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타임즈 / 서민영 기자]
금융당국의 가계대출 억제 및 시중은행의 자체적인 대출 문턱 높이기 기조가 장기화되면서, 수도권 부동산 시장이 전례 없는 구조적 재편을 맞이하고 있다. 서민층의 자산 형성을 돕겠다는 취지의 대출 규제가 역설적으로 임대차 시장의 불안을 촉발하고, 이것이 다시 중저가 아파트의 가격을 밀어 올리는 ‘규제의 부작용’이 현실화되는 모양새다. 특히 강남 3구와 한강변 등 고가 주택에 대한 주택담보대출 한도가 사실상 마비 수준으로 축소되자, 금융 규제의 직격탄을 비껴갔거나 정책 금융 활용이 용이한 10억 원 이하 중저가 아파트를 중심으로 매수세가 거세게 쏠리는 이른바 상승 릴레이(갭 메우기) 현상이 불붙고 있다. 부동산 전문가들은 이를 단순한 투기 수요의 유입이 아닌, 벼랑 끝에 몰린 실수요 임차인들의 ‘생존형 매수 전환’이 만들어낸 결과물로 분석하고 있다.
1. 전세 가뭄이 부른 월세 초고속 비행… 임차인들 고통지수 최고조
이번 10억 이하 아파트의 상승 릴레이를 촉발한 근본적인 도화선은 임대차 시장의 철저한 공급 부족과 그로 인한 가격 폭등이다. 현재 서울 및 수도권 임대차 시장은 역대 최고의 전세 품귀 현상을 겪고 있다.
이러한 현상의 배경에는 2+2년 계약갱신청구권을 사용해 기존 주택에 주저앉는 세입자가 늘어난 데다, 신축 아파트 입주 물량 감소가 겹쳤기 때문이다. 여기에 전세자금대출마저 한도 규제와 금리 인상의 타격을 받으면서, 시장에 새로 나오는 전세 매물은 그야말로 ‘가뭄’ 상태에 직면했다.
전세 매물이 사라진 자리는 빠르게 월세가 대체하고 있다. 집주인들은 강화된 보유세 부담을 세입자에게 전가하거나, 대출 규제 리스크를 피하기 위해 전세 보증금을 낮추는 대신 월세를 높이는 방식을 택하고 있다. 그 결과 수도권 아파트의 평균 월세 가격은 매월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는 중이다.
과거에는 보증금 외에 수십만 원 수준이던 월세가 이제는 150만~250만 원을 훌쩍 넘어서며 대기업 직장인의 한 달 월급 절반가량을 고스란히 잠식하고 있다. 매달 바닥으로 사라지는 주거 비용에 부담을 느낀 세입자들은 결국 심리적 임계점에 도달하게 되었다. "남에게 매달 수백만 원씩 월세를 주며 집주인 자산을 불려주느니, 차라리 대출 원리금을 갚으며 내 집을 가지겠다"는 실망 섞인 매수 전환이 들불처럼 번지는 이유다.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2. 규제 장벽이 만든 장벽… 15억 이상 ‘현금 리그’ vs 10억 이하 ‘풍선효과’
그러나 매수를 결심한 세입자들이 마주한 현실은 녹록지 않다. 금융당국이 차주의 상환 능력을 옥죄는 스트레스 DSR(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 규제를 엄격하게 적용하고 있고, 시중은행들은 모기지보험(MCI·MCG) 가입을 제한하는 방식으로 대출 가능 금액을 실질적으로 수천만 원씩 깎아내고 있기 때문이다.
