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부가 수도권 주택공급을 앞당기기 위해 재개발 사업의 첫 관문인 조합설립부터 자금조달, 이주, 착공에 이르는 전 과정을 손질한다. 조합설립 동의율은 현행 75%에서 70%로 낮추고 이주비 대출 규제도 개선한다.
조기에 착공하는 사업장에는 취득세 감면과 임대주택 인수가격 상향,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이자 지원, 개발부담금 감면 등을 집중한다. 장기간 표류하는 도심 재개발 사업의 사업성을 끌어올리고 시간을 단축해 실제 주택공급으로 이어지게 하겠다는 전략이다.
정부가 지난 13일 발표한 ‘전월세 및 매매시장 안정을 위한 주택 신속공급 방안’에서 재개발·재건축은 수도권 주택공급 정상화를 이끌 핵심 수단 가운데 하나로 제시됐다.
정부의 문제의식은 분명하다. 수도권 주택공급의 80% 이상을 민간 부문이 담당하는 현실에서 공공택지만으로 단기간에 공급 부족을 해소하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판단이다. 이에 정비사업의 시간을 줄이고 사업비 부담을 낮추는 쪽으로 정책의 무게중심을 옮겼다.
조합설립 동의율 75%→70%…첫 관문부터 낮춘다.
이번 대책에서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재개발 조합설립 동의율 완화다.
정부는 재개발 조합설립에 필요한 동의율을 기존 75%에서 70%로 5%포인트 낮추기로 했다.
재개발 사업은 정비구역 지정 이후 조합설립, 사업시행인가, 관리처분인가, 이주·철거, 착공 순으로 진행된다. 이 가운데 조합설립 단계에서 토지등소유자의 동의를 확보하는 과정은 사업기간을 좌우하는 첫 번째 고비로 꼽혀 왔다.
현장에서는 몇 %포인트의 동의를 추가로 확보하기 위해 수개월에서 수년을 보내는 사례도 적지 않았다. 정부가 동의율 기준을 낮춘 것은 이 단계에서 장기간 사업이 멈춰 서는 문제를 줄이겠다는 의미다.
특히 노후주택 비중이 높은 서울과 수도권 도심에서는 새 택지를 확보하기가 쉽지 않다. 기존 주거지를 정비해 주택을 공급하는 재개발이 사실상 도심 공급 확대의 핵심 축으로 평가되는 이유다.
동의율 완화가 실제 사업기간 단축으로 이어진다면 정비구역 지정 이후에도 조합설립 단계에서 장기간 머물렀던 사업장에는 상당한 변화가 예상된다.
다만 조합설립이 끝났다고 곧바로 착공에 들어가는 것은 아니다. 사업시행인가와 관리처분인가, 이주와 철거 등 넘어야 할 절차가 여전히 많다. 정부가 동의율 완화와 함께 인허가, 금융지원, 사업비 절감 대책을 한꺼번에 내놓은 배경도 여기에 있다.
## 재개발·재건축 이주비 대출 LTV 산정방식 개선
조합원이 실제 사업 과정에서 체감하는 금융 부담도 낮춘다.
정부는 재개발·재건축 이주비 대출의 주택담보인정비율(LTV) 산정방식을 개선하기로 했다.
재개발 사업이 관리처분인가를 지나 본격적인 이주 단계에 들어서면 조합원은 기존 주택을 비우고 임시 거처를 마련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필요한 이주비를 제때 조달하지 못하면 조합원 개인의 부담을 넘어 사업 전체 일정이 늦어질 수 있다.
이주는 철거와 착공을 잇는 연결고리다. 한 곳에서 이주가 늦어지면 철거가 밀리고, 철거가 밀리면 착공 역시 뒤로 미뤄진다.
정부는 이주비 대출의 LTV 산정방식을 합리화해 정비사업 과정에서 발생하는 자금조달 애로를 줄일 계획이다.
단순한 금융지원책으로만 볼 수 없는 이유다. 이주비 조달 여건을 개선해 사업 지연을 막고, 결과적으로 주택공급 시점을 앞당기겠다는 정책적 계산이 깔려 있다.
정부가 공개한 주택 신속공급 방안 인포그래픽에서도 재개발·재건축 지원책으로 동의율 완화와 세제·금융지원, 취득세 및 이주비 지원이 함께 제시됐다.
