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의 가치를 만드는 사람들(문경희 간호사·작가 편)

다 깨진 인생도 맞춰보니 걸작이었다. 호흡이 있는 한 기적은 계속됩니다

최고의 삶은 아니지만, 차선의 삶도 이토록 눈부십니다

의술이 치료의 한계를 선언할 때, 사람과 사람 사이의 진짜 ‘치유’가 시작된다

▲ 오늘을 살아내는 보통의 당신, 참 눈부시고 귀합니다. [사진=문경희 작가]

 

첫 번째 안녕(安寧) : 웃음을 주던 이의 웃을 수 없던 날들

오래전, 무대 위를 날아다니던 그녀를 기억한다. 웃음치료 강사이자 간호사로 무대에 서서 “웃을 일이 없다고요? 웃다 보면 웃을 일이 생깁니다!” 하며 좌중을 압도하던 그녀의 눈빛은 청량한 에너지로 가득 차 있었다.

 

온 무대를 누비며 절망에 빠진 이들에게 웃음을 전파하던 문경희 간호사의 삶은, 그러나 그녀가 외치던 긍정의 문장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27년 동안 병원과 강연 현장에서 환자와 사람들의 몸과 마음을 돌봐온 베테랑 간호사였지만, 그녀 역시 뇌종양 진단을 받고 머릿속에 시한폭탄을 안은 채 6년 동안 두 차례의 무릎 수술과 귀 수술, 교통사고를 거치며 한순간에 '중증 환자'의 자리에 서게 되었다.

 

“뇌종양 진단을 받은 후 머릿속 불안감과 초긴장 속에서 하루하루를 살았습니다. 죽음은 더 이상 타인의 이야기가 아니었죠. 겹겹이 밀려오는 수술과 집에 난 화재, 참혹한 교통사고까지… 비바람 속에서 삶의 자존감은 밑바닥까지 치달았고, '이대로 아침이 오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절망만 남았습니다. 산산조각 난 내 인생 앞에서는 남들에게 웃으라고 외쳤던 지난날조차 부끄러움이 되었고, 마침내 삶을 내려놓고 끝낼 명분은 차고 넘쳤습니다.”

 

두 번째 안녕(安寧) : 깨진 조각들이 맞물려 피어난 “와우”

절망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졌을 때, 정작 그녀를 다시 일으켜 세운 것은 병동에서 만난 진짜 죽음을 앞두고도 삶의 숭고함을 보여준 이들이었다.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던 순간, 그동안 간호했던 환자의 어머니에게서 전화 한 통이 걸려 왔다. 죽음을 앞둔 딸을 위해 평소 병실에서 불러주던 노래를 녹음해서 보내달라는 간곡한 부탁이었다. 그녀는 울면서 노래를 보내드렸고, 며칠 후 그 환자가 노래를 들으며 편안히 잠들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그때 깨달았습니다. 다 깨져버린 내 인생의 조각들도 누군가의 마지막을 온화하게 감싸주는 데 쓸모가 있구나. 나를 살린 건 내 의지가 아니라, 바로 그 환자들이었어요.”

 

자신의 벼랑 끝에서 하늘을 향해 손을 뻗으며 터져 나온 감탄사, “와우!” 그것은 단순한 구호가 아니었다. 벼랑 끝에 선 환자들과 함께 “우리가 살아있는 이 순간, 감탄할 거리를 찾아내자”며 외치던 생명의 주문이었다. 삶의 가시가 비로소 꽃으로 피어나는 첫 순간이었다. 그후 환자들을 만날 때나 행사 진행자로 설 때마다 그녀는 외쳤다. “행복해지고, 건강해지고 싶은 만큼 와우를 외치자!” 환자들은 비로소 그녀를 '와우 간호사'라 불러주기 시작했다.

 

세 번째 안녕(安寧) : 침상 위에서 비로소 써 내려간 참회록

오랫동안 환자를 돌보는 간호사였지만, 스스로 중증 환자가 되어 병상에 누워보고 나서야 비로소 환자들의 '진짜 언어'가 들리기 시작했다. 통깁스를 한 채 무릎을 움직이지 못해 찾아온 심각한 변비는 통증보다 더 괴로운 현실이었다.

