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특집]1화 법은 넘쳐나는데, 왜 의식은 옅어지는가

 법을 지키는 것보다 법망을 피하는 것이 영리함으로 포장

여론 문화, 광장의 목소리는 누구의 것인가

형식은 진화했으나, 의식은 후퇴했는가

조선의 법전을 들여다보면 흥미로운 역설을 마주하게 된다. 경국대전 체제는 오늘날처럼 민법, 상법, 형법이 촘촘히 분화되어 있지 않았다. 그럼에도 그 사회를 지탱한 힘은 조문의 정교함이 아니라 예(禮)에 대한 내면화된 구속력이었다. 

 

왕조차 경연에서 신하들과 마주 앉아 배움을 청하고, 삼사의 간쟁을 받아들여야 했으며, 자신이 죽은 뒤 남을 사초조차 미리 열람할 수 없었다. 법 조문이 단순했던 만큼, 규범을 지키는 것에 대한 사회적 합의와 자각은 오히려 두터웠다.

 

오늘날은 정반대의 풍경이다. 법전은 두꺼워지고 조항은 세분화되었지만, 그 법을 대하는 태도는 갈수록 가벼워지고 있다는 인상을 지우기 어렵다.

 

준법의식, 법 앞의 태도가 달라졌다

 

조선의 관리들은 상피제로 인해 연고지 근무 자체가 제한되었고, 인사 임명마저 대간의 서경을 거쳐야 했다. 이는 단순한 절차가 아니라 "사적 이익이 공적 권한을 침범해서는 안 된다"는 의식이 제도로 굳어진 결과였다.

 

반면 오늘날에는 규정과 절차가 훨씬 정교해졌음에도 불구하고, 그 틈새를 찾아내 법의 정신을 비켜가려는 시도가 오히려 익숙한 풍경이 되었다. 준법은 '걸리지 않는 기술'로 여겨지고, 법을 지키는 것보다 법망을 피하는 것이 영리함으로 포장되곤 한다. 

 

법 조항의 수는 늘었지만, 법을 대하는 마음가짐은 오히려 형식적인 것으로 축소된 것은 아닐까.

 

여론 문화, 광장의 목소리는 누구의 것인가

 

조선에서 신하가 왕에게 상소를 올리는 행위는 목숨을 건 책임의 발화였다. 자신의 이름을 걸고, 자신의 관직과 안위를 걸고 하는 발언이었기에 그 무게가 남달랐다.

오늘날 온라인 공간의 여론은 익명성이라는 방패 뒤에서 형성된다. 책임질 필요 없는 발언은 쉽게 확산되고, 사실 여부보다 자극과 

동조가 여론의 향방을 좌우하는 경우가 많다. 

참여의 문턱은 역사상 가장 낮아졌지만, 그 참여에 따르는 책임의 무게는 오히려 가장 가벼워진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는 셈이다.

 

형식은 진화했으나, 의식은 후퇴했는가

 

물론 이런 비교가 과거를 미화하는 함정에 빠져서는 안 된다. 조선의 예법은 신분제라는 구조적 억압 위에 세워진 것이었고, 오늘날의 준법의식 저하 역시 급격한 사회 변화와 다원화된 가치관이라는 배경을 갖고 있다. 단순 비교로 "옛날이 나았다"고 결론짓는 것은 성급하다.

다만 하나는 분명해 보인다. 

 

법과 제도가 아무리 정교해져도, 그것을 지탱하는 시민 개개인의 책임 의식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법은 형해화된다. 

 

조선의 법이 단순함 속에서도 작동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 법을 만든 사람도 그 법 위에 있지 않다는 믿음이 사회 전반에 공유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질문은 "법을 몇 개나 더 만들 것인가"가 아니라, "우리는 스스로 만든 법 앞에 얼마나 진지한가"일지도 모른다.

 

법 앞의 평등은 민주주의와 법치주의가 추구해야 할 최고의 가치이자 지향점입니다. 그러나 법문(Text)에 적힌 평등이 현실(Reality)에서 자동으로 구현되는 것은 아니다.

이러한 의구심을 해소하고 법의 실질적 평등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사법 시스템의 투명성 강화, 전관예우 근절, 법률 구조(국선변호 등) 제도의 내실화, 그리고 권력에 휘둘리지 않는 독립적이고 공정한 법 집행이 지속적으로 요구된다. 

       

 

작성 2026.08.17 14:56 수정 2026.08.17 1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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