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월세 80만원이 160만원 됐는데도 “그냥 살게요” 서울 세입자들이 이사 포기한 까닭
갱신 10건 중 6건은 계약갱신청구권 안 쓴 ‘합의 갱신’
합의 갱신 월세 계약 74.9% 임대료 상승 두 배 이상 오른 사례도
“반전세 만기일이 다가오는데 계약갱신청구권을 쓰면 2년 뒤에는 또 나가야 하잖아요. 그러느니 지금 집주인과 얘기해서 월세를 조금 더 올리기로 했습니다.”
서울 송파구에 거주하는 40대 최씨의 얘기다. 전월세 계약 만료를 앞둔 세입자들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임대료 부담이 커져도 새집을 찾아 나서기보다 현재 살고 있는 집에 남는 선택을 하는 세입자가 늘고 있기 때문이다.
서울 아파트 전월세 시장에서 이 같은 움직임이 뚜렷해지고 있다. 지난달 전월세 계약 가운데 갱신계약 비중이 올해 들어 처음으로 절반을 넘어섰다.
특히 눈에 띄는 것은 계약갱신청구권을 행사하지 않고 집주인과 세입자가 임대료 등 계약 조건을 다시 정하는 이른바 ‘합의 갱신’이다. 일부 계약에서는 보증금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월세를 두 배 이상 올리고도 재계약이 이뤄졌다.
14일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공개시스템의 서울 아파트 전월세 실거래 자료에 따르면 8월 계약은 지난 11일 기준 1만4089건으로 집계됐다. 이 가운데 갱신계약은 7233건으로 전체의 51.3%를 차지했다.
올해 월별 서울 아파트 전월세 갱신계약 비중이 50%를 넘어선 것은 8월이 처음이다.
갱신 비중은 올해 1월 44.2%를 기록한 뒤 2월 45.9%, 3월 45.2%, 4월 41.8%, 5월 45.9%, 6월 44.5% 등 줄곧 40%대 중반을 오갔다. 그러다 7월 46.4%로 높아진 데 이어 8월에는 51.3%까지 뛰었다.
올해 1~8월 전체로 범위를 넓혀 보면 전월세 계약 15만3927건 가운데 6만9873건이 갱신계약이었다. 전체 계약의 45.4%에 해당한다.
청구권 안 쓰고 집주인과 ‘합의’ 10건 중 6건
더 주목되는 대목은 계약갱신청구권을 사용하지 않은 갱신계약이 늘고 있다는 점이다.
8월 갱신계약 7233건 가운데 계약갱신요구권을 사용한 것으로 신고된 계약은 2870건이었다. 전체 갱신계약의 39.7%다.
반면 청구권 사용 표시 없이 갱신된 계약은 4363건으로 60.3%를 차지했다. 갱신계약 10건 가운데 6건가량이 법적으로 보장된 계약갱신청구권을 사용하지 않고 집주인과 세입자가 조건을 다시 협의한 셈이다.
이 비중은 1월 53.5%에서 3월 60.1%까지 상승했다가 다시 50%대로 내려왔다. 그러나 8월 들어 다시 60%를 넘어서며 올해 가장 높은 수준을 기록했다.
세입자가 계약갱신청구권을 행사하면 임대료 인상 폭에 제한을 받는다. 반면 청구권을 사용하지 않고 임대인과 임차인이 새로운 조건에 합의하면 시장 상황을 반영한 임대료 조정이 가능하다.
실제 합의 갱신 과정에서는 월세가 큰 폭으로 오른 계약이 적지 않았다.
합의 갱신 4건 중 3건 월세 올랐다
8월 합의 갱신 가운데 종전 계약과 보증금이 같고 종전·현재 월세를 모두 확인할 수 있는 1107건을 따로 분석한 결과, 829건에서 월세가 올랐다. 전체의 74.9%다.
월세가 종전 계약보다 50% 이상 오른 계약도 100건으로 9.0%를 차지했다. 월세가 두 배 이상 뛴 계약도 41건, 3.7%에 달했다.
