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탈리아 북부 베르가모의 한 과학 축제장이었다. 여든두 살 물리학자는 그곳에서 연구비 제안서를 다듬고 있었다. 그때 스톡홀름에서 소식이 날아들었다. 프랜시스 할전의 첫 반응은 뜻밖에도 농담이었다. 이번 상이 제안서 통과에 도움이 되면 좋겠다는 것이었다. 평생 남극 얼음 속에서 보이지 않는 입자를 쫓던 노학자가, 세계 최고 권위의 상을 받는 날에도 다음 실험의 살림을 걱정한 셈이다. 나는 이 장면에서 2026년 노벨상 전체를 꿰는 실마리를 본다. 올해 상은 결국 '보이지 않던 것을 보이게 만든 사람들'에게 돌아갔다.
해마다 10월이면 스톡홀름과 오슬로는 세계의 시선을 모은다. 알프레드 노벨의 유언에 따라 1901년에 시작된 이 상은 올해도 생리의학상을 시작으로 차례대로 주인을 찾고 있다. 부문별 상금은 1,200만 스웨덴 크로나, 미화로 약 120만 달러다. 이 글을 쓰는 10월 9일 현재 생리의학·물리·화학·문학 네 부문이 발표되었다. 평화상은 이날 오슬로의 노르웨이 노벨연구소에서 공개될 예정이고, 경제학상은 12일 발표된다. 올해 평화상 후보에는 개인 208명, 단체 79곳 등 모두 287건이 올랐다. 아직 결과가 확인되지 않은 두 부문은 이 글에서 다루지 않는다.
첫 문은 10월 5일 카롤린스카 연구소가 열었다. 생리의학상은 미국 스탠퍼드대의 칼 다이서로스, 독일 훔볼트대의 페터 헤게만, 뷔르츠부르크대의 게오르크 나겔 세 사람에게 돌아갔다. 공적은 빛으로 여닫히는 이온 통로의 발견과 '광유전학'이다.
이야기의 출발점은 뜻밖에도 연못의 초록 녹조류다. 빛을 향해 헤엄치는 단세포 조류 클라미도모나스 안에서, 헤게만과 나겔은 2000년대 초 청색광을 받으면 문을 여는 단백질 '채널로돕신'을 찾아냈다. 정신과 의사이기도 한 다이서로스는 2005년 동료들과 이 유전자를 설치류의 신경세포에 심었다. 그러자 빛을 비출 때마다 뉴런이 신호를 쏘았다. 이제 과학자들은 살아 있는 뇌 속 특정 회로를 1,000분의 1초 단위로 켜고 끌 수 있다. 연못의 미물이 인간의 뇌를 읽는 열쇠가 된 것이다.
노벨위원회 위원장 페르 스벤닝손은 광유전학 덕분에 예전에는 꿈에서나 그리던 방식으로 뇌의 지도를 그릴 수 있게 되었다고 설명했다. 우울과 불안, 중독처럼 눈에 보이지 않던 마음의 병이 어떤 신경 회로에서 비롯되는지 추적하는 연구도 이 도구 위에서 이루어진다. 정작 수상자들의 반응은 소박했다. 나겔은 광유전학으로 이 상을 받기엔 아직 이르다고 여겼다며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고, 헤게만은 벅차다는 한마디로 심경을 대신했다.
이튿날 물리학상은 단 한 사람의 이름을 불렀다. 벨기에 티넌에서 태어나 1972년부터 미국 위스콘신대 매디슨 캠퍼스에 몸담아 온 할전이다. 물리학상이 단독 수상자에게 돌아간 것은 1992년 조르주 샤르파크 이후 34년 만이다. 그가 일으킨 일은 무모해 보였다. 남극점의 얼음 1세제곱킬로미터를 통째로 망원경으로 쓰자는 구상이었다. 2004년부터 2010년까지, 남극의 짧은 여름마다 뜨거운 물로 얼음을 녹여 구멍을 뚫었다. 구멍 하나를 내는 데만 꼬박 48시간이 걸렸다. 지하 1,450~2,450미터 깊이에 86개 줄로 5,160개의 광센서를 매달았다.
그렇게 완성된 '아이스큐브' 관측소는 2013년 태양계 밖에서 날아온 고에너지 중성미자의 첫 증거를 내놓았다. 중성미자는 지구조차 그냥 통과해 '유령 입자'로 불린다. 빛도 전파도 가로막히는 먼 은하의 격렬한 사건을, 이 입자만은 휘어짐 없이 전해 준다. 스웨덴 왕립과학원의 에바 올손이 중성미자를 '전령'이라 부른 까닭이다. 할전은 처음에는 이 계획이 통할 거라 믿은 사람이 거의 없었고 자기 자신도 그랬다고 회고했다. 그리고 덧붙였다. 지금까지는 서론일 뿐, 진짜 천문학은 이제부터라고.
10월 7일의 화학상은 분자의 '손'에 관한 이야기였다. 프랑스 파리쉬드대의 앙리 B. 카간(95)과 일본 도쿄이과대의 소아이 겐소(76)가 공동 수상했다. 공적은 비대칭 유기합성에서 나타나는 비선형 효과와 자가촉매 현상의 발견이다. 우리의 두 손처럼, 많은 분자는 서로 거울상이지만 포개지지 않는 두 형태로 존재한다. 그런데 생명체를 이루는 아미노산과 당은 한쪽 손만 고집한다. 왜 그런가는 백 년 넘게 풀리지 않은 수수께끼였다. 카간은 1980년대 중반, 한쪽 형태를 예상보다 훨씬 많이 만들어내는 길을 열었다. 소아이는 1995년 실마리를 내놓았고, 2003년 무렵 한쪽 손만 만들어내는 반응을 보여 주었다.