## 현금청산 부동산, 2년 내 착공하면 취득세 감면
재개발 사업시행자의 세금 부담도 덜어준다.
정부는 재개발사업 시행자가 현금청산자로부터 취득하는 부동산에 대해 취득 후 2년 이내 착공하면 취득세를 감면하기로 했다.
특히 신규 관리처분인가 사업장은 2027년까지 취득세를 면제한다. 2028년에는 취득세의 75%를 감면한다.
재개발 과정에서는 조합에 참여하지 않고 현금으로 보상받는 현금청산자가 발생할 수 있다. 사업시행자는 사업을 계속 추진하기 위해 해당 부동산을 취득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취득세는 고스란히 사업비 부담으로 돌아온다.
정부는 이 비용을 낮추되 ‘조기 착공’이라는 조건을 달았다. 세금을 깎아주는 대신 사업자가 착공 시기를 앞당기도록 유도하겠다는 것이다.
지원 시한을 명확히 설정한 점도 주목된다. 사업을 서둘러 착공할수록 혜택이 커지는 구조다. 정비사업의 속도를 정책적으로 끌어올리겠다는 의도가 선명하다.
## 2028년 내 착공하면 임대주택 인수가격 80%→100%
재개발·재건축 사업에서 공공이 인수하는 임대주택 가격 기준도 손본다.
정부는 2028년 안에 착공하는 재개발·재건축 사업의 임대주택 인수가격을 기본형 건축비의 80%에서 100%로 올리기로 했다.
정비사업 과정에서 공급되는 임대주택의 인수가격이 높아지면 사업시행자 입장에서는 수입이 늘어난다. 그만큼 사업성 개선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정부는 이 역시 조기 착공을 끌어내기 위한 인센티브로 활용한다.
2028년까지 착공 시점을 앞당긴 정비사업장은 기존보다 높은 가격으로 임대주택을 인수받을 수 있다. 사업성이 낮아 속도를 내지 못했던 사업장에는 적지 않은 유인이 될 수 있다.
최근 재개발 현장에서는 공사비와 금융비용, 각종 부담금이 동시에 오르면서 사업성이 악화하는 문제가 반복돼 왔다. 사업성이 나빠지면 조합원 분담금이 늘고, 갈등이 커지면서 일정도 늦어진다.
정부는 임대주택 인수가격 상향을 통해 이 같은 비용 부담의 일부를 덜겠다는 방침이다.
## 서울·경기 2027년 착공하면 PF 대출이자 1%포인트 지원
금융비용도 직접 낮춘다.
재개발 사업장이 적용 요건을 충족하면 일반 주택사업에 제공되는 금융·부담금 지원 역시 공급 촉진 수단으로 활용할 수 있다.
정부는 서울과 경기에서 2027년 안에 착공하는 주택사업에 PF 대출이자 1%포인트를 보조한다.
2028년 안에 착공하는 사업에는 0.5%포인트를 지원한다.
고금리와 공사비 상승으로 정비사업의 금융비용 부담이 커진 상황에서 이자비용 일부를 직접 덜어 조기 착공을 유도하겠다는 것이다.
PF 금융은 규모가 큰 재개발·재건축 사업에서 특히 중요하다. 사업기간이 길어질수록 금융비용은 눈덩이처럼 불어난다. 늘어난 금융비용이 다시 전체 사업비를 끌어올리고, 사업비 증가는 착공을 지연시키는 악순환으로 연결될 수 있다.
정부는 이 악순환을 끊기 위해 대규모 PF 보증과 자금지원도 병행한다.
부동산 PF 보증·자금지원 규모는 기존 26조3000억원에서 47조8000억원+α로 확대한다. PF 보증은 올해 23조원, 내년 33조원 규모로 집중 공급할 계획이다.
정비사업을 위한 별도의 보증상품도 주택금융공사를 통해 신설한다.
## 사업승인 앞당기면 기부채납 부담도 낮춘다
정부는 주택사업의 기부채납 부담도 한시적으로 완화한다.
수도권에서 2027년 안에 주택법상 사업승인을 받은 사업장은 기부채납 부담을 4%포인트 완화한다.
2028년에 사업승인을 받은 사업장은 2%포인트를 낮춰준다.
