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원도 철원 백마고지 앞 민간인출입통제선(민통선). 사람과 차량의 이동을 가로막던 차갑고 단단한 콘크리트 방벽선이 형형색색의 천과 주민들의 손길로 뒤덮였다. 7월 중순 철원문화재단 양지리 레지던시 지원으로 진행된 이번 프로젝트의 중심에 선 현대미술가 자인 작가를 만나, 그가 튼 '물꼬'의 의미를 물었다. 현대미술가 자인 작가의 '철원 DMZ - 물꼬' 프로젝트는 단순한 일회성 벽화나 장식이 아니었다. 민·관·군이 경계를 넘어 손을 맞잡고 이념의 방벽에 생명의 온기를 불어넣은 살아있는 현장이었다. 그의 연작 'Mutual Becoming(공동의 존재화)'이 앞으로 파주와 고성 등 DMZ 전역으로 이어지며 어떤 울림을 전할지 자못 기대된다. 인터뷰는 전화와 SNS를 통해 이뤄졌다.
Q) 먼저 이번 철원 DMZ 프로젝트가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배경이 궁금합니다.
A) 정보는 넘쳐나지만 정작 감각은 메말라가는 '감각의 가뭄의 시대'를 살고 있잖아요. 철원문화재단 양지리 레지던시 공모에 선정되면서 철원과 인연을 맺게 되었고, 이곳 주민들과 깊은 대화를 나누면서 DMZ를 바라보는 새로운 시선을 갖게 되었습니다.
Q) 주민들과의 인터뷰에서 특별히 영감을 받은 부분이 있다면요?
A) 주민들이 입버릇처럼 '방벽선을 보며 살아가는 것이 생각보다 너무 힘들다'고 말씀하셨어요. 하지만 그 힘든 조건 속에서도 매일 물길을 돌리고, 내일을 준비하며 묵묵히 땅을 지켜내고 계셨죠. 군인들만 지키는 곳이 아니라, 주민들이 삶의 터전을 일구며 살아가는 생생한 현장이었던 겁니다. 거기서 '물꼬'라는 개념을 길어 올리게 되었습니다.

Q) 이번 퍼포먼스는 참여형으로 진행되어 더욱 눈길을 끌었습니다. 어떤 과정으로 완성되었나요?
A ) 기존에는 홀로 작업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이번에는 철원 청년농업인 진세종 총괄을 비롯해 육군 제5보병사단 의 송동환 중령과 장병들, 지역 주민, 문화예술 관계자들까지 민·관·군이 함께 머리를 맞댔습니다. 일일이 찾아가 설득하고 소통하면서 관계를 확장해 나갔죠. 민간인통제선 내 방벽선 일대에서 농수관을 활용한 퍼포먼스를 선보였고, 이어 주민들과 장병들이 직접 장벽에 반투명한 천을 설치하며 방벽선을 만남과 연결의 장소로 탈바꿈시켰습니다.
Q ) 회화나 드로잉 작업 방식도 독특하다고 들었습니다.
A ) 전쟁 당시 쓰였던 가시철사와 지뢰 파편 등의 현장 흔적을 도구로 삼아 메인 회화 작업을 했습니다. 테이프로 가로막힌 화면 위에서 물감이 제한을 뚫고 길을 찾아 번져나가는 모습을 담았죠. 규제와 통제 속에서도 꿋꿋하게 삶의 길을 이어가는 DMZ의 풍경 그 자체입니다. 현장을 반복 답사하며 축적한 80여 점의 연구 드로잉과 통제선 출입증 크기의 작은 서사집도 함께 선보이고 있습니다.
Q ) 대중에게 DMZ는 여전히 딱딱하고 무서운 정치적 공간으로 다가옵니다. 이번 작업을 통해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무엇인가요?
A ) DMZ를 단순히 갈라진 땅이나 대립의 상징으로만 표현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곳에도 우리와 똑같이 내일을 준비하며 치열하게 살아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예술이 딱딱한 이념의 벽을 허물고 따뜻한 삶의 이야기로 채워질 때, 비로소 진정한 소통이 시작된다고 믿습니다. 이번 프로젝트가 홀로 하던 예술에서 '공동의 존재화'(Mutual Becoming)로 나아가는 소중한 계기가 되었기를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