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웰라이프타임즈 건강기획] 음식궁합, 과학으로 다시 보다
8편 자몽과 약은 왜 함께 먹으면 안 될까…과일 하나가 약효를 바꾸는 이유
아침에 약을 먹으면서 자몽주스 한 잔을 마셨다.
건강에 좋은 과일주스이니 별문제가 없을 것 같지만 복용하는 약에 따라서는 이야기가 달라진다.
자몽은 비타민 C와 칼륨 등을 함유한 과일이지만 일부 의약품의 흡수와 대사 과정에 영향을 줄 수 있다.
이 때문에 평소와 같은 용량의 약을 먹어도 혈중 약물 농도가 높아져 부작용 위험이 커질 수 있다.
반대의 경우도 있다.
일부 약은 자몽주스와 함께 먹으면 체내 흡수량이 감소해 약효가 떨어질 가능성이 있다.
그렇다고 ‘약을 먹는 사람은 자몽을 먹으면 안 된다’고 단정하는 것도 정확하지 않다.
자몽과 상호작용하는 약은 일부이며 같은 치료 목적으로 사용하는 약이라도 성분에 따라 영향이 다르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자몽을 무조건 피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 복용하는 약이 자몽과 상호작용하는 약인지 확인하는 것이다.

자몽 하나가 어떻게 약의 작용을 바꿀까
먹은 약은 위와 장을 거쳐 흡수된 뒤 혈액으로 들어간다.
이 과정에서 일부 약물은 장과 간에 존재하는 효소에 의해 대사된다.
대표적인 것이 CYP3A4라는 약물대사 효소다.
미국 식품의약국(FDA)에 따르면 자몽주스는 소장에 있는 CYP3A4의 작용을 억제할 수 있다.
평소라면 혈액으로 들어가기 전에 일부가 대사됐을 약물이 충분히 대사되지 않으면서 더 많은 양이 혈액으로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이다.
그 결과 같은 용량의 약을 복용해도 몸이 실제로 노출되는 약물의 양이 증가하고, 약에 따라 부작용 위험이 커질 수 있다.
그러나 그 정도는 사람마다 다를 수 있다.
장에 존재하는 CYP3A4의 양에 개인차가 있고 복용하는 약의 종류와 용량, 자몽 섭취량 등 여러 요인이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따라서 ‘자몽 한 조각을 먹으면 약효가 몇 배 강해진다’는 식으로 일률적으로 설명할 수는 없다.
자몽의 어떤 성분이 문제일까
자몽과 일부 약물의 상호작용에는 푸라노쿠마린(furanocoumarin) 계열 성분 등이 관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들 성분은 장의 CYP3A4 활성을 떨어뜨려 특정 약물이 혈액으로 들어가기 전에 대사되는 정도를 감소시킬 수 있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자몽이 약 자체를 더 ‘강한 약’으로 변화시키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자몽이 약물의 흡수·대사 과정에 영향을 줌으로써 결과적으로 몸속 약물 노출량을 바꿀 수 있는 것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고지혈증 치료제
자몽과 약물의 상호작용을 설명할 때 가장 많이 언급되는 약 가운데 하나가 콜레스테롤을 낮추는 스타틴(statins) 계열이다.
하지만 모든 스타틴이 자몽과 똑같이 상호작용하는 것은 아니다.
대표적인 예가 심바스타틴(simvastatin)이다.
미국 의약품 허가정보는 심바스타틴을 복용하는 동안 자몽주스를 피하도록 안내한다.
자몽주스가 심바스타틴의 혈중 농도를 높여 근육병증과 횡문근융해증 위험을 증가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약물 노출량 증가가 어느 정도인지는 자몽주스의 양과 농도 등에 따라 크게 달라질 수 있다.
실제 약동학 연구에서도 많은 양의 자몽주스를 섭취했을 때 심바스타틴의 혈중 농도와 약물 노출량이 크게 증가했다.
따라서 심바스타틴을 복용하는 사람은 자몽을 어느 정도까지 먹어도 되는지 임의로 판단하기보다 해당 약의 복약지시에 따르는 것이 안전하다.
같은 스타틴인 아토르바스타틴은 기준이 다르다
같은 스타틴 계열인 아토르바스타틴(atorvastatin)도 자몽주스의 영향을 받을 수 있지만 허가정보의 주의사항은 심바스타틴과 다르다.
미국 FDA의 아토르바스타틴 허가정보에 따르면 자몽주스를 과도하게 섭취하면 아토르바스타틴의 혈중 농도가 높아지고 근육병증이나 횡문근융해증 위험이 증가할 수 있다.
허가정보에서는 특히 하루 1.2L를 초과하는 많은 양의 자몽주스 섭취를 피하도록 안내한다.
이는 ‘스타틴을 먹으면 자몽은 무조건 금지’라는 식으로 외우는 것이 정확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같은 계열의 약이라도 성분에 따라 자몽과의 상호작용 정도와 복약지시가 다를 수 있다.
혈압약도 모두 자몽과 상극은 아니다
혈압약 역시 마찬가지다.