노벨위원회의 페테르 솜파이는 이 '소아이 반응'을 유기화학에서 아마 가장 근사한 실험이라고 평했다. 고향 히로시마에서 소식을 들은 소아이는 생애 가장 가슴 뛰는 날이라고 소감을 밝혔다. 그는 키랄성이야말로 생명이 시작되기 위한 전제 조건이라고 강조했다. 같은 화학식을 지녀도 어느 손이냐에 따라 약이 되기도 하고 해가 되기도 한다. 그래서 이 연구는 의약품과 향료를 만드는 공정에 쓰이는 동시에, 지구 위 첫 생명이 어떻게 한쪽 손을 택했는지 묻는 근원적 질문에도 단서를 건넨다. 실험실의 플라스크 안에서 태초의 비밀 한 귀퉁이가 들춰진 셈이다.
10월 8일, 스웨덴 한림원은 문학상 수상자로 캐나다 토론토 태생의 시인 앤 카슨(76)을 호명했다. 한림원은 고전 전통과 유희적으로 대화하며 현대 문학에 새로운 형식을 빚어낸 그의 대담하고 창의적인 작품 세계를 높이 샀다. 카슨은 고대 그리스어 고전학자다. 사포와 그리스 비극을 번역하고, 캐나다와 미국의 대학에서 고전을 가르쳤다. 대표작 『빨강의 자서전』(1998)은 그리스 신화의 괴물 게리온을 현대의 소년으로 되살린 운문 소설이다. 세상을 떠난 형제를 애도하며 낡은 편지와 사진, 라틴어 사전 풀이를 엮은 『녹스』는 한 권의 책을 아코디언처럼 펼치게 만든다. 일흔이 넘어 파킨슨병 진단을 받은 뒤에는 권투를 시작했다는 사연도 전해졌다. 2022년부터 아이슬란드 시민권도 지닌 그는 아이슬란드 방송 RÚV와의 통화에서 이 반응이 '미쳤다'고 짧게 말했다.
한림원 종신 사무총장 잉리드 칼베리는 연락이 닿았을 때 그가 아이슬란드에 있다는 말만 겨우 들었다고 전했다. 지난해 수상자가 묵시록적 공포 한가운데서 예술의 힘을 다시 일깨운 헝가리 소설가 크러스너호르커이 라슬로였다면, 올해 한림원은 장르의 경계를 허무는 시인을 택했다. 시와 산문, 번역과 비평의 칸막이를 거침없이 넘나드는 그의 책은 어느 한 서가에 얌전히 꽂히기를 거부한다. 2024년 한강 작가의 수상으로 이 상의 무게를 실감한 한국 독자들에게도, 카슨의 이름은 시가 얼마나 넓은 집일 수 있는지를 새삼 일러 준다. 고전의 침묵 속에 묻혀 있던 목소리를 오늘의 언어로 불러낸 공로가, 마침내 가장 큰 무대에서 인정받은 것이다.
네 부문을 나란히 놓으면 묘한 무늬가 드러난다. 녹조류 속 단백질, 얼음을 꿰뚫는 유령 입자, 분자의 왼손과 오른손, 수천 년 전 파피루스의 끊긴 행간. 모두 우리 눈앞에, 혹은 발 아래와 몸속에 있었지만 보이지 않던 것들이다. 실험실의 피펫과 남극의 드릴, 플라스크의 용액과 사전의 낱말이 각자의 자리에서 같은 일을 했다. 어둠 속에 숨은 질서를 한 줄기 빛 아래로 끌어낸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보이게 한 이들은 하나같이 수십 년을 견뎠다.
할전은 반세기 넘게 위스콘신에서 남극의 얼음을 바라보았고, 아흔다섯의 카간은 1980년대의 발견이 이제야 이름을 얻는 것을 지켜보았다. 헤게만과 나겔이 녹조류의 단백질을 처음 보고한 지 이십여 년, 카슨이 『빨강의 자서전』을 펴낸 지도 스물여덟 해가 흘렀다. 영광은 늦게 왔고, 그들은 그사이 묵묵히 다음 실험과 다음 문장을 준비했다. 세상이 박수를 보내지 않던 긴 세월이 오히려 그들의 작업을 단단하게 다졌다. 어쩌면 이 상의 숨은 주인공은 오늘도 이름 없이 같은 어둠을 더듬고 있을 세계 곳곳의 연구실과 서재의 사람들일지 모른다. 그들의 실패한 실험 노트가 쌓여 언젠가 또 하나의 빛이 된다.
올해 노벨상이 우리에게 남긴 것은 수상자 명단만이 아니다. 보이지 않는 것을 끝내 보려는 끈기, 수십 년을 기다리는 인내, 그리고 영광의 날에도 다음 걸음을 걱정하는 겸허함이다. 남극의 얼음 아래 매달린 5,160개의 눈처럼, 우리도 어둠 속에서 오는 작은 빛 하나를 놓치지 않으려 깨어 있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