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미국, 일본, 영국, 독일 등 전 세계 중고 서점가에 미스터리한 대량 주문 폭주 현상이 이어지고 있다. 흥정 한 번 없이 수십 톤에 달하는 중고 서적을 통째로 매입하는 의문의 구매자가 등장하면서, 오랫동안 침체를 겪던 헌책방 업계가 때아닌 호황과 함께 거대한 혼란에 빠졌다. 일본의 한 중고 서점 상인 연합에 따르면, 최근 몇 달간 미국으로 수출된 중고서적의 양만 50톤을 상회한다. 유럽에서도 유사한 기현상이 관측됐다. 권당 5유로(약 7,000원) 안팎의 저렴한 인문·과학 전문 서적을 구매하면서 국제 배송비로만 40유로(약 6만 원) 이상을 서슴지 않고 지불하는 구매 사례가 잇따라 보고된 것이다.
보통 중고 서적 거래에서는 도서의 상태나 희귀성에 따라 가격 협상이 이뤄지기 마련이다. 그러나 이들 의문의 구매자들은 책의 상태나 가격을 전혀 따지지 않고 특정 분야의 전문 서적, 학술지, 고서 등을 닥치는 대로 쓸어 담고 있다. 이 괴이한 거래의 진상을 밝히기 위해 미국의 한 중고 서점 주인이 직접 나섰다. 구매자에게 배송되는 대형 책 상자 속에 숨겨진 GPS 위치 추적기(AirTag)를 삽입해 출하한 것이다. 추적기 신호가 최종적으로 도달한 곳은 뜻밖에도 대형 물류창고와 전문 스캔 센터였다. 전 세계 중고 서점에서 끌어모은 수십만 권의 책들은 이곳에서 낱낱이 해체된 뒤 고속 스캐너를 통해 디지털 데이터로 변환되고 있었다. 더욱 충격적인 사실은 데이터 스캔 작업이 완료된 실물 종이책들이 보관되지 않고 그 자리에서 전량 산업용 파쇄기로 넘어가 폐기 처리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 거대한 '종이책 싹쓸이' 작전의 배후에는 다름 아닌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과 AI(인공지능) 생성 모델 개발사들이 자리 잡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그렇다면 세계 최고의 기술력을 자랑하는 AI 공룡들이 왜 지금 시점에 막대한 비용을 들여 옛 종이책을 사들이고 있는 것일까? 전문가들은 이를 "초거대 AI 모델의 텍스트 학습 데이터 고갈 현상(Data Wall)" 때문으로 분석한다. 그동안 OpenAI, Google, Anthropic 등 주요 AI 개발사들은 인터넷상에 존재하던 웹페이지, 뉴스 기사, SNS 게시물, 위키피디아 등의 디지털 데이터를 자유롭게 긁어모아(Web Scraping) 모델을 학습시켜 왔다. 그러나 인터넷상의 공개 텍스트 데이터는 이미 한계치에 도달했으며, 최근에는 저작권 침해 소송과 무단 수집 방지 기술(Robot.txt) 강화로 인해 온라인 데이터 수집 길이 크게 막힌 상태다.
게다가 인터넷상에 생성형 AI가 만들어낸 '함량 미달'의 저품질 AI 생성 텍스트가 범람하면서, 이를 다시 AI 학습에 사용할 경우 모델의 성능이 퇴화하는 '합성 데이터 오염' 문제까지 심화되었다. 결국 AI 기업들은 검증되고 정확도가 높은 '고품질 인류 지식 데이터'의 최후 보루로 인터넷에 출간되거나 업로드된 적 없는 '종이책'으로 눈을 돌린 것이다. 인간의 정교한 편집과 학술적 검증을 거친 과거의 전문 서적이야말로 AI의 지능과 논리력을 비약적으로 상승시킬 최상급 학습 재료가 되기 때문이다.
빅테크 기업들이 신간 도서 대신 중고 서점을 선택한 데에는 법적·경제적 계산도 깔려 있다. 이미 출간된 정식 도서를 디지털화하는 것은 명백한 저작권 침해 및 복제권 위반에 해당할 수 있다. 그러나 개인이 중고로 구매한 책을 스캔해 자체 학습용 데이터로 사용하는 행위는 현행 저작권법상 '최초판매의 원칙(First Sale Doctrine)'과 '공정 이용(Fair Use)'의 모호한 경계선에 위치해 있어 법망을 피하기 유리하다. 그러나 이 같은 AI 기업들의 무차별적인 싹쓸이와 폐기 방식에 대한 우려와 경악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문화재 및 도서 보존 전문가들은 "AI 학습이라는 명목하에 오랜 세월 보존되어 온 희귀 학술서와 절판본 도서들이 실물 형태로 영구히 사라지고 있다"며 "디지털 데이터는 시스템 오류나 데이터 손실로 언제든 사라질 수 있는 반면, 실물 종이책의 파괴는 인류의 지식 유산 생태계를 훼손하는 행위"라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이번 사건은 단순히 AI 기술 발전의 부산물이 아닌, 미래 지능 주권을 둘러싼 글로벌 테크 기업 간의 지식 쟁탈전이 실물 세계로 확장되었음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종이책 싹쓸이' 현상이 향후 오프라인 중고 서적의 가격 상승과 희귀 도서의 품귀 현상을 부추길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또한, 인류가 축적해 온 지식 자산이 빅테크 기업의 데이터베이스 속에 독점되는 과정에서 저작권법의 사각지대를 해소할 새로운 국제적 규제 기준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힘을 얻고 있다. 전 세계 헌책방을 강타한 이상한 책 주문 소동은, 인공지능이 도달한 거대한 데이터 갈증과 그로 인해 발생할 미래 지식 생태계의 거대한 변혁을 미리 보여주는 경고음일지도 모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