FDA는 자몽과 상호작용할 수 있는 의약품의 사례로 니페디핀(nifedipine) 등 일부 고혈압 치료제를 제시한다.
그러나 이것이 모든 혈압약에 해당하는 것은 아니다.
고혈압 치료제에는 작용기전과 대사 경로가 서로 다른 여러 종류의 약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혈압약을 먹으면 자몽을 먹어서는 안 된다’고 판단하기보다 자신이 복용하는 약의 성분명과 복약정보를 확인하는 것이 정확하다.
여러 종류의 심혈관계 약물을 함께 복용하고 있다면 약사나 의료진에게 자몽 섭취 가능 여부를 확인하는 것이 좋다.
장기이식 환자가 복용하는 일부 약도 주의
장기이식 후 거부반응을 억제하기 위해 사용하는 사이클로스포린(cyclosporine)도 주의가 필요한 대표적인 약이다.
미국 의약품 허가정보는 자몽과 자몽주스가 사이클로스포린의 대사에 영향을 줘 혈중 농도를 높일 수 있으므로 피하도록 안내한다.
이처럼 치료 과정에서 적절한 혈중 약물 농도를 유지하는 것이 중요한 약은 음식이나 다른 의약품과의 상호작용도 세심하게 관리해야 한다.
FDA는 이 밖에도 일부 항불안제, 부정맥 치료제, 코르티코스테로이드 등이 자몽과 상호작용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다만 여기에서도 해당 치료제 계열에 속한 모든 약이 자몽과 상호작용하는 것은 아니다.
자몽은 약효를 무조건 강하게 만들까
그렇지 않다.
자몽과 약물의 관계에서 특히 주의해서 봐야 할 부분이다.
자몽은 CYP3A4를 억제해 일부 약물의 혈중 농도를 높일 수 있지만 다른 기전을 통해서는 오히려 약물 흡수를 감소시킬 수도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알레르기 증상에 사용하는 항히스타민제 펙소페나딘(fexofenadine)이다.
FDA는 자몽주스가 약물을 세포 안으로 운반하는 일부 수송체의 기능에 영향을 줘 펙소페나딘이 혈액으로 들어가는 양을 줄일 수 있다고 설명한다.
미국 의약품 허가정보에서도 자몽·오렌지·사과주스 등이 펙소페나딘의 생체이용률과 약물 노출을 감소시킬 수 있다고 안내한다.
관련 임상시험 자료를 종합한 약동학 분석에서는 펙소페나딘의 생체이용률이 약 36% 감소했다.
다만 허가정보는 이러한 관찰 결과의 임상적 중요성이 명확하지 않다는 점도 함께 밝히고 있다.
그럼에도 약효를 최대화하기 위해 펙소페나딘 정제는 과일주스가 아닌 물과 함께 복용하도록 권고한다.
즉 자몽과 약의 상호작용을 단순히 ‘자몽이 약효를 강하게 만든다’고 설명하는 것은 틀리다.
어떤 약은 체내 약물 노출량이 증가하고, 어떤 약은 반대로 감소할 수 있다.
약과 자몽을 몇 시간 띄우면 괜찮을까
자몽과 약의 상호작용을 알게 되면 흔히 “약 먹을 때만 피하고 몇 시간 뒤에 자몽을 먹으면 괜찮지 않을까”라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자몽과 상호작용하는 모든 약에 적용할 수 있는 공통적인 시간 간격은 없다.
자몽이 장의 CYP3A4에 미치는 영향은 자몽을 먹는 순간에만 나타났다 바로 사라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과거 약동학 연구에서는 자몽주스를 마신 뒤 24시간이 지난 시점에도 일부 CYP3A4 대사 약물에 대한 영향이 관찰됐다.
따라서 자몽과 상호작용하는 것으로 확인된 약을 복용한다면 ‘2시간’, ‘4시간’처럼 임의로 간격을 정해 먹는 방법으로 상호작용을 피할 수 있다고 단정해서는 안 된다.
복용 중인 약의 허가사항과 의사·약사의 복약지시를 따르는 것이 우선이다.
자몽주스만 피하면 과육은 괜찮을까
그렇지 않을 수 있다.
FDA는 자몽주스뿐 아니라 자몽 자체도 일부 의약품의 작용에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설명한다.
따라서 자몽과 상호작용하는 약을 복용하는 사람이 “주스만 마시지 않으면 된다”고 생각해 자몽 과육을 먹는 것도 적절하지 않을 수 있다.
혼합주스나 과일음료도 실제 자몽 성분이 들어 있는지 확인할 필요가 있다.
자몽만 피하면 될까…포멜로·세비야 오렌지도 확인
자몽과 가까운 일부 감귤류도 주의가 필요할 수 있다.
FDA는 자몽과 상호작용하는 약을 복용하는 경우 세비야 오렌지(쓴오렌지), 포멜로, 탄젤로 등이 자몽과 비슷한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다고 안내한다.
세비야 오렌지는 일부 오렌지 마멀레이드의 원료로 사용된다.
