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직장에서 성희롱과 괴롭힘을 당했다고 호소해온 이주여성 노동자의 ‘적응장애’가 산업재해로 인정됐다. 눈에 보이는 부상이 아니더라도 업무 과정에서 받은 정신적 스트레스가 질병의 발병이나 악화에 영향을 미쳤다면 업무상 질병이 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준 사례다.
경남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는 지난 8월 21일 우즈베키스탄 국적 여성 노동자 A씨의 적응장애를 업무상 질병으로 인정했다. A씨는 비전문취업(E-9) 체류자격으로 경남 거제의 조선업 협력업체에서 용접공으로 일해왔다.
성희롱·괴롭힘 호소에 계약해지 불안까지
A씨는 지난해 8월부터 작업반장 B씨에게 성희롱과 직장 내 괴롭힘을 당했고, 수시로 근로계약 해지를 언급해 고용불안에도 시달렸다고 주장했다.
외부기관에 피해를 상담한 뒤 지난해 12월 회사 관계자와 면담하는 과정에서 계약해지 통보를 받고 쓰러져 병원으로 이송됐으며, 같은 달 고용노동부에 성희롱과 직장 내 괴롭힘 진정을 제기했다. 올해 2월에는 적응장애 진단을 받고 근로복지공단에 산재 요양급여를 신청했다.
판정위원회는 진료기록에 나타난 성희롱·괴롭힘 노출 내용과 계약해지 과정에서 받은 충격 등을 종합해 직장에서 겪은 정신적 스트레스와 적응장애 사이에 상당한 인과관계가 있다고 판단했다.
진정 취하했지만 산재 인정…고용과 체류가 함께 얽혔다
A씨는 이후 B씨와의 분리조치, 근로계약 연장, 비자 연장 등을 조건으로 회사와 합의하면서 노동부 진정을 취하했다. A씨 측은 당시 체류기간 연장과 자녀의 유학비자 문제까지 겹쳐 회사를 떠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고 설명했다.
이 대목은 이주노동자가 겪는 고용불안의 무게를 보여준다. E-9 노동자는 사업장 변경에 일정한 절차와 요건이 적용되기 때문에 계약해지 문제를 일자리 하나의 문제로만 보기 어렵다. 향후 취업과 체류까지 함께 고려해야 하는 상황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진정을 취하했다고 해서 이전에 제기된 피해 주장이나 정신적 스트레스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이번 산재 판정은 합의 이후에도 업무 과정에서 받은 스트레스와 적응장애 사이의 관련성이 별도로 판단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산재 인정과 ‘성희롱 가해 확정’은 구분해야
다만 이번 산재 인정이 성희롱이나 직장 내 괴롭힘 사실 자체를 법적으로 최종 확정한 것은 아니다.
작업반장 B씨는 성희롱과 신체접촉, 괴롭힘 사실을 부인하고 있다. B씨가 A씨를 무고 혐의로 고소한 사건에서는 경찰이 올해 4월 A씨에 대해 혐의없음으로 불송치했다.
이번 판정에서 인정된 것은 직장에서 받은 정신적 스트레스와 A씨의 적응장애 사이의 업무관련성이다. 따라서 피해 주장과 상대방의 반박, 산업재해 판단은 서로 구분해 볼 필요가 있다.
이번 사건은 성희롱·괴롭힘 신고를 받은 사업장에서 조사만큼이나 피해 노동자가 안전하게 계속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일이 중요하다는 점도 보여준다. 특히 고용과 체류 문제가 연결된 이주노동자에게 계약해지 압박은 더 큰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는 만큼, 신고 이후의 분리조치와 불리한 처우 방지가 실제 현장에서 작동하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