재개발은 사업 유형과 적용 법령에 따라 개별 사업의 적용 여부와 범위가 달라질 수 있다. 그러나 공급사업자의 전반적인 부담을 줄여 사업 추진 속도를 높이겠다는 정부의 정책 방향은 분명하다.
소형주택 공급을 확대하는 정비사업에는 별도의 기부채납 완화책도 적용한다.
정부는 소형주택을 전체 세대수의 3분의 2 이상 공급하는 사업에 대해 공원·녹지 기부채납 기준을 세대당 3㎡에서 2㎡로 낮춘다.
이 조치는 5년간 한시적으로 시행한다.
사업자는 기부채납 부담을 줄여 사업성을 높일 수 있다. 정부는 이를 통해 도심에서 필요한 소형주택 공급도 함께 늘어날 것으로 기대한다.
## 2027년 착공 주거시설 개발부담금 100% 면제
착공을 서두르는 사업장에는 개발부담금 혜택도 돌아간다.
정부는 2027년 안에 착공하는 전국 주거시설의 개발부담금을 100% 면제하기로 했다.
2028년에 착공하는 사업은 개발부담금의 50%를 감면한다.
취득세와 임대주택 인수가격, PF 대출이자 지원과 마찬가지로 착공 시점이 빠를수록 혜택이 커진다.
이번 대책의 성격을 가장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정부는 더 이상 정비구역 지정이나 사업계획 수립 자체만으로 공급 성과를 판단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실제 주택공급으로 이어지는 ‘착공’까지 얼마나 빨리 도달하느냐에 정책의 초점을 맞춘 셈이다.
## 정비사업 보증상품 신설…금융지원 연결고리 강화
재개발 사업의 자금조달을 뒷받침하기 위한 금융제도도 보강한다.
정부는 주택금융공사를 통해 정비사업 보증상품을 신설한다.
정비사업은 짧게 끝나는 사업이 아니다. 초기 사업비부터 이주비와 철거비, 공사비까지 막대한 자금이 단계적으로 투입된다.
금융기관 역시 인허가 진행 상황과 분양성, 조합의 사업성 등을 종합적으로 따져 자금을 공급한다. 시장 상황이 나빠지면 사업성이 있는 현장조차 자금을 구하지 못해 멈춰 설 수 있다.
정부가 공적 보증을 확대하면 정상적인 사업성을 갖춘 사업장이 금융시장 경색으로 자금조달에 어려움을 겪는 문제를 줄이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주거사업장에 대한 자기자본비율 규제 도입 시점도 늦춘다.
정부는 당초 2027년으로 예정됐던 규제 도입을 2029년으로 한시 유예한다.
공급시장이 회복되는 과정에서 새로운 자본규제가 사업 추진의 또 다른 걸림돌이 되지 않도록 시행 시기를 늦춘 조치다.
## 재개발 대책, ‘동의율→자금조달→착공’ 전 과정 겨냥
이번 대책의 핵심은 규제 하나를 풀어주는 데 있지 않다.
재개발 사업의 전 과정을 하나의 흐름으로 보고 각 단계의 병목을 동시에 제거하겠다는 것이 정부 전략이다.
초기 단계에서는 조합설립 동의율을 75%에서 70%로 낮춰 사업 진입 속도를 높인다.
사업 추진 과정에서는 이주비 대출 LTV 산정방식을 개선해 조합원과 사업장의 자금 부담을 줄인다.
관리처분 이후에는 현금청산 부동산에 대한 취득세를 감면한다. 사업성 측면에서는 임대주택 인수가격을 높인다.
착공 단계에서는 PF 금융지원과 대출이자 보조, 개발부담금 감면 등을 통해 비용 부담을 낮춘다.
한마디로 ‘조합설립→사업비 조달→관리처분→이주→착공’으로 이어지는 사업의 연결고리마다 지연 요인을 걷어내겠다는 것이다.
정부가 목표로 삼은 것은 인허가 건수의 증가가 아니다. 실제 공사에 들어가는 시점을 앞당겨 시장에서 체감할 수 있는 공급으로 연결하는 데 있다.
## 관건은 실제 사업기간 얼마나 줄어드느냐
정책의 방향은 명확하다. 그러나 성패는 결국 현장에서 판가름 난다.
정비사업 규제 완화가 실제 수도권 주택공급 증가로 이어지려면 사업 현장에서 체감할 수 있을 정도로 사업기간이 줄고 사업성이 개선돼야 한다.