그렇다고 모든 오렌지와 감귤류를 피해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복용하는 약에 따라 주의해야 할 과일이 달라질 수 있으므로 불필요하게 과일 섭취 전체를 제한하기보다 해당 의약품의 복약정보를 확인하는 것이 중요하다.
‘자몽 금지’라고 들었다면 약 이름부터 확인해야
자몽을 좋아하는 사람이 새로 약을 처방받았다고 해서 스스로 자몽을 끊거나, 반대로 자몽을 먹기 위해 처방약 복용을 중단해서는 안 된다.
먼저 확인해야 할 것은 복용하는 약의 정확한 성분명이다.
약 봉투나 처방전, 제품 설명서에서 성분명을 확인하고 자몽과의 상호작용에 관한 안내가 있는지 살펴봐야 한다.
확실하지 않다면 약사나 의료진에게 “이 약을 복용하는 동안 자몽이나 자몽주스를 먹어도 되는지” 확인하는 것이 가장 정확하다.
특히 여러 처방약과 일반의약품, 건강기능식품을 함께 복용한다면 현재 복용 중인 제품을 모두 알려주는 것이 좋다.
자몽을 먹기 위해 임의로 약의 용량을 줄이거나 복용 시간을 변경해서는 안 된다.
건강한 과일도 약과 만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자몽 자체는 비타민 C와 칼륨 등을 공급하는 식품이다.
일부 의약품과 상호작용한다고 해서 자몽이 건강에 나쁜 과일이라는 뜻은 아니다.
문제는 특정 약을 복용하는 상황에서 자몽의 성분이 약물의 대사나 흡수 과정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점이다.
이번 음식궁합에서 확인할 수 있는 핵심도 여기에 있다.
자몽을 무조건 위험한 과일로 생각할 필요도 없지만 건강에 좋은 과일이니 약과 함께 먹어도 괜찮다고 생각해서도 안 된다.
약을 복용하고 있다면 ‘자몽을 먹어도 될까’보다 먼저 ‘내가 먹는 약이 자몽과 상호작용하는 약인가’를 확인하는 것이 중요하다.
음식궁합 팩트체크
자몽 + 일부 의약품 → 주의 필요
“자몽은 일부 약물의 혈중 농도를 높일 수 있다” → 근거 충분
자몽은 소장의 CYP3A4 작용을 억제해 일부 약물이 혈액으로 들어가기 전에 대사되는 정도를 감소시킬 수 있다. 그 결과 체내 약물 노출량이 증가해 부작용 위험이 커질 수 있다.
“고지혈증약을 먹으면 자몽은 모두 금지다” → 사실 아님
스타틴 계열에서도 성분에 따라 차이가 있다. 심바스타틴 허가정보는 자몽주스를 피하도록 하지만, 아토르바스타틴 허가정보는 특히 하루 1.2L를 초과하는 많은 양의 자몽주스를 피하도록 안내한다.
“자몽은 약효를 무조건 강하게 만든다” → 사실 아님
펙소페나딘처럼 자몽주스가 약물의 흡수를 감소시키는 사례도 있다.
“약과 자몽을 몇 시간만 띄우면 모두 괜찮다” → 사실 아님
자몽이 장의 약물대사 효소에 미치는 영향이 일정 시간 지속될 수 있기 때문에 모든 약에 적용할 수 있는 공통적인 안전 간격은 없다. 개별 의약품의 복약지시를 확인해야 한다.
“자몽주스만 피하고 자몽 과육은 먹어도 된다” → 사실 아님
FDA는 자몽주스뿐 아니라 자몽 자체도 일부 의약품과 상호작용할 수 있다고 안내한다.
“자몽과 상호작용하는 약을 먹는다면 일부 다른 감귤류도 확인해야 한다” → 맞음
FDA는 세비야 오렌지, 포멜로, 탄젤로 등이 자몽과 비슷한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한다.
자몽과 약의 관계를 ‘자몽은 약과 함께 먹으면 안 된다’는 하나의 공식으로 기억해서는 안 된다.
자몽은 일부 약물의 대사를 방해해 체내 약물 노출량을 높일 수 있고, 반대로 일부 약에서는 흡수를 감소시킬 수도 있다. 같은 치료제 계열에서도 성분에 따라 영향과 복약지시가 다르다.
따라서 가장 중요한 원칙은 현재 복용하는 약의 정확한 성분을 확인하고, 자몽과의 상호작용이 명시돼 있다면 해당 복약지시에 따르는 것이다.
다음 편
[웰라이프타임즈 건강기획] 음식궁합, 과학으로 다시 보다 9편
커피·차와 영양제 같이 먹어도 될까…철분부터 칼슘까지 따져보니
아침 식사 후 커피와 함께 영양제를 먹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커피와 차에 들어 있는 성분은 일부 영양소의 흡수에 영향을 줄 수 있고 영양제 종류에 따라 함께 먹어도 되는 경우와 시간 간격을 두는 편이 나은 경우가 다르다.
다음 편에서는 커피·차와 철분·칼슘 등 영양제의 관계를 연구와 공신력 있는 자료를 통해 확인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