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6년 7월 8일 아침, 앙카라에 모인 나토 32개국 정상들은 밤사이 날아든 소식으로 하루를 시작했다. 미국이 위태로운 휴전을 깨고 이란을 다시 폭격했다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란 정권과의 합의는 끝났다고 했고, 마르크 뤼터 나토 사무총장은 최근 몇 달 동안 미국이 유럽 기지에서 5,000회 넘게 출격했다고 밝혔다. 전쟁의 한복판에서 동맹의 잔치를 연 나라, 그 주인이 튀르키예였다.
그로부터 석 달 뒤, 이번에는 이스라엘에서 뜻밖의 목소리가 나왔다. 텔아비브의 대표적 안보 연구소가 튀르키예의 시리아 영향력은 군사력으로 걷어 낼 수 없다는 보고서를 낸 것이다. 불과 두 달 전 시리아에 들어선 튀르키예 진지를 폭격하던 나라의 싱크탱크였다. 칼을 먼저 꺼냈던 쪽이 칼로는 안 된다고 인정한 셈이다.
폭격하던 쪽이 인정하고, 동맹의 정상들이 찾아온다. 우리는 이 두 장면을 나란히 놓고 묻는다. 튀르키예는 지금 중동과 유럽에서 어떤 자리에 서 있으며, 앞으로 어디까지 영향력을 넓힐 것인가.
해협을 쥔 나라
튀르키예의 힘은 먼저 지도에서 나온다. 흑해에서 가장 긴 해안선을 가졌고, 흑해와 지중해를 잇는 보스포루스·다르다넬스 해협을 쥐고 있다. 1936년 몽트뢰 협약은 이 해협의 군함 통행 권한을 튀르키예에 맡겼다. 2022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자 앙카라는 이 협약을 근거로 교전국 군함에 해협을 닫았고, 이어 모든 나라의 군함 통행을 막았다. 러시아의 증원은 막혔지만 나토 군함도 들어가지 못했다. 유럽외교협의회는 튀르키예가 이 협약을 주권의 핵심으로 여기는 만큼 유럽이 이를 건드려서는 안 된다고 조언한다.
지도만이 아니다. 튀르키예는 1952년부터 나토 회원국이고, 동맹 안에서 손꼽히는 대규모 병력을 거느린다. 동시에 아랍 세계와 이란, 캅카스와 발칸을 모두 이웃으로 둔다. 오스만 제국이 남긴 기억은 이 넓은 이웃들에게 친근함과 경계심을 동시에 불러일으킨다. 그래서 튀르키예의 영향력은 늘 두 얼굴로 다가온다. 다리가 되기도 하고, 벽이 되기도 한다.
1923년 공화국을 세운 뒤 한 세기 동안 튀르키예는 서쪽을 향해 걸었다. 유럽의 여러 기구에 가입했고 오랫동안 유럽연합의 문을 두드렸다. 그러나 그 문은 쉽게 열리지 않았고, 21세기 들어 앙카라의 시선은 다시 남쪽과 동쪽으로 넓어졌다. 서쪽을 버린 것이 아니라 사방을 동시에 바라보게 된 것이다.
시리아, 지울 수 없는 현실
2024년 12월 아사드 정권이 무너진 뒤, 시리아는 튀르키예 영향력의 가장 뚜렷한 무대가 됐다. 앙카라는 새 다마스쿠스 정부의 군 재건을 도왔고, 북부에 레이더와 방공망을 깔았다. 이스라엘은 이를 위협으로 보았다. 2026년 8월 17일 이스라엘군은 시리아 아부 알두후르 기지에 들어서던 튀르키예 진지를 타격했고, 이는 미국·튀르키예·시리아와 이스라엘 사이의 외교 분쟁으로 번졌다.
