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둠스크롤링'에 대한 이해와 대책

부정어 하나에 클릭률 2.3% — 당신의 밤을 설계한 것은 누구인가

몇 분이면 충분하다: 나쁜 뉴스가 세계관을 바꾸는 속도

끊는 것만으로는 안 된다 — 둠스크롤링을 이기는 7가지 설계

▲ AI 이미지, 중동디스커버리신문 제공

밤 두 시 사십 분. 불은 꺼져 있고 방은 조용하다. 그런데 천장에 푸른빛이 어른거린다. 엄지가 화면을 아래로 민다. 전쟁, 붕괴, 실종, 확진, 폭염. 한 손가락이 지구 반대편의 비극을 차례로 넘긴다. 잠들려고 누웠는데 눈은 오히려 더 또렷해진다. 다 읽고 나면 무언가를 알게 될 것 같은데, 정작 남는 것은 이름 없는 불안뿐이다. 그리고 내일 아침,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는데 마음만 무거워진 채로 하루를 시작한다. 이 밤의 풍경에는 이름이 있다. 둠스크롤링이다.

 

이 말은 2018년 10월 트위터에서 처음 떠올랐다. 한 이용자가 둠스크롤링을 잠시 쉬겠다고 적은 짧은 글이 확인된 첫 용례다. 한동안 잊혔다가 2020년에 폭발했다. 전염병과 봉쇄, 시위와 선거가 겹치면서 전 세계가 같은 습관을 앓았다. 사전도 뒤따랐다. 매쿼리 사전이 2020년 올해의 단어로 골랐고, 메리엄웹스터는 2023년 9월에 표제어로 올렸다. 불길함을 뜻하는 둠과 화면을 미는 동작인 스크롤이 붙은 합성어다. 뜻은 간단하다. 나쁜 소식인 줄 알면서도 계속 내려 보는 일이다.

 

왜 그럴까. 인간의 뇌는 위협을 먼저 본다. 초원에서 열매보다 맹수를 놓치지 않는 쪽이 살아남았다. 문제는 그 오래된 회로가 지금은 알고리즘과 만난다는 점이다. 뉴욕대 연구진이 2023년 네이처 휴먼 비헤이비어에 실은 연구는 이 대목을 숫자로 보여 준다. 같은 기사에 서로 다른 제목을 붙여 실제 독자에게 노출한 대규모 무작위 실험이었다. 10만 5천여 개의 제목 변형, 3억 7천만 회 이상의 노출, 570만 회의 클릭이 분석됐다. 결과는 명확했다. 평균 길이의 제목에서 부정적인 단어가 하나 늘 때마다 클릭률은 약 2.3% 올라갔다. 긍정적인 단어는 반대로 작용했다. 우리가 나쁜 소식을 고른 것이 아니다. 나쁜 소식이 우리를 고르도록 설계된 것이다.

 

설계는 제목에서 끝나지 않는다. 바닥이 없는 화면, 손을 떼지 않으면 계속 채워지는 목록, 언제 올지 모르는 알림이 한 묶음으로 움직인다. 보상이 불규칙할수록 행동은 끈질겨진다는 것은 오래된 심리학의 상식이다. 이 구조에 24시간 뉴스가 얹히면 사용자는 끝을 만날 수 없다. 둠스크롤링이라는 말을 널리 퍼뜨린 한 경제 기자는 언론계 종사자에게 이 습관이 이미 정상처럼 되어 버렸다고 지적한 바 있다. 직업적으로 세계의 비극을 매일 들여다봐야 하는 사람에게 이 문제는 남의 일이 아니다. 나 역시 중동을 취재하고 쓰는 사람으로서, 화면을 닫는 시각을 정해 두지 않으면 하루가 통째로 잠식된다는 사실을 안다.

 

대가는 측정 가능하다. 2022년 미국 연구진은 둠스크롤링이 단순한 뉴스 관심과는 다른 별개의 행동임을 확인하고 측정 척도를 만들었다. 연구를 이끈 학자는 이것이 위기를 이해해 보려는 집착과, 끝나지 않는 화면을 가진 시대가 만난 결과라고 정리했다. 흥미롭게도 진보와 보수 사이에 차이는 없었다. 위기와 끝없는 화면이 만나면 누구나 같은 자리에 선다는 뜻이다. 

