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웰라이프타임즈 건강기획] 음식궁합, 과학으로 다시 보다 4편

당근의 베타카로틴은 지용성 성분…지방과 함께 섭취하면 흡수에 유리

가열·으깨기·분쇄 등 식품 구조 변화도 베타카로틴 이용률에 영향

‘기름에 볶으면 무조건 몇 배 좋아진다’는 식의 단순화는 경계해야

[웰라이프타임즈 건강기획] 음식궁합, 과학으로 다시 보다

 

4편 당근은 생으로 먹을까, 기름에 볶아 먹을까…베타카로틴 흡수의 차이

 

당근은 생으로 먹는 것보다 기름에 볶아 먹는 것이 좋다는 이야기를 흔히 듣는다. 그 이유로 가장 많이 언급되는 것이 당근의 대표적인 영양성분인 베타카로틴(β-carotene)​이다.

 

실제로 베타카로틴은 지방과 함께 섭취하면 체내 흡수에 유리하다. 당근을 익히거나 으깨고 갈아 식품의 구조를 변화시키는 것도 베타카로틴이 소화 과정에서 이용되는 데 영향을 줄 수 있다.

 

하지만 이를 ‘당근은 반드시 기름에 볶아야 한다’거나 ‘볶으면 베타카로틴 흡수가 무조건 몇 배 높아진다’고 받아들이는 것은 정확하지 않다.

 

연구 결과를 종합하면 당근 음식궁합의 핵심은 단순한 ‘당근+기름’의 조합보다는 식품의 구조와 조리·가공 상태, 함께 섭취하는 지방​에 있다.

 

당근과 적절한 지방의 섭취를 표현한 이미지 (AI 제작)

 

당근의 주황색을 만드는 ‘베타카로틴’

베타카로틴은 당근을 비롯해 주황색·황색·녹색 채소 등에 들어 있는 카로티노이드 계열 색소다.

우리 몸에서 비타민 A로 전환될 수 있어 프로비타민 A 카로티노이드라고 부른다.

 

미국 국립보건원(NIH) 건강보조식품국(ODS)은 비타민 A가 정상적인 시각 기능과 면역 기능, 성장과 발달, 세포 분화 등에 관여하는 필수 영양소라고 설명한다.

 

NIH에 따르면 사람은 식품에 들어 있는 베타카로틴의 약 10~30%를 흡수하는 것으로 추정되며, 조리와 열처리는 식품 속 베타카로틴의 생체이용률을 높일 수 있다.

 

NIH가 제시한 영양성분 자료를 보면 생당근 반 컵, 약 64g에는 비타민 A가 459㎍ RAE(레티놀 활성당량) 들어 있다. 미국 식품의약국(FDA)이 사용하는 하루 영양성분 기준치의 약 51%에 해당한다.

 

당근이 대표적인 프로비타민 A 공급 식품으로 꼽히는 이유다.

 

왜 지방과 함께 먹으면 좋을까

베타카로틴은 물보다 지방에 잘 녹는 지용성 성분이다.

 

음식으로 섭취한 카로티노이드가 소장에서 흡수되려면 소화 과정에서 지방 등과 함께 미셀(micelle)을 형성해 장세포가 이용할 수 있는 상태가 되는 과정이 중요하다.

 

따라서 카로티노이드가 풍부한 채소를 적절한 지방과 함께 먹으면 체내 이용에 유리할 수 있다.

이러한 원리는 여러 연구를 종합한 분석에서도 확인됐다.

 

싱가포르국립대학교(National University of Singapore) 식품과학기술학과 연구진은 식이 지방이 카로티노이드의 생체접근성과 생체이용률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한 체계적 문헌고찰과 메타분석을 2022년 국제학술지 「뉴트리션 리뷰스(Nutrition Reviews)」에 발표했다.

 

연구진은 스코퍼스(Scopus), 펍메드(PubMed), 엠베이스(Embase), CINAHL, 코크란 라이브러리 등 5개 데이터베이스를 검색해 시험관 연구 27건과 무작위 대조시험 12건을 분석했다.

 

사람 대상 무작위 대조시험을 종합한 결과, 카로티노이드가 풍부한 음식과 더 많은 양의 지방을 함께 섭취했을 때 카로티노이드 생체이용률이 높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불포화지방산이 풍부한 지방을 섭취한 경우 포화지방산이 많은 지방보다 카로티노이드 생체이용률 개선 효과가 더 크게 나타났다.

 

연구진은 카로티노이드가 풍부한 식품을 식이 지방, 특히 불포화지방산이 풍부한 지방과 함께 섭취하면 카로티노이드 흡수를 개선할 수 있다​고 결론 내렸다.