재개발은 이해관계자가 많다. 토지와 건물의 권리관계가 복잡하고 사업장마다 사업성도 크게 다르다. 같은 제도를 적용하더라도 사업 속도가 똑같을 수 없는 이유다.
조합설립 동의율 완화는 초기 단계의 시간을 줄이는 효과가 예상된다. 그러나 조합설립 이후 사업시행인가와 관리처분인가, 이주, 철거가 얼마나 신속하게 이어지느냐가 더 중요할 수 있다.
정부도 이런 점을 의식해 공급 일정 관리체계를 강화한다.
‘범정부 주택 신속공급 점검회의’를 신설하고 국무총리가 직접 공급 일정을 점검하기로 했다.
국무조정실 국무2차장이 주재하는 ‘주택 신속공급 실무회의’와 국토교통부 1차관이 단장을 맡는 ‘신속 공급 혁신단’도 가동한다.
국무조정실에는 ‘주택 신속공급 점검팀’을 새로 둔다. 주택공급 상황판을 활용해 사업별·지구별 진행 상황을 주 단위로 관리할 예정이다.
정책을 발표하는 데서 끝내지 않고 실제 사업이 어느 단계에 와 있는지를 지속적으로 추적하겠다는 의미다.
## 재개발 조합·소유자가 확인해야 할 5가지 변화
이번 대책 가운데 재개발 사업과 직접적인 연관성이 높은 변화는 크게 다섯 가지다.
첫째, 조합설립 동의율이 75%에서 70%로 낮아진다.
사업 초기 단계에서 동의율 확보 부담을 줄이고 조합설립 속도를 높이기 위한 조치다.
둘째, 이주비 대출 LTV 산정방식이 개선된다.
관리처분 이후 조합원이 이주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금융 부담을 완화하고 자금조달 문제로 사업이 늦어지는 것을 줄이는 데 초점을 맞췄다.
셋째, 현금청산 부동산의 취득세가 감면된다.
재개발 사업시행자가 현금청산자로부터 취득한 부동산을 2년 이내 착공할 경우 세제혜택을 받을 수 있다. 신규 관리처분인가 사업장은 2027년까지 취득세를 면제하고 2028년에는 75%를 감면할 예정이다.
넷째, 2028년 내 착공하는 정비사업의 임대주택 인수가격이 올라간다.
기본형 건축비의 80%에서 100%로 상향해 사업성을 지원한다.
다섯째, 금융·부담금 지원이 조기 착공과 연계된다.
서울·경기에서는 2027년 안에 착공하는 사업에 PF 대출이자 1%포인트를 지원한다. 2028년 내 착공 사업에는 0.5%포인트를 지원한다. 일정 요건을 충족하는 주거시설에는 개발부담금 감면도 적용된다.
정부 대책이 계획대로 시행된다면 재개발 시장을 바라보는 기준도 달라질 가능성이 크다.
앞으로는 단순히 정비구역으로 지정됐는지만 볼 것이 아니라 조합설립과 관리처분 절차가 어디까지 진행됐는지, 2027~2028년 조기 착공 인센티브를 받을 수 있는 사업장인지가 사업 속도와 사업성을 가르는 핵심 변수가 될 전망이다.
김윤덕 국토교통부 장관은 주택공급 정상화를 위해 공공이 해야 할 일은 더욱 신속하게 추진하고, 민간이 잘할 수 있는 분야는 과감히 지원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
결국 이번 재개발 대책의 승부처는 정책의 숫자가 아니다.
조합설립 동의율을 5%포인트 낮춘 것이 실제 조합설립을 얼마나 앞당기느냐, 금융·세제 지원이 사업비 부담을 얼마나 낮추느냐, 그리고 그 효과가 관리처분과 이주를 거쳐 실제 착공으로 얼마나 빨리 이어지느냐가 핵심이다.
정부도 이를 의식하고 있다. 대책 발표에 그치지 않고 사업별 진행 상황을 지속적으로 확인하겠다는 방침이다.
수도권 주택공급을 둘러싼 시장의 관심은 이제 ‘얼마나 많은 사업을 발표했느냐’보다 ‘얼마나 많은 현장이 실제 착공에 들어가느냐’로 이동할 가능성이 크다. 이번 대책의 성패 역시 그 지점에서 판가름 날 전망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