이 같은 강력한 대출 규제는 시장을 두 개의 판도로 양분시켰다. 대출의 영향을 받지 않는 대자산가 중심의 15억 원 이상 고가 시장은 그들만의 ‘현금 리그’로 공고해진 반면, 대출 없이는 집을 살 수 없는 서민·실수요자들은 매수 가능한 금액대의 한계선에 갇히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수요가 집중된 곳이 바로 매매가격 8억 원 안팎에서 10억 원 이하의 중저가 아파트다. 이 구간의 아파트들은 서민 주거 안정을 위한 정부의 서민형 정책자금 대출(예: 신생아 특례대출, 생애최초 주택구입자 특례 등)의 가이드라인에 부합하거나, 시중은행 대출을 활용하더라도 DSR 한도 내에서 실거주 자금 조달 갭(Gap)을 맞추기가 상대적으로 수월하다. 고가 주택의 매수 문턱이 높아질수록 서민들이 진입할 수 있는 유일한 통로인 10억 이하 시장으로 수요가 몰리는 전형적인 ‘풍선효과’가 발생한 것이다.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3. 상급지 도망가자 하급지 쫓아간다… 본격화된 ‘갭 메우기’ 상승 릴레이
상급지 아파트 가격이 규제 전 먼저 치고 나간 상황에서, 대출 규제로 발이 묶인 수요가 하위 지역으로 밀려 내려옴에 따라 수도권 전역에서 갭 메우기(키 맞추기) 상승 릴레이가 확인되고 있다.
서울 마포·성동·강동 등 준상급지 단지들이 12억~14억 선을 돌파하며 멀어지자, 자금력이 부족한 세입자들과 젊은 층 수요자들은 서울 외곽인 노원·도봉·강북(노도강) 지역과 구로·금천·관악(금관구), 그리고 경기도의 핵심 입지(성남 수정·중원, 안양 동안, 수지 등)의 8억~9억 원대 단지를 무서운 속도로 써 내려가고 있다.
실제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시스템에 따르면, 그간 가격 회복이 더뎠던 수도권 외곽의 전세가율(매매가 대비 전세가 비율)이 60~70% 선을 상회하는 단지들을 중심으로 매매 계약 체결 건수가 급증하고 있다. 전세 가격과 매매 가격의 차이가 좁혀진 상태에서 월세 폭등에 지친 세입자들이 매매 자금을 조금 더 보태 주택을 취득하는 행렬이 이어지면서, 하락세를 면치 못하던 단지들이 수천만 원에서 1억 원 가까이 호가를 올리며 상급지와의 가격 격차를 강제로 좁히는 형국이다.
정비업계의 한 전문가는 "지금의 갭 메우기는 과거 투자자들이 전세를 끼고 집을 사던 투기적 성격의 갭 투자와는 궤가 완전히 다르다"라며 "전세 매물 고갈과 월세 부담이라는 임대차 시장의 악재 속에서, 대출 한도 규제라는 제약조건을 만난 실수요자가 선택할 수 있는 ‘지리적·가격적 차선책’을 선택하면서 나타나는 동시다발적 키 맞추기 현상"이라고 정의했다.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4. 결론 및 향후 전망: 규제의 역설이 낳은 양극화, 당분간 지속될 것
금융당국의 가계부채 관리 기조는 확고하지만, 시장의 본질적인 ‘공급 부족’과 ‘주거비 상승’을 해결하지 못한 채 수요의 한도만 옥죄는 방식은 시장의 왜곡을 심화시키고 있다.
결과적으로 정부가 대출을 조이면 조일수록 서민들이 넘볼 수 없는 초고가 시장은 자산가들의 안정적인 포트폴리오로 굳어지고, 서민들이 안정적인 주거를 찾아 진입해야 하는 10억 이하 중저가 시장은 오히려 수요 과밀로 인해 매매 가격이 동반 상승하는 딜레마에 빠지게 되었다.
결국 수도권 외곽과 중저가 단지의 상승 릴레이가 완성되고 나면 서민들의 내 집 마련 문턱은 한 층 더 높아질 것으로 전망된다. 임대차 시장의 월세화 가속화와 대출 규제가 맞물려 돌아가는 한, 10억 이하 알짜 단지를 향한 실수요자들의 처절한 갭 메우기 행보는 당분간 수도권 부동산 시장의 가장 뜨거운 화두가 될 것이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