 

“그날 변기 위에서 간호 참회록을 썼습니다. 평소 환자들이 변비로 고통을 호소하면 ‘기다려 보세요’라며 무심하게 지나쳤던 내 모습이 떠올랐거든요. 환자의 입장이 되어보니, ‘기다리라’는 말이 얼마나 잔인하고 외로운 말인지 알게 되었습니다. 몸은 통증으로 예민해지고, 마음은 무가치함과 외로움 속에서 싸우고 있다는 것을 환자가 되어보지 않고는 알 수 없었죠.”

 

현대 의술이 눈부시게 발전했지만, 통증을 견디는 환자의 시간까지 돌보지는 못한다. 의술이 “더 이상 해줄 수 있는 게 없다”며 치료의 한계를 선언할 때, 사람과 사람 사이의 진짜 ‘치유’가 시작된다. 연명치료 거부 서명을 마친 임종 직전의 환자들이 바란 것은 거창한 치료가 아니었다. 병실에서 함께 음악을 듣고, 춤의 한 동작을 배우고, 굳어버린 손을 잡아주는 일상적인 온기. 그것은 의료 매뉴얼에는 없는 ‘영적 간호(Spiritual Care)’이자, 인간으로서 마지막 존엄을 지켜내는 호흡이었다.

 

“죽음은 적막 그 자체입니다. 하지만 호흡이 붙어있는 한 기적은 찾아옵니다. 암 병동에서 만난 환자들은 삶의 끝자락에서도 누구보다 뜨겁게 하루를 살아내고 계셨고, 희망을 잃고 멈춰있던 제가 오히려 그분들을 통해 진짜 살아가는 법을 배웠습니다.”

 

치료 기회가 더 없다는 말 앞에서도 감사를 고백하던 환자, 피부가 다 벗겨져도 타인을 위해 죽을 끓여 나누던 손길, 마지막까지 피아노 연주를 선물하던 그 마음들… 그리고 사고 후 스스로를 무가치하게 여겼던 문경희 작가에게 “선생님은 참 귀한 사람”이라며 손을 잡아주던 환자들의 진심은 깊은 울림이 되었다.

 

“안녕하지 않은 날들 속에서도 끝내 타인을 위해 ‘안녕’이라 인사하던 그 삶의 태도가 시들어가던 내 삶의 가지에 그대로 이식되었습니다. 그분들 덕분에 ‘평안함과 감사함’이라는 새로운 안경을 선물 받았죠. 덕분에 내 인생에 이해할 수 없었던 아픈 조각들을 조금씩 감싸 안고, ‘지금 모습 이대로 충분하다’는 새로운 사명을 얻었습니다. 이제는 완벽해지려 애쓰지 않습니다. 오늘 살아있다는 사실 그 자체만으로도 이미 충분히 소중하니까요.”

 

▲ 안녕하지 않은 날들에 대해 안녕 [사진=문경희 작가]

 

네 번째 안녕(安寧) : 『안녕하지 않은 날들에 대해 안녕』을 건네며

몸의 고통과 시련 속에서 환자들에게 받은 따뜻한 사랑과 그들이 전해준 삶의 온기는 최근 출간된 문경희 작가의 저서 『안녕하지 않은 날들에 대해 안녕』이라는 한 권의 책으로 결실을 맺었다. 문경희 작가는 죽음의 병동에서 수많은 임종을 지켜보며 깨달은 삶의 진실을 책과 강연을 통해 담담히 전한다.

 

“인생의 가장 어두운 터널을 지나갈 때, 너무 빨리 빠져나오려 애쓰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희망이 전혀 없다'고 느껴지는 고통조차 역설적이게도 당신이 살아있다는 명확한 증거입니다. 힘을 빼고 그 자리에서 가만히 숨을 쉬고 있는 오늘 하루 자체가 이미 기적이며, 희망의 시작입니다.”

 

억지로 지어내던 옛날의 웃음 대신, 이제 그녀는 삶의 모든 비바람과 고통을 있는 그대로 품어 안은 '수용의 깊은 웃음'을 지어 보인다.

