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항 여강이씨 달전재사’ 국가민속문화유산 지정…분암에서 재사로 변천 담아

회재 이언적 일가 묘소 관리 위해 조성…1754년 증축해 현재 재사 형태 갖춰

불교적 분암에서 문중 중심 유교 재사로 변화한 과정 건축과 기록에 남아

‘튼 ㅁ자형’ 배치와 이익공 구조 보존…여강이씨 문중 묘제도 이어져

조선시대 성리학자 회재 이언적과 그 일가의 묘소를 관리하고 제사를 지내기 위해 조성된 「포항 여강이씨 달전재사」가 국가민속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승려가 묘역을 지키던 작은 암자에서 출발해 문중의 제례와 학문·문화 활동을 담당하는 재사로 변화한 과정이 건축과 기록에 남아 있는 유산이다.

「포항 여강이씨 달전재사」 (사진=국가유산청 제공)

국가유산청은 경북 포항시에 있는 「포항 여강이씨 달전재사」를 국가민속문화유산으로 지정했다고 26일 밝혔다.

 

달전재사는 조선시대 성리학자인 회재 이언적(1491~1553)과 그 일가의 묘소를 관리하고 제사를 지내기 위해 조성된 건축물이다.

 

지정 개요에 따르면 달전재사는 17세기경 승려들이 선영을 지키던 10여 칸 규모의 작은 암자인 ‘소암(小庵)’에서 시작됐다. 1754년 옥성루와 양익실, 고사 등을 증축하고 대문채를 겸한 제수방 별채를 지으면서 20여 칸 규모로 확대됐다. 당시에는 달전암(達田庵)으로 불렸다.

 

양익실은 ‘ㅁ자형’ 건물 배치의 양쪽 공간으로 제사 준비와 문중 구성원의 숙소 등에 쓰였으며, 고사는 제사용 곡식 등을 보관하던 창고다.

 

국가유산청은 달전재사가 조선 후기 묘역 관리 방식과 문중 운영의 변화를 보여준다는 점을 주요 지정 가치로 들었다.

 

처음에는 승려가 묘역을 관리하고 조상의 명복을 기원하는 불교적 성격의 분암(墳庵)이었다. 이후 17세기 중엽부터 종법 질서가 확대되고 문중의 결속이 강화되면서 제사를 지내는 공간을 넘어 문중의 학문·문화 활동까지 담당하는 유교적 재사로 기능이 확대됐다는 설명이다.

 

이 같은 변화 과정은 문헌에서도 확인된다. 「달전암기(達田庵記)」와 「달전재사 상량문(達田齋舍 上樑文)」 등에 창건과 증축의 배경, 관리·운영 과정이 기록돼 있다.

 

건축 구성도 지정 가치를 뒷받침한다. 달전재사는 묘소와 1586년에 세운 신도비, 재사, 묘위토가 서로 연계된 구조를 갖추고 있다. 묘위토는 묘소 관리와 제사에 필요한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조성한 토지를 말한다.

 

건물 배치는 경북 북부 지역 재사 건축에서 나타나는 ‘튼 ㅁ자형’이다. ㄷ자와 일자형 또는 ㄱ자와 ㄴ자형 건물을 결합해 모서리 일부가 열린 ㅁ자 형태를 이룬다.

 

초기 분암의 흔적도 남아 있다. 승려가 생활하던 방에 불상을 모신 인법당 구조를 비롯해 기둥머리와 보를 연결하는 이익공 공포, 판재로 마감한 정침의 널반자 천장 등이 보존돼 있다.

 

1754년 증축한 옥성루에도 같은 이익공 공포 형식을 적용했다. 국가유산청은 이를 통해 초기 건축 양식이 후대 증축 과정에서도 이어졌다고 설명했다.

 

달전재사의 가치는 건축물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지정 개요에는 현재까지 여강이씨 문중이 고유한 묘제와 전통 의례를 이어오고 있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국가유산청은 이러한 전승이 조선시대 묘제 문화의 변화와 영남 지역 재사 건축의 특징을 함께 살펴볼 수 있는 근거라고 평가했다.

 

이번에 지정된 범위는 건축물 1동 186.82㎡와 토지 1필지 1,094㎡다. 소재지는 경북 포항시 남구 새마을로766번길 59다.

 

국가유산청은 앞으로 포항시와 소유자 등과 협력해 달전재사를 보존·관리하고 역사문화관광자원으로 활용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광고 배너

 

작성 2026.08.26 13:43 수정 2026.08.26 13:43

RSS피드 기사제공처 : 국가유산신문 / 등록기자: 이성희 무단 전재 및 재배포금지

해당기사의 문의는 기사제공처에게 문의

댓글 0개 (/ 페이지)
댓글등록- 개인정보를 유출하는 글의 게시를 삼가주세요.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