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레기 하나 치우는 일이 제겐 속죄입니다”…인사동 골목 지키는 김발렌티노 씨

- 알코올 중독의 어두운 터널 지나 6년째 종로 거리 청소…“가족에게 웃음 되찾아주고 싶어” -하루 2만보 걸으며 조계사·인사동·경복궁·미 대사관 일대 누벼…“깨끗한 대한민국 만드는 데 작은 힘 보태고 싶다”

-하루 2만보 걸으며 조계사·인사동·경복궁·미 대사관 일대 누벼…“깨끗한 대한민국 만드는 데 작은 힘 보태고 싶다”

 

매일매일 종로를 누비며, 오늘도 걷는다(사진=정현필 기자)

 

서울 종로구 인사동 골목을 6년째 누비며 거리의 쓰레기를 치우는 김발렌티노 씨가 자신의 청소 일을 “과거의 잘못을 조금씩 씻어내는 속죄와 정화의 과정”이라고 말했다.

 

지난 14일 인사동에서 만난 김 씨는 서울365청결기동대 소속으로 종로 일대 거리 청소를 담당하고 있다. 손에는 빗자루와 쓰레기봉투를 들고 골목 곳곳을 살피며 담배꽁초와 이쑤시개, 종이조각 등 작은 쓰레기까지 직접 주워 담는다.

 

김 씨는 하루 평균 2만보를 걸으며 조계사와 인사동, 경복궁 주변, 미국대사관 인근, 종로구청 주변 등 종로 곳곳을 오간다.

그는 “한 번 지나갔다고 청소가 끝나는 게 아니다. 사람들이 다시 다니면 또 쓰레기가 나온다”며 “제가 할 수 있는 만큼 더 거둔다"고 말했다.

 

김 씨에게 거리 청소는 단순한 생업이 아니다. 과거 알코올 중독으로 가족과 주변 사람들에게 상처를 남겼던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현재의 삶을 다시 세우는 과정이라고 했다.

“제가 사람이라는 말을 붙인다면 시인도 아니고 예술가도 아닙니다. 저는 그냥 죄인입니다. 제가 과거에 지은 잘못을 조금이라도 씻어내고 싶어요.”

 

 오늘도 일하는 기운을 누리고 있는 김발렌티노씨

 

김 씨의 삶은 오랜 기간 순탄하지 않았다. 어린 시절 어머니와 떨어져 시골에서 생활했던 그는 서울에서 어머니를 다시 만났다. 그러나 어머니가 뒤늦게 검정고시를 거쳐 대학에 진학하려던 시기에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나면서 큰 충격을 받았다.

 

"어머니가 제 품에서 쓰러지셨어요. 병원에 모셨는데 다다음 날 의식 없이 돌아가셨습니다. 그때 제 인생이 한순간에 무너진 것 같았어요.”

 

이후 술에 의지하기 시작했고 알코올 중독으로 병원에 네 차례 입원했다. 폐쇄병동에서 치료를 받으며 술에 대한 욕망과 싸워야 했다.

 

김 씨는 2010년 8월 16일 마지막 퇴원 이후 다시는 같은 삶으로 돌아가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이후 술을 멀리하며 새로운 삶을 이어가고 있다.

 

그 과정에서 시를 쓰고 연극과 예술 활동에도 참여했다. 과거에 썼던 시를 모두 버리고 새로운 마음으로 다시 글을 쓰면서 자신의 경험과 감정을 작품과 노래로 표현하기 시작했다.

 

특히 영화 ‘대부’는 그의 삶을 돌아보게 한 계기 가운데 하나로 꼽았다.

 

김 씨는 2011년 초 경제활동조차 쉽지 않았던 시절 정독도서관 인근 영화관에서 조조로 영화를 관람했다. 영화 속 가족에 대한 대사가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게 했다고 한다.

 

“그 말을 듣는데 눈물이 쏟아졌습니다. 가족을 제대로 돌보지 못했던 제 모습이 떠올랐어요.”

이후 그가 가장 좋아하는 단어 중 하나가 ‘돌보다’가 됐다. 과거 가족을 제대로 돌보지 못했던 자신을 반성하고 이제는 가족을 돌보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의미에서다.

 

“제가 망가뜨린 한 가족의 삶에 조금이라도 웃음을 되찾아주고 싶습니다.”

