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ADHD야?” 병원보다 먼저 AI에게 묻는 사람들

미국 성인 4명 중 1명은 AI 챗봇으로 증상의 원인을 찾는다

61만여 건의 건강 대화에서는 밤이 깊을수록 개인적 건강 질문이 늘어났다

문제는 오답만이 아니다, 너무 빠른 해석이 사람의 다음 생각을 정할 수 있다

 “나 ADHD야?”

예전에는 이런 질문을 검색창에 쳤다.

지금은 AI에게 묻는다.

“회의할 때 자꾸 딴생각을 해.”
“물건을 자주 잃어버려.”
“해야 할 일을 미루다가 마감 직전에 몰아서 해.”

 

 AI는 몇 초 안에 가능한 설명을 정리한다. ADHD와 관련될 수 있는 특징, 수면 부족이나 불안·스트레스 같은 다른 가능성, 확인해볼 증상과 전문가 상담의 필요성까지 차례로 보여준다.

답변은 제법 신중하다.

그래서 더 중요한 문제가 생긴다.

 

AI가 틀린 말을 했는지가 아니라, 그 답을 본 사람이 다음부터 자기 자신을 어떤 이름으로 보기 시작하는가.

■ 병원에 가기 전, 이미 첫 번째 해석은 끝나고 있다

 

 지난 8월 Pew Research Center가 미국 성인 3,488명을 조사했다.

34%가 적어도 한 가지 건강·의료 목적으로 AI 챗봇을 사용한다고 답했다. 25%는 자신의 증상이 왜 생겼는지 알아보기 위해 AI를 이용했고, 15%는 병원에 갈지 결정하기 위해 챗봇을 찾았다. 다른 사람에게 말하기 불편한 건강 문제를 AI에게 묻는다는 응답도 18%였다.

 

 더 눈에 띄는 것은 만족도다.

건강 문제에 AI를 이용한 사람 가운데 47%는 얻은 정보가 매우 또는 극도로 도움이 됐다고 답했고, 48%는 어느 정도 도움이 됐다고 했다.

합치면 95%다.

이 숫자는 AI 의료상담을 금지해야 한다는 근거가 아니다.

 

 오히려 반대다.

사람들이 실제로 도움이 된다고 느끼기 때문에 이 문제를 더 정교하게 봐야 한다.

검색엔진에서는 여러 링크가 나왔다. 사용자는 몇 개를 열어보고 서로 다른 설명을 비교해야 했다.

대화형 AI는 그 과정을 대신한다.

정보를 찾고, 정리하고, 우선순위를 매긴 뒤 하나의 문장으로 돌려준다.

편리하다.

그러나 그 순간 AI는 정보 검색 도구를 조금 넘어선다.

무엇이 중요한지 먼저 정하는 존재가 된다.

 

 

■ 밤이 되면 AI는 더 가까워진다

 

 올해 4월 Nature Health에 흥미로운 연구가 실렸다.

연구진은 2026년 1월 Microsoft Copilot에서 이루어진 건강 관련 대화 617,827건을 분석했다.

거의 다섯 건 중 한 건은 자신의 증상을 평가하거나 질환에 관해 이야기하는 개인적 건강 질문이었다.

그리고 이런 질문은 밤이 될수록 늘었다.

 

 연구진은 의료기관과 사회적 지원에 접근하기 어려운 저녁과 야간에 개인 건강 질문, 특히 정서적 안녕과 증상 관련 질문의 비중이 증가한다는 것을 확인했다.

 

 이 장면을 상상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새벽 두 시다.

병원은 닫혀 있다.

가족에게 전화하기에는 애매하다.

검색 결과 수십 개를 읽고 싶지도 않다.

휴대전화는 손에 있다.

그리고 AI는 바로 답한다.

이것이 생성형 AI가 의료와 정신건강에서 갖는 가장 큰 장점 가운데 하나다.

동시에 이전 기술과 다른 지점이기도 하다.

 

 AI는 24시간 곁에 있을 뿐 아니라, 질문을 다시 묻고, 앞선 이야기를 기억하고, 설명을 개인에게 맞춘다.

사람이 불안한 순간에 처음 만나는 ‘해석자’가 될 조건을 거의 모두 갖춘 셈이다.

