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 도박, 법이 방치했다

부천원미서, 자진신고 청소년 면담서 인터넷은행 거래 실태 확인

민법 제5조 ‘법정대리인 동의’ 원칙의 사각지대 지적

금감원·인터넷은행 3사에 계좌 개설·거래 알림 개선 제안

부천원미경찰서 전경. 사진=부천원미서 제공

 

자녀가 온라인 도박에 손을 댄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된 보호자들이 가장 먼저 부딪힌 벽은 계좌였다. 자녀 명의 인터넷은행 계좌에서 돈이 오간 흔적을 확인하고 싶어도, 거래내역을 들여다볼 현실적인 방법이 마땅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경기남부경찰청 부천원미경찰서(경무관 김형률)는 2025년부터 2026년 8월 31일까지 청소년 도박 자진신고 제도를 운영하면서 인터넷은행 계좌가 청소년 도박자금의 주요 거래 통로로 이용되고 있는 사실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경찰이 자진신고 청소년들을 면담한 결과, 상당수 미성년자가 보호자의 인지나 동의 없이 개설된 계좌를 이용해 도박자금을 주고받은 것으로 파악됐다. 보호자가 자녀의 도박 사실을 알아차린 뒤에도 계좌 거래내역을 확인하기 어려워 도박 규모나 입출금 흐름을 파악하지 못하는 사례가 이어졌다.

 

부천원미서는 이 문제를 단순한 계좌 관리 부주의나 부모의 관심 부족으로 보지 않았다. 미성년자를 보호하기 위해 마련된 법 규정과 비대면 금융서비스의 운영 방식이 서로 다른 방향으로 작동하면서 보호자의 개입을 막는 구조가 만들어졌다는 것이 경찰의 판단이다.

 

경찰은 문제의 실태를 확인하기 위해 학부모 간담회를 열고 보호자들이 자녀 계좌를 확인하는 과정에서 겪는 어려움을 직접 들었다. 간담회에 참석한 보호자들은 자녀가 어떤 금융기관의 계좌를 이용하는지조차 뒤늦게 알게 되는 경우가 있고, 도박 의심 거래를 확인하려 해도 금융기관에서 거래내역을 바로 제공받기 어려운 현실을 호소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후 경찰은 인터넷은행을 방문해 미성년자 계좌 개설 방식과 법정대리인 확인 절차를 협의했다. 금융감독원을 찾아 현장에서 확인한 문제점을 전달했고, 논의는 금융감독원과 인터넷은행 3사가 함께 참여하는 간담회로 확대됐다.

 

경찰이 법률적 쟁점으로 제시한 부분은 민법 제5조다. 현행 민법 제5조는 미성년자가 법률행위를 할 때 법정대리인의 동의를 얻도록 하면서, 권리만을 얻거나 의무만을 면하는 행위는 예외로 두고 있다. 법정대리인의 동의 없이 이뤄진 행위는 취소할 수 있다는 내용도 함께 규정하고 있다. 국가법령정보센터 민법 제5조

 

대법원도 미성년자 보호를 위한 법정대리인 동의 원칙을 쉽게 제한해서는 안 된다는 취지의 판단을 내린 바 있다. 대법원은 2007년 11월 16일 선고한 2005다71659·71666·71673 판결에서 법정대리인의 동의 없이 체결된 미성년자의 신용구매계약에 대해, 거래 상대방의 신뢰나 거래 안전만을 이유로 미성년자의 취소권 행사를 제한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다만 묵시적인 동의나 처분을 허락한 재산의 범위에 해당하는지는 미성년자의 나이와 경제활동, 계약의 성질과 내용 등을 종합해 판단해야 한다고 봤다.

 

이번 판결은 신용구매계약에 관한 사건으로 인터넷은행 계좌 개설을 직접 판단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부천원미서는 해당 판례가 제시한 미성년자 보호 원칙을 계좌 개설 문제에도 적용할 필요가 있는지 검토했다.

 

경찰은 계좌 개설이 단순히 돈을 보관할 수 있는 권리만 얻는 행위로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계좌 이용에는 금융기관 약관에 따른 의무가 따르고, 부정 사용이나 명의 대여, 전자금융거래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책임 문제도 함께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법정대리인의 동의 없이 미성년자가 단독으로 계좌를 개설하는 것이 민법 제5조의 예외인 ‘권리만을 얻는 행위’에 해당하는지 다시 살펴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 경찰의 법률검토 취지다.

 

경찰은 일부 인터넷은행에서 만 14세 이상 미성년자에게 법정대리인의 동의나 실질적인 관여 없이 비대면 계좌 개설을 허용하는 방식이 청소년 도박의 사각지대를 키울 수 있다고 지적했다. 

 

계좌 개설 단계에서 보호자가 배제되면 보호자는 자녀의 금융 이용 사실을 알기 어렵고, 이후 도박자금이 오가더라도 이상 징후를 확인하거나 개입할 기회를 놓칠 수 있다는 것이다.

 

민법 제913조는 친권자에게 자녀를 보호하고 교양할 권리와 의무가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보호자가 자녀의 계좌 존재와 거래 흐름을 확인할 수 없다면, 자녀를 보호하고 위험한 상황에 개입해야 할 책임도 현실에서는 제약을 받을 수밖에 없다. 

 

경찰이 제안한 개선방안은 세 가지다. 미성년자가 계좌를 개설할 때 법정대리인의 동의와 확인 절차를 강화하고, 보호자가 자녀의 거래내역을 확인할 수 있는 절차를 간소화하며, 도박 등 이상거래가 의심될 경우 보호자에게 알림이 전달되도록 하자는 내용이다.

 

이 과정에서 보호자의 확인권이 자녀의 금융정보를 무제한으로 들여다보는 권한으로 확대돼서는 안 된다는 점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 청소년의 사생활과 금융정보를 보호하면서도 도박과 같은 고위험 거래가 발생했을 때 법정대리인이 최소한의 정보를 확인하고 개입할 수 있는 안전장치를 마련해야 한다는 의미다.

 

부천원미서는 ‘보호자의 자녀 계좌 확인’ 캠페인을 통해 보호자들이 자녀의 금융 이용 실태에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알리는 한편, 이번 제안이 실제 제도 개선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관계기관에 후속 논의를 요청할 계획이다.

 

청소년 도박 문제는 신고와 단속만으로 끝나지 않는다. 아이가 어떤 계좌를 통해 돈을 주고받았는지 확인하고, 도박을 시작한 뒤에도 보호자가 개입할 수 있어야 재발을 막을 수 있다. 청소년을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진 법과 금융서비스가 정작 보호자의 손을 묶는 구조로 남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 경찰의 문제 제기다.

 

부천원미서는 사이버도박 피해 청소년과 보호자에 대한 취재도 가능하다고 전했다.

작성 2026.09.20 22:59 수정 2026.09.29 1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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