 

따라서 ‘당근을 적절한 지방과 함께 먹으면 베타카로틴 흡수에 도움이 된다’는 설명에는 상당한 과학적 근거가 있다.

 

익혀 으깬 당근과 생당근, 실제 흡수율 차이는

조리와 가공도 중요한 변수다.

2003년 「유럽영양학저널(European Journal of Nutrition)」에는 익혀 으깬 당근과 생으로 잘게 썬 당근의 베타카로틴 생체이용률을 비교한 연구가 발표됐다.

 

이스라엘 히브리대학교(Hebrew University of Jerusalem) 연구진 등이 참여한 이 연구는 회장루(ileostomy)를 가진 성인 8명​을 대상으로 진행됐다.

 

참가자들은 베타카로틴 15㎎이 포함된 익혀 으깬 당근 또는 생으로 잘게 썬 당근을 섭취했다. 두 시험식 모두 탈지 요구르트에 해바라기유 40g을 첨가해 제공했다.

 

24시간 동안 혈액과 회장루 배출물을 분석한 결과 연구진이 계산한 베타카로틴 흡수율은 익혀 으깬 당근 65.1%, 생으로 잘게 썬 당근 41.4%​였다.

 

익혀 으깬 당근을 섭취했을 때 베타카로틴 흡수율이 유의하게 높게 나타난 것이다.

그러나 이 연구에는 분명한 한계가 있다.

 

연구 대상자가 8명으로 적고, 일반적인 건강인이 아니라 회장루를 가진 사람을 대상으로 했다는 점이다. 또 두 종류의 당근 식사 모두 해바라기유 40g과 함께 제공됐다.

 

따라서 이 결과를 근거로 ‘익힌 당근은 생당근보다 누구에게나 1.5배 더 잘 흡수된다’고 일반화해서는 안 된다.

연구가 보여주는 것은 조리와 으깨기 같은 가공 과정이 베타카로틴의 이용 가능성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점이다.

 

베타카로틴 흡수를 막는 ‘식물 세포벽’

왜 이런 차이가 생길까.

2010년 영국 식품연구소(Institute of Food Research) 연구진이 「농업·식품화학저널(Journal of Agricultural and Food Chemistry)」에 발표한 연구는 그 이유를 식품의 미세구조에서 찾았다.

 

연구진은 생으로 간 당근과 익혀 으깬 당근을 섭취한 사람의 회장루 배출물을 이용해 소화 후 당근 조직의 변화를 관찰했다.

 

그 결과 소화 과정을 거친 뒤에도 생당근 조직과 온전한 식물 세포가 남아 있었으며, 세포벽이 온전한 세포 안에는 카로틴 입자가 남아 있는 반면 세포가 파괴된 곳에서는 카로틴 입자가 관찰되지 않았다.

 

연구진은 온전한 식물 세포벽 하나만으로도 카로틴이 세포 밖으로 빠져나오는 것을 제한하는 물리적 장벽 역할을 할 수 있다고 결론 내렸다.

 

이는 당근을 익히거나 으깨고 잘게 분쇄하면 베타카로틴의 체내 이용 가능성이 높아질 수 있는 이유 가운데 하나를 설명한다.

 

생당근 11%, 볶은 당근 75%…‘7배 흡수’는 사실일까

인터넷에서는 ‘당근을 기름에 볶으면 베타카로틴 흡수율이 7배 높아진다’는 표현도 쉽게 접할 수 있다.

이 수치와 관련된 사람 대상 연구가 실제로 존재한다.

 

영국 의학연구위원회 산하 MRC Human Nutrition Research 연구진은 안정동위원소로 표지한 당근을 이용해 생당근과 볶은 당근의 베타카로틴 생체이용률을 비교했다.

 

연구 결과는 2012년 「영국영양학저널(British Journal of Nutrition)」에 게재됐다.

 

연구진은 안정동위원소로 표지한 당근을 100g씩 나눠 소규모 건강한 성인 참가자에게 생으로 또는 볶은 형태로 제공하고, 섭취 후 3일 동안 혈중 베타카로틴과 레티놀의 변화를 추적했다.

 

분석 결과 순수 베타카로틴과 비교해 추정한 당근 유래 베타카로틴의 생체이용률은 생당근에서 약 11%, 볶은 당근에서 약 75%​였다.

 

베타카로틴이 비타민 A 형태인 레티놀로 전환되는 과정까지 고려한 레티놀 수율은 볶은 당근에서 생당근보다 약 6.5배 높게 계산됐다.