 

한 해외 연구진이 2023년 발표한 조사에서는 둠스크롤링이 심리적 고통을 높이고 삶의 만족과 조화를 낮추는 경로가 드러났다. 2024년 이란과 미국 표본을 비교한 국제 공동 연구는 더 깊은 곳을 건드렸다. 부정적 뉴스의 강박적 소비가 실존적 불안과 이어졌고, 이란 표본에서는 인간 본성에 대한 냉소를 키우는 경향까지 나타났다. 공포는 정보를 주지 않는다. 세계관을 바꾼다. 노출 시간이 길어야 하는 것도 아니다. 몇 분간의 부정적 뉴스 접촉만으로도 기분과 반추가 달라진다는 실험 결과가 이미 2022년에 나왔다.

 

반작용도 시작됐다. 로이터연구소 조사를 인용한 최근 분석에 따르면 뉴스를 의도적으로 피하는 사람이 전 세계적으로 40% 안팎에 이른다. 정부도 움직인다. 호주는 16세 미만의 소셜미디어 이용을 막는 법을 세계 최초로 도입했고, 유럽연합 집행위원장은 9월 16일 스트라스부르 연설에서 13세 미만 이용 금지와 그 이후의 제한적 계정 운용을 제안했다. 싱가포르는 9월 6일 방향을 바꿔, 하루 15분 독서를 기록하면 가상 코인을 주는 5년 캠페인을 시작했다. 다만 냉정한 연구도 있다. 2025년 발표된 메타분석은 단기간의 소셜미디어 절식이 삶의 만족도를 뚜렷하게 올리지는 못했다고 보고했다. 끊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뜻이다. 회피 자체도 답이 아니다. 시민이 세상을 모르기로 결심한 사회는 다른 방식으로 위태로워진다.

 

그래서 대책은 금지가 아니라 설계여야 한다. 시간을 정해 두고 그 시간에만 뉴스를 본다. 아침과 저녁의 짧은 두 창이면 충분하다. 침실에 충전기를 두지 않는다. 손이 닿는 거리에 기계가 없으면 습관은 절반으로 줄어든다. 한 사건을 읽었으면 반드시 하나의 행동으로 닫는다. 기도든 후원이든 전화 한 통이든 좋다. 알림은 사람에게서 오는 것만 남긴다. 화면을 흑백으로 바꾸는 것도 의외로 효과가 있다. 색이 빠지면 끌림도 줄어든다. 그리고 짧은 조각 대신 긴 글로 옮겨 간다. 긴 글은 맥락을 주고, 맥락은 공포를 사실로 바꾼다. 사실이 된 공포는 비로소 대응이 가능한 대상이 된다.

 

나는 이 문제를 신앙의 언어로도 읽는다. 일반적으로 사람이 하루에 쏟을 수 있는 관심의 총량은 정해져 있다. 시간처럼 쓰면 사라지고, 사랑처럼 어디에 쓰느냐가 그 사람을 만든다. 내가 어디에 시선을 두는가가 결국 내가 누구를 사랑하는가를 결정한다. 밤새 지구 반대편의 비극을 스무 건 넘긴 사람은, 정작 옆방에서 뒤척이는 가족의 기척을 듣지 못한다. 세상의 고통을 아는 일은 중요하다. 그러나 아는 것과 삼키는 것은 다르다. 삼킨 고통은 소화되지 않고, 소화되지 않은 고통은 무력감으로 굳는다. 무력감은 연민을 닮았지만 아무도 돕지 않는다. 오히려 도울 힘을 미리 써 버린다. 화면 앞에서 밤을 지새운 사람은 다음 날 아무에게도 손을 내밀지 못한다.

 

오늘 밤에도 그 푸른빛이 천장에 어른거릴 것이다. 그때 물어야 할 것은 하나다. 나는 지금 세상을 알기 위해 보고 있는가, 아니면 두려움에 먹히기 위해 보고 있는가.

작성 2026.09.18 01:56 수정 2026.09.18 0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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