그런데 2026년 10월 13일 예루살렘포스트가 소개한 이스라엘 국가안보연구소(INSS)의 보고서는 결이 달랐다. 아말 하예크와 카르미트 발렌시 연구원은 시리아 안의 튀르키예 존재가 이미 굳어진 현실이며, 이스라엘의 과제는 이를 없애는 것이 아니라 가두고 균형을 맞추는 일이라고 썼다. 북부 시리아의 튀르키예 레이더나 방공 체계는 튀르키예 남부의 기존 기지와 실질적으로 다르지 않으니 무력을 쓸 레드라인으로 삼지 말라고 했다. 동지중해에서 튀르키예 해군이 본래 우위에 있다는 점도 인정했다. 오히려 시리아의 군 재건을 통째로 반대하면 다마스쿠스를 앙카라 품으로 더 밀어 넣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스라엘 연구진이 내놓은 처방은 넓고 모호한 금지선 대신 좁고 분명한 레드라인을 긋고, 군사적 억지와 다마스쿠스와의 대화를 병행하라는 것이다. 시리아 정부를 돕는 기술 지원이나 훈련과, 튀르키예가 독자적으로 운영하는 지휘·통제 기반 시설을 구분하라는 주문도 덧붙였다. 무력만 믿고 작전 가치가 낮은 표적을 때리는 방식은 이스라엘이 시리아를 흔들려 한다는 인식만 키운다고 연구진은 지적했다.
이 보고서는 튀르키예의 한계도 짚고 있다. 앙카라와 다마스쿠스 사이에도 긴장이 있고, 시리아 정부는 자국 군대에 대한 튀르키예의 입김을 줄여 가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튀르키예는 8월부터 작은 전초 기지 일부를 줄이고 권한을 시리아 국가 기관에 넘기고 있다. 영향력은 크지만 무한하지 않다. 연구진은 다마스쿠스가 사우디, 아랍에미리트, 미국, 유럽과도 관계를 넓히고 있다는 점을 이스라엘이 계산에 넣어야 한다고 했다. 시리아의 새 정부는 한 후견인에게 모든 것을 맡기지 않으려 한다. 튀르키예가 시리아에서 얻은 것은 독점이 아니라 빠질 수 없는 지분이다.
이란 전쟁이 연 문
2월 28일 시작된 미국·이스라엘과 이란의 전쟁은 튀르키예에게 위기이자 기회였다. 채텀하우스의 갈립 달라이 선임연구원은 6월 분석에서 앙카라의 최악의 시나리오를 이란 국가의 붕괴로 꼽았다. 대리전과 난민 행렬, 국가 해체, 쿠르드 문제가 한꺼번에 국경으로 밀려들기 때문이다. 하칸 피단 외무장관은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에 새 통행 규칙을 세우려는 데 맞서 전쟁 전 상태로 돌아가야 한다고 요구했다. 그 규칙이 분쟁의 새 불씨가 될 것이라는 경고였다. 앙카라는 이란의 이런 움직임이 걸프 국가들을 미국과 이스라엘 쪽으로 더 밀어붙일 것이라고 본다. 이웃이 무너지는 것도, 이웃이 바다를 쥐고 흔드는 것도 바라지 않는 나라의 고민이 거기 있다.
달라이는 기회도 보았다. 걸프 국가들이 미국에 기대면서도 안보 협력선을 넓히려 할 것이고, 방위 산업이 커 가는 데다 트럼프 대통령과 관계가 좋은 튀르키예가 그 틈을 파고들 수 있다는 것이다. 무기를 파는 데 그치지 않고 공동 생산과 기술 이전까지 가능하다고 그는 내다봤다. 이라크를 관통하는 '개발 도로'와 카스피해를 건너는 '중간 회랑'에서 튀르키예는 이미 길목이다.