 

그러나 이 수치를 그대로 ‘당근은 볶으면 누구나 베타카로틴을 7배 더 흡수한다’고 표현하는 것은 정확하지 않다.

 

연구는 특정 품종과 양, 조리법, 지방을 포함한 시험식, 연구 대상자와 분석 방법 등 일정한 실험조건에서 진행됐다.

 

따라서 ‘11% 대 75%’는 해당 연구조건에서 얻어진 결과이지 모든 사람이 당근을 볶아 먹을 때 나타나는 보편적인 흡수율은 아니다.

 

다만 조리 방법이 당근의 베타카로틴 생체이용률을 크게 변화시킬 수 있다는 점을 보여주는 중요한 근거로 볼 수 있다.

 

‘당근주스’도 생당근보다 흡수율 높아

베타카로틴의 체내 이용을 높이는 데 반드시 열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2025년 「영양연구와실천(Nutrition Research and Practice)」에는 생당근과 신선한 당근주스의 베타카로틴 생체이용률을 비교한 국내 연구가 발표됐다.

 

연구는 경남대학교 식품영양학과 최미주·백주하·박은주 연구진이 수행했다.

 

건강한 성인 16명이 참여한 무작위 교차시험에서 참가자들은 각각 베타카로틴 25㎎에 해당하는 생당근 또는 신선한 당근주스를 섭취했다.

 

연구진은 섭취 전과 섭취 후 0.5시간, 1시간, 1.5시간, 2시간, 3시간, 4시간, 6시간, 8시간, 12시간, 24시간에 혈액을 채취해 베타카로틴 농도를 측정했다.

 

그 결과 당근주스를 섭취했을 때 최고 혈장 베타카로틴 농도는 생당근보다 2.33배 높았고, 전체적인 혈중 노출 정도를 나타내는 농도-시간 곡선 아래 면적(AUC)은 2.09배 높았다.

 

반면 혈장 알파카로틴과 다른 지용성 비타민, 항산화 능력에서는 두 군 사이에 유의한 차이가 확인되지 않았다.

 

연구진은 설탕을 첨가하지 않은 신선한 당근주스가 생당근보다 베타카로틴의 생체이용률을 높일 가능성이 있다고 결론 내렸다. 이 결과는 중요한 점을 보여준다.

 

베타카로틴의 체내 이용에는 가열뿐 아니라 갈거나 으깨 식물 조직의 구조를 변화시키는 과정도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기름은 많이 넣을수록 좋을까

그렇지는 않다.

 

베타카로틴이 지용성이라는 이유만으로 당근을 많은 양의 기름에 볶을 필요는 없다.

 

2000년 「영양학저널(The Journal of Nutrition)」에 발표된 카로티노이드 생체이용률 관련 리뷰에서는 당시 사람 대상 연구를 종합해 카로티노이드 흡수에 필요한 지방량이 비교적 적을 수 있으며 한 끼 약 3~5g 정도의 지방으로도 흡수가 가능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를 ‘베타카로틴 흡수를 위한 권장 지방량’으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2002년 터프츠대학교 진 메이어 USDA 노화영양연구센터 연구자의 리뷰 역시 약 3~5g이라는 수치를 언급하면서도, 사람에게 필요한 최적 지방량은 장기간의 용량-반응 연구 없이는 확정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또 2022년 싱가포르국립대학교 연구진의 메타분석에서는 지방 섭취량과 종류가 카로티노이드 흡수에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따라서 현재 근거를 토대로 ‘기름은 몇 g을 넣어야 한다’거나 ‘많이 넣을수록 좋다’고 정해 말하기는 어렵다.

기름은 에너지 밀도가 높은 식품인 만큼 베타카로틴 흡수를 이유로 필요 이상 많이 사용할 필요는 없다.

 

반드시 기름에 ‘볶아야’ 하는 것도 아니다

여기에서도 음식궁합을 정확히 이해할 필요가 있다.

 

카로티노이드가 지방과 함께 섭취될 때 흡수에 유리하다는 연구 결과가 당근을 반드시 프라이팬에서 기름과 함께 볶아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2022년 체계적 문헌고찰과 메타분석에서도 핵심은 카로티노이드가 풍부한 식품과 지방의 동반 섭취였다.

 

따라서 당근을 삶거나 찐 뒤 같은 식사에서 적절한 지방이 포함된 다른 식품을 섭취하는 방법도 가능하다.

 

생당근 샐러드에 소량의 식물성 기름을 이용한 드레싱을 곁들이거나 견과류 등 지방을 함유한 식품을 함께 먹는 것도 같은 원리를 활용하는 방법이다.

