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비는 나왔는데 왜 이사를 못 하나…LH 공공사업의 숨은 자금 공백

기존 대출 빼면 보증금 반환액 부족…현물보상과 현금청산 사이에 갇힌 주민들

중간 매도 제한하려면 추가 이주비·동시정산·사전조사 함께 마련해야

공공이 시행하는 정비사업이라면 주민 이주도 민간사업보다 안정적일 것이라는 기대가 있다. 그러나 현장에서는 이주비가 책정되고도 세입자 보증금을 돌려주지 못해 건물을 비우지 못하는 일이 생긴다. 현물보상을 유지할 자금은 부족하고, 사업 도중 매도해 권리를 정리하기도 쉽지 않다. 결국 일부 주민은 원하지 않는 현금청산을 고민하게 된다.

 

증산4구역에서 제기되는 이주비 문제는 한 지역의 특수한 사정으로만 보기 어렵다. LH가 참여하는 공공재개발과 도심 공공주택 복합사업 등 공공주도 사업 전반에서 반복될 수 있는 구조적 문제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다만 공공재개발과 도심 공공주택 복합사업은 적용 법률과 사업 방식이 다르다. 주민의 권리, 거래 가능 여부, 현물보상 기준도 사업별로 달라질 수 있다. 모든 공공사업을 같은 구조로 단정해서는 안 된다.

 

그럼에도 현장에서 공통으로 확인되는 문제는 있다. 사업은 공공이 주도하지만 이주 과정에서 발생하는 자금 부족은 개인이 떠안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수색·증산 일대에서 15년 이상 중개업무를 해온 은평새땅집 와산교공인중개사 심미선 대표는 최근 소유자들로부터 비슷한 상담을 반복해서 받고 있다.

 

“이주비로는 세입자 보증금을 다 돌려줄 수 없습니다.”

“추가 대출도 안 되고, 매도도 어렵다면 현금청산밖에 없는 겁니까.”

 

이 질문에 답하려면 먼저 이주비의 명목상 한도와 실제 사용할 수 있는 금액을 구분해야 한다.

이주비 총액보다 중요한 것은 실제 가용액이다

 

다가구주택과 상가주택에는 여러 세입자가 거주하는 경우가 많다. 세입자가 많을수록 반환해야 할 보증금도 커진다.

세입자 보증금 총액이 4억 원이고 예상 이주비도 4억 원이라고 가정해보자. 표면적으로는 이주비만으로 보증금을 모두 반환할 수 있을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기존 담보대출이 1억5천만 원 있다면 상황은 달라진다. 이주비 실행 과정에서 기존 대출을 우선 상환해야 할 수 있고, 근저당권 말소와 각종 정산 비용도 발생한다.

 

소유자가 세입자에게 실제 지급할 수 있는 금액은 다음과 같이 계산해야 한다.

예상 이주비
- 기존 담보대출 상환액
- 근저당권 말소 및 정산 비용
= 세입자 보증금 반환에 사용할 수 있는 실제 금액

 

이주비가 나온다는 사실만으로 이주가 가능한 것은 아니다. 기존 채무를 정리한 뒤에도 세입자 보증금을 전액 반환할 수 있어야 실제 퇴거와 건물 인도가 가능하다.

고령 소유자나 일정한 소득이 없는 사람, 기존 부채가 많은 사람은 부족액을 추가 대출로 마련하기도 어렵다. 담보 여력과 소득 심사, 대출 규제가 모두 장벽이 된다.

 

공공사업 일정에 따라 건물을 비워야 하지만 보증금을 마련하지 못하면 세입자는 이사할 수 없다. 소유자도 건물을 인도할 수 없다. 이주비는 존재하지만 이주는 진행되지 않는 모순이 발생한다.

 

민간 재개발에는 권리를 정리할 통로가 남아 있다

일반적인 민간 재개발에서는 사업을 끝까지 감당하기 어려운 소유자가 중간 매도를 검토할 수 있다.

사업 단계와 지역 규제, 조합원 지위 양도 제한에 따라 거래 가능 여부는 달라진다. 모든 재개발 물건이 자유롭게 거래된다는 뜻은 아니다.

 

다만 매수인이 조합원 지위나 입주권을 승계할 수 있는 구조라면 향후 개발가치가 매매가격에 반영될 수 있다. 소유자는 매각대금으로 기존 담보대출과 세입자 보증금을 정리할 수 있다.