달라이는 개발 도로에 시리아를 잇고 중간 회랑에 아르메니아를 끌어들이면 길도 짧아지고 이웃과의 화해도 앞당길 수 있다고 제안했다. 튀르키예와 시리아, 요르단, 사우디를 잇는 히자즈 철도 복원 구상도 관심을 끌고 있다. 오스만 시대 순례자들이 메디나로 가던 그 철길이 한 세기 만에 다시 지도 위에 오르고 있다. 걸프협력회의와의 자유무역 협상이 마무리되면 걸프를 떠나는 자본이 이스탄불로 흘러들 수도 있다. 튀르키예·파키스탄·사우디·이집트 네 나라가 모이는 틀도 생겼다. 달라이는 이를 조약이라기보다 하나의 무대라고 표현했다.
이스라엘의 가자 지구에서도 앙카라는 중재자의 자리에 앉았다. 7월 31일 하마스가 받아들인 15개 항 로드맵은 이집트, 카타르, 미국, 튀르키예 네 나라가 다듬은 것이다. 이스라엘과는 날을 세우면서도 이스라엘이 상대해야 하는 협상 테이블에는 빠지지 않는다. 튀르키예 외교의 독특한 방식이다. 하마스와 말이 통하는 몇 안 되는 나라라는 사실이 앙카라를 워싱턴에도 필요한 상대로 만든다. 적대와 대화를 한 손에 쥐는 셈법이다.
유럽의 문 앞에서
유럽 쪽 문은 더 무겁다. 러시아의 위협과 미국의 이탈 가능성 앞에서 유럽은 스스로 국방을 다시 짜고 있다.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대통령은 6월 29일 이스탄불에서 나토 32개국 의원들을 만나 튀르키예가 유럽의 모든 방위·안보 구조에 들어가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튀르키예의 기여가 없어서는 안 될 것인데도 때로 간과된다고 했다.
그 상징이 유럽연합의 1,500억 유로 규모 방위 계획 '세이프(SAFE)'다. 튀르키예는 자격이 있지만, 참여하려면 27개 회원국 모두의 동의가 필요하다. 그리스는 거부권을 쓰겠다고 경고했다. 튀르키예의 에르도안 대통령은 동맹국 사이의 방위 산업 교역 장벽을 걷어 내고 부담을 공정하게 나누자고도 요구했다. 유럽 바깥의 나토 회원국을 유럽의 방위 계획에서 빼지 말라는 경고였다. 그리스와는 10월 9일 크레타섬 하니아에서 군사 신뢰 구축 회의를 열어 2027년 교류 계획까지 논의했지만, 에게해와 키프로스, 동지중해 전력 케이블을 둘러싼 갈등은 여전하다.
그래도 유럽은 튀르키예 없이 흑해를 말하기 어렵다. 앙카라는 서방의 지원이 본격화하기 전 우크라이나에 바이락타르 TB2 드론을 보냈고, 우크라이나를 위해 밀겜 초계함을 짓고 있다. 2022년에는 유엔과 곡물 수출 협정을 중재했고, 2024년 1월에는 루마니아·불가리아와 흑해 기뢰 대응 기동대를 꾸렸다. 튀르키예 드론 업체 바이카르는 2024년 12월 이탈리아의 피아조 에어로스페이스를 사들였다. 유럽외교협의회 보고서에 따르면 튀르키예는 흑해에서 나토와 우크라이나가 쓰는 상황 정보의 최대 67%를 제공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2022년 이스탄불 평화 협상과 2024년 4월 포로 교환도 앙카라가 마련한 자리였다. 2023년 한 튀르키예 관리가 연구진에게 남긴 말은 짧다. 우리는 이미 그곳에 있고, 우리가 바로 나토 나라가 아니냐는 것이다. 이 협의회는 흑해 안보 협력이 유럽과 튀르키예의 더 넓은 방위 동반자 관계로 가는 첫걸음이 될 수 있다고 본다.
앙카라 정상회의 선언문도 그 무게를 비춘다. 동맹은 올해 우크라이나에 700억 유로의 군사 지원을 약속했고, 이란은 결코 핵무기를 가져서는 안 되며 호르무즈 해협의 항행 자유를 존중해야 한다고 못 박았다. 유럽의 전쟁과 중동의 전쟁이 한 문서에 나란히 적혔고, 그 문서에 서명한 도시가 앙카라였다.
