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관계, 시험대에 서다

왕이 5년 만의 단독 방한…미·중 경쟁과 북핵 사이에서 ‘전략적 균형’ 요구 커져

[이미지=시노인사이트]

 왕이 중국공산당 중앙외사판공실 주임 겸 외교부장이 8월 19일부터 이틀간 한국을 공식 방문했다. 중국 외교 수장의 단독 방한은 2021년 9월 이후 약 5년 만이다. 지난해 한중 정상 간 상호 방문으로 관계 복원의 물꼬를 튼 양국이 이제 선언을 넘어 구체적인 협력 단계로 나아갈 수 있을지 주목된다.

 왕 부장은 조현 외교부 장관과 회담하고 공식 만찬을 가진 데 이어, 20일 이재명 대통령을 예방하고 위성락 국가안보실장과도 만났다. 청와대는 이날 이 대통령과 왕 부장의 접견 일정을 공식적으로 공개했다. 오는 11월 중국 선전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앞두고 이루어진 만큼, 양국은 차기 한중 정상회담의 의제와 관계 개선의 후속 조치를 폭넓게 논의한 것으로 보인다. 

 이번 방한의 핵심은 단순한 양자 교류를 넘어 급변하는 동아시아 정세에 있다. 최근 미국은 북한과의 대화 가능성을 열어두며 한미연합훈련의 기간과 일부 야외기동훈련을 축소했다. 그러나 북한은 20일 단거리 탄도미사일 약 10발을 동해상으로 발사하며 군사적 압박을 이어갔다. 대화의 신호와 무력시위가 동시에 나타나는 불안정한 국면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앞서 광복절 경축사를 통해 한반도의 불안정한 정전체제를 평화체제로 전환하고, 오래된 전쟁을 끝내기 위한 당사국 간 논의를 시작하자고 제안했다. 정전협정 당사자인 미국·중국·북한과 실질적인 당사자인 한국이 참여하는 새로운 대화 틀을 염두에 둔 구상으로 해석된다.

 중국의 협력은 이러한 구상을 현실화하는 데 중요한 요소다. 중국은 북한의 최대 교역 상대이자 전통적 우호국이며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이다. 왕 부장은 지난 4월 평양을 방문해 최선희 북한 외무상과 회담하는 등 북중 간 전략적 소통도 이어왔다. 한국 정부로서는 중국이 북한을 즉시 협상장으로 끌어낼 수 있다고 기대하기보다, 북한의 추가 도발을 억제하고 대화 재개의 조건을 만드는 데 건설적인 역할을 하도록 설득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중국이 한국에 기대하는 방향은 한국의 구상과 완전히 일치하지 않는다. 중국은 한국이 미국과의 동맹을 유지하면서도 미·중 전략경쟁에서 일방적으로 한쪽을 선택하지 말아야 한다는 입장이다. 왕 부장은 이번 방한에서 한국이 진영 대립을 피하고 ‘전략적 자주성’을 발휘하기를 희망한다는 뜻을 전달했다. 중국은 한미일 안보협력이 북한 대응의 범위를 넘어 중국을 견제하는 지역 군사구조로 확대될 가능성을 경계한다. 로이터 보도

 반면 한국은 북핵과 미사일 위협이 지속되는 상황에서 한미동맹과 한미일 안보협력을 쉽게 약화시킬 수 없다. 중국과의 관계 개선이 중요하지만, 경제적 압박이나 외교적 요구에 따라 안보 원칙을 바꾸는 모습도 피해야 한다. 한국 외교가 직면한 과제는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기계적인 중간 지점을 찾는 것이 아니라, 사안별로 국익과 원칙을 분명히 제시하는 데 있다.

 경제 분야에서는 협력의 여지가 상대적으로 크다. 양국은 한중 자유무역협정 서비스·투자 후속 협상, 공급망 안정, 문화콘텐츠 교류, 지방정부 협력 등을 추진할 수 있다. 특히 전기차 배터리와 핵심광물, 반도체, 인공지능 분야는 경쟁과 협력이 동시에 존재하는 영역이다. 공급망을 어느 한 국가에 전적으로 의존하지 않으면서도 민간 교역과 기술 협력의 통로를 막지 않는 정교한 접근이 요구된다.

 내년은 한중 수교 35주년이다. 1992년 수교 이후 양국 관계는 교역 중심의 급속한 성장기를 거쳤지만, 사드 갈등과 미·중 경쟁, 북핵 문제를 지나면서 안보와 경제가 복잡하게 얽힌 관계로 변했다. 이제 과거처럼 경제협력이 정치·안보 갈등을 자동으로 해결해 줄 것이라고 기대하기 어렵다.

 따라서 양국은 정상회담과 외교장관 회담뿐 아니라 국방·통상·환경·문화 분야의 상시 협의체를 함께 가동해야 한다. 서해 해상 질서와 양국 국민의 안전, 문화콘텐츠 제한, 공급망 위험처럼 갈등이 발생하기 쉬운 사안에는 위기관리 연락망과 구체적인 처리 원칙이 필요하다. 관계가 좋을 때 협력 사업을 늘리는 것보다 관계가 나빠졌을 때 충돌을 통제할 장치를 마련하는 일이 더 중요하다.

 왕이 부장의 방한은 한중관계가 회복됐다는 최종 선언이 아니라, 회복 가능성을 시험하는 출발점에 가깝다. 한국은 중국과 협력하되 안보 주권과 국제규범을 분명히 지키고, 중국은 한국의 동맹 선택을 압박하기보다 예측 가능한 이웃으로서 신뢰를 보여야 한다.

 미·중 경쟁과 북핵 위기가 겹친 오늘의 동아시아에서 한국 외교에 필요한 것은 모호한 줄타기가 아니다. 협력할 사안과 양보할 수 없는 원칙을 구분하고, 미국·중국·일본·북한을 각각 연결할 수 있는 독자적인 외교 공간을 넓히는 일이다. 이번 한중 고위급 대화의 성패도 결국 공동성명이 아니라 앞으로 나타날 구체적인 행동으로 평가받게 될 것이다.

시노인사이트 편집부 기자 bats21@naver.com
작성 2026.08.21 02:08 수정 2026.08.21 0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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