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너지기후변화학회에서는 지난 8월 20~21일 부산에서 2026년 하계심포지엄을 개최하였다.>
장태선 박사(한국에너지기후변화학회 회장)
지난 8월 26일, 대한민국 탄소중립 정책의 이정표가 될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이번 개정안은 2050년 탄소중립이라는 장기적인 지표 아래 2035년, 2040년, 2045년의 구체적인 중간 감축경로를 법률로 명문화했다는 점에서 매우 큰 의의가 있다.
같은 날 히말라야에서 발생한 기후 재난은 우리가 왜 기후 위기에 즉각 대응해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참혹한 경고장이었다. 지구온난화로 인한 빙하 후퇴와 고산지역의 영구동토층 약화는 산사태, 홍수 등 복합적인 대형 재난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제 기후변화는 미래 세대를 위한 환경 이슈를 넘어, 오늘날 우리의 생존과 직결된 문제이자 경제의 현실적인 위협이다. 이 생존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유일한 열쇠는 바로 '탄소중립'이다.
'얼마나 줄일 것인가'에서 '무엇으로 줄일 것인가'로
이제는 목표치의 높고 낮음을 둘러싼 논쟁에서 벗어나, 정해진 목표를 구체적으로 어떻게 달성할 것인지에 대한 사회적 역량을 결집해야 할 때다.
특히 한국처럼 제조업 비중이 높고 철강, 발전, 석유화학, 시멘트, 정유 등 에너지 다소비 산업이 국가 경제의 중요한 축을 담당하는 구조에서는 온실가스 감축과 산업경쟁력을 결코 분리해 생각할 수 없다. 우리가 매일 사용하는 소재와 제품을 만드는 산업현장 자체가 탄소 발생의 주요 발원지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앞으로의 탄소중립 정책은 감축 목표 수립과 함께, 구체적으로 '무엇으로 줄일 것인가'에 명확한 해법을 제시해야 한다.
그 해법의 중심에는 당연히 과학기술이 존재한다. 재생에너지 확대와 에너지 효율 향상은 물론, 산업공정의 혁신, 청정수소 생산·활용, 탄소 포집·활용·저장(CCUS), 원료 및 연료 전환, 자원순환, 저탄소 화학공정 등 다양한 혁신 기술들이 실제 산업현장에서 작동해야 한다.
연구실의 성과를 시장으로 잇는 핵심 고리, '실증’
아직 경제성을 확보하지 못한 기술은 연구개발(R&D)을 통해 성숙도를 높이고, 연구실 단계에서 가능성이 확인된 기술은 실증 단계를 거쳐 대규모 산업 규모로 확장되어야 한다. 대한민국 탄소중립의 성패를 좌우할 가장 중요한 연결고리는 바로 '실증'이다.
연구실에서 성공한 기술이 곧바로 산업현장에 쓰일 수는 없다. 수백 시간 검증된 기술이 실제 산업 현장에서는 수천, 수만 시간 동안 안정적으로 운전될 수 있어야 하며, 소규모 장치에서 얻은 성능이 대규모 공정에서도 유지되는지 확인해야 한다. 또한, 안전성과 경제성은 물론 기존 공정과의 연계 가능성도 철저히 검증되어야 한다.
다행히 이번 법 개정을 통해 산업계의 온실가스 감축 기술개발을 위해 연구개발뿐 아니라 설비투자와 상용화 단계까지 정부가 지원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마련되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앞으로의 탄소중립 기술 정책 역시 단순히 논문이나 특허 개수, 연구개발 성공 여부라는 형식적 지표를 넘어, 실제 산업현장에서 온실가스를 몇 톤이나 줄였는지를 핵심 성과로 평가하는 실질적인 방향으로 전환되어야 한다.
정부·산업계·과학계의 입체적 연대와 실행이 필요한 때
탄소중립은 특정 기술이나 단일 정부 부처, 하나의 산업군이 단독으로 해결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에너지 시스템, 산업공정, 기술혁신, 시장제도, 그리고 국민의 선택이 동시에 변화해야 하는 거대한 문명사적 전환이다.
이를 위해 정부는 단순히 기업에 감축 의무만 부과할 것이 아니라 탄소 가격과 배출권거래제, 기술개발 지원, 실증 인프라 구축, 금융·세제 지원, 공공 조달을 통한 초기 시장 창출을 아우르는 종합적인 정책 패키지를 하나의 연결고리로 묶어야 한다.
산업계 또한 탄소중립을 단순한 '비용 부담'으로 여겨서는 안 된다. 글로벌 탄소 규제와 공급망의 저탄소 요구가 강화될수록, 제품의 탄소 경쟁력이 곧 글로벌 시장에서의 생존 무기이자 산업 경쟁력이기 때문이다. 저탄소 공정 기술을 선제적으로 확보한 기업과 국가가 앞으로 형성될 거대한 탄소중립 시장의 주도권을 쥐게 될 것이다.
과학기술계의 연구자들 역시 단순히 기술적 가능성을 제시하는 수준을 넘어, 산업현장에서 직접 구현 가능한 해법을 도출해야 한다. 화학, 에너지, 자원, 소재, 환경, 전기·전자, 기계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탄소중립이라는 공동 목표 아래 장벽을 허물고 적극적으로 협력해야 한다.
이번 법률 개정은 대한민국이 나아가야 할 탄소중립의 시간표를 보다 분명하게 제시해 주었다. 이제 이 시간표를 현실로 만드는 일이 남았다. 연구실의 기술이 실증 현장으로, 그리고 실증 현장의 기술이 산업현장으로 끊임없이 이어져 실제로 온실가스가 감축될 때 비로소 탄소중립은 실현될 수 있다.
한국에너지기후변화학회는 정부, 산업계, 연구계, 그리고 국민과 연대하여 기후위기를 새로운 기술혁신과 산업 경쟁력 확보의 기회로 전환하는 데 맡은 역할과 책임을 다할 것이다. 미래 세대가 우리를 평가할 때, 탄소중립을 선언한 세대가 아닌, 실제로 행동하고 구체적인 변화를 만들어 낸 세대로 기억할 수 있도록 학회도 그 여정에 늘 함께할 것을 다짐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