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스포루스 해협의 푸른 물결 너머로 이스탄불의 황금빛 돔들이 반짝인다. 수백 년간 세상을 호령했던 오스만 제국의 영광이 저 너머에 여전히 숨 쉬는 듯하다. 오스만 제국의 대부분 역사를 보낸, 톱카프 궁전의 화려한 타일과 정교한 문양들을 보고 있노라면, 그 찬란했던 제국의 위용에 압도당하기 십상이다.
하지만, 찬란한 빛일수록 그 그림자는 더 짙고 어두운 법이다. 우리는 오늘, 그 황금빛 제국의 가장 깊고 비릿한 어둠, 권력이라는 괴물이 집어삼킨 왕자들의 이야기를 듣게 될 것이다.
역사의 페이지를 넘기다 보면 유독 손끝이 떨려오는 대목이 있다. 오스만 제국의 술탄 계승 과정이 바로 그렇다. "새로운 술탄이 즉위하면, 세상의 질서를 위해 남은 왕제들을 모두 죽여라." 이것은 야사가 아니다. 제국의 법전, '카눈나메(Kanunname)'에 제7대 술탄, 메메트 2세가 새겨넣은 소름 끼치는 조항이다.
잠시 눈을 감고 그날의 톱카프 궁전으로 들어가 보자. 선대 술탄의 서거를 알리는 대포 소리가 도시에 울려 퍼진다. 그 소리는 누군가에게는 새로운 시대의 개막을 알리는 팡파르지만, 궁전 깊숙한 곳, '카페스(Kafes, 새장)'라 불리는 구역에 갇혀 있던 다른 왕자들에게는 저승사자의 발소리와 같았다.
새로운 술탄이 옥좌에 앉는 순간, 그의 형제들은 존재 자체가 제국에 대한 위협이 된다. 그들은 어제의 동지였고, 함께 뛰어놀던 형제였으나, 오늘부터는 잠재적인 반역자다. 권력은 나눌 수 없기에, 유일한 권력자가 되기 위해 나머지는 사라져야만 했다.
이 잔혹한 전통은 왜 생겨났을까? 단순히 술탄이 잔인해서였을까? 아니다. 이것은 역설적이게도 '제국의 평화'를 위한 고육지책이었다. 오스만 초기, 명확한 장자 상속 원칙이 없었을 때, 술탄이 죽으면 아들들은 각자의 지방 세력을 등에 업고 피비린내 나는 내전을 벌였다. 이 과정에서 국력은 쇠퇴했고 백성들은 고통받았다. 콘스탄티노플을 정복한 위대한 군주 메메트 2세는 결단했다. "국가의 안녕을 위해서라면, 형제를 죽이는 것은 허용된다." 그는 내전으로 수만 명이 죽는 것보다, 왕자 몇 명이 희생되는 것이 제국 전체를 위해 낫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것이 그들이 말하는 '니잠 이 알렘(Nizam-ı Âlem)', 즉 '세상의 질서'였다.
그렇다면, 그 실행은 어떻게 이루어졌을까. 이 대목에서 우리는 인간의 잔혹함과 그 속에 숨겨진 기묘한 예의에 전율을 느낀다. 오스만 왕가에게는 원칙이 있었다. '왕족의 고귀한 피를 땅에 흘리게 해서는 안 된다.' 그래서 그들은 칼이나 독을 쓰지 않았다.
새 술탄의 즉위식이 끝나고 축제가 한창일 때, 어둠 속에서 조용히 움직이는 자들이 있었다. 주로 농아(聾啞)들로 구성된, 입도 뻥긋 못하고 소리도 듣지 못하는 사형 집행인들이다. 그들은 비단 끈이나 활시위를 들고 왕자들의 방으로 스며든다. 비명조차 새어 나오지 않는 조용한 죽음. 그들은 형제의 목을 졸라 '고귀한 피'를 흘리지 않고 숨을 거두게 했다.
가장 끔찍했던 밤은 아마도 1595년, 메메트 3세가 즉위하던 날이었을 것이다. 그날 밤, 톱카프 궁전에서는 무려 열아홉 명의 관이 실려 나갔다. 그중에는 젖먹이 아기들도 있었다. 열아홉 명의 형제가 하룻밤 사이에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것이다. 그날 밤 궁전의 공기는 얼마나 무거웠을까. 하렘의 여인들이 토해내는, 소리 죽인 오열이 복도를 가득 메웠을 것이다.
옥좌에 앉아 그 보고를 받는 새 술탄의 마음을 상상해 보라. 그는 과연 기뻤을까? 아니면, 자기 손에 묻은 보이지 않는 피 냄새에 구역질했을까? 권력의 정점에 선다는 것은, 어쩌면 가장 인간적인 감정들을 스스로 도려내는 과정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인간의 영혼이 어찌 이토록 잔혹한 짐을 영원히 견딜 수 있겠는가. 이 피비린내 나는 전통도 결국 한계에 부딪힌다. 1603년, 13살의 어린 나이로 즉위한 아흐메드 1세는 차마 자신의 어린 동생 무스타파를 죽일 수 없었다. 그는 결단을 내린다. 죽이는 대신, 가두기로.
그렇게 '카페스(Kafes, 황금 감옥)'의 시대가 열렸다. 그 후로 왕자들은 죽지 않았다. 대신, 그들은 하렘의 깊숙하고 고립된 구역에 갇혀, 철저히 외부와 단절된 채 살아가야 했다. 언제 술탄이 될지 모른다는, 혹은, 언제 죽을지 모른다는 공포 속에서 그들은 시들어갔다. 수십 년을 감옥 같은 방에서 보냈다가, 풀려나 술탄이 된들, 온전한 정신일 리 만무했다. 육체의 죽음 대신 영혼의 죽음을 택한 셈이다. 어떤 이는 이것이 더 잔혹한 형벌이었다고 말한다.

오스만 제국의 이 비극적인 역사는 우리에게 권력의 속성에 대해 묵직한 질문을 던진다. 거대한 제국을 유지하기 위해 치러야 했던 '세상의 질서'라는 명분 아래 희생된 그 수많은 영혼. 황금빛 옥좌는 그들의 뼈 위에 세워진 것이나 다름없었다.
지금 이스탄불의 톱카프 궁전은 박물관이 되어 전 세계의 관광객을 맞이한다. 사람들은 보석으로 치장된 단검과 화려한 의복에 감탄한다. 하지만, 우리는 그 화려함의 이면에 서려 있는, 끈적하고 어두운 욕망과 비극의 그림자를 볼 수 있어야 한다.
권력이란 무엇인가? 인간은 왜 그토록 권력을 갈망하며, 그것을 얻기 위해 어디까지 잔혹해질 수 있는가? 오스만 제국의 형제 살해 전통은 지나간 역사의 한 페이지가 아니라, 인간 내면에 잠재된 권력욕의 가장 극단적인 거울이다.
오스만제국의 온 역사를 몸으로 체험한 채, 그 모든 걸 속으로 삭이고 흐르는 보스포루스 바닷바람이 매섭다. 지금도 그 아름다운 풍경 속에 묻힌, 비단 끈에 목 졸려 죽어간 왕자들의 마지막 숨결이 느껴지는 듯하다. 그들의 영혼이 오늘 밤, 우리에게 권력의 허망함에 대해 조용히 속삭이는 것만 같다. 역사는 그렇게, 피로 쓰인 교훈을 우리에게 남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