 

다섯 번째 안녕(安寧) : 무너진 자리에 다시 지은 집, ‘차선의 눈부심’

누구나 자신이 완벽하게 설계한 '최선의 삶'을 꿈꾸며 달린다. 하지만 뜻밖의 사고나 실패로 설계도가 산산조각 났을 때 대다수의 사람은 삶 전체를 실패작으로 단정 짓고 스스로를 학대한다. 비록 척추와 무릎의 상처로 병동을 떠나야 했지만, 문경희 작가는 다시 세상 밖으로 나와 글과 강연으로 사람들의 아픈 마음을 돌보고 있다.

 

“내가 원했던 완벽한 인생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의 제 삶은 원래의 틀을 허물고 다시 지은 '재건축'과 같습니다. 내가 설계했던 '최선의 삶'은 아닐지라도, 다 깨진 조각들을 정성껏 맞춰보니 '차선의 삶' 역시 이토록 눈부시고 아름답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삶의 가시를 마다하지 않고 끌어안았을 때, 그 가시들은 타인의 슬픔을 품어주는 따뜻한 꽃밭이 되었습니다.”

 

여섯 번째 안녕(安寧) : 또 다른 삶을 일으킬 디딤돌을 놓으며

그녀의 여정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문경희 작가는 여전히 아픈 이들과 의료 현장을 향한 새로운 꿈과 소명을 품고 계속해서 걸어나가고 있다.

 

“긴 투병 생활에 지쳐 눈을 감고 누워있을 환우들을 위해, 제가 쓴 책을 제 목소리로 직접 녹음한 오디오북을 선물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갑작스러운 질병이나 사고로 여행의 꿈이 멈춰버린 이들을 위해, 환자들과 약속했던 제 세계여행 이야기를 책으로 펴낼 준비를 하고 있어요. 직접 떠나지 못하더라도 간접 경험을 통해 '차선의 만족'과 대리 기쁨을 누리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녀는 회복 북콘서트와 '안녕 토크쇼', 의료진과 간호사가 함께 행복해지는 현장 공감 커뮤니케이션 강의, 그리고 10월 세계한국어웅변대회 도전까지 삶의 스펙트럼을 한층 더 넓혀가고 있다. 나아가 이 책이 <우리들의 블루스>나 <미지의 서울>같이 사람들의 상처를 보듬었던 작품들처럼 드라마로 제작되어, 고통 속에서 시간이 멈춰버린 이들에게 희망의 스위치를 켜줄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

 

“자신의 고통이 너무 크면 세상이 멈춘 것 같지만, 나처럼 아팠던 누군가가 다시 살아내는 모습을 보면 '나도 다시 살 수 있겠구나' 하는 안도감이 생깁니다. 제 회복의 기록을 넘어, 이제는 다른 이들의 회복 이야기를 다채로운 디지털 콘텐츠로 확장해 나가고 싶어요. 누군가의 삶에서 터져 나온 경험의 노래가, 또 다른 누군가의 삶을 일으키는 가장 단단한 디딤돌이 될 것이라 확신합니다.”

 

에필로그 : 살아있음이 주는 유일한 특권, '중압감'

아침에 눈을 뜰 때마다 밀려오는 일상의 무게와 중압감에 지친 이들에게 문경희 작가는 마지막으로 깊은 울림을 남긴다.

 

“스스로 소대변을 가리지 못해 누군가의 손길만 기다려야 하는 병상의 시간 속에서는, 일상의 작은 중압감조차 간절히 바라는 특권이 됩니다. 오늘 나에게 해결해야 할 일이 있고, 책임져야 할 중압감이 있다는 것은 내가 여전히 세상 속에서 '쓸모 있는 존재'로 살아있다는 축복의 신호입니다.”

 

비록 세상이 말하는 화려한 성공의 궤도에서는 비켜섰을지라도, 오늘 하루 자신의 숨을 온전히 쉬어가는 보통의 우리야말로 이미 자기 삶의 위대한 걸작을 완성해 가고 있는 주인공들이다.

 

“남을 살리면 내가 삽니다. 다 깨진 인생도 맞춰보니까 걸작이더라고요. 호흡이 있는 한 기적은 계속됩니다. 오늘을 살아내는 보통의 당신, 참 눈부시고 귀합니다.”

 

✍ 보통의 가치 뉴스는 세상의 기준에 꺾이지 않고, 자기만의 '차선'을 눈부신 걸작으로 만들어가는 보통의 사람들을 응원합니다.

작성 2026.08.10 23:12 수정 2026.08.10 2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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