 

김 발렌티노씨와 인사동에서 인터뷰(사진=정혁필 기자)

 

거리 청소를 시작한 것도 새로운 삶을 이어가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받아들인 일이라고 했다. 김 씨는 2021년부터 서울365청결기동대에서 근무하고 있다. 평일에는 오후 3시부터 밤 9시까지, 주말에는 오후 2시부터 밤 9시까지 거리 청소를 한다.

 

근무시간 외에도 일찍 집을 나서 걷고 건강을 관리하려고 노력한다.

“아내가 제가 일찍 일어나 밥 먹고 건강하게 나가는 모습을 좋아하는 것 같아요. 제가 할 수 있는 방법으로 가족에게 잘해주고 싶은 겁니다.”

 

그가 담당하는 지역은 관광객이 많이 찾는 인사동을 비롯해 종로 주요 거리와 골목이다. 특히 인사동은 국내외 관광객의 왕래가 잦아 같은 구간을 반복해서 청소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김 씨는 외국인 관광객이 많이 찾는 종로의 거리인 만큼 청결 관리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해외에서 오신 분들도 많이 찾는 곳이잖아요. 깨끗한 한국, 깨끗한 대한민국을 보여드리고 싶어요.”

 

자신의 담당 구역이 아니더라도 주변에 쓰레기가 보이면 가능한 범위에서 치운다고 했다. "이왕 나온 김에 조금 더 하자는 마음입니다. 제가 할 수 있는 만큼 하는 거죠.”김 씨는 거리 청소뿐 아니라 역사와 예술을 매개로 시민들과 소통하는 활동도 이어왔다.

 

2019년 3·1운동 100주년을 앞두고 약 100일 동안 직접 만든 엽서를 시민들에게 나눠주는 행진 활동을 진행했다. 배우와 예술가들을 초대해 행사를 만들기도 했으며, 고(故) 송해 선생과 인연을 맺고 보신각 타종 행사를 기획하기도 했다.

 

2021년에는 김수영 시인 탄생 100주년을 기념해 김수영의 시를 소재로 직접 작곡한 노래를 엽서에 담아 시민들에게 나눠주는 활동도 했다.

 

청소하다가 우연히 만나 격려해 주시는 고 송해 선생

 

김 씨에게 예술이 과거의 상처를 표현하는 방법이었다면, 거리 청소는 현재의 삶을 바로잡는 행동인 셈이다.

그는 자신의 과거를 숨기기보다 있는 그대로 돌아봤다.

 

“제가 과거에는 아무 데나 쓰레기를 버리고, 술병을 깨뜨리고, 아무 데나 쓰러져 자기도 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미치광이 같은 행동이었죠. 그래서 지금은 제가 더 열심히 치우고 있습니다.”

 

김 씨는 거리 청소를 ‘거룩한 정화작업’이라고 표현했다.“청소는 저의 죄를 조금씩 씻어주는 정화작업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 일을 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저에게는 축복입니다.”

 

그가 청소를 하며 느끼는 가장 큰 변화는 가족과의 관계라고 했다. 과거 술로 인해 힘들었던 가족에게 다시 웃음이 생기고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도 달라지고 있다는 것이다.

 

김발렌티노씨는 오늘도 화이팅 하고 출발한다(사진=정현필 기자)

 

김 씨는 내년에도 기회가 주어진다면 서울365청결기동대 일을 계속하고 싶다고 밝혔다.“내년에도 야간 청소부라는 축복이 내려진다면 감사하게 그 길을 걸어가겠습니다. 아직 갈 길이 멀어요. 하지만 앞으로도 열심히 살겠습니다.”

 

시민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도 거창하지 않았다."제가 할 수 있는 건 쓰레기 하나라도 더 줍는 겁니다. 이쑤시개 하나라도 그냥 지나치지 않으려고 합니다.” 

 

인터뷰를 마친 뒤 김 씨는 다시 빗자루를 들었다. 인사동 골목을 몇 걸음 옮기던 그는 자신이 서 있던 주변을 다시 한번 살폈다. 바닥에 떨어진 작은 쓰레기 하나를 발견하자 허리를 굽혀 주워 봉투에 넣었다.

 

그리고 다시 종로의 길을 따라 걸었다. 그에게 거리 청소는 오늘도 계속되는 일상이자, 과거를 돌아보고 현재를 살아가는 방법이었다.

 

 

 

작성 2026.09.18 11:56 수정 2026.09.18 1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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