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고, 가꾸고, 소통하는 정원”:치유정원, 고령사회 새로운 인지건강 공간으로 주목

24절기 따라 걷는 240m 산책로:자연 속에서 만나는 오감 경험

흙을 만지고 꽃을 가꾸다:원예활동과 예술이 만나는 치유정원

혼자 걷는 정원에서 함께 머무는 정원으로:고령사회 생활 인프라의 가능성

ChatGPT 이미지 걷고,가꾸고,소통하는 정

정원이 달라지고 있다. 꽃과 나무를 감상하는 공간을 넘어 걷고, 식물을 가꾸고, 이웃과 이야기를 나누며 일상 속 활동을 이어가는 생활공간으로 그 역할이 확장되고 있다.

 

특히 고령화가 빠르게 진행되면서 고령자의 신체활동과 정서적 교류, 인지건강을 고려한 ‘치유정원’이 새로운 관심 대상으로 떠오르고 있다.

 

치유정원은 의료기관의 치료를 대신하는 시설이 아니다. 자연환경과 정원활동을 통해 신체적·정서적·사회적 활동을 지원하는 공간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서울 금천구 시흥동에 조성된 ‘100세 정원’은 국내 인지건강형 정원의 사례로 주목할 만하다.

 

서울시는 2019년 청담종합사회복지관 내 약 885㎡ 규모의 공간에 100세 정원을 조성했다. 당시 인지건강디자인 사업의 하나로 추진된 이 정원은 고령자의 일상적인 활동을 돕고, 안전한 이동과 감각 경험, 이웃과의 소통을 고려한 공간으로 기획됐다.

 

1. 24절기 따라 걷는 240m 산책로:자연 속에서 만나는 오감 경험

 

100세 정원의 주요 특징은 약 240m 길이의 산책로다. 24절기의 계절적 변화를 공간에 담아 다양한 꽃과 나무를 감상하며 걸을 수 있도록 구성했다.

 

계절에 따라 달라지는 식물의 모습은 정원을 찾는 사람들에게 자연의 변화를 직접 경험할 기회를 제공한다. 봄에 피어나는 꽃과 여름의 짙은 녹음, 가을의 단풍과 겨울의 나뭇가지는 계절마다 서로 다른 풍경을 만들어낸다.

 

이러한 환경은 단순한 시각적 감상에 그치지 않는다. 식물의 향기를 맡고 잎과 꽃의 형태를 관찰하며 자연의 변화를 느끼는 과정은 다양한 감각을 활용하는 일상적인 경험으로 이어진다.

 

산책로 곳곳에는 뇌와 시력, 상체와 하체, 균형 등을 고려한 운동기구도 배치됐다. 걷기와 함께 가벼운 신체활동을 할 수 있도록 공간을 구성한 것이다.

 

특히 고령자에게는 이동 동선과 휴식 공간의 배치가 중요하다. 무리하지 않고 걸을 수 있는 길, 잠시 쉬어 갈 수 있는 장소, 주변을 살피며 이동할 수 있는 환경은 정원을 보다 편안하게 이용하는 데 도움이 된다.

 

정원 산책은 특별한 장비나 복잡한 준비 없이 시작할 수 있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다. 가까운 정원을 천천히 걷고, 계절의 변화를 살피는 작은 활동이 일상의 새로운 습관으로 자리 잡을 수 있기 때문이다.

 

2. 흙을 만지고 꽃을 가꾸다:원예활동과 예술이 만나는 치유정원

 

치유정원의 가치는 자연을 바라보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직접 식물을 심고 가꾸는 참여형 활동은 정원을 이용하는 사람에게 또 다른 경험을 제공한다.

 

100세 정원에는 어르신들이 직접 식물을 기를 수 있는 화단과 원예치료 교실이 마련됐다. 흙을 만지고 씨앗을 심으며 식물에 물을 주는 과정은 일상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활동이면서도 지속적인 관심과 관찰을 필요로 한다.

 

식물이 자라는 모습을 지켜보는 일은 기다림과 성취감을 경험하는 기회가 될 수 있다. 함께 식물을 심고 가꾸는 과정에서는 자연스럽게 대화가 오가고, 활동을 함께하는 사람들 사이에 교류가 형성될 가능성도 있다.

