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종양 내부의 복잡한 생태계를 공간 단위로 정밀하게 분석해 환자별 치료 결과를 예측하는 혁신적 인공지능 플랫폼이 제시됐다.
스위스 로잔 연방 공과대학교(EPFL) 컴퓨터·커뮤니케이션과학대학 및 생명과학대학 샬럿 부네(Charlotte Bunne) 교수 연구팀은 암 조직 내부 세포와 단백질의 위치적 배열, 데이터 간 상호작용을 통합 분석하는 파운데이션 AI 모델 ‘버추스(VirTues, Virtual Tissues)’를 구현했다고 밝혔다. 해당 연구는 국제적 권위를 지닌 학술지 ‘네이처’에 정식 게재되며 학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1만 2천 개 조직 지도 학습한 '버추스(VirTues)', 맞춤형 암 치료 반응 예측 가능성 제시
기존 암 진단 및 분석 방식은 주로 암세포의 유전자 변이나 특정 세포 유형의 존재 여부에 초점을 맞춰왔다. 하지만 종양은 암세포 단독으로 존재하지 않으며, 주변을 둘러싼 면역세포, 혈관, 결합조직 등 다양한 요소들이 유기적인 생태계를 형성한다. 동일한 종양 세포 구성을 가진 환자라 하더라도 세포가 어느 위치에 분포하며, 주변 성분들과 어떤 방식으로 연결되어 있는지에 따라 약물 및 치료법에 대한 반응이 완전히 달라질 수 있다.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고자 등장한 '공간 단백체(spatial proteomics)' 분야는 조직 내 수십 종의 단백질 분포와 세포의 지형적 위치를 정밀하게 추적한다. 그러나 연구팀에 따르면, 연구마다 활용하는 단백질 분석 패널과 암종의 특성이 제각각이어서 대규모 데이터를 하나로 융합하고 표준화하는 작업에 커다란 어려움이 존재했다.
공간 단백체 기술과 트랜스포머 아키텍처의 결합, 단순 분석 넘어 '가상 환자' 구현 목표
EPFL 연구진은 이 같은 한계를 뛰어넘기 위해 5,000명이 넘는 환자군과 31개 임상 코호트로부터 추출한 1만 2,000여 개의 조직 이미지를 집대성하여 세계 최대 규모의 데이터셋을 구축했다. 이를 학습한 '버추스'는 언어 모델이 문맥 속 단어의 관계를 다루듯 단백질과 세포, 조직의 공간적 맥락을 종합적으로 이해하도록 제작됐다.
특히 버추스는 새로운 차원의 트랜스포머(Transformer) 아키텍처를 도입하여 각 연구마다 서로 다른 단백질 항목을 측정하더라도 단일 모델 내에서 유연하게 수용할 수 있다. 데이터가 새로 추가될 때마다 매번 모델을 다시 구축할 필요 없이 기존 학습 체계를 지속 확장하는 구조다. 이로 인해 임상 현장에서는 서로 다른 기관의 조직 샘플을 동일 선상에서 대조하고 신속히 검증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연구팀의 요한 웬크스턴(Johann Wenckstern) 연구원은 표준화된 지도를 바탕으로 여러 연구 결과를 즉각 비교·검증할 수 있는 유연성이 버추스의 핵심 동력이라고 평가했다. 이번 기술은 단순히 세포 구성을 나열하는 수준을 넘어, 치료 반응성 및 질병 진행 방향을 결정짓는 핵심 '공간 바이오마커'를 포착하는 데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국제 학술지 네이처 게재…세포 간 상호작용 분석으로 암 치료 패러다임 전환 예고
나아가 이번 연구는 5개년 장기 과제인 ‘가상 환자 랩(Virtual Patient Labs)’ 프로젝트의 중추 역할을 담당한다. 연구진은 병리 검사, 유전체 데이터, 임상 기록과 공간 조직 정보 등을 종합적으로 결합하여 컴퓨터상에 개별 환자의 생물학적 상태를 재현하는 ‘가상 환자’ 시스템을 최종 목표로 삼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번 성과가 단순한 암 진단 보조를 넘어 정밀 종양학 위원회 등 실제 의료 현장에서 개인 맞춤형 치료 전략을 결정하는 핵심 플랫폼으로 자리잡을 것이라 내다보고 있다.
암 연구의 패러다임이 단순 세포 분류에서 종양 내부의 '공간 생태계'를 해석하는 방향으로 고도화되고 있다. AI 기술과 공간 단백체학의 융합으로 탄생한 '버추스'는 임상 현장에서 암 치료의 성공률을 극대화하고 환자 맞춤형 치료법을 선제적으로 찾아내는 정밀의료의 핵심 거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