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담일보=윤정혁기자] 인공지능(AI) 투자 붐이 미국 장기금리의 새로운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 데이터센터와 반도체, 전력 인프라에 막대한 자금이 투입되면서 빅테크의 외부 자금조달이 늘고 있어서다. 이미 미국 정부의 대규모 국채 발행을 소화해야 하는 채권시장에 AI라는 새로운 자금 수요가 더해지는 모습이다.

지난 1일 미국 10년 만기 국채금리는 장중 5.342%까지 치솟으며 2002년 이후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 2일 발표된 9월 비농업 고용은 2만 9000명 증가해 시장 예상치 9만명을 크게 밑돌았다. 고용 발표 직후 10년물 금리는 5.15%대로 내려갔지만 이후 매도세가 재개되며 다시 5.28%대로 올랐다.

최근 장기금리 상승에는 높은 물가와 에너지 가격, 미국의 재정 부담과 국채 공급, 연준의 통화정책 전망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다. 여기에 AI 투자 확대가 자본 수요까지 끌어올리고 있다.
AI 투자와 장기금리를 잇는 출발점은 막대한 투자비를 어떻게 조달하느냐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9개 주요 하이퍼스케일러의 2026~2030년 누적 설비투자(CAPEX) 전망치는 4조1000억달러에 달한다. 이들 기업은 2025년에 채권시장에서 1220억달러를 조달해 전 세계 기술기업 채권 발행액의 45%를 차지했다. OECD는 AI 경쟁이 심화되면서 내부자금 의존도가 높았던 대형 기술기업들이 회사채와 사모신용 등 외부자금 활용을 늘리고 있다고 분석했다.

AI 투자와 미 국채금리를 잇는 첫 번째 경로는 ‘장기자금 수요’다.
빅테크가 장기 회사채를 더 많이 발행하면 보험사와 연기금, 채권펀드 등 투자자들은 국채와 회사채의 수익률과 위험을 비교해 자산을 배분한다. 국채와 회사채는 서로 다른 투자 대상이지만, 대규모 국채 공급이 이어지는 상황에서 기업의 장기채 발행까지 늘어나면 장기자금을 둘러싼 경쟁이 커질 수 있다. 로이터도 AI 투자를 위한 대규모 회사채 발행이 장기금리에 추가적인 상승 압력을 줄 수 있는 요인으로 짚었다.
댈러스 연방준비은행은 올해 AI 관련 투자등급 회사채 발행이 약 3000억달러에 이르면, 10년물 기준 듀레이션 공급이 약 3600억달러에 달할 것으로 추산했다. 이는 미 재무부 국채 발행이 공급하는 듀레이션의 약 8분의 1 수준이다. 사모신용으로 조달한 변동금리 자금을 금리스와프로 장기 고정금리로 바꾸는 거래도 장기금리에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봤다.
다만 현재까지 AI 관련 차입이 미국 장기금리 상승을 주도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자본시장연구원은 올해 8월까지 AI 관련 기업의 공모 달러채 2300억달러를 만기구조까지 반영해 환산한 결과, 미 10년물 기간프리미엄에 미친 영향을 약 6bp로 추정했다. AI가 기존 금리 상승 요인을 대체했다기보다 새로운 변수로 더해지고 있다는 해석에 가깝다.
문제는 앞으로의 발행 규모다. 로이터가 인용한 골드만삭스 전망에 따르면 하이퍼스케일러의 총부채 발행액은 2027년 4200억달러로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AI 관련 기업이 발행한 회사채의 평균 스프레드도 약 115bp로 전체 투자등급 회사채의 78bp보다 높았다. 대규모 채권 공급과 투자수익에 대한 불확실성이 시장 가격에 반영되고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기업 역시 높아진 조달비용을 감당하면서 투자 속도를 유지할 수 있을지가 중요해졌다.

두 번째 경로는 물가다. AI 투자는 데이터센터 건설에 필요한 전력과 건설인력, 반도체와 냉각설비, 송전망 수요도 동시에 늘린다.
리사 쿡 연준 이사는 지난 9월 28일 ‘Oakland Tech Week’ 기조연설에서 데이터센터 투자가 건설인력·에너지 등 다른 산업과 공유하는 자원 수요를 키워 물가 압력을 확대할 수 있다고 진단했다. 미 에너지부 산하 로런스버클리국립연구소는 데이터센터의 전력 사용량이 2030년 기준 시나리오에서 미국 전체 전력 사용량의 11.8%를 차지할 것으로 전망했다.
이 같은 물가 압력이 이어지면 연준의 통화정책 전망과 장기 기대인플레이션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 AI 투자가 자본과 실물자원 수요를 동시에 높이면서 장기금리와 연결되는 경로도 넓어지는 셈이다.
그러나 AI가 장기적으로 금리 상승 압력을 낮출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쿡 이사는 같은 연설에서 AI의 생산성 향상이 향후 몇 년간 완만한 물가 하락 압력으로 작용할 가능성을 제시했다. 다만 그 효과가 단기적인 물가 압력을 상쇄할 만큼 빠르게 나타나지는 않을 것으로 봤다. 결국 AI 투자와 장기금리의 관계는 자본·실물자원 수요와 생산성 향상 가운데 어느 효과가 더 빠르게 나타나는지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현재 미국 장기금리에는 재정과 국채 공급, 물가와 에너지 가격, 연준의 통화정책 등 여러 요인이 작용하고 있다. 하지만 AI 투자 규모가 수조달러로 커지고 외부자금 조달까지 빠르게 늘면서 AI 역시 장기금리와 떼어놓고 보기 어려운 변수가 되고 있다.
앞으로 주목할 것은 AI 투자 규모 자체보다 그 자금을 얼마나 빚으로 조달하는지, 늘어난 회사채를 시장이 어떤 금리로 소화하는지, 데이터센터 수요가 물가를 얼마나 자극하는지다. 여기에 생산성 향상이 비용 부담을 얼마나 빠르게 상쇄할지가 AI와 미국 장기금리의 향방을 가를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