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국립순천대학교 전경
사필귀정(事必歸正)이다.
국립순천대학교가 전남권 국립의과대학 신설 추천 후보대학으로 선정됐다. 오랜 시간 의대와 대학병원을 기다려온 전남 동부권 주민들에게 이번 소식은 단순히 대학 하나의 경사가 아니다. 응급환자의 골든타임을 지키고, 중증환자가 살던 지역을 떠나지 않고 치료받을 수 있는 최소한의 의료안전망을 확보하는 첫걸음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무엇보다 이번 결정은 앞으로 의과대학과 대학병원의 입지를 판단할 때 무엇이 가장 중요한 기준이 돼야 하는지를 분명하게 보여줬다는 점에서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 기준은 정치도, 지역의 힘겨루기도 아니다. 오직 국민의 생명과 의료수요여야 한다.

▲ 지난 12일 순천시청 대회의실에서 순천시 종합병원장 공동성명 발표
순천·여수·광양·고흥·보성·구례 등 전남 동부권은 약 85만 명의 주민이 생활하는 거대한 의료권역이다. 여기에 섬진강을 사이에 둔 하동과 남해 등 경남 서부권까지 연계하면 사실상 100만 명을 넘어서는 초광역 생활·의료권으로 확장된다.
더 중요한 것은 단순한 인구 숫자만이 아니다.
이 지역에는 세계적인 철강산업의 중심인 포스코 광양제철소와 광양항, 여수국가산업단지의 대규모 석유화학 공장들이 밀집해 있다. 수많은 근로자가 24시간 산업현장에서 일하고 있으며 대형 산업재해나 중증외상환자 발생 가능성도 상존한다. 그런데도 동부권에는 이러한 환자를 신속하고 전문적으로 치료할 대형 대학병원과 충분한 중증·응급의료 인프라가 부족했다.
사람이 쓰러졌을 때 어느 지역의 정치인이 더 힘이 센지를 따질 것인가. 어느 대학이 정치적으로 유리한지를 계산할 것인가. 응급환자 앞에서 그런 논리는 아무 의미가 없다. 의료정책의 첫째도 생명이고, 둘째도 생명이어야 한다.

▲ 28일 문화건강센터 일원에서 손훈모 시장이 삼보일배를 하고 있다
국립순천대가 전남에서 가장 먼저 글로컬대학30에 선정되며 혁신 역량을 인정받았다는 점도 가볍게 볼 수 없다. 지역 산업과 대학을 연결하고 미래 인재를 양성하겠다는 대학의 노력은 이미 국가사업을 통해 평가받았다. 여기에 광양만권의 산업적 특성과 동부권의 의료수요를 결합한다면 의과대학과 대학병원은 교육기관을 넘어 남해안권의 필수·공공의료를 책임지는 핵심 거점이 될 수 있다.
이번 결과는 어느 한 사람의 공으로 돌릴 수도 없다. 국립순천대 구성원은 물론 순천시를 비롯한 동부권 지방자치단체장과 지방의회, 지역 국회의원, 시민사회, 그리고 무엇보다 오랜 세월 의료 불균형을 감내해 온 주민들이 함께 만들어낸 결실이다. 폭우 속에서도 의대 유치를 외치고 거리에서 목소리를 냈던 지역민들의 절박함 역시 오늘의 결과를 만든 힘이었다.
그러나 아직 축포를 터뜨리기에는 이르다.
이번 선정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정부의 최종 승인과 의대 정원 확보가 남아 있고, 더욱 중요한 것은 제대로 된 대학병원을 건립해 중증·응급·소아·외상 등 필수의료 체계를 실제로 구축하는 일이다. 의대만 있고 대학병원이 없다면 동부권 주민들이 요구해 온 의료 공백 해소는 완성됐다고 할 수 없다.

▲ 지난 7월 26일 공동성명서 발표 후 기념사진 촬영
또 하나의 교훈도 반드시 남겨야 한다. 국가의 의료정책에 다시는 지역 정치논리가 개입해선 안 된다. 의과대학과 대학병원은 선거의 전리품도, 지역 간 나눠먹기의 대상도 아니다. 객관적인 의료수요와 인구, 산업구조, 응급의료 접근성, 교육·연구 역량을 놓고 판단해야 한다.
이제 경쟁은 끝났다. 서부권 역시 필요한 필수·공공의료와 거점병원 확충을 통해 함께 살 길을 찾아야 한다. 동부권의 의료권을 세우는 일이 서부권의 의료권을 빼앗는 일이 돼서는 안 된다.
오늘의 순천대 후보대학 선정이 진정한 ‘사필귀정’으로 역사에 남으려면 마지막 관문인 정부 승인, 의대 정원 확보, 그리고 대학병원 설립까지 이어져야 한다.
기자는 이번 결정을 환영한다. 동시에 정치가 다시 의료를 흔들지 않는지, 정부와 대학·지자체가 약속한 대학병원을 제대로 세우는지 끝까지 지켜볼 것이다. 지역민이 원하는 것은 승리의 깃발이 아니라, 위급한 순간 자신의 고향에서 생명을 지킬 수 있는 대학병원이다. 그것이 이번 선정이 우리에게 남긴 가장 분명한 답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