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귀사의 재생에너지 사용 비율은 얼마입니까?"
몇 년 전만 해도 중소 제조업체 경영자들에게 낯선 질문이었다. 그런데 최근 원청이나 해외 바이어가 보내오는 협력사 평가표와 질의서에 이런 항목이 하나둘 등장하고 있다. 품질과 가격, 납기만 맞추면 되던 거래 조건에 '어떤 전기로 만들었느냐'가 새로 추가되고 있는 것이다.
| 대기업의 숙제가 협력사의 숙제로
출발점은 RE100이다. 기업이 쓰는 전력을 100% 재생에너지로 조달하겠다는 글로벌 캠페인으로, 애플·구글 같은 글로벌 기업들이 앞장서 왔다. 문제는 이들이 자사 공장만이 아니라 부품과 원료를 공급하는 협력사의 탄소 배출까지 관리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원청의 숙제가 협력사의 숙제로 내려오는 구조다.
이미 숫자로도 확인된다.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통상연구원 조사에서 국내 제조 수출기업의 16.9%가 바이어나 원청업체로부터 재생에너지 사용 확대를 요구받고 있었다. 이 가운데 41.7%는 당장 그해나 이듬해부터 재생에너지를 쓰라는 압박을 받았고, 온실가스 배출 관련 데이터 제출까지 함께 요구받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 "부족하면 입찰 제한"… 경고는 현실이 됐다
압박은 점점 구체화되고 있다. 국내 자동차 부품 중견기업들은 유럽 완성차 업체로부터 재생에너지 사용량이 부족하면 입찰 참여가 제한될 수 있다는 통보를 받고, 전력구매계약(PPA) 확보에 나서기도 했다. 대기업과 중견기업이 받은 요구는 시차를 두고 그 아래 협력사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규모가 작은 기업일수록 대응이 쉽지 않다. 재생에너지를 사오는 계약은 조건이 까다롭고 비용 부담도 크다. 이런 상황에서 공장 지붕에 직접 태양광을 설치하는 자가설비 방식은 중소기업이 스스로 재생에너지 사용 실적을 만들 수 있는 현실적인 방법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 정부 지원도 '공급망'을 향한다
정부도 협력사 지원에 나섰다. 중소벤처기업부는 원청기업과 협력사가 컨소시엄을 꾸려 탄소 감축 설비를 구축하면 기업당 최대 3억 원을 지원하는 공급망 트랙 사업을 마련했다. 에너지 절감 설비와 온실가스 모니터링 장비, 태양광 설비 등이 지원 대상에 포함된다.
다만 이런 지원 역시 원청과의 협의, 컨소시엄 구성, 사업 요건 충족 등 넘어야 할 단계가 있다. 앞선 기사에서 다룬 금융지원사업이나 설치비 보조와 어떻게 조합할지도 따져봐야 한다. 같은 공장이라도 어떤 순서로, 어떤 제도를 활용하느냐에 따라 부담과 결과가 달라진다.
| 질문을 먼저 받을 것인가, 답을 먼저 준비할 것인가
재생에너지 사용 요구는 당장 모든 협력사에 닥친 일은 아니다. 그러나 질의서를 받고 나서 준비를 시작하면, 실적을 만드는 데 걸리는 시간만큼 거래에서 불리한 자리에 서게 된다. 지붕 태양광은 설치를 결정한 뒤에도 인허가와 계통 접속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
다음 협력사 평가표에 그 질문이 들어 있다면, 지금 어떤 답을 적을 수 있을지 생각해 볼 때다. 비어 있는 공장 지붕이 앞으로의 납품 경쟁력을 좌우할 수도 있다.
※ 이 기사는 중소기업연구개발지원협회와 함께하는 기획 연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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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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