 

 

■ 이름 하나가 붙고 나면 다음 질문이 달라진다

 

 ADHD라는 단어를 한 번도 생각하지 않았던 사람이 있다고 하자.

AI와 몇 차례 대화를 나눈 뒤 “ADHD와 관련된 특성이 있을 수 있다”는 설명을 접한다.

그다음 검색어가 달라질 수 있다.

‘집중이 안 되는 이유’가 아니라 ‘성인 ADHD 증상’을 찾는다.

유튜브 영상도 ADHD를 중심으로 본다.

관련 커뮤니티에 들어갈 수도 있다.

어린 시절의 기억도 다시 읽는다.

“그래서 내가 그랬던 건가.”

 

 이 과정에서 ADHD가 실제로 맞을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여기서 진단의 정답을 가리는 일이 아니다.

 

이름은 경험을 설명할 뿐 아니라, 그다음에 무엇을 볼 것인지도 바꾼다.

 우울증, 번아웃, 트라우마, 공황장애, 가스라이팅, 나르시시즘도 마찬가지다.

한 번 이름이 붙으면 흩어져 있던 경험이 그 이름 주위로 모이기 시작한다.

인간은 원래 그렇게 세계를 이해한다.

 

 문제는 그 첫 이름을 붙이는 속도가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빨라졌다는 데 있다.

 

 

■ 진료실에는 이제 의사와 환자만 들어오지 않는다

 

 한국의 정신건강 현장에서도 변화는 이미 관찰되고 있다.

 

 2026년 Journal of Medical Internet Research에 발표된 국내 연구는 대한신경정신의학회 회원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정신건강 진료와 생성형 AI의 접점을 살폈다.

 

 전체 응답자는 408명이었고, 이 가운데 311명이 적어도 하나의 개방형 질문에 분석 가능한 답변을 남겼다.

정신건강의학과 의사들은 생성형 AI가 접근성을 높이고 환자의 생각을 정리하며 임상 업무를 도울 가능성을 인정했다.

동시에 진료 현장에서 AI가 때로는 환자에게 별도의 해석 기준이 되고 있다는 신호도 보고했다.

연구진은 생성형 AI가 경우에 따라 임상 만남에서 기존 의료진과 나란히 놓이는 ‘경쟁하는 해석의 준거’가 될 수 있다고 정리했다.

 

 진료실 풍경이 달라진 것이다.

환자는 더 이상 아무 정보도 없이 의사 앞에 앉지 않는다.

AI와 나눈 대화가 있다.

가능성 높은 질환의 목록이 있다.

자신에게 맞는 것처럼 느껴진 설명이 있다.

어쩌면 캡처한 문장도 있다.

의사는 환자의 증상만 듣는 것이 아니라, 이미 만들어진 하나의 해석과도 만나야 한다.

이것은 반드시 나쁜 변화는 아니다.

환자가 자신의 상태를 더 잘 설명할 수도 있고, 평소 말하지 못했던 문제를 꺼낼 수도 있다.

하지만 질문은 남는다.

그 해석이 너무 일찍 완성되어 있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 의료에는 원래 ‘느린 구간’이 있었다

 

 병원에 가면 답이 즉시 나오지 않는 경우가 많다.

질문을 한다.

과거력을 듣는다.

비슷한 증상을 만드는 다른 원인을 살핀다.

검사를 한다.

경과를 본다.

필요하면 다른 전문가 의견을 구한다.

환자 입장에서는 답답할 때도 있다.

하지만 이 느림에는 이유가 있다.

같은 증상이 여러 원인에서 나타날 수 있기 때문이다.

집중력 저하는 ADHD에서만 나타나지 않는다.

수면 부족, 우울, 불안, 약물, 과도한 업무, 신체질환, 생활환경의 변화도 영향을 줄 수 있다.

의학에서 ‘감별’이라는 과정이 중요한 이유다.

 

 기술 산업에서는 오랫동안 마찰을 제거해왔다.

클릭을 하나 줄였다.

검색 시간을 줄였다.

가입 절차를 줄였다.

결제 시간을 줄였다.

AI는 그 흐름의 정점에 가깝다.

질문과 답 사이의 시간을 거의 없애고 있다.

대부분의 업무에서는 놀라운 진보다.

그러나 사람을 해석하는 일에서는 모든 마찰이 제거되어야 하는지 다시 물을 필요가 있다.