실제 거래 사례에서는 상승 폭이 더욱 선명하게 나타났다.
성동구 옥수동 ‘옥수파크힐스’ 전용면적 84㎡는 보증금 8억원을 그대로 유지하는 대신 월세가 종전 80만원에서 160만원으로 두 배 올랐다. 이 계약은 계약갱신요구권을 사용한 것으로 신고되지 않은 갱신계약이다.
송파구 장지동 ‘위례중앙푸르지오1단지’ 전용 84㎡ 역시 보증금 4억원은 그대로였지만 월세가 70만원에서 140만원으로 두 배 뛰었다.
고가 월세 계약에서도 상승 폭이 컸다.
송파구 가락동 ‘헬리오시티’ 전용 84㎡에서는 보증금 5억원에 월세 166만원이던 계약이 보증금 변동 없이 월세 325만원으로 갱신됐다. 월세 상승률은 95.8%에 달한다.
강동구 암사동 ‘롯데캐슬퍼스트’ 전용 133㎡도 보증금 3억원은 그대로 유지됐지만 월세가 175만원에서 330만원으로 올랐다. 상승률은 88.6%다.
전세도 예외 아니다 4건 중 1건 가까이 10% 넘게 상승
전세시장에서도 비슷한 흐름이 나타났다.
8월 합의 갱신 가운데 종전과 현재 계약 모두 월세가 없는 순수 전세이면서 종전 보증금을 확인할 수 있는 계약은 2107건이었다.
이 가운데 보증금이 종전 계약보다 5% 넘게 오른 계약은 766건으로 전체의 36.4%를 차지했다. 10%를 초과해 오른 계약도 500건으로 23.7%에 달했다.
계약갱신청구권을 행사하지 않고 집주인과 세입자가 계약 조건을 새로 정할 경우 임대료 인상률 5% 제한을 적용받지 않는다. 이에 따라 주변 전월세 시세 등 시장가격을 반영해 보증금이나 월세를 다시 조정한 계약이 상당수 포함된 것으로 볼 수 있다.
결국 세입자 입장에서는 선택의 문제가 된다. 계약갱신청구권을 행사해 당장의 임대료 상승 폭을 제한할 것인지, 청구권을 남겨둔 채 집주인과 새로운 조건에 합의해 현재 집에서 계속 거주할 것인지를 판단해야 하는 상황이다.
강서구 갱신계약 67.5% 지역별 차이도 뚜렷
지역에 따른 차이도 컸다.
8월 강서구에서는 전월세 계약 1225건 가운데 827건이 갱신계약이었다. 갱신 비중이 67.5%에 달했다.
송파구도 전체 1078건 가운데 665건이 갱신되면서 61.7%를 기록했다. 이어 구로구 59.9%, 서초구 57.9%, 중랑구 57.4% 순으로 갱신계약 비중이 높았다.
계약갱신청구권을 사용하지 않은 합의 갱신 비중만 따지면 중랑구가 가장 높았다.
중랑구의 갱신계약 384건 가운데 청구권 사용 표시가 없는 계약은 322건으로 83.9%에 달했다. 구로구도 83.4%, 강서구는 79.7%를 기록했다.
서울 전체 평균인 60.3%를 크게 웃도는 수준이다.
전월세 갱신계약 증가와 합의 갱신 확대는 서울 임대차 시장에서 세입자들이 처한 현실을 보여주는 지표로도 해석된다. 임대료가 크게 오르더라도 이사에 필요한 비용과 새로운 주택을 구하는 부담, 향후 주거 안정성 등을 고려해 현재 살고 있는 집을 선택하는 수요가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전문가는 근본적인 원인으로 서울의 주택 공급 부족을 지목했다.
심형석 법무법인 조율 부동산 수석위원은 “이런 사례는 결국 서울이 만성 공급 부족에 시달리고 있기 때문”이라며 “충분한 공급이 이뤄져야만 현상이 완화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문의 : 031-563-2114