 

이 통로는 단순한 투자 편의가 아니다. 사업을 계속 끌고 갈 자금이 없는 주민이 자신의 권리를 시장에서 정리할 수 있도록 하는 현실적인 출구다.

 

공공사업에서는 매도해도 개발가치를 인정받기 어렵다

일부 공공주도 사업에서는 주민이 일반 재개발의 조합원과 같은 지위를 갖지 않는다. 토지와 건축물을 사업시행자에게 넘기고 일정한 요건에 따라 신축 건축물 등으로 보상받는 현물보상 대상자의 성격에 가깝다.

문제는 사업 도중 매매가 이뤄졌을 때 매수인이 현물보상 대상자의 지위를 그대로 이어받기 어렵거나, 권리 승계 여부가 불분명한 경우다.

 

매수인이 향후 신축주택을 받을 수 있다는 확신을 갖지 못하면 개발 기대가치를 매매가격에 충분히 반영하기 어렵다. 사업구역 안의 부동산이면서도 일반 재개발 매물처럼 평가받지 못하는 상황이 생긴다.

소유자는 현물보상을 유지하려면 세입자 보증금을 반환하고 건물을 비워야 한다. 그러나 이주비가 부족하면 현물보상을 이어가기 어렵다.

그렇다고 매도하려 해도 개발가치를 인정받기 어렵다. 결국 주민은 현물보상 유지와 저가 매도, 현금청산 사이에서 선택을 강요받게 된다.

 

현금청산은 편리한 탈출구가 아니다

현금청산은 단순히 보상금을 현금으로 받는 절차가 아니다. 신축 건축물로 보상받을 가능성과 향후 개발가치를 포기하는 결정이 될 수 있다.

보상금이 지급되더라도 기존 담보대출, 세입자 보증금, 세금과 각종 비용을 제외하면 실제 손에 남는 금액은 예상보다 적을 수 있다.

 

현금청산을 검토할 때는 두 가지를 반드시 비교해야 한다.

첫째는 현금청산 후 최종 수령액이다. 예상 보상금에서 기존 대출과 임차보증금, 세금, 비용을 모두 제외해야 한다.

둘째는 현물보상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자금과 장래 가치다. 현재 부족한 보증금, 추가 자금 조달 가능성, 향후 부담 가능성, 신축 건축물로 보상받을 경우의 예상 가치를 함께 살펴야 한다.

 

세금과 대출 조건은 개인마다 다르다. 사업별 보상 기준도 동일하지 않다. 사업시행자와 금융기관, 세무 전문가의 개별 확인이 필요하다.

핵심은 선택지의 개수가 아니다. 주민이 실제로 선택할 수 있는 조건이 갖춰져 있느냐는 것이다.

 

이주 문제는 소유자 혼자 해결할 수 없다

세입자 보증금 반환 의무는 원칙적으로 임대인에게 있다. 그러나 공공사업 일정에 맞춰 건물을 비워야 하고, 이주비로 보증금을 모두 반환할 수 없으며, 권리를 매각할 통로까지 좁다면 책임을 개인의 자금관리 문제로만 돌리기 어렵다.

세입자는 보증금을 받아야 이사할 수 있다.

 

소유자는 세입자가 퇴거해야 건물을 넘길 수 있다.

사업시행자는 건물이 비워져야 철거와 후속 절차를 진행할 수 있다.

세 당사자의 조건이 하나의 사슬로 연결돼 있다. 어느 한쪽의 의지만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소유자가 보증금을 먼저 전액 마련해야만 이주비를 받을 수 있는 구조라면 자금 여력이 없는 사람은 절차를 시작할 수 없다. 그 결과는 퇴거 지연과 명도 분쟁, 사업 일정 차질로 이어진다.

개인에게 맡겨둔 자금 공백이 결국 공공사업 전체의 지연 비용으로 돌아오는 셈이다.

 

필요한 것은 대출 안내가 아니라 작동하는 정산 구조다

공공이 사업을 주도한다면 주민에게 이주를 요구하는 데 그쳐서는 안 된다. 실제로 보증금을 반환하고 건물을 비울 수 있도록 절차를 설계해야 한다.

 

우선 이주비 부족 가구에 대한 사전조사가 필요하다.