 

어떤 지연은 비효율이 아니라 안전장치다.

 다른 가능성을 한 번 더 보는 시간.

처음 붙인 이름을 의심하는 시간.

“아직 모르겠다”고 말하는 시간.

당사자가 “그 설명은 나와 맞지 않는다”고 되돌려 말할 시간.

 

 나는 이런 구간을 없애야 할 마찰과 구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 사람은 아픈 만큼 말하지 않는다

 

 이 문제를 연구하면서 내가 351,734개의 실제 관계 서사를 분석했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PLOS ONE에 발표한 연구에서 서사의 복잡성과 언어에 표현된 감정의 강도는 거의 독립적으로 움직였다. 상관계수는 r=0.009였다.

사람은 감정이 강하다고 반드시 길고 격렬하게 말하지 않았다.

강한 감정을 짧게 압축하기도 했고, 비교적 낮은 정서를 긴 이야기로 조직하기도 했다.

이 결과가 모든 의료적 판단에 그대로 적용된다는 뜻은 아니다.

오히려 훨씬 단순한 사실을 말한다.

표현만 보고 인간의 내적 상태를 곧바로 하나의 의미로 닫는 일에는 본질적인 어려움이 있다는 것이다.

조용하다고 덜 아픈 것도 아니고, 말을 많이 한다고 더 아픈 것도 아니다.

사람은 자신이 느끼는 것을 그대로 출력하는 기계가 아니다.

그 사이에 기억이 있고, 관계가 있고, 수치심이 있고, 문화가 있고, 아직 자신도 이해하지 못한 부분이 있다.

그래서 AI가 아무리 정교해져도 관측된 신호와 사람 자체를 같은 것으로 취급해서는 안 된다.

 

 

■ AI를 느리게 만들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계산은 더 빨라져도 좋다.

검색도 빨라져야 한다.

의료정보 접근성이 좋아지는 것도 환영할 일이다.

우리가 늦춰야 할 것은 기술의 속도가 아니다.

결론의 속도다.

 

 AI가 하나의 설명을 제시했다면 다른 가능한 설명도 함께 보여줄 수 있다.

얼마나 확실하지 않은지도 알려줄 수 있다.

어떤 정보 때문에 그런 추론을 했는지 확인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중요한 결정으로 이어지는 순간에는 사람이 다시 검토할 수 있어야 한다.

무엇보다 사용자가 AI의 해석에 이렇게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아닌 것 같다.”

“다르게 설명해보겠다.”

“아직 결정하지 않겠다.”

이 세 문장은 기술적으로는 작은 기능처럼 보인다.

그러나 인간과 AI 사이의 권한을 결정하는 큰 차이다.

 

 

■ 누가 첫 번째 답을 주는가보다 중요한 것

 

 나는 최근 몇 년간 한 질문을 계속 연구해왔다.

인간의 감정과 정신상태를 누가 해석할 수 있으며, 그 해석은 어디까지 권한을 가져야 하는가.

최근 쓴 『해석자들』에서도 사제와 국가, 가족과 진단체계, 그리고 알고리즘까지 인간의 감정에 이름을 붙여온 존재들의 자리가 어떻게 이동했는지를 추적했다.

 

 AI 때문에 갑자기 생긴 문제는 아니다.

AI는 아주 오래된 문제를 전에 없던 속도로 우리 앞에 가져왔다.

누군가는 언제나 우리의 경험에 이름을 붙였다.

달라진 것은 이제 그 이름이 새벽 두 시에도, 몇 초 만에, 매우 그럴듯한 문장으로 도착한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나는 이것을 AI의 정확도만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결국 해석의 권한에 관한 문제다.

전문가의 판단도 필요하다.

AI의 도움도 필요하다.

당사자의 경험도 필요하다.

그 가운데 어느 하나도 너무 빨리 마지막 문장이 되어서는 안 된다.

 

좋은 AI는 언제나 가장 빨리 답하는 AI가 아닐지도 모른다.

 때로는 좋은 기술이 해야 할 일이 하나 더 있다.

자신이 내놓은 답 뒤에 작은 빈칸을 남기는 것.

사람이 다시 생각하고,

다시 묻고,

필요하면 그 이름을 지울 수 있도록.

 

작성 2026.09.17 12:35 수정 2026.09.17 1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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