다리인가 벽인가
이 모든 것을 모아 보면 하나의 그림이 그려진다. 튀르키예는 어느 한 진영에 완전히 속하지 않음으로써 모든 진영에 필요한 나라가 됐다. 나토 회원국이면서 러시아와 대화하고, 이스라엘과 부딪히면서도 가자의 협상에 앉고, 이란을 경계하면서도 이란의 붕괴를 막으려 한다. 앞으로 미국이 중동에서 발을 빼고 유럽이 자신을 스스로 지켜야 하는 시대가 온다면, 이 '사이의 나라'가 지닌 값은 더 오를 것이다.
이에 앞으로를 가를 변수는 세 가지로 보인다. ▶첫째는 이란 전쟁의 끝이다. 전쟁이 협상으로 끝나면 튀르키예는 재건과 교역의 길목으로 떠오르고, 이란이 무너지면 난민과 쿠르드 문제가 국경을 흔든다. ▶둘째는 미국의 발걸음이다. 워싱턴이 중동과 유럽에서 짐을 덜어 낼수록 그 빈자리를 메울 나라로 앙카라가 거론될 것이다. ▶셋째는 유럽의 선택이다. 유럽이 세이프 같은 방위 구조의 문을 튀르키예에 열면 흑해와 동지중해의 안보 지도가 바뀌고, 닫으면 앙카라는 다시 사방을 저울질하는 길로 돌아갈 것이다.
다만 한계도 분명하다. 그리스의 거부권은 유럽 방위 구조로 가는 문을 언제든 닫을 수 있다. 시리아에서는 다마스쿠스가 스스로 홀로 서려 하고, 이스라엘과의 충돌 위험은 사라지지 않았다. 영향력이 커질수록 그것을 견제하려는 손도 많아진다. 그래서 앞으로의 관건은 힘의 크기보다 힘을 쓰는 방식이다. 이웃을 압박하는 힘은 오래가지 못하고, 이웃이 기대는 힘은 오래 남는다. 이스라엘 연구소의 보고서가 역설적으로 보여 준 것도 그것이다. 군사력으로 밀어낼 수 없는 영향력이란, 결국 그 지역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영향력이다.
이십 년이나 튀르키예 사람들 곁에서 살며 나는 보스포루스 다리를 수없이 건넜다. 다리 위에서는 한쪽 발이 아시아에, 다른 쪽 발이 유럽에 닿는다는 여담을 자주 들었다. 다리 아래로는 흑해에서 내려온 유조선과 화물선이 쉬지 않고 지나갔다. 그 여담 속에는 자부심과 외로움이 섞여 있었다. 어디에나 속하지만, 어디에도 온전히 안기지 못하는 나라의 마음 아닐까. 유럽 사람들은 튀르키예를 중동으로 보고, 아랍 사람들은 튀르키예를 유럽으로 본다. 그 사이에서 튀르키예 사람들은 자기 자리를 스스로 만들어 왔다. 오늘 앙카라가 쥔 영향력은 그 오랜 외로움이 빚어낸 기술인지도 모른다.
다리는 양쪽 땅을 이어 주지만, 스스로는 어느 땅도 아니다. 그래서 다리는 늘 무게를 견딘다. 튀르키예가 앞으로 중동과 유럽에서 얻게 될 힘이 진영을 가르는 벽이 될지, 서로를 건너가게 하는 다리가 될지는 그 힘을 어떻게 쓰느냐에 달려 있다. 다리가 되는 일은 늘 더 무겁고 더 느리지만 그래도 사람을 살린 것은 언제나 벽이 아니라 다리였다. 중동과 유럽 사이에 선 튀르키예는, 건너가게 하는 다리가 될 것인가 아니면 가로막는 벽이 될 것인가는 이제부터 더 지켜보아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