사업시행자는 세입자 보증금 총액과 기존 담보대출, 예상 이주비, 실제 부족액, 추가 금융 가능 여부를 이주 시작 전에 파악해야 한다.

이주가 시작된 뒤 자금 부족이 확인되면 대응이 늦어진다. 세입자 퇴거가 미뤄지고, 소유자와 임차인 사이의 갈등이 커질 수 있다.

 

다가구주택과 상가주택은 별도로 살펴야 한다. 임차인이 여러 명이고 보증금 총액도 크기 때문이다. 일반 단독주택과 같은 기준만 적용해서는 실제 이주 가능성을 제대로 판단하기 어렵다.

추가 이주비나 별도 대여제도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 모든 부족액을 공공이 무조건 부담하자는 뜻은 아니다.

 

사업 완료 후 정산하는 조건부 대여, 보증기관 연계 금융, 취약 소유자에 대한 제한적 지원 등 여러 방식을 마련할 수 있다.

세입자 퇴거와 이주비 지급을 연계한 동시정산도 필요하다.

대출 심사를 미리 끝낸 뒤 세입자 이사, 열쇠 인도, 공가 확인, 이주비 실행과 보증금 지급이 하나의 절차로 이어져야 한다.

금융기관이나 법무사, 신탁기관이 보증금을 세입자에게 직접 지급하는 방식도 검토할 수 있다. 자금 용도를 명확히 하면서 소유자의 선지급 부담을 줄일 수 있다.

이 같은 장치는 소유자만을 위한 지원이 아니다. 세입자의 보증금을 보호하고 분쟁을 줄이며 사업 일정도 지키는 안전장치다.

 

출구를 제한했다면 이주할 수단을 제공해야 한다

공공주도 정비사업은 투기 수요를 차단하고 사업 속도를 높이기 위해 거래와 권리 승계를 제한하기도 한다. 정책적 목적은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권리를 처분할 출구를 좁혔다면 현물보상을 유지할 수 있는 수단도 함께 마련해야 한다.

 

주민에게 세입자를 먼저 내보내라고 요구하면서 보증금 반환에 필요한 자금을 충분히 제공하지 않는다면 제도는 현실에서 작동하지 않는다.

자금이 없어 매도하려 해도 개발가치를 인정받기 어렵고, 현금청산을 택하면 신축주택과 장래 가치를 포기해야 한다면 주민에게 주어진 선택은 형식에 불과하다.

 

문제의 본질은 간단하다.

현물보상을 유지하려면 당장 자금이 필요하다.
자금이 없어 권리를 팔려 해도 제값을 받기 어렵다.
현금청산을 선택하면 장기적인 개발가치를 잃을 수 있다.

 

이 모순을 해소하지 않은 채 이주 책임만 주민에게 요구하면 공공사업에 대한 신뢰도 흔들릴 수밖에 없다.

공공재개발의 성패는 구역 지정과 착공 속도만으로 평가할 수 없다. 원주민과 세입자가 큰 충돌 없이 이동할 수 있는지, 자금이 부족한 주민도 합리적인 선택을 할 수 있는지까지 살펴야 한다.

 

증산4구역에서 드러난 이주비 문제는 특정 지역만의 민원이 아니다. 비슷한 권리 구조를 가진 다른 공공사업에서도 되풀이될 수 있는 경고다.

 

주민은 현금청산 여부를 결정하기 전에 네 가지를 먼저 확인해야 한다.

세입자 보증금 총액이 얼마인지, 기존 대출을 갚고 실제로 사용할 수 있는 이주비가 얼마인지, 부족액을 마련할 방법이 있는지, 현금청산 후 세금을 제외하고 얼마가 남는지를 계산해야 한다.

 

사업시행자도 주민에게 선택을 요구하기 전에 선택 가능한 조건부터 만들어야 한다.

 

중간 매도라는 출구가 제한된 사업이라면 추가 이주비, 보증금 반환용 대여제도, 퇴거일 동시정산, 부족 가구 사전조사 가운데 실효성 있는 장치가 반드시 작동해야 한다.

 

공공이 개발의 속도를 책임진다면 이주의 현실도 책임 있게 설계해야 한다. 그것이 세입자의 보증금을 지키고 주민의 재산권을 보호하며 사업 지연을 줄이는 가장 현실적인 해법이다.

 

문의:심미선(010-2004-5572)

작성 2026.07.26 10:39 수정 2026.07.29 0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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