수준은 신고 건수나 처벌 결과만으로 판단하기 어렵다. 신고한 사람이 비난받지 않는지, 조사 과정에서 존중받는지, 신고를 이유로 불이익을 받지 않는지, 다시 안전하게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는지를 함께 봐야 한다.
사건 발생 이후의 조직문화는 또 다른 피해를 만들 수도, 피해자의 회복을 지지하는 안전망이 될 수도 있다. 기관과 사업장이 지금 확인해야 할 것도 분명하다. 내부 2차피해 방지지침이 실제로 마련돼 있는지, 관리자와 조사 담당자가 절차를 알고 있는지, 신고 이후 피해자의 근무환경을 점검하는 체계가 작동하는지 살펴야 한다. 2차피해 예방은 피해자에게 주는 특별한 배려가 아니라 신고 때문에 또 다른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하는 조직의 기본적인 책임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