 

정원 안에 마련된 예술 공간도 눈길을 끈다.

 

허윤희 작가의 ‘나뭇잎 일기’ 작품 100점으로 구성된 갤러리와 이요안나 작가의 ‘꽃보라 갤러리’는 식물과 예술을 함께 경험할 수 있도록 기획된 공간이다.

 

나뭇잎과 꽃을 소재로 한 예술작품은 자연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선을 제공한다. 정원을 걷다가 작품을 감상하고, 마음에 드는 풍경 앞에서 잠시 머무르는 경험은 정원 이용의 즐거움을 더할 수 있다.

 

이처럼 치유정원은 산책과 운동, 원예활동, 예술 감상, 휴식이 서로 연결되는 복합적인 생활공간이다. 정원을 단순히 꾸미는 데서 나아가 이용자가 직접 참여하고 머무를 수 있도록 설계하는 것이 중요한 특징이다.

 

3. 혼자 걷는 정원에서 함께 머무는 정원으로:고령사회 생활 인프라의 가능성

 

고령사회에서 치유정원이 주목받는 또 다른 이유는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는 공간으로 활용될 수 있다는 점이다.

 

100세 정원에는 산책 중 휴식을 취하거나 다른 이용자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휴게·소통 공간이 마련됐다. 벤치에 앉아 이웃과 대화를 나누고, 함께 식물을 가꾸거나 원예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러운 사회적 교류가 이루어질 수 있다.

 

이는 고령자의 생활환경을 바라보는 관점에서도 의미가 있다. 건강한 노년을 위해서는 의료서비스뿐 아니라 일상에서 몸을 움직이고, 외부활동을 지속하며, 다른 사람과 관계를 이어갈 수 있는 환경도 중요하기 때문이다.

 

특히 자신이 오랫동안 살아온 지역에서 익숙한 생활을 이어가는 ‘에이징 인 커뮤니티(Aging in Community)’ 개념은 생활권 정원의 역할을 생각하게 한다.

 

집 가까운 곳에 안전하게 걸을 수 있는 길과 편안하게 쉴 수 있는 장소, 직접 참여할 수 있는 원예활동 공간이 있다면 정원은 특별한 날에만 찾는 시설이 아니라 일상적으로 이용하는 생활공간이 될 수 있다.

 

다만 정원 이용이 치매를 예방하거나 치료한다고 단정해서는 안 된다. 정원과 자연환경이 신체활동과 사회적 교류, 정서적 안정에 긍정적인 환경을 제공할 가능성은 있지만, 그 효과는 개인의 건강 상태와 이용 방식 등에 따라 다를 수 있다.

따라서 치유정원의 가치는 특정 질환에 대한 치료 효과를 보장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고령자가 일상 속에서 활동하고 자연을 접하며 사람들과 교류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데서 찾아야 한다.

 

앞으로 치유정원은 복지시설과 병원, 요양시설, 공원, 주거지역 등 다양한 공간으로 확장될 가능성이 있다. 이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화려한 시설보다 실제 이용자의 특성을 고려한 설계다. 안전한 보행로와 충분한 휴식 공간, 계절에 따른 식물 구성, 접근성, 지속적인 관리가 함께 고려돼야 한다.

 

서울 금천구 100세 정원이 보여주는 것은 정원이 단순한 녹지공간을 넘어 사람들의 일상에 참여하는 공간으로 변화할 수 있다는 가능성이다.

 

꽃 한 송이를 발견하기 위해 천천히 걷고, 작은 화단에 식물을 심고, 벤치에 앉아 이웃과 이야기를 나누는 일. 이처럼 평범한 활동이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공간이야말로 고령사회에서 치유정원이 지향할 수 있는 모습이다.

 

치유정원의 미래는 거창한 시설의 규모보다 정원을 찾는 사람들이 얼마나 편안하게 머물고, 얼마나 자주 자연과 만날 수 있는지에 달려 있다. 정원이 일상 가까이 다가올수록 자연과 사람, 그리고 지역사회를 연결하는 생활 속 녹색 인프라로서의 역할도 더욱 주목받을 것으로 보인다.

 

작성 2026.10.02 07:38 수정 2026.10.02 07:38

RSS피드 기사제공처 : 치유정원신문 / 등록기자: 김헌수 무단 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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