 

핵심은 ‘볶음’이라는 특정 조리법보다 베타카로틴이 식품 조직에서 얼마나 이용 가능한 상태가 되는지, 그리고 식사에 지방이 함께 포함돼 있는지​다.

 

그렇다면 생당근은 영양가가 낮을까

그렇지 않다.

 

미국 NIH 자료에서 생당근은 주요 비타민 A 공급 식품 가운데 하나로 제시된다.

 

생당근 반 컵은 미국 기준으로 비타민 A 하루 영양성분 기준치의 약 51%에 해당한다.

생당근 역시 베타카로틴과 식이섬유 등 다양한 영양성분을 제공한다.

 

조리나 가공이 베타카로틴의 생체이용률을 높일 수 있다는 사실과 생당근의 영양 가치가 낮다는 주장은 전혀 다른 이야기다.

 

따라서 당근을 생으로 먹는 방법과 익혀 먹는 방법 가운데 하나만 선택할 필요는 없다.

생당근과 조리한 당근을 식사 형태와 기호에 맞춰 다양하게 활용하는 것이 현실적이다.

 

“당근을 많이 먹으면 시력이 좋아진다”는 사실일까

당근과 관련해 가장 널리 알려진 이야기가 ‘눈에 좋다’는 것이다.

 

베타카로틴은 우리 몸에서 비타민 A로 전환될 수 있고, 비타민 A는 정상적인 시각 기능을 유지하는 데 반드시 필요한 영양소다.

 

NIH는 비타민 A가 망막에서 빛에 반응하는 단백질인 로돕신(rhodopsin)의 필수 구성 요소이며, 결막과 각막의 정상적인 기능 유지에도 관여한다고 설명한다.

 

비타민 A가 부족하면 야맹증 등 시각 이상이 나타날 수 있다.

 

그러나 여기에서 ‘비타민 A가 시각 기능에 필요하다’는 사실과 ‘당근을 많이 먹으면 정상 시력이 더 좋아진다’는 주장은 구분해야 한다.

 

비타민 A 결핍이 없는 사람이 당근을 많이 먹는다고 정상 시력이 계속 향상된다는 근거는 없다.

 

따라서 ‘당근은 눈에 좋다’는 말은 정상적인 시각 기능 유지에 필요한 비타민 A의 전구체인 베타카로틴을 공급하는 식품이라는 의미로 이해하는 것이 정확하다.

 

당근 음식궁합의 핵심은 ‘조리법’ 하나가 아니다

지금까지의 연구 결과를 종합하면 당근과 지방의 음식궁합에는 과학적인 근거가 있다.

 

베타카로틴은 지용성 카로티노이드이기 때문에 적절한 지방과 함께 섭취하면 흡수에 유리할 수 있다.

 

또 당근을 익히거나 으깨거나 갈아 식물 세포의 구조를 변화시키면 베타카로틴이 식품 조직에서 빠져나와 소화 과정에서 이용되기 쉬워질 수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생당근이 좋지 않은 것은 아니며, 모든 당근을 반드시 기름에 볶아 먹어야 하는 것도 아니다.

 

가장 정확한 결론은 다음과 같다.

 

생당근도 좋은 식품이다. 다만 베타카로틴의 체내 이용만을 놓고 보면 당근의 식품 구조를 조리·분쇄 등을 통해 변화시키고 적절한 지방과 함께 섭취하는 것이 유리할 수 있다.

 


음식궁합 팩트체크

당근 + 적절한 지방 → 근거 충분

 

“당근의 베타카로틴은 지방과 함께 섭취하면 흡수에 유리하다” → 근거 충분

“당근을 익히거나 으깨고 갈면 베타카로틴 이용률이 높아질 수 있다” → 근거 있음

“당근을 볶으면 베타카로틴이 무조건 7배 더 흡수된다” → 과장

“당근은 반드시 기름에 볶아 먹어야 한다” → 사실 아님

“기름은 많이 넣을수록 좋다” → 근거 부족

“생당근은 영양가가 낮다” → 사실 아님

 

다음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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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부와 멸치는 모두 칼슘을 섭취할 수 있는 식품이다. 그렇다면 두 식품을 함께 먹는 것 자체가 칼슘 흡수를 특별히 높이는 ‘궁합’이라고 할 수 있을까. 다음 편에서는 두부의 제조 방식에 따른 칼슘 함량 차이와 멸치의 칼슘 섭취 특성, 비타민 D와 칼슘 흡수의 관계를 중심으로 사실관계를 확인한다.

작성 2026.08.30 14:51 수정 2026.08.30 14:51

RSS피드 기사제공처 : 웰라이프타임즈 / 등록